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여기 천무의 패와 금의위의 직인이 있다. 명령서도 있으니 보옥위로 가서 잘 접수하도록 해라! 당분간 사람 한 명을 붙여줄 테니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서 일을 배우도록 해봐라!”
“충!”
모양은 해모수를 엄청 챙겨줬다.
그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그저 과묵하게 있는 게 좋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모양은 해모수에게 천무의 패와 금의위의 직인을 하사했다.
또한 명령서를 잘 접어 넣어둔 배첩도 줬다.
마지막으로 금의(錦衣)로 만든 비어복(飛魚服)도 건넸다.
이렇게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완전히 금의위의 천무가 됐다.
남들이 볼 때는 절색의 미녀, 누이 덕을 톡톡히 본 행운아로 보일 것이다.
[마루: 가만, 홍무 20년, 그러니까 1387년에 주원장이 금의위의 형구를 모두 불태우고 죄인들을 형부로 이관해서 심문하도록 명을 내렸다고 알고 있는데…….] [그렌: 1387년이면 올해 아니야?] [해모수: 맞아요.]마루의 말에 다들 의아한 눈빛을 발했다.
[마루: 올해 옥사(獄事)를 모두 당시 사법기관인 삼법사로 이관하고 금의위를 폐지하게 돼요. 나중에 영락제 때 금의위가 다시 부활하긴 합니다. 아 참! 모양도 조만간 주원장의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될 거예요.] [그렌: 어! 뭐야? 그럼 오늘이 혹시 그날이야?]그렌은 오늘 뭔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하지만 마루와 해모수는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롯이 왕지현에게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계획이 뭔지 말하지 않고 있었다.
“손 총관은 들라!”
“예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손 총관이 빠르게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오늘부로 이 저택은 해 천무에게 넘긴다. 저택에 딸린 노복과 식솔은 물론이고 창고의 재물과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손 총관은 앞으로 충성을 다해 해모수를 성심껏 모셔야 할 것이다.”
“충!”
“저택의 명의를 즉시 해 천무의 이름으로 변경해서 넘겨줘라!”
“충!”
손 총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지만 속으로는 기겁을 했다.
한순간에 거대한 저택이 기생오라비 같은 어린놈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게다가 그에게 충성을 다하라니…….
이 말은 이제 자신의 주인이 해 천무가 됐음을 의미했다.
“어떠하냐?”
모양은 왕지현을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망사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지현의 미소를 본 모양은 자신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며 침을 삼켰다.
하지만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늘 저녁은 그동안 손보려고 벼르고 있었던 공신 한 명을 쳐내는 날이다.
당장 궁성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황상(皇上)의 노여움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이 바빠서 오늘 저녁에 못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흘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돌아오겠다.”
“예, 언제든지 오시와요.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모양은 왕지현에게 다가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왕지현도 모양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두 손으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아무도 그녀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스치는 살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궁성으로 가자!”
“충!”
모양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대청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뒤를 해모수와 왕지현 모두 졸졸 쫓아갔다.
별채 앞에 세워둔 마차에 모양이 올라탔다.
그러자 어디선가 수십 명의 금의위 교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차의 사방을 둘러싸고 궁성을 향해 달려갔다.
모양이 탄 마차가 그들의 눈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자 왕지현이 몸을 돌려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해모수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손 총관!”
“예, 부르셨습니까?”
“앞장서세요.”
“아! 네.”
손 총관은 왕지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는 별채를 벗어나 대저택의 외원(外院)으로 들어갔다.
별채도 엄청 크고 좋았는데 대저택의 외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이런 엄청난 대저택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선물로 줄 수 있는 모양의 권세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다.
사실 금의위에서 정탐과 체포를 담당하는 관리의 권력은 엄청났다.
이들은 공을 세우기 위해 무고한 자에게 죄를 덮어씌우기를 밥 먹듯 했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에 연루시켰다.
황제의 이름을 앞세워 온갖 악행을 자행하였으니 그 원성도 자자했다.
이런 자들에게 뇌물과 재물이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치부와 축재가 따라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일개 금의위도 이럴진대 금의위의 수장이라면 얼마나 권력이 있고 재물이 많겠는가!
손 총관은 외원을 지나 두 사람을 내원(內院)으로 이끌었다.
외원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는데… 내원의 화려함을 보니 이건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마루: 정말 화려하기가 궁성 안의 황궁이 부럽지 않구나.] [그렌: 누가 살았던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구먼.] [해모수: 공신이 살던 집을 죽이고 빼앗은 게 아닐까요?]해모수의 말에 마루와 그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마도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원은 사군자의 이름을 따서 네 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여긴 죽림입니다.”
손 총관은 내원에 대해 보충 설명을 했다.
사군자(四君子)!
동양화에서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는 뜻으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다.
내원은 매화원(梅花園), 난정(蘭亭), 국화루(菊花樓), 죽림(竹林)을 통칭하는 말이다.
왕지현과 해모수는 손 총관을 따라 죽림을 시작으로 매화원과 난정, 국화루를 차례로 돌아봤다.
“어디에 묵을지는 원주(院主)님이 정해주십시오.”
손 총관은 과잉 친절이 넘치는 말투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왕지현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앞으로 내원에는 아무도 들이지 마세요. 그것은 손 총관을 비롯한 모든 시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연락은 어떻게…….”
“줄을 하나 매달아서 양쪽으로 종을 달면 될 거예요. 하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하도록 합시다.”
“혹시 모 지휘사께서 방문하시면 어찌해야 합니까?”
“저곳에 등을 달아두면 제가 밖으로 나갈게요.”
왕지현이 외원에 세워진 탑을 가리켰다.
손 총관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먹었다.
“그럼 식사나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십니까?”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 천무를 외원주(外院主)! 저를 내원주(內院主)라고 불러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두 분 원주님들 편히 쉬십시오.”
손 총관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시비들을 데리고 외원으로 나갔다.
“우리 죽림으로 가요.”
왕지현은 그들이 내원을 나가자마자 그의 손을 잡고 죽림으로 이동했다.
해모수는 미니 맵을 통해 내원에 혹시 누가 숨어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 내원과 외원 모두, 아니 대저택 안에 따로 불청객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건 아마 대저택 밖일 것이다.
대나무가 가득한 숲속에 하얀 돌로 세워진 석옥!
밤이라 어둡지만 않다면 정말 운치가 넘치는 고즈넉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빛조차 대나무 숲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깔린 죽림은 지금 그저 적막하기만 했다.
“상공!”
“지현!”
석옥의 문이 닫히자마자 왕지현은 그의 품에 냉큼 안겨 들었다.
해모수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끌어안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도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둘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둡기 짝이 없었다.
허나 두 사람 모두 이 정도의 어둠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오?”
“어머! 죄송해요. 상공을 힘들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이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싶어 일을 꾸며봤어요.”
왕지현은 뭔가 계획한 일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오.”
“예, 상공! 쉽게 말해서 모양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될 거예요.”
“죽다니요?”
“모양의 혈맥에 천음(天陰)을 심어놨어요.”
“아!”
이제야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럼 처음부터 모양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오?”
“그래요. 금의위의 수장이란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혔는지 몰라요. 선기를 다루다 보니 제가 이런 자들에게는 굉장히 민감해요.”
“혹시 무슨 업보(業報)나 카르마(Karma)라도 보는 것이오?”
“상공도 업보에 대해 잘 알고 계셨군요. 맞아요. 전 사람의 업보, 즉 상공께서 말씀하신 카르마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해모수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만지며 말을 이었다.
“모양을 처음 보자마자 그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오?”
“아니에요. 서갈봉을 만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으음!”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이런 앙큼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니…….
[마루: 모양을 홀려서 해모수에게 한자리 내주게 만든 다음, 그자를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군.] [그렌: 괜찮은 계획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허술한 점이 보이네.] [해모수: 어떤 허술한 점이 보여요?]이제 조금은 마음이 안정된 해모수의 질문이었다.
[마루: 그야 뻔하지. 모양이 죽게 되면 황제는 곧바로 다른 자를 금의위 지휘사에 임명할 거야. 그렇게 되면 새로운 지휘사가 와서 해모수에게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하면 끝나버리는 거지.] [그렌: 그 정도면 다행이게. 모양이 미녀를 얻으려고 무리하게 천무의 직위를 내렸던 것을 안다면 아마 똑같이 왕지현을 노리게 될 거야. 그렇다고 계속 금의위 지휘사가 생기는 족족 혈맥에 천음을 주입해서 죽여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그렌의 말을 들은 해모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당신이 세운 계획은 썩 나쁘지 않소. 하지만 그래도 좀 무리한 감이 없지 않소.”
“그런가요?”
“자! 내 말을 잘 들어보시오. 그대의 계획에는 이런 맹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이 한 말을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바꿔 말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왕지현은 곧바로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럼 제가 실수를 한 셈이군요. 전 상공을 돕고 싶어서 한 일인데…….”
“아니오. 꼭 그렇지는 않소.”
해모수는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위로해 줬다.
해모수는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마루와 그렌은 해모수의 요청에 즉각 반응했다.
[마루: 흐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그렌: 사실 앞으로 금의위의 지휘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상황도 달라지겠지.]모양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새 지휘사는 당연히 오지 않는다.
미래는 미래고, 현재는 현재다.
마루와 그렌의 생각은 엄연히 아직 일어나지도, 아니 일어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한번 미리 짐작해 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장 왕지현이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따질 수 없었다.
[마루: 사람을 잘 만나면 오히려 한순간에 새 지휘사의 심복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렌: 그렇지. 하지만 반대라면 바로 쪽박을 찰 수도 있어.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공적이 필요하고 변수를 줄이려면 그럴 만한 환경, 즉 혼란이 필요해!] [마루: 모양이 정해놓은 일에 딴지를 걸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는 말이군요.] [그렌: 금의위의 지휘부를 날려버리고 고급 관리의 숫자를 좀 줄이면 낫지 않을까 싶다.] [마루: 차라리 황성을 폭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황실에 적대 세력이 가득하잖아요.]마루의 과격한 말에 그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렌: 몰래 침투해서 불을 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아?] [마루: 어느 쪽이든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네요.] [그렌: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마루: 황자(皇子) 하나를 구하는 시나리오는 어떨까요?] [그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린놈으로 하나 구해서 이용해 보자고.]해모수는 금의위의 늙은이들이 왕지현을 탐하는 꼴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마루는 해모수가 가지게 된 권력을 잃지 않게 변수를 좀 줄여보고 싶었다.
더불어 명나라가 너무 커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렌은 해모수가 천무의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황성에 적당한 혼란이 일어나길 바랐다.
셋 모두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그것은 명나라의 황성을 들쑤셔 보자는 것이다.
[해모수: 그럼 난 이 기회에 원수를 갚아야겠어요.] [그렌: 그래. 이참에 원수인 서갈봉을 처리하자.] [마루: 잔인하고 악랄한 주원장과 후에 영락제가 될 그의 넷째 아들 주체에게 철퇴를 가합시다.] [해모수: 금의위 지휘사인 모양을 확실히 제거하고 금의위 고급 관리들도 제거해요.]셋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해모수는 왕지현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녀는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안색을 좀 폈다.
“나와 같이 황성으로 가서 한번 살펴봅시다.”
“좋아요.”
왕지현은 그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자신이 임기응변으로 꾸민 일들을 해모수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만큼 그를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