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움직이기 전에 이걸로 갈아입으시오.”
인벤토리에서 검은 야행복과 환도, 각궁과 비표를 꺼내줬다.
“예, 상공! 그런데 이건… 언제 봐도 신기하네요.”
왕지현은 감탄성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화려한 궁장을 벗고 새까만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사이 해모수는 마법 갑옷을 꺼내 장비했다.
그 위에 모양에게 하사받은 금의위 고위 관복인 비어복을 걸쳤다.
“준비됐소?”
“예.”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시오.”
“물론이죠.”
혹시나 해서 그는 왕지현에게 미리 말을 해뒀다.
해모수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댔다.
그러곤 작게 속삭이듯 시동어를 말했다.
“인비저블!”
프릴 목걸이에 인챈트된 투명화 마법진이 발동했다.
왕지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머나! 내 몸이…….”
그녀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자신의 몸이 사라지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내 몸도 사라질 것이오. 하지만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든 것뿐이오.”
다시 한번 시동어를 말했다.
“인비저블!”
투명화 마법진이 펼쳐지며 그의 모습도 꺼지듯 사라졌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디에 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해모수와 왕지현의 몸에 있는 음양기가 서로 공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미니 맵을 통해서 그녀의 정확히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죽림을 나가 저택을 벗어날 것이오.”
“저택을 나가면 바로 황성으로 가실 거죠?”
“맞소! 일단 서안문(西安門)으로 가서 황성의 성벽을 넘을 것이오.”
“예, 알겠어요.”
두 사람은 서로가 있다고 느껴지는 허공을 쳐다보며 대화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곧 빠른 속도로 죽림을 벗어났다.
다다다다다!
도도도도도!
내원의 담을 넘어 외원을 달렸다.
그리고 곧 외원의 담을 넘어 저택 바깥으로 나갔다.
이미 해가 진 상태라 세상은 어둠에 휩싸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수도이자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한 경사!
밤인데도 불구하고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그 누구도 빠르게 질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사의 대로를 두 사람은 무인지경으로 달려갔다.
멀리 황성이 보이자 그들은 서안문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알아서 잘 따라오시오.”
“예, 상공!”
해모수는 왕지현의 귀에 작게 속삭이고는 대담하게도 서안문 중앙으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뒤이어 왕지현도 그를 따라 성문을 가볍게 통과했다.
둘은 발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빠르게 전진했다.
서안문과 연결된 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궁성의 화려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 금의위 교위들이 쫙 깔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진 않았다.
오히려 금의위 교위 수십 명이 지키고 있는 성문 사이를 자신 있게 지나갔다.
그들은 결국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궁성의 우문(牛問)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 인비저블 마법진과 미니 맵 덕분이었다.
황궁(皇宮)! 황제가 사는 궁(宮)!
마침내 해모수와 왕지현은 황궁으로 들어섰다.
“으아아아악!”
그때 귀청을 후벼 파는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보니 일대에서 가장 크고 높은 전각 쪽이었다.
‘저쪽이군.’
두 사람은 참혹한 비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갔다.
극도로 소음을 줄였지만 질주하는 속도는 오히려 쏜살같이 빠르기만 했다.
어두운 밤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전각 주위는 대낮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금의위 교위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사면을 지키고 서있었다.
해모수는 굳이 정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관들이 조심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후문을 통해서 전각 안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실내로 들어가자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높은 단상으로 올라가자 넓은 장내가 한눈에 환하게 들어왔다.
[마루: 용상이다.] [그렌: 황제가 앉아있다.] [마루: 제대로 찾아왔네요.]마루와 그렌이 소곤거리는 말을 들으며 해모수는 조용히 주변을 살펴봤다.
공교롭게도 그가 올라선 곳은 황제가 앉아있는 용상의 바로 뒤편!
그래서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감히 올라오지 못했다.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옆을 쳐다봤다.
명 태조 주원장의 곰보 얼굴이 보였다.
부리부리한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치 고문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홀홀홀!”
실실 웃음을 흘리는 게 정말 소름 끼치도록 끔찍했다.
해모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용상 아래 단상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많은 황자들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애를 많이 낳았는지 나이가 지긋한 황자부터 어린 황자까지 참 다양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사람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해모수는 속에서 강렬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크아아악!”
정중앙에는 피투성이 노인 하나가 의자에 앉아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그는 전신에서 쏟아지는 고통으로 크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노인의 옆에 선 금의위 교위 하나가 얇은 칼로 회를 뜨듯 생살을 한 장씩 저미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이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해모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장내의 좌우를 살폈다.
거대한 전각 안의 양편으로 개국공신을 비롯한 수십 명의 공신들이 서있었다.
건너편, 아래쪽에는 대신들과 고위 관리, 군부의 실세들이 바글바글했다.
역시 이들 중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거나 이 참상을 말리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
아마 그만큼 명 태조 주원장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해모수는 조심스럽게 왕지현의 팔을 잡고 자신의 옆으로 이끌었다.
“그대의 눈에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로 보이오?”
“신기하게도 이 전각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맑고 선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어요. 모두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해요. 특히 황제와 개국공신들의 몸에는 원혼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어요. 저들의 카르마는 마치 새까만 먹물처럼 검고 더럽기 그지없어요.”
해모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마루가 보여준 중국의 역사책을 통해 명 태조 주원장을 시작으로 개국공신들이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명나라 황실과 조정도 복마전이라고 들어서 별 기대는 하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맑고 선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에 그만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는 갑자기 여기 모인 인간들을 그냥 전부 몰살시켜 버리고 싶었다.
단순하게 계산을 해봐도 명 태조 주원장과 영락제가 될 주체만 죽여도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가 있다.
앞으로 두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 개국공신과 공신들!
고관대작과 고위 관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
또한 이들과 연관이 있다고 해서 죽여버릴 이들까지 모두 합한다면 자그마치 6만 4천여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명 태조 주원장과 영락제 주체가 죽게 되면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모수는 오늘 살계(殺戒)를 한번 열어볼까 생각 중이었다.
[해모수: 이놈을 죽일까요, 말까요?]해모수는 주원장의 옆에 서서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물었다.
[마루: 난 찬성! 명 태조 주원장이라는 놈은 아주 나쁜 놈이야. 충성을 바쳐 섬겨야 할 자신의 주군을 고의로 물에 빠뜨려서 죽였어.] [그렌: 동고동락을 하며 나라를 건국한 개국공신들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인 의리와 신의가 없는 놈이라고 했지.] [마루: 정사와 야사에서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면 아마 실제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예요.] [그렌: 무엇보다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눈으로 좀 보라고. 이게 어디 일국의 황제가 할 짓이야? 사람을 고문하는 장면을 모든 신하와 자식들까지 불러서 같이 보게 만들다니…….]마루와 그렌은 모두 주원장이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명나라의 황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냥 죽여도 되는 건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명 태조 주원장이 갑자기 옆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우이씨!”
해모수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주원장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살기에 번들거리는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코앞에서 자신을 쳐다보자 반사적으로 주먹이 나간 것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내가중수법의 무리를 실어버렸다는 것이다.
주원장의 머리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더니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다행히 그 모양이 의자에 머리를 기대는 모양새였다.
[마루: 내가중수법이구나.] [그렌: 뇌가 곤죽으로 변했을 테니 바로 즉사했겠군.]주원장은 고통 없이 깨끗이 즉사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에 비하면 너무도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싱거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황제는 겉으로 보기에 참 멀쩡했다.
허나 그렌의 말대로 그의 머릿속은 이미 박살이 난 상태였다.
다만 당장은 황제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는 자가 없어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네.’
해모수는 놀란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렸다.
어이없이 일이 벌어져서 좀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 와서 죽은 황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는 무엄하게도 황제의 몸을 마구 뒤졌다.
품속에 꽁꽁 감춰둔 짧고 화려한 보검(寶劍) 하나와 옥새(玉璽)를 발견했다.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몰라 일단 인벤토리에 잘 넣어뒀다.
해모수는 인벤토리에서 네 개의 소이탄을 꺼냈다.
‘너희도 운명을 한번 거슬러 봐라! 운이 있으면 살 것이고 없으면 죽을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전각에 사방으로 난 문을 향해 거침없이 소이탄을 집어 던졌다.
오늘의 살계를 방화로 정한 것이었다.
휘익, 휙휙휙!
펑, 퍼퍼펑!
화르륵, 화르르륵!
네 개의 출입구에서 동시에 화끈한 화염이 치솟았다.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화마는 순식간에 일대를 먹어치우며 몸집을 불려갔다.
“으아악!”
“아아악”
“불이다!”
“불이 났다.”
귀청을 자극하는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모수는 그 와중에도 냉정하게 다음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윈드 커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금의위 지휘사 모양과 금의위 고위 관리들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바람의 소리가 사신을 불러들였다.
모양의 목이 단번에 잘려나갔다.
허공에 떠오른 그의 머리통이 뱅글뱅글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옆에 서서 같이 참관을 하고 있던 금의위 고위 관리들!
특히 천무들의 목이 일제히 잘려나갔다.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경쟁적으로 치솟았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머리통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으아아아!”
“와아아악!”
그 참상에 놀란 관리들이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누구 하나 황제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진정으로 주원장을 위하는 신하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비참해지는 황제의 주검이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화마는 거침없이 전각을 씹어 삼켰다.
벽이고 기둥이고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이로 삼았다.
당연히 황자와 개국공신들, 공신들과 고관대작, 고위 관리와 군부의 장군들의 몸도 집어삼켜 연료로 삼았다.
“모양은 확실히 죽었으니 이제 나갑시다.”
“예!”
해모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왕지현은 작게 대답했다.
후문으로 나가려고 보니 이미 사방은 불구덩이 속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드! 실드!”
해모수는 자신의 몸과 왕지현의 몸에 실드를 쳤다.
뜨거운 화염으로 인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불타는 이 거대한 전각 밖으로 빠져나갈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불길을 헤치며 빠르게 뛰어넘었다.
거대한 불길이 잠시 둘로 갈라졌다.
하지만 일 초도 참지 못하고 곧바로 하나로 다시 합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