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그런 생각이 들자 해모수를 위해 마루가 언급했던 좋은 무기와 갑옷을 필히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해모수: 갑옷이야 가죽으로 대충 만들면 될 것 같은데… 무기는 뭐로 준비해요?] [마루: 해모수는 호리호리하고 동작이 민첩하니까 그에 맞는 무기를 생각해 보자. 내 생각에는 쇠뇌와 단창을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물론 왜구에게 얻은 칼도 가지고 가야겠지만.] [해모수: 단창이야 이미 창촉을 가지고 있으니 매형에게 한번 갈아달라고 하면 될 것 같고, 칼은 그냥 들고 가면 되겠네요. 그런데 쇠뇌는 어디서 구하죠?] [마루: 그걸 왜 네가 고민해? 해모수 매형이 대장장이잖아. 그럼 당연히 쇠뇌를 만들 수 있겠지. 내가 현대 쇠뇌 설계도를 그려줄 테니까 그걸 토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봐. 단 매형이 같은 것을 양산해서 다른 이들에게 팔지 못하도록 미리 단속을 잘해야 될 거야.] [해모수: 아!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짓고 좋아했다.
마루는 해모수에게 현대 쇠뇌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켰다.
설계도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리고 보여줬다.
쇠뇌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진시황제 병마용에서 나온 청동 화살촉을 보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BC 450년경)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 최초의 크로스 보우는 지중해의 그리스 계열 도시국가(BC 300년경)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서양이 하나같이 쇠뇌를 개발하여 전쟁에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도 쇠뇌에 아주 익숙하다.
이미 고조선 때부터 쇠뇌를 실전에 사용한 것 같다.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뛰어난 신라의 쇠뇌 개발 기술 때문이라는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쇠뇌의 위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마루는 파이럿 혜성으로 인해 지구에 좀비가 나타나면 사용하려고 이미 현대 쇠뇌에 대한 연구를 끝낸 상태다.
동서양의 쇠뇌의 특징과 현대 쇠뇌의 좋은 점을 집대성해 위력이 강하고 만들기 쉬운 쇠뇌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
특히 쇠뇌의 핵심인 방아쇠틀 뭉치를 집중 개량했다.
앞쪽 끝 부분에 발을 걸어 현을 당기는 등자도 추가했다.
이 당시도 앉은 자세로 두 발을 활대로 뻗은 후, 벨트를 이용하여 시위를 당겨 너트에 거는 방식인 궐장노(蹶張弩)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등자를 달아 이것에 발을 걸고 쇠뇌를 들어 올려 현을 거는 방식이 훨씬 쉽고 빨랐다.
거기에다 쇠뇌의 화살을 조금 더 굵게 만들고, 금속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쓰기로 하는 등 몇 가지 개량만으로도 이 시대 쇠뇌의 위력을 크게 상회하는 강력한 쇠뇌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코치를 받아 언제 끌려갈지 모를 군역에 대한 준비도 착착 진행시켰다.
* *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누가 이따위 개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실패는 그저 실패일 뿐이다.
그렌은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인챈트 마법서에 적힌 그대로 마법진을 그렸는데 왜 제대로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 거야?’
고민에 빠진 그렌을 구해준 것은 생각지도 않은 마루의 한마디였다.
[마루: 혹시 인챈트 마법진이 실패한 것이 레무리아의 마나와 지구의 마나가 서로 다른 농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렌: 마나의 농도라고? 아! 그렇구나.]그렌은 갑자기 머리 한쪽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문제는 바로 농도의 차이였다.
레무리아의 마나 농도를 100으로 잡으면 해모수가 있는 산동(山東)의 바닷가는 10, 마루가 살고 있는 지구는 1에 불과하다.
그러니 레무리아 마나 농도에 맞춰진 인챈트 마법진이 해모수와 마루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당연히 발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렌: 마루, 고맙다. 네가 날 살렸구나.] [마루: 하하하, 천만에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렌 형이 이유를 찾아내고 말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렌 형이 잘돼야 우리도 잘되죠.] [그렌: 그렇게 말하니 내 얼굴이 다 뜨거워진다. 마법사라는 인간이 이런 간단한 이치도 깨닫지 못하고 마법진을 인챈트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정말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아.]자조 섞인 그렌의 말투에 마루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렌은 마루의 집에 굴러다니는 싸구려 자수정에다 아이언 스킨과 호신강체 마법진을 인챈트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마나의 유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대실패였다.
이번에는 해모수가 어릴 적에 바닷가에서 주운 싸구려 옥돌을 택했다.
헤이스트와 스톤 스킨 마법을 인챈트했다.
역시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그렌은 내내 속으로 자신의 인챈트 마법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챈트 마법이 두 세계에서 발현하지 않고 대실패한 이유가 알고 보니 너무도 쉽고 당연한 이치 때문이었다.
‘마루가 수련하고 있는 마이티 포스 연공법과 해모수가 수련하고 있는 퓨즈 오러 연공법은 조금씩 효과가 나오고 있어. 하지만 내가 구상했던 마루를 위한 아이언 스킨과 호신강체 마법, 해모수를 위한 헤이스트와 스톤 스킨 마법은 인챈트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어. 사실 인챈트 마법은 내 전공도 아니고 이제 겨우 2서클의 초급 마법사에 오른 실력으로 마법 수식을 바꿔서 온전한 마법진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마루와 해모수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마법진을 만들 수 있을까? 마나의 농도에 상관없이 마법이 발현되는 마법은 뭐가 있지? 아! 그렇구나. 실드, 실드 마법이 있었어.’
그렌은 한참을 생각하다 결국 실드 마법을 생각해 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2서클의 마법인 실드를 마법진으로 만들어서 인챈트하는 것은 힘들 것 같고, 역시 마나의 농도에 구애받지 않으려면… 고대 마법서에 나오는 실드 마법의 발현 방식을 이용해야겠다.’
그는 마법의 주머니를 열어 고대 마법서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한참 동안 꼼짝도 않고 고대 마법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렌의 입꼬리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다.
고대 마법서의 방식대로만 된다면 마나의 농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실드 마법을 인챈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면 됐어.”
그렌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마루가 얼른 말을 받았다.
[마루: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요?] [그렌: 응, 네 덕분에 참신한 방법을 생각해 냈어.] [마루: 내 덕분이라뇨? 난 마법에 대해서 깜깜무식인 놈인데…….] [그렌: 하하하, 이유야 어떻게 됐든 간에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단박에 해결됐으니 결국 네 덕분이 맞아.] [해모수: 지금 누구 덕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셨으니 빨리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해모수가 그렌과 마루의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 졸라댔다.
그렌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렌: 먼저 너희들에게 사과할게. 사실 내겐 마나의 농도를 달리 맞춰 마법 수식을 수정할 만한 실력이 없어. 그래서 이대론 아이언 스킨, 호신강체, 헤이스트, 스톤 스킨 같은 마법들을 너희에게 인챈트시킬 수 없어.] [마루: 괜찮아요.] [해모수: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마루와 해모수는 그렌의 사과를 별거 아닌 것처럼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그렌은 자신을 위해주는 두 사람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목이 메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그렌: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야. 실드 마법만큼은 인챈트가 가능할 것 같아.] [마루: 실드 마법요?] [해모수: 그거 좋은 거예요?]마루는 판타지 소설도 많이 읽고 온라인 게임도 좋아해서 실드 마법이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모수는 실드라는 말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
[마루: 실드 마법이라면 괜찮네요.] [그렌: 마나의 농도에 관계없이, 실드 마법진을 인챈트해서 발현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 다만 위력은 장담할 수 없어. 인챈트한 보석이나 수정이 가진 마나의 양에 따라 위력과 유지 시간이 결정될 거야.] [마루: 설마 날아오는 돌멩이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겠죠?] [해모수: 최소한 화살은 막아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마루와 해모수의 말에 그렌은 그저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더 이상 이 둘에게 자신이 해줄 말은 없었다.
마루와 해모수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마나석이나 마정석이 있다면 모를까… 형편없이 미미한 마나를 품고 있는 보석, 수정, 옥 따위로는 결코 제대로 된 실드 마법을 펼칠 수 없을 게 틀림없었다.
다만 순수한 마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퍼져있는 모든 기운을 흡수해서 실드를 만들어 내는 고대 마법서의 실드 마법 발현 메커니즘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고대 마법서 안에서 찾아낸 실드 마법을 그렌은 대부분 파악했다.
그는 자신의 방 한쪽에 편하게 책상다리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을 하려는 것이다.
그 모습에 해모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 오늘도 제가 먼저 마나 연공을 해야 하나요?] [그렌: 그래주면 고맙지.]그렌은 해모수의 말에 반색했다.
자신이 마나 연공을 하는 것보다 마나 친화력이 높은 해모수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받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았다.
해모수가 그렌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역시 해모수가 나서자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가 마나 연공을 할 때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마나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걸 확인한 그렌은 그저 놀라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재능이 깡패구나. 역시 마법사는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무조건 높은 게 최고야.’
마나가 텅 빈 심장 옆에 존재하는 마나 홀을 채우려면… 못해도 몇 시간은 눈을 감고 앉아서 정신을 집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해모수는 별로 집중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30분 만에 두 개의 서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마나 홀이 터질 듯이 빵빵하게 마나를 채워놓았다.
당장이라도 깨달음만 얻으면 3서클에 올라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현 상태를 뻔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 없는 자신의 무능(無能)!
그렌은 치를 떨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난 마법사로 대성할 자질이 아냐. 차라리 이번 기회에 서클 마법을 포기하고 고대 마법서에 나오는 혼돈 마법으로 갈아탈까? 혼돈 마법학파는 2서클에 해당하는 마나의 열 배만 모으면 바로 3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렌은 고대 마법서를 해석하면 해석할수록 점점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미 자신에게 마법사의 재능이 없다는 것은 증명됐다.
그 때문에 그렌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다.
그렇다고 여기서 당장 서클 마법을 포기하고 고대 마법서의 혼돈 마법학파로 갈아탄다면…….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마법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혼돈 마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아마 이단으로 몰려 마탑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휴우, 당장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로구나. 조금 더 고민을 해본 뒤에 결정하자.’
그렌은 일단 자신의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해모수는 그렌의 마나 홀에 더 이상 마나가 들어가지 않자 미련 없이 몸에 대한 통제권을 그렌에게 넘기고 물러났다.
그렌은 마지막으로 잠시 명상을 하면서 마나 홀에 가득 찬 마나를 다독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똑!
때마침 누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그렌, 나야! 죠스야!”
덜컹!
문을 열자 마탑의 사서이자 1서클의 견습 마법사로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죠스의 얼굴이 보였다.
“죠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냥, 잠깐 너와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왔어.”
“얘기? 무슨 얘기?”
“음… 나 좀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
“아, 미안! 어서 들어와!”
죠스는 그렌이 문을 활짝 열어주자 고개를 까딱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리저리 방 안을 한번 둘러본 죠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네는 참 검소하게 사는군.”
“마법사의 삶이야 다 비슷하지 뭐. 차 마실 거야?”
“아니야. 생각 없어. 그것보다 잠시 이쪽으로 와서 앉아봐.”
“응, 그러지.”
평소와는 달리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죠스였다.
그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죠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털어놓았다.
“그렌, 나 이번에 마탑을 나가기로 했어.”
“뭐? 일을 그만두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