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하지만 그것 외에 불의 여왕이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전무했다.
덕분에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눈앞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모두 불러와 봐! 전부 통구이를 만들어 줄게. 안 그래도 와이번의 마정석을 수집하려고 했어.
―훗! 도대체 너의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거지? 네가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고 하지만 나와 와이번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을 텐데…….
―내가 진짜 널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넌 이미 머리통이 터져서 죽어있을 거야.
―거짓말도 좀 정도껏 해라!
불의 여왕은 그렌의 말을 블러핑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블링크 마법으로 접근해 K6 중기관총으로 쏴버려도 된다.
최상급 마나석을 한 손에 쥐고 프로스트 노바 마법을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난사하는 방법도 있다.
멀리서 저격도 가능했다.
고폭탄과 수류탄을 쏟아붓고 클레이모어로 끝장을 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불의 여왕을 상대할 방법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 불의 여왕은 바이칼족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킬 게 많은 자는 약점도 많은 법이다.
그에 비하면 그렌은 달랑 야엘 한 명만 지키면 된다.
그리고 야엘은 아티팩트로 무장한 엑설런트 상급의 기사이다.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도 않는다.
절대 불의 여왕에게 호락호락 당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따져보자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게 과연 거짓말일까?
그렌은 인벤토리에서 고폭탄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냅다 바이칼족을 향해 던져버렸다.
휘익! 쾅!
바이칼족이 놀라서 뒤로 우르르 물러났다.
불의 여왕은 그 모습에 식겁했다.
분명히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뭔가를 꺼내 바로 던졌다.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하지만 마법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아공간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적이다.
만의 하나 아공간을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는 것이라면… 대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불의 여왕은 자신이 상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점차 그렌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흥! 난 여기 싸우려고 온 게 아냐.
―그럼 왜 대뜸 공격부터 한 거지?
―그건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실력 행사를 한 거야.
―그러니까 왜? 나한테 실력 행사를 했냐고.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한 말 뭐로 들었어. 난 오늘 이곳에 온 얀 영지의 새로운 영주, 그렌 자작이야.
―흐잉.
그제야 불의 여왕은 자신이 좀 경솔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좀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았군.
―그럴 때는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거야.
그렌은 사과라는 말을 강하게 강조했다.
불의 여왕은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전혀 사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 더 이상 싸우지는 말자. 너라면 말이 좀 통할 것 같다.
―나도 더 이상 너와 싸울 생각은 없어. 네가 먼저 공격을 했기 때문에 나도 반격을 한 것뿐이야.
―좋아. 그럼 오늘은 서로 비긴 것으로 하자!
뭔가 굉장히 유치하게 나오는 불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그렌은 굳이 꼬투리를 잡아서 일을 망칠 생각이 없었다.
중기관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야엘도 자신의 오러를 회수했다.
불의 여왕도 한순간에 자신의 몸을 덮은 화염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불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다.
“외성을 열고 바이칼족을 안으로 들여라!”
“예, 영주님.”
그렌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금세 쪼르르 하고 달려가 외성의 문을 활짝 열었다.
“내성 성문 앞으로 가서 얘기를 나눠보자.”
“좋아.”
불의 여왕은 처음으로 그렌을 향해 육성으로 말했다.
“난 네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어.”
“설마!”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나이가 아주 어려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완숙한 느낌도 들었다.
좀처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미녀였다.
“넥슨!”
“예, 영주님!”
그렌은 넥슨을 불렀다.
그러자 그를 따라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서 액티넘과 비리를 저지른 놈들을 모두 데리고 와라!”
“충!”
넥슨은 병사들과 함께 감옥으로 달려갔다.
“클리오!”
“예, 영주님.”
이번에는 클리오를 불렀다.
클리오와 네 명의 행정관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예, 영주님.”
다들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그렌의 뒤를 따라갔다.
야엘은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좌우를 살폈다.
혹시라도 암살자가 나타날까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불의 여왕이 성벽 위로 뛰어가 와이번에게 다가갔다.
레닌이란 이름의 와이번은 그녀를 향해 얼굴을 디밀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몸을 비비며 교감을 나눴다.
하지만 레닌은 그렌의 공격에 몸통과 날개가 뚫렸다.
등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고통이 심한지 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계속 신음 소리를 냈다.
“힐! 힐! 힐! 힐! 힐!”
그렌은 와이번을 향해 힐을 난사했다.
덩치가 더럽게 커서 힐 마법을 아주 쪽쪽 빨아먹었다.
덕분에 와이번의 몸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원래 태생이 상급 몬스터라 회복력이 엄청났다.
그런 놈이 힐까지 받아먹으니 어지간한 부상은 단번에 나아버렸다.
“고맙다. 영주!”
와이번 레닌을 고쳐준 것이 어지간히 고마웠나 보다.
불의 여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까지 했다.
“천만에. 참고로 내 이름은 그렌이야.”
“알고 있다. 그렌! 너도 나를 엘리샤라고 불러라!”
“엘리샤! 예쁜 이름이군.”
그렌의 말에 불의 여왕 엘리샤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설마 부끄러워서 저런 것은 아니겠지.’
그는 진짜 설마 했다.
얀 영지의 영주성은 오랜만에 인파로 가득 찼다.
그것도 카시오페라 왕국인과는 전혀 종족이 다른 설원의 이민족들이 내성 성문 입구 앞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만 명은 되어 보였다.
확실히 불의 여왕, 아니 엘리샤는 오늘 무슨 작정이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래 봐야 몇백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게 고작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모두 들어라!”
그렌이 목소리에 마나를 섞어서 크게 외쳤다.
내성 성문 앞 주변이 그로 인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난 프릴 마탑의 고위 마법사다. 또한 얀 영지의 새로운 영주, 그렌 자작이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이 웅성거렸다.
그들도 방금 전 불의 여왕과 그렌이 싸운 모습을 지켜봤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적의 와이번이 크게 상처를 입은 것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얀의 영주는 마법사였던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불의 여왕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겠다. 서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더 이상 싸움과 분쟁은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모두 제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판단하도록 하라!”
“…….”
마법사의 위엄은 대단했다.
그렌의 화통한 말에 아무도 감히 입을 뻥긋하지 않았다.
그는 마법 주머니에서 의자 두 개 꺼냈다.
“이리 앉으시오.”
“고맙다. 아니 고맙소.”
그렌이 갑자기 하오체로 바꾸자 엘리샤도 덩달아 말투를 바꿔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자 수만의 바이칼족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렌과 엘리샤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가 거의 드러나 있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렌이 엘리샤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몸을 보자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그의 바로 뒤에 야엘이 서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오늘 영주성으로 쳐들어온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오?”
“카시오페라 왕국 왕실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한 보급품의 수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요.”
“역시 보급품에 문제가 있었군요. 먼저 얀의 영주로서 사과를 드리겠소.”
그렌의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렸다.
바이칼족은 얀의 영주가 이렇게 쉽게 사과를 할 줄 몰랐던 것이다.
“기꺼이 사과를 받아들이겠소.”
“고맙소. 먼저 보급품은 앞으로 얀 영주인 내가 수령하지 않겠소.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 경비대장이나 영주성에서 보급품을 착복하는 비리의 근원이 사라지게 될 것이요.”
“그럼 우리는 누구로부터 보급을 받아야 하오?”
“당연히 수송대로부터 직접 받아서 쓰시오.”
그렌의 파격적인 말에 엘리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다 영지와 렌 영지의 경계 사이로 가서 보급품을 수령하란 말이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수송대가 발다 영지의 경계에서 보급품을 주면 즉시 확인을 하고 그 내역을 카시오페라 왕국의 왕실로 보내시오. 그럼 감히 수송대나 발다 영지에서 보급품을 훔치거나 빼가지 못할 것이요.”
“음, 그것참 묘수군요.”
엘리샤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렌을 쳐다봤다.
그녀가 알기로 보급품은 그냥 눈먼 돈이었다.
귀족이나 병사나 할 것 없이 죄다 눈에 불을 켜고 훔쳐가려고 했다.
매년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바이칼족은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피와 노력이 무색하게 보급품은 하루가 다르게 양이 줄어갔다.
물론 바이칼족이 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도 잡고 낚시도 했다.
그래서 매년 엄청난 양의 마른 어포를 비축해 놓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물고기만 먹고 살 수 있는가!
또한 몬스터 웨이브를 한번 겪고 나면 바이칼족의 무기와 갑옷 및 장비는 상당수가 망가지거나 수리를 받아야 했다.
만약 카시오페라 왕국의 왕실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몬스터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얀의 새로운 영주는 수십 년간 풀지 못한 난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렸다.
이건 욕심 많은 카시오페라 왕국인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 이 영주성은 무엇으로 유지를 하려고 하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소. 고위 마법사인 내가 이깟 영주성 하나 운영하지 못할까 봐 그러시오?”
“세금도 걷지 않고 이 큰 영주성을 어떻게 건사할지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나 그렌 자작이오. 프릴 마탑의 고위 마법사이기도 하오.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이나 의논해 봅시다.”
클리오 행정관은 그렌의 말을 듣고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다.
바이칼족이 없으면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없다.
고로 반드시 바이칼족을 지원해야 한다.
만약 바이칼족이 없었다면 카시오페라 왕국뿐만 아니라 코티아르 왕국, 나아가서는 모리스 왕국과 부르나 왕국까지 전체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려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전 영주들이 하나같이 보급품을 떼어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칼족의 보급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영주성, 아니 영주 자신이 먹고살 수가 없었다.
헌데 도착한 지 단 하루 만에! 그렌 영주는 그 비리의 고리를 단번에 끊어냈다.
그렇다고 앞으로 자신들이 받아야 할 급료가 걱정되지도 않았다.
고위 마법사인 영주의 말대로 분명히 뭔가 방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세금은 따로 낼 수 없소. 우리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오.”
“당연히 세금을 따로 걷을 생각은 없소. 그러니 안심하시오. 대신 무역을 하거나 물건을 사고팔 때 1퍼센트의 관세와 판매세는 걷을 것이오.”
“그건 상점에서 내는 것이잖소.”
“그렇소. 그러니 바이칼족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오.”
“뭐 1퍼센트라면 굳이 고민할 액수는 되지 않을 것이오.”
그렌은 엘리샤의 말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당장은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게 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거야 뭐 나중에 일어날 일이라서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얀 영주는 앞으로 얀 영지를 어떻게 통치하려고 하시오?”
“내가 얀 영지를 통치하려고 해도 불의 여왕이 있는데 무슨 통치가 되겠소. 그냥 불의 여왕이 알아서 통치하시오.”
“뭐시라!”
엘리샤는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