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응, 사서로 일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한데… 이대로는 마법사로서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 내 삶에 한번 변화를 주고 싶어.”
“으음.”
그렌은 죠스의 말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먹었다.
자신은 운 좋게도 해모수의 도움으로 2서클 초보 마법사에 올랐다.
그리고 어떻게든 3서클 수련 마법사가 되어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 번도 죠스처럼 열정적으로 삶의 변화를 주려고 해보지 않았다.
물론 전혀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은 생각만 했지, 결코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아마 이런 식이라면 정말 3서클 수련 마법사가 되는 건… 평생을 보내도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마탑에서 나가 어쩌려고 그래?”
“일단 용병단에 들어가 돈을 벌어볼 생각이야.”
“용병단? 그거 너무 위험한 일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일반 용병이야 하루 만에 꺼지기도 하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지만 마법사는 좀 다르거든. 그래도 명색이 내가 마법사인데 그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일할 순 없지. 거기에다 그냥 일반 용병들과 파티를 맺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용병단에 들어갈 거야. 용병단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마법사의 안전을 챙겨줄 테니 말이야.”
죠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한때 했던 생각과 아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이참에 용병단이나 들어갈까?’
그렌은 죠스의 말에 순간적으로 혹했다.
그걸 마치 눈치라도 챈 듯 죠스는 은근히 그를 충동질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렌, 자네도 나와 같이 용병단에 들어갈 생각 없어? 마법사 한 명보다는 둘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대접도 달라지고 좋지 않겠어?”
“용병단이라…….”
그렌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당장 마루의 질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마루: 정말 죠스라는 사람과 같이 용병단에 들어가려고 그래요?] [그렌: 사실은 내가 요즘 한계를 느끼고 있어. 선배 마법사들의 조언에 의하면 이렇게 한계를 만났을 때는 여행을 가든가, 용병이 되어 몬스터라도 잡아보라고 했어. 삶에 변화를 주라는 말인 거지.] [해모수: 몬스터를 잡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렌: 확실히 위험하긴 위험하지. 하지만 마법사는 용병단이나 몬스터 토벌대에서 제1순위로 보호를 해주거든. 그래서 실질적으로 위험에 잘 노출되지는 않아. 또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도 않고…….] [마루: 그런 생각이라면 용병단에 들어가는 것도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니네요. 그렇다고 무조건 죠스를 따라가 덜컥 용병단에 가입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그냥 조용히 혼자 따로 알아보고 결정하세요.] [그렌: 알겠어. 그렇게 할게. 너희를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해모수: 그렌 아저씨! 은근히 나를 너무 의지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렌: 해모수, 너만 믿을게. 잘 좀 부탁한다.]그렌은 해모수에게 살짝 아부성 발언을 했다.
그는 일단 마루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를 하자 왠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죠스의 제안을 이 자리에서 덥석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렌은 조금 인상을 쓰다가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죠스, 난 아직 잘 모르겠어. 별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 그럼 뭐 할 수 없지.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게 되면 이튼 영지에 있는 용병 길드로 연락해 주게.”
“그러지. 자네의 무운(武運)을 비네.”
“고마워.”
죠스는 일어나서 그렌의 몸을 한번 꽉 끌어안고 미련 없이 문을 나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죠스의 뒷모습을 보자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닫고 죠스가 언급한 ‘이튼 영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튼 영지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마탑이 위치한 영지의 이름이다.
그런 곳에 위치한 용병 길드라고 했으니… 아마도 이곳 마탑의 영향력이 미치는 용병단을 따로 소개받지 않았나 싶다.
“휴우, 괜히 찾아와서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놓고 가네.”
그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도 평소처럼 마탑의 도서관으로 가서 사서로 일을 하는 가운데…….
어느 날 도서관의 다른 사서들을 통해 죠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렌이 예상했던 대로 죠스는 이튼 영지에 있는 용병 길드에서 소개를 받아 ‘에덴 용병단’이라는 중소형 용병단에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다른 용병단과는 달리 에덴 용병단은 몬스터 토벌에 특화되어 있는 용병단이라는 말도 있었다.
[마루: 에덴 용병단이 생각보다 괜찮은 용병단일 수도 있겠네요.] [그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마루: 그런데 쓸 만한 용병단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렌: 그건 등급을 보면 알 수 있지. 용병단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신용이 있고 능력 있는 용병단이라고 보면 돼.] [마루: 그럼 용병 길드에 가서 등급이 제일 높은 용병단을 선택하면 되겠네요.] [그렌: 등급이 높은 용병단엔 당연히 높은 서클의 마법사들이 몰리지. 그런 용병단은 최소한 3서클의 수련 마법사는 돼야 들어갈 수 있어.] [마루: 그럼 죠스가 들어간 에덴 용병단은 등급이 그리 높지 않겠네요.] [그렌: 등급보다는 일단 규모가 크지 않은 용병단일 가능성이 높아.] [마루: 흐음, 죠스가 1서클의 견습 마법사라고 했죠?] [그렌: 맞아.] [마루: 그럼 에덴 용병단에는 들어갈 필요 없겠네요. 그렌 형은 2서클의 초보 마법사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그에 걸맞은 용병단에 들어가도록 해야죠.] [그렌: 얘기가 그렇게 되나? 알았어. 일단 한번 잘 알아볼게.]그렌은 마루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즉시 동료 사서들에게 물어서 카시오페라 왕국을 무대로 활약하는 괜찮은 용병단을 찾아봤다.
마탑이 위치하고 있는 이튼 영지를 포함해 주변 영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용병단!
그것도 신용도가 높은 용병단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등급과 신용도가 높은 대형 용병단은 3서클 이상의 마법사만 영입하기 때문에 그렌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런 대형 용병단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중소형 용병단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신용도가 만족할 만큼 높은 용병단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루: 미르 용병단 어때요?] [그렌: 미르 용병단?] [마루: 네, 원래 미르는 순우리말로 용(龍), 즉 드래곤(Dragon)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렌: 드래곤? 그거 나쁘지 않네.]그렌은 마루의 말을 듣자 왠지 미르 용병단으로 마음이 급속하게 기우는 것을 느꼈다.
‘미르’가 ‘드래곤’이라는 뜻이니 결국 ‘미르 용병단’은 ‘드래곤 용병단’이란 말이 된다.
물론 그들이 한민족의 순우리말을 알아서 그런 이름을 지었을 리는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우연히 그런 이름이 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이 서로 묶여있어 평생의 파트너라 여겨지는 마루가 권유를 하자 그렌은 미르 용병단이 어쩐지 남다르게 보였다.
[마루: 미르 용병단은 중소형 용병단이라 등급은 높지 않네요. 하지만 신용도는 따로 선별해 놓은 용병단 중 제일 높아요.] [해모수: 정말 그러네요. 나도 미르 용병단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렌: 그래? 둘 모두 그렇게 생각하니 난 미르 용병단에 들어가야겠네.]해모수까지 찬성을 하자 결국 그렌은 미르 용병단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루: 결국 용병이 되기로 했군요.] [그렌: 응,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어.] [마루: 잘됐네요. 기왕 마음을 그리 먹었으니 그럼 바로 준비를 시작하도록 해요.] [그렌: 준비라…….]마루의 말에 그렌은 차분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당장 마탑을 나가 용병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는 지금 자신에게 뭐가 있고 없는지부터 하나씩 따져봤다.
‘마법 주머니, 고대 마법서와 고서(古書), 하급 마법서, 최하급 마나석 가루, 최하급 포션, 최하급 해독제, 마법 시약, 빵 자루, 물병, 금화가 담긴 돈주머니, 로브 세 벌, 가죽 신발, 속옷…….’
생각했던 것보다,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트웨인이 가지고 있던 마법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지금 이것들의 주인은 엄연히 그렌 자신이었다.
[그렌: 막상 사서를 그만두고 용병이 되려니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네.] [마루: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마법 주머니 같아요.] [그렌: 고대 마법서를 해석하는 데 꼭 필요한 고서가 아니라?] [마루: 물론 고대 마법서와 고서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마법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잖아요. 그러니 마법 주머니만 잘 챙기면 사실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해모수: 흐음, 그거 말이 되네요.]마루의 말에 해모수가 맞장구를 치자 그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렌: 하긴 식량, 식수, 조리 도구, 식기, 조미료, 약품, 담요, 천막 등 필요한 거를 사서 모두 마법 주머니에 담아두면 되겠다. 그럼 난 로브만 하나 걸치고 다니면 되잖아.] [마루: 아마 그렇진 않을 거예요. 마법사가 제일 중요한 인적자원이라면 적이건 몬스터건 가장 먼저 마법사를 노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일반 용병과 다름없는 복장으로 위장해야 할 겁니다.] [그렌: 우와! 마루는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을 다 했어? 대단하다.] [마루: 하하하, 실은 제가 판타지 소설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거예요.] [해모수: 마루 형이 사는 세상에는 용병이 주인공인 소설이 많나 보네? 하여튼 놀랍다.] [마루: 뭐 꼭 그렇다고 말하긴……. 뭐 그래도 비슷한 건 있다고 봐야지.]마루는 장르 소설을 읽으면서 습득한 잡다한 지식 중 하나를 살짝 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렌과 해모수가 크게 놀라워하자 오히려 쑥스러워졌다.
그래도 마루가 한 얘기들은 그렌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알찬 도움이었다.
[그렌: 이제 가서 마탑의 도서관 사서를 그만두겠다고 말해야겠다.] [마루: 네, 그러세요.]그렌은 도서관장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바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얘기하자 도서관장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한 그렌이 사직하자 무척 섭섭해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지낼 거냐는 물음에 그렌은 미르 용병단에 들어가 용병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도서관장은 그에게 추천서를 하나 써줬다.
그리고…….
그의 호의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렌의 후임은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됐다.
마탑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1서클의 견습 마법사 중에 차고도 넘쳤던 것이다.
그렌은 도서관장에게 비표를 받아 마탑에 제출했다.
사흘 안에 모든 짐을 정리하고 마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마탑을 떠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짐도 별로 없으니 그냥 대충 짐을 꾸려서 마법 주머니 안에 던져놓고 걸어 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 이대로 마탑을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렌은 남은 사흘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먼저 같이 일했던 도서관 사서들과 일일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난 후, 각종 인챈트 마법진이 그려진 마법서를 복사했다.
마루와 해모수를 위해 준비한 각종 연공법과 무술, 무기술과 스킬 등도 복사본(複寫本)을 떴다.
또한 앞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마법 이론서와 해설서의 복사본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돈주머니의 금화가 꽤나 소모됐지만…….
그렌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마탑에서 구입할 수 있는 포션과 해독제, 각종 마법 시약까지 꼼꼼히 챙긴 그렌!
모든 준비를 마치자 미련 없이 마탑을 빠져나왔다.
자꾸 뒤에서 뭔가 자신을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렌은 자신의 청춘을 바친 마탑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시작했다.
* * *
퍽, 퍼벅. 휙, 휘익. 타닥, 타다닥…….
“원투, 원투, 위빙, 더킹, 백, 프런트, 다시! 원투, 원투…….”
트레이너의 목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운동복은 이미 땀에 푹 젖어 쉰내가 났다.
팔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푸들푸들 떨려오고 있었다.
“헤엑, 헤엑!”
“이제 겨우 15분 지났습니다. 체력이 그게 뭡니까? 스텝을 쉬지 말고 밟으라니까요. 스텝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루는 이를 악물었다.
트레이너는 분명 존댓말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마루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반말로 약을 올리는 것처럼 들렸다.
‘아! 졸라 힘드네. 원투 스트레이트에다 위빙과 더킹 그리고 스텝만 밟는데도 체력이 쫙쫙 빠져나가는구나. 누가 권투를 배우기 쉽고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말했지? 나오기만 해봐라. 바로 아구통을 날려버리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