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4
24화
마루는 실실 웃으며 미트를 대주고 있는 유명우 트레이너의 지도에 따라 정말 죽을힘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체력은 바닥에 떨어지는 땀처럼 급속히 떨어져 내렸다.
“권투, 특공 무술, 해동검도! 하루에 세 가지나 배우시겠다는 분이 벌써 지치면 어떻게 합니까? 가드가 내려갔습니다. 당장 더 위로 쭉 올리세요.”
혼신의 힘을 다해 글러브를 낀 자신의 주먹을 위로 들어 올렸다.
마치 바윗덩어리를 드는 것처럼 무겁기 짝이 없었다.
첫날, 과천 종합 격투기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맑음이었다.
탈의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자타 공인, 극상의 미모를 자랑하는 트레이너 김민정!
그녀와 함께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아주 즐겁고 흐뭇했다.
그러나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이후!
갑자기 분위기는 180도로 변해버렸다.
김병한 관장에게 컨설팅을 하고 세 명의 트레이너를 소개받고 나자…….
그다음은 마치 인세(人世)에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국가 대표 권투 선수 출신의 유명우 트레이너!
자칭 특공 무술의 대가(大家)이자 특수부대 교관 출신의 지옥한 트레이너!
해동검도의 달인이라는 이강산 트레이너!
이 세 트레이너는 마루의 요청에 싫은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가르쳐 줬다.
문제는 ‘적당히’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처럼 성실해도 너무 성실히… 철저해도 너무 철저하게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마루는 권투, 특공 무술, 해동검도를 각각 한 시간씩 빠르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배움의 시간은 바닥을 기는 자신의 저질 체력으로 인해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권투를 비롯한 운동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욕심이 너무 컸어. 권투 하나만 제대로 익히려 해도 반년은 족히 걸리겠다. 그런데 특공 무술에다 해동검도까지 배우겠다고 했으니 트레이너들이 얼마나 날 비웃었을까?’
마루는 마음 한편으로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그는 이제 거의 기계적으로 팔을 내뻗고 있었다.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다.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도… 지독하게 갈궈대는 유명우 트레이너의 목소리에 몸이 반사적으로, 아니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거참 특이한 체질이네. 쓰러져도 벌써 한참 전에 쓰러져야 하는데… 아직도 저렇게 팔을 내밀고 있네. 체력이 전부 방전된 게 아닌가?’
마루의 모습에 유명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우뚱했다.
이 신입 회원이 자신에게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 지 오늘로 딱 3일째다.
첫날에 권투의 기본적인 자세와 스텝만 가르쳐 줬다.
그 후 바로 원투 스트레이트를 연습시켰다.
30분이면 뻗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악착같이 버텨서 어쩔 수 없이 위빙과 더킹까지 가르쳐 줬다.
보통 첫날 이렇게 무리를 하면 대부분은 근육통에 시달려서 며칠 뒤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 쌩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어제 배운 것을 잊을까 봐 열심히 복습했다.
그래서 운동의 강도를 첫날의 두 배로 올리고 직접 미트까지 대주면서 힘주어 운동을 시켰다.
짐작했던 대로, 첫날보다 더욱 힘들어하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몸이 흔들렸다.
오랜 트레이닝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정도면 넉넉잡고 3일 안에 쓰러질 거라 예상됐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눈앞의 이 신입 회원은 3일째인 오늘! 다시 쌩쌩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아니 오히려 전날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훈련을 시켰음에도 끝까지 버텨냈다.
정말 놀라운 체력과 정신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독종(毒種)이면 나름 훈련을 잘 따라올 수 있겠구나. 굳이 더 이상 일부러 어렵게 가지 않아도 되겠어.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을 할 사람이야.’
유명우 트레이너는 마루의 끈기와 열정에 살짝 감복했다.
김병한 관장에게 소개를 받은 첫날만 해도 사실 좀 기분이 나빴다.
초보자인 주제에 건방지게 권투, 특공 무술, 해동검도를 한꺼번에 배우겠다고 설쳐대니… 당연히 속에서 열불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한번 제대로 당해보라는 심보로 참 빡세게도 운동을 시켰다.
그런데 이 신입 회원의 끈기와 인내, 무엇보다 운동을 배우겠다는 열정은 진정 높이 사줄 만했다.
어차피 자신의 제자로 키울 것도 아니고… 그저 돈을 내고 배우는 회원인 이상 더 이상 골탕 먹이는 것도 곤란했다.
여긴 누가 뭐래도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종합 격투기 체육관이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시고 쉬도록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유명우 트레이너께서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루는 유명우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의 조언대로 열심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온몸에서 삐거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유명우 트레이너 말대로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는 것이 뒤탈이 없을 듯싶었다.
무엇보다 권투 다음에 배울 과목인 특공 무술 시간을 생각한다면… 지금 온몸에서 아우성치는 비명을 잠시 모른 척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꿀꺽, 꿀꺽, 꿀꺽!
스트레칭을 마치고 창가 구석에 앉아 물을 마셨다.
시원한 생수가 목구멍으로 넘어오자 마른 논바닥에 물을 댄 것처럼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사물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마루는 그렇게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렌이 가르쳐 준 마이티 포스 연공법을 하려는 것이다.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며 수련을 시작했다.
정확한 수인(手印)을 짚고 호흡을 맞춰나가자 점차 온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바닥을 박박 기던 체력도 어느새 조금씩 회복되며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 3일 동안 마루는 권투, 특공 무술, 해동검도의 기초를 정말 열심히 닦았다.
세 트레이너의 철저한 지도 아래…….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다.
자신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이티 포스 연공법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는 어디서 주워 배운 태극권을 느릿하게 펼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틈틈이 수련하는 마이티 포스 연공법 효과가 탁월했다.
마루의 고갈된 체력을 단번에 채워주고, 근육통으로 시달리는 몸을 회복시켜 줬다.
가히 마법의 포션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강도 높고, 체력 소모가 많은 운동을 해도 마이티 포스 연공법을 한번 펼치기만 하면 금세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세 트레이너가 마루를 박박 갈궈대도 끝내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루 씨, 오늘도 그 이상한 체조를 하고 계시네요. 그거 정말 태극권 맞아요?”
“아! 네, 비슷한 겁니다.”
마루는 오밀조밀한 근육이 마치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지옥한 트레이너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하며 몸을 풀었다.
사람 여럿 잡아본 것 같은 서늘한 눈의 소유자!
지옥한은 참 빨리도 체력을 회복해 대는 마루의 몸을 쳐다보며 진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이티 포스 연공법에 대해 까발릴 수는 없었다.
마루는 조개처럼 꾹 입을 다물고 결코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 옆집에 사는 화교에게 공짜로 배운 태극권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중국인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태극권!
유파와 종류가 하도 많아서 자기들끼리도 제대로 구별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사실 뭐 믿거나 말거나이다.
어차피 마루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태극권이든 당랑권이든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씨부렁거릴 뿐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네.”
지옥한 트레이너는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그를 데리고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대련실로 들어갔다.
대련실 안의 한쪽 벽에는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만들어진 나무 인형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이 나무 인형들은 사실 지옥한 트레이너가 특공 무술을 쉽게 가르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것이다.
일명 ‘특공 무술 전용 실전 연습 기구’라고 불린다.
“자, 오늘도 먼저 가볍게 대련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네.”
지옥한 트레이너는 첫날부터 마루와 대련을 통해 특공 무술을 가르쳤다.
그래서 참 많이 터지고 깨지고 넘어졌다.
마루는 이런 대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낙법을 배웠다.
이틀 만에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여 밀고 던지는 기술의 요체(要諦)도 깨달았다.
물론 그것은 아주 간단하고도 기초적인 원리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특공 무술이라는 것이 일단 원리만 알고 나면, 나중에 얼마든지 응용력을 발휘해 파생 동작을 만들고 숙달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타닷, 휙, 쿵!
휘릭, 턱, 쿵!
역시 오늘도 마루는 지옥한 트레이너의 근처로 다가가기만 해도 몸이 허공으로 휙휙 날아다니는 것을 경험했다.
혹시 유도 기술을 몰래 쓰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공 무술이라는 것 자체가 어차피 합기도, 유도, 태권도, 쿵후 등 온갖 무술의 장점을 따와 짬뽕해서 만든 군용 무술이었다.
그러니 유도 기술을 쓴다고 해도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지옥한은 마치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듯 거친 대련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15분이 지나자 대련을 멈췄다.
마루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했다.
그저 일방적으로 바닥에 패대기쳐지거나 구르다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낙법이 익숙해졌다.
팔로 원을 그리면서 공격을 방어하는 기술도 배웠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기술도 조금씩 더 익숙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대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은 나무 인형을 이용해 특공 무술 실전 연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옥한은 마치 훈련소에 처음 들어온 신병을 가르치는 조교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군기가 잔뜩 들어간 병사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대한민국으로 탈북해서 넘어온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익히고 있는 북한 무술을 접목한 특공 무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네.”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한번 꿀떡 삼켰다.
눈을 크게 뜨고 지옥한의 몸을 주시했다.
지옥한은 나무 인형 몇 개를 가져와 대련실 중앙에 세워놓았다.
손과 발을 이용해 관절을 반대로 꺾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기술을 선보였다.
휘익, 툭, 끼릭!
휘익, 퍽, 까드득!
나무 인형이라고는 하지만 뼈대와 관절은 엄연히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옥한 트레이너가 시범을 보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대련실을 울려댔다.
“자, 잘 봤으면 한번 따라 해보세요.”
“네.”
지옥한은 시범을 보이자마자 바로 나무 인형을 갖고 실전 연습 훈련을 시켰다.
마루는 지옥한이 선보인 상대방의 무릎을 가볍게 차서 반대로 꺾어버리는 살벌한 기술을 흉내 냈다.
신기하게도 너무나 가볍게 나무 인형의 무릎관절이 반대로 꺾여 돌아가다.
그는 몇 번 연습하지 않아도 이 동작이 충분히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이게 나무로 만든 인형이라서 그렇지 실제 사람이었다면 관절이 반대로 꺾이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제대로 반항 한 번 못해볼 거야.’
마루는 자신이 선택하긴 했지만 특공 무술이 원래 이렇게 살벌한 실전 무술인 줄 미처 몰랐다.
아마 일반 체육관에서 가르치는 특공 무술은 진정한 무술이라기보다는 생활체육에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됐다.
지옥한 트레이너가 가르쳐 주는 특공 무술의 실전 기술!
결코 함부로 일반인에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특공 무술을 배우는 이유가 사람을 상대할 게 아니다.
마루는 마음껏 좀비에게 쓸 요량으로 별 거리낌도 없이 잘 습득할 수 있었다.
“다음은 상대에게 빠르게 접근해 바로 목을 꺾어버리는 기술입니다.”
“네.”
지옥한은 마루가 자신의 가르침을 잘 따라오자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무 인형에게 번개처럼 다갔다.
순식간에 목을 꺾어버리는 신기(神技)를 선보이는 지옥한!
마루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나무 인형의 목을 꺾어버리자, 마치 자신의 목이 꺾이는 것 같아 두 팔에 닭살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미소를 지으며 무술의 시범을 보이는 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