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내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매화원이 개방됐다.
허나 허락받지 않은 자는 한 발짝도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매화원 안채에 마련된 은밀한 밀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커다란 원탁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원탁 위에는 국토교통부 국토 지리 정보원에서 발행한 축척 1:5,000,000 지도가 깔려있었다.
100퍼센트 한글이라 아무도 무슨 말인지 아는 자가 없었다.
탁!
해모수는 일부러 탁자를 소리 내어 한번 쳤다.
“이제 다들 이해하셨습니까?”
“예, 전하!”
그들은 원탁 위의 지도, 아니 지도 위에 놓인 여러 모양과 색깔의 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나하나에 모두 깊고 심오한 의도가 담긴 장기 말이었다.
“그럼 김만덕 집사가 총정리를 해보시오.”
“예, 전하!”
해모수는 일단 한발 물러서서 김만덕 집사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해동연합의 집사 김만덕은 장내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봤다.
그는 어느 때보다 무겁고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이 지도를 한번 보십시오. 이렇게 정밀한 지도를 만들거나 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우리의 주군, 위국공은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잘 따르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여러분은 해양군벌, 아니 해양 대제국이 건설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다들 김만덕의 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군의 계획에 비하면 장보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은 마치 조족지혈처럼 느껴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각자 맡은 일에 신명을 다 바쳐야 할 것입니다.”
해모수는 김만덕의 말에 감격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김만덕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더욱 구체적이고 세세한 실행 방안을 곁들여 해모수를 마구 찬양했다.
처음에는 쑥스럽게 느껴지던 해씨 삼 형제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김만덕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고로 우리 계획의 핵심은 사략 함대의 완편입니다.”
“해동연합의 함대가 사략 함대로 확대 개편된다는 말이죠?”
해이호 함장 두인보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해왔다.
김만덕은 손가락으로 한반도 주변의 바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전하의 말씀대로 해동연합함대, 즉 해동함대가 곧 사략 함대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규모가 아니라 무려 다섯 개의 함대로 확대 개편됩니다. 1함대의 함대장은 홍유로 요동만과 발해만을 포함한 황해를 지키게 됩니다.”
“아!”
홍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일개 정찰선의 부선장에서 갑자기 함대장이 되어버렸으니 놀랄 만도 했다.
“2함대의 함장은 강조로 남해를 맡습니다. 제주도와 대마도를 기점으로 오키 제도, 이키섬 그리고 고토 열도를 섭력하게 될 것입니다.”
“…….”
김만덕의 말에 강조도 침을 꿀꺽 삼켰다.
“3함대의 함장은 두인보로 동해를 담당합니다. 현재 텅 비어있다시피 한 사할린과 북해도 및 연해를 복속할 예정이라 분함대(分艦隊)가 필요할 겁니다. 4함대의 함장은 위지백이 맡고 이곳 남지나해의 대만을 중심으로 해남과 향항(香港: 홍콩) 및 유구를 제패해야 합니다.”
두인보와 위지백이 동시에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에 만족을 했는지 김만덕이 웃으면서 5함대 얘기를 꺼냈다.
“5함대는 남지나해에서 더 나아가 안남국(베트남), 진랍국(캄보디아), 섬라국(태국), 점성국(참파), 소문달랍국(수마트라), 서양국(인도 남부), 일형국(말레이시아), 백화국(자바섬), 삼불 제국(팔렘방), 발니국(브루나이) 등과 교역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함장은 미정입니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나 컸다.
당장은 다들 김만덕의 말을 쫓아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혹시 각 함대의 규모를 알 수 있을까요?”
홍유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해 말하려던 김만덕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함대의 기본단위는 대형 전선 기준으로 열두 척입니다.”
“그럼 다섯 개의 함대이니 예순 척이 되겠군요.”
홍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이걸 모태로 해서 지속적으로 전선의 크기와 숫자를 늘리고 개량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매 열두 척마다 분함대를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그럼 1함대를 예로 들어 24척이 되면 1개 분함대가 생기는 셈이군요.”
홍유는 말을 하면서도 설마 했다.
“그렇습니다. 1함대를 예로 들었으니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매 열두 척마다 분함대를 이루고 고려 서부 해안, 산동반도 해안, 대륙 동부 해안, 요동만과 발해만 등을 각각 담당하게 할 예정입니다.”
“그럼 각 함대는 끝없이 확대와 개편을 반복하며 분화되어 나가는 겁니까?”
“정답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해양 제국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전 세계의 바다를 우리의 터전으로 삼을 때까지 팽창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
정말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당장 대형 전선 60척만으로도 홍조에게는 엄청난 숫자였다.
그런데 각 함대가 끝없이 분화되어 나간다면… 나중에는 얼마나 많은 전선으로 분함대가 이루어질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당장 대형 전선 60척을 사거나 만들기도 어려울 텐데 이런 식으로 함대가 확대, 분화되어 나간다면 정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군대라는 조직은 재원을 끝없이 먹어치우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이니까요.”
두인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기우일 뿐이었다.
“재원을 조달하는 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국공 전하께서 이미 황상의 재가를 받아 우리 함대를 사략 함대로 승인해 주셨고, 명나라 해안 어디를 가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바다를 접하고 있는 모든 성과 위소에서 일정 비율의 군용 예산을 받아 전용할 수 있습니다.”
“위소와 수군의 군자금을 일정 비율로 전용한다는 얘기 같은데… 그럼 우리 함대가 그 대가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왜구의 약탈을 막는 것입니다.”
두인보가 기다렸다는 듯 반론을 제기했다.
“명나라의 해안선이 얼마나 긴지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왜구를 퇴치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모두 지도를 봐주세요.”
김만덕의 자신만만한 말에 모두의 시선이 원탁 위의 지도로 쏠렸다.
“왜구는 당연히 이곳 왜국에 삽니다. 지도를 보시면 크게 세 곳에서 왜구가 출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대마도와 이키섬입니다. 두 번째가 구주(九州: 큐슈) 서쪽에 있는 고토 열도입니다. 세 번째가 해상 교통의 중심지인 녹아도(鹿兒島: 카고시마)의 방진(坊津: 보노츠)이지요.”
“그러니까 왜구가 아예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길을 틀어막자는 말씀이시군요.”
위지백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렇습니다. 왜구를 명나라 동부 해안이나 고려의 해안에서 막는 것 자체가 무립니다. 그렇다면 아예 입구를 틀어막고 고사시켜 버리면 됩니다. 무로마치 막부도 왜구가 이렇게 준동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고려와 명과 무역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대마도와 이키섬, 고토 열도와 방진을 정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이제는 질문하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너도나도 의문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이들과 창칼을 맞댈 필요는 없습니다. 항구를 틀어막고 바다를 건널 만한 모든 왜구의 관선을 불태워 버리면 됩니다.”
“무슨 수로 그 많은 배를 불태운다는 거죠?”
“당연히 화약과 화전이지요.”
직접 왜구와 전투를 했던 홍유가 의문을 품었다.
“왜구를 그렇게 입구에서 완전히 틀어막으려면 아마 엄청난 화약이 필요할 겁니다.”
“화약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나라 군부에서 제공해 줄 겁니다.”
이건 당연한 얘기다.
무슨 수로 왜구의 배를 전부 불태울 만한 화약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당연히 현재 세계 최고의 화약 생산 대국인 명에서 제공해 줘야 가능했다.
물론 해모수가 렌 화약을 가지고 나선다면 좀 달라지긴 하겠지만… 현지 조달이 가능한데 굳이 용량도 작은 공유 인벤토리를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왜구를 완벽히 틀어막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지도를 보시면 방진의 아래로 오스미 제도와 투카라 열도가 있습니다. 계속 내려가면 유구국(流球國)입니다. 이 넓은 바다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강조가 날카롭게 상황을 분석해 냈다.
김만덕은 한발 물러서면서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잘 설명해 줬다.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정도만 해줘도 명과 고려를 약탈하는 왜구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 겁니다. 그럼 명 조정에 얼마든지 생색을 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지원도 계속 받을 수 있고요.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왜국은 무역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함대의 규모가 너무 큰 게 아닐까요? 아니 대형 전선을 이렇게 많이 만들면 소모되는 물자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강조는 계속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올 구멍이 여러 곳에 있으니까요. 하나 예를 들자면 왜구를 막는 대형 전선이라고 해도 물건을 못 싣는 것은 아닙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김만덕의 말을 듣자 다들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략 함대는 왜구에게 공포가 되겠지만 반대로 명과 고려 그리고 막부에게는 부를 안겨줄 고마운 무역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왜구와 해상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근접전은 무조건 회피하고 원거리에서 포를 쏘거나 화전으로 공략합니다.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근접전이 펼쳐지면 수류탄과 소이탄을 이용해 적을 무력화시킵니다.”
명쾌한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해대호가 입을 열었다.
“5개 함대를 만들기 위해 대형 전선을 건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고려의 대형 선창에 누선을 많이 발주해 놓았습니다. 헌데 주군의 밀지를 받고 나서 고려의 모든 선창에 우리가 설계해 놓은 개조선 설계도를 보내 아예 대량으로 주문해 버렸습니다. 덕분에 누선을 굳이 다시 개조하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선을 주문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전투만 주야장천 할 게 아니라면 상선도 필요했다.
“설마 대형 전선만 발주한 것은 아니겠지요?”
“해동연합의 배는 사실 전선과 상선을 따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개조선을 기준으로 무장을 하면 대형 전선이 되는 거고 무장을 좀 적게 하고 물건을 많이 실으면 상선이 되는 겁니다.”
전선도 되고 상선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배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답변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해모수는 김만덕에게 눈짓을 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게 했다.
“아까 말했던 대로 5개 함대를 구성함과 동시에 사할린과 북해도, 연해와 대만으로 진출을 시작합니다. 이미 탐사대와 선발대는 각 지역에 도착해 있습니다. 미리 선점을 해서 개발할 곳은 개발을 하고 점령할 곳은 점령해서 성을 쌓을 것입니다.”
“원주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신대륙을 개척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원주민이다.
하지만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조언을 받아 확고부동한 원칙을 세워놓았다.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원주민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입니다. 물물교환이나 상거래를 하면서 가급적이면 분쟁을 피하고 혹시 필요한 땅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주고 사도록 하세요. 우리가 사람이 없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까 향항(홍콩)을 언급하셨는데… 그건 뭡니까?”
“주군께서 위국공에 책봉되면서 봉지로 1만 필지를 하사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향항이 포함된 광동의 구룡반도와 주변의 섬들로 대체하기로 하셨습니다.”
“봉지라면 최고등급의 농지가 아닙니까? 그걸 돌려주고 대신 구룡반도를 받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당장 농사지을 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쌀은 강남에서 사오면 그만입니다. 해동함대가 안전하고 편하게 드나들 항구와 부두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위국공 전하께서 아주 큰 결단을 내려주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