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이번에 배우는 기술은 난이도가 꽤 높았다.
그래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단순히 목을 꺾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의식하지 못하게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는 접근법까지 함께 배워야 했다.
지옥한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무척 꼼꼼한 편이었다.
친절한 설명과 반복된 시범을 통해 결국 마루는 이 살벌한 기술을 기어이 전수받고야 말았다.
“하하하, 아주 잘했습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그동안 배웠던 것을 한 번씩 복습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네.”
마루가 힘차게 대답했다.
지옥한은 미소를 지으며 벽에 걸린 인형을 하나씩 가져와 실전 연습을 시켰다.
손가락으로 눈알을 찌르고, 팔꿈치로 안면을 가격하는 동작은 참 얌전한 편에 속하는 기술이었다.
급소를 발로 차서 완전히 뭉개버리고, 팔다리를 꺾어서 뽑아버리는 기술.
인후를 잡아 뜯고 목을 무릎과 발로 밟아서 부러뜨리는 기술 등은 자신이 직접 나무 인형에다 실전 연습을 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라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사람이 아닌 나무 인형을 이용해 실전 연습을 하는 것도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나무 인형 자체가 꽤 딱딱해서 열심히 하면 할수록 몸에 파란 멍이 들기 일쑤였다.
관절기나 뼈를 부러뜨리는 기술을 쓸 때도 뼈대와 관절에 들어가는 철근으로 인해 어지간한 힘을 주지 않으면 쉽게 돌아가거나 휘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마루의 팔다리는 쇠에 부딪쳐 피부가 찍히고 까지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인형을 이용한 실전 연습은 한 시간을 꽉 채운 후에야 끝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참 아쉽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척 아쉬움을 토로하는 지옥한 트레이너.
마루는 얼른 인사를 하고는 쌩하고 대련실을 빠져나왔다.
권투를 배울 때와는 다른 종류의 이유로 마루의 체력은 또다시 바닥을 기었다.
마루는 스트레칭을 한 후, 어쩔 수 없이 마이티 포스 연공법을 다시 시작했다.
지옥한 트레이너는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열심히 마이티 포스 연공법을 수련하고 있는 마루의 모습을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오늘도 참 열심히 하시네요.”
“어,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들어가시죠?”
“네.”
어느새 시간이 다 됐는지 해동검도를 가르칠 호리호리한 체형의 이강산 트레이너가 눈앞에 서있었다.
빨리 체력을 채워야 한다는 마음에, 무아지경으로 마이티 포스 연공법에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마루는 얼른 동작을 멈추고 이강산 트레이너를 따라 검도 교실로 들어갔다.
넓은 체육관과 분리된 검도 교실.
한쪽 벽에 호구와 죽도, 목검 등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오늘은 이틀 동안 배운 기본기 복습 좀 할까요?”
“네.”
마루는 이강산 트레이너의 말에 살짝 인상을 썼다.
TV 드라마에서 봤던 멋진 해동검도를 가르쳐 줄 줄 알았더니…….
지난 이틀 동안 죽어라고 기본기만 배웠다.
그것도 기마 자세를 한 상태로 목검을 위로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내려치는 내려치기 세 종류와 똑바로 찌르기 하나뿐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내려치기.
오른쪽 대각선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치기.
왼쪽 대각선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치기.
똑바로 정면 찌르기.
이강산 트레이너는 마루의 얼굴을 슬쩍 한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그러곤 목검 하나를 가져와 건넸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오른손, 왼손, 양손으로 각각 기본기를 연습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세요. 얼마나 기초가 잘 닦였는지 보겠습니다.”
“네.”
마루는 이강산이 가져다준 목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내려치기 세 종류와 찌르기 한 종류를 빠르게 시연했다.
휙, 휙, 휙, 훅!
“잘하시네요. 그럼 이번에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각 한 번씩 해보세요.”
“네.”
이강산 트레이너의 말대로 이번에는 한 손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휙, 휙, 휙, 훅!
휙, 휙, 휙, 훅!
“훌륭합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자세가 아주 정확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습니까?”
마루는 이강산의 칭찬에 금세 얼굴이 펴졌다.
지겨운 기본기만 죽어라고 연습시켜서 속으로 좀 원망했다.
그런데 칭찬 한 번 받았다고 홀라당 마음이 풀려버렸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루는 곧이어 들려온 이강산 트레이너의 말에 또다시 인상을 썼다.
“그럼 오늘은 내려치기와 찌르기에 더해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한 발씩 이동하는 스텝을 배우겠습니다.”
“네에?”
마루는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이강산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냈다.
“혹시 해동검도가 뭔지 아세요?”
“글쎄요. 그냥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무술 아닌가요?”
마루의 말에 이강산은 미소를 지으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보여줬다.
해동검도는 각각 자신이 재정립 또는 창출했다고 주장하는 두 단체(해동검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의 총재들이 70년대 이후 심검도, 기천 등을 배우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을 접한 후 검술의 체계를 세워 일반에게 보급한 무술이란다.
“이걸 읽고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습니까?”
“무예도보통지라는 것이 눈에 띄네요.”
“정답은 아니지만 핵심은 파악했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무예도보통지를 주목하라는 겁니다.”
무예도보통지는 규장각 검서관인 이덕무, 박제가, 장용영 장교인 백동수 등이 정조의 명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한 훈련용 병서다.
중국(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 등 참고)과 일본의 무술을 비롯해 조선 전통 무술(수박, 타권)들을 기록했다.
총 24기(技)로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鐺鈀), 기창(騎槍), 낭선(狼先),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토유류(土由流), 천유류(千柳流), 운광류(運光流), 유피류(柳彼流)), 교전(交戰),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권법(拳法), 곤봉(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가 있다.
“이마루 회원께서는 해동검도를 왜 배우려고 하십니까?”
“그, 그건.”
마루는 이강산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좀비를 쉽게 잡아 죽이려고 그런다. 왜?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뭐라고 변명을 하지?’
잠시 생각에 빠진 마루의 모습을 보는 이강산!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마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냥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요새 돌아가는 시국이 하도 어수선해서 제 몸 하나 지켜보겠다고 시작한 겁니다.”
“검도는 대한검도가 됐든 해동검도가 됐든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우친 살상 무술입니다.”
역시 이강산에게 대충 둘러대는 것으로는 이도 박히지 않았다.
마루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파이럿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세상이 좀비로 뒤덮여 멸망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좀비를 상대하려고 배우는 겁니다.”
“네에? 푸훗!”
이강산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예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게 아니라서 급히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압니다. 알아요. 나도 참 웃긴다는 거…….”
“아! 죄송합니다. 비웃으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검도를 배우려는 이유가 워낙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이강산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깨끗하게 잘못을 시인했다.
“에휴! 어디 가서 소문이나 내지 말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강산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의 입꼬리를 보니 귀밑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기랄!
“그만 웃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크흠!”
이강산은 몇 번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바꿨다.
웃음기를 지운 그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 중, 가장 유명한 검술(劍術)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본국검(本國劍)과 예도(銳刀)입니다.”
“본국검과 예도요?”
“그렇습니다. 본국검은 신라 시대 화랑도(花郎徒)들을 중심으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사용한 우리 고유의 검술이고, 예도는 조선세법이라고 불리는 조선 시대 이전의 우리 고유의 검술입니다.”
“결국 본국검과 예도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해동검도의 큰 뿌리가 결국은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본국검과 예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본국검과 예도를 배우려면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리겠네요.”
마루가 미리부터 걱정을 했다.
이강산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검술 한 가지를 완전히 배워서 실전에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도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이마루 회원님께서는 한 달 안에 권투, 특공 무술, 해동검도를 다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검도는 다 배우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검술을 한 달 만에 다 배울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럼 검술은 포기해야 하나?”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미간을 좁혔다.
이강산이 한 발 앞으로 다가오더니 은근하게 속삭였다.
“어차피 한 가지 검술을 한 달 만에 배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정말 좀비를 잡기 위해 검술을 배우는 거라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네? 방법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좀비라면 좀비 영화에서 나오는 그 언데드를 말하는 거죠? 목을 자르거나 뇌를 파괴해야 죽는다는…….”
“그렇습니다.”
“최근에 좀비 영화를 본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요. 그렇다면 한 달 동안 기본기만 주야장천 익히도록 하세요. 제가 가르쳐 주는 기본기만 제대로 익혀도 좀비를 상대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네에? 그게 정말입니까?”
“좀비가 총을 쏘거나 검술을 펼친다고 설쳐대지만 않으면 분명히 그걸로 충분할 겁니다.”
“그야 당연히 좀비가 총을 쏘거나 칼을 들고 다니지는 않겠죠.”
마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비가 총칼을 들고 설쳐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사실 서로 검을 들고 실전에 들어가면 화려한 기술보다는 대부분 기본기에서 결판이 납니다. 눈앞에서 시퍼런 칼날이 막 들어오는데 언제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화려하고 동작이 큰 기술을 선보이겠습니까? 기본기만 제대로 익혀도 어중이떠중이들은 단칼에 골로 보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좀비를 상대하기 위해 검술을 배우신다면 결국 주 공격로는 좀비의 머리나 목일 테니 더더욱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결국 나보고 앞으로 한 달 동안 쭈욱! 내려치기만 하라는 말씀이네요.”
“그건 아닙니다. 좀비가 여러 마리 몰려들면 뒤나 옆으로 피하면서 그들의 머리나 목, 팔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오늘 배울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이동하는 스텝을 잘 이용해 보세요.”
가만히 얘기를 듣고 보니 결국은 기본기나 열심히 익히라는 소리였다.
마루는 뭔가 자꾸 속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강산의 말에서 전혀 허점을 찾아볼 수 없기에 뭐라고 제대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루는 이강산의 긴 설명 뒤에 새로운 기본기 하나를 추가하게 됐다.
“자, 정면으로 한 발짝 나오면서 내려치기 해보세요.”
슥, 휙!
“잘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서 내려치기 해보세요.”
슥, 휙!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뒤로 한 발짝씩만 움직이면서 내려치기를 하시면 됩니다. 내려치기 기본기가 세 종류가 있으니 지겨워지면 바꿔가며 수련하도록 하세요.”
“네.”
역시 속은 느낌이 강하게 났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이미 한 달 치 회비를 미리 다 냈기 때문이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뭐든지 기본기가 중요한 거야. 한 달 동안 검술의 기본기만 제대로 배워도 한 달 치 회비는 뽑고도 남는 거야.’
마루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지금 하고 있는 기본기 수련에 억지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