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다 했다.”
“오늘 채광은 여기서 끝인가요?”
“응. 끝났어.”
“그럼 이제 명상을 하실 거예요?”
“조금 쉬었다가 하자.”
“그러고 보니 배가 좀 고프긴 하네요.”
그렌은 마법 주머니를 열어 간이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꺼냈다.
야엘이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깔았다.
그는 에티오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든 명품 요리들을 꺼내 세팅했다.
그러자 그녀도 코티아르산 명품 포도주와 유리잔 두 개를 꺼냈다.
둘은 우아한 자세로 앉아 요리를 먹고 포도주를 나눠 마셨다.
“이곳 요리도 맛있네요.”
“다음에 이 레스토랑에 가서 여러 종류의 요리들을 좀 더 사놓아야겠어.”
“이 포도주는 저한테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래? 난 좋은데……. 하지만 뭐 야엘이 마음에 안 든다니 다른 종류의 포도주를 구해보도록 하지.”
“고마워요.”
그들은 별다른 얘기가 없어도 즐거웠다.
어두운 동굴에 빛의 공 하나만 떠있는데도 화기애애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명상을 시작했다.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각각 양손에는 방금 캐낸 최상급 마나석이 들려있었다.
[해모수: 같이 집중할까요?] [마루: 당연히 그래야지. 마나석 광산 안에서 명상을 하면 몇 배의 효과가 있잖아.] [그렌: 명상을 시작할 테니 둘 다 잘 부탁한다.]그렌이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자 야엘도 동시에 눈을 감았다.
‘혼돈 마법!’
그는 마음속으로 혼돈 마법을 뇌까렸다.
카오스 볼이 힘차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회전은 빨라지고 점차 가속됐다.
카오스 볼에서 강한 흡입력이 생겨났다.
그렌의 호흡을 따라 마나석 광산 안에 포화된 마나들이 들락거렸다.
양손에 쥔 최상급 마나석도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순수하고 진한 마나가 흘러나와 그의 손을 통해 카오스 볼로 흘러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묘한 공명음이 울리며 강한 마나의 유동이 시작됐다.
작은 홍시만 한 그렌의 카오스 볼이 점차 마나로 가득 찼다.
강한 회전력으로 마나를 압축했지만… 더 이상 마나를 담을 수 없을 만큼 빵빵해졌다.
카오스 볼은 서서히 자신의 그릇을 확장시켰다.
홍시만 했던 카오스 볼은 어느새 복숭아만큼 커져버렸다.
그렌은 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마나를 쓸어 담았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나의 물결!
빠르게 회전하는 카오스 볼 속에 들어가 순식간에 압축됐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흡입력은 마나석 광산 안의 진하게 분포된 마나를 무섭게 빨아들였다.
동시에 양손에 쥔 최상급 마나석에서도 고밀도의 양질의 마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로 인해 카오스 볼은 금세 빵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공명음이 더욱 커지고 카오스 볼은 다시 한번 확장을 준비했다.
그때 집중을 무너뜨리는 마법 수정구의 신호가 울렸다.
“아휴!”
그렌은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줬던 마법 수정구에서 나오는 신호가 분명했다.
이걸 무시했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된다면 아마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아쉬움을 접고 벌떡 일어났다.
“어! 갑자기 왜 명상을 그만두세요? 한창 좋았는데…….”
야엘이 득달같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뭔가 자신의 분위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렌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야엘의 허리를 감쌌다.
“마법 수정구에서 신호가 왔어.”
“아! 그럼 가봐야겠군요.”
“야엘만 괜찮으면 지금 출발해도 될까?”
“저야 뭐 언제든지 준비 완료예요.”
“좋아. 그럼 지금 바로 가도록 하자. 텔레포트!”
그렌이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순간 프릴 목걸이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의 몸을 단번에 삼켜버렸다.
스팟!
그렌과 야엘의 몸이 빛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밝게 빛나던 빛도 허공의 한 점으로 빨리듯 사라져 갔다.
틴틴산의 마나석 광산은 일순 어둠에 휩싸였다.
바닥에 떨어진 마나석 가루들만 야광충처럼 은은한 녹색의 빛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카시오페라 왕국, 얀 영주성.
“영주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수석 행정관 클리오의 말에 그렌은 썩소를 지었다.
“별일 없었소?”
“그게…….”
그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지 미리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자신의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에티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기에?”
“보급품을 바이칼족에게 직접 줘도 되냐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렌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발다 영지와 렌 영지 사이의 경계선에서 카시오페라 왕실에서 지원하는 보급품을 바이칼족이 직접 수령할 거라고 보고하지 않았소?”
“확실하게 보고했습니다. 다만 그게 잘 믿어지지 않아서 재확인을 하는 절차랍니다.”
“참! 걱정도 팔자군.”
그는 몸을 의자에 깊숙이 묻으며 혀를 찼다.
“발다 영지에서 다시 확인해 보라고 모종의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 왜?”
“그거야 잘 아시다시피, 그동안 발다에서 보급품을 엄청 가로채서 자신의 배를 불리지 않았습니까!”
“아! 내가 잠시 그걸 잊고 있었군. 앞으로는 도둑질을 못할 테니 배가 무척 아프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클리오는 자신이 보급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척 좋아했다.
“다른 소식은 없었소?”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니?”
이번에는 좀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카시오페라 왕국의 베른 영지와 코티아르 왕국의 맥커리 사이에 영지전이 벌어진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렇소.”
“베른 영지군이 맥커리 영지군에 대승을 해서 거의 점령을 하게 되자 코티아르 왕국이 약속을 깨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렌은 놀라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둘이 합의를 해놓고 어떻게 일방적으로 약속을 깰 수 있다는 말이오.”
“영주님, 코티아르 왕국은 카시오페라 왕국에서 영지전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반칙을 했으니 영지전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정말 반칙을 한 게 맞소?”
“사실은 양쪽 다 반칙을 한 겁니다.”
그제야 그는 클리오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양쪽 왕국에서 서로 자기네 나라 영지를 은밀히 지원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이거 참 일이 고약하게 됐군.”
그렌은 대놓고 인상을 팍 썼다.
잘못하면 자신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묘한 소문도 같이 돌고 있습니다.”
“묘한 소문이라니…….”
“모리스 왕국에서 부르나 왕국이 전쟁에 끼어들면 참전하겠다고 선언을 했답니다.”
“그럼 이건 더 이상 두 나라의 싸움이 아니지 않소.”
잘못하면 토러스 대륙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걸 들은 부르나 왕국이 바로 중립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 그럼 뭐요?”
깜짝 놀라서 흥분했다가 어이없게 흥미가 뚝 떨어졌다.
“아무래도 카시오페라 왕국과 코티아르 왕국만의 국지전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두 왕국이 전쟁하는데 국지전을 벌이다니…….”
“에티오에서 저에게 따로 중요한 소식을 간추려 전해주는 소식통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두 왕국이 전쟁하긴 하되 어느 쪽이든 먼저 한쪽 영지를 점령하면 그 영지를 상대방에게 할양하기로 했답니다.”
“뭐가 이리 복잡하지.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렵지 않소?”
그렌은 갑자기 짜증이 확 일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됐다고 결론부터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클리오는 만연체 화법 신공을 써서 그의 기운을 쏙 빼놓았다.
어딜 가나 꼭 이런 사람이 하나씩 있다.
남 생각은 안 하고 자신의 틀에 갇혀 쉬운 말을 일부러 어렵게 하는 사람 말이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클리오는 급하게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모리스 왕국과 부르나 왕국도 카시오페라 왕국과 코티아르 왕국의 합의에 동의하겠다고 했습니다.”
“흥, 결론은 이대로 대충 봉합될 거란 소리잖소.”
불퉁한 표정의 그렌을 향해서 클리오는 용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카시오페라 왕국이 이기면 상관없지만 만에 하나 코티아르 왕국이 이겨서 베른을 얻게 된다면 수도 에티오가 그들의 코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럼 카시오페라 왕국으로선 절대 지면 안 되는 전쟁이 되잖소?”
“맞습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한판 싸움이 될 겁니다.”
그렌은 한 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잡고 클리오를 노려봤다.
클리오는 즉시 입을 꼭 다물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마음속의 화를 가라앉힌 그렌은, 생각보다 전쟁이 장기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내가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판도가 어찌 변할지 모르니 일단은 주시하고 있어야겠다.’
그렌의 조국은 카시오페라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이튼 영지에 있는 프릴 마탑에서 자라며 마법사가 됐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코티아르와 전쟁이 일어나면 나 몰라라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모종의 결심을 하고 클리오를 불렀다.
“클리오 수석 행정관!”
“예, 영주님.”
“넥슨 경비대장 때문에 내가 버틀 영주성과 렌 영주성을 잇달아 다녀온 것 알고 있소?”
“예, 그렇습니다.”
“넥슨의 얼굴을 봤소?”
“히끅! 네, 봐, 봤습니다.”
클리오는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두 번이나 나를 불러서 개고생을 하게 만들었소.”
“…….”
“클리오도 넥슨처럼 되고 싶소?”
넥슨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
얼굴 한쪽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치료도 못 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자… 클리오는 절대로 넥슨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따위로 보고할 거요?”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보고는 짧고 간략하게 핵심만 요약하도록 하시오. 알았소?”
“예, 영주님.”
클리오는 훈련소에 들어온 신병처럼 군기가 바짝 들었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그렌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불의 여왕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영주님의 뜻에 따라, 불의 여왕은 바이칼족의 전사들을 움직여 그동안 말썽을 피우던 산적과 마적들을 바이칼 전역에서 일제히 토벌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어떻게 보면 영지의 숙원 사업을 불의 여왕이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참 고마운 불의 여왕이다.
“유민들은 다 데려갔소?”
“예, 영주님. 바이칼족의 전사들이 와서 영주성 인근 마을에 모여 사는 유민들을 몽땅 데려갔습니다.”
“버틀과 렌은 어떻소?”
“거기도 마찬가지로 유민들을 전부 데려갔다고 합니다.”
유민의 숫자가 만만치 않을 텐데 용케도 전부 데려갔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봤소?”
“물론입니다. 바이칼 전사들이 해안가 숲으로 데려가 도끼를 주고 나무를 찍게 했답니다. 그런 후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던 통나무를 옮겨서 같이 어선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도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말린 어포도 지원한다고 했었는데…….”
“어포도 많이 내줘서 유민들이 더 이상 배를 곯지 않게 됐다는 보고도 함께 해왔습니다.”
불의 여왕 만세!
그제야 그렌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감돌았다.
몸매도 참 착하더니 약속도 잘 지키는 여왕이었다.
그는 엿 같다고 느꼈던 그녀의 첫인상을 어느새 몽땅 잊어버리고 마음속으로 엘리샤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얀, 버틀, 렌 영주성의 내정을 맡은 행정관들은 어떻게 하고 있소?”
“해리엇, 레종, 비맥스 행정관이 각각 얀, 버틀, 렌 영지의 행정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가 봅니다.”
“모병이 잘 이루어져서 각 영주성에 300명 이상씩 들어가지 않았소?”
“아직은 신병 교육 중이라 실제로 경비나 치안을 맡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존의 경비병들이 그럭저럭 운용해 나가고 있습니다.”
“혹시 예산이 부족하지는 않소?”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금이 넉넉해야 한다.
돈이 쪼들리면 뭐든,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