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모두 무장을 해제하고 나가서 지시에 순응해라! 허튼수작하다 걸리지 않도록 알아서 잘해라!”
“예, 영주님.”
“예, 마법사님.”
누가 보면 그렌이 해적들의 두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해적들은 그의 말을 잘 따랐다.
“하케보! 넌 나를 따라와!”
“예.”
하케보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그렌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하케보의 얼굴은 부두를 나서자마자 확 변했다.
그렌의 메시지 마법을 통해 명령을 받은 야엘!
그녀가 하케보를 보자마자 바로 마나 구속구를 채워버린 것이다.
“안 돼!”
하케보는 어떻게 하든 틈을 봐서 도망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두 손목과 두 발목에 마나 구속구가 채워지자 자신이 그렌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마법사 연놈들을 홀딱 벗기고 몸을 조사해 봐!”
“예스, 마이 로드!”
모노테와 하케보는 그렌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렌의 명령에 야엘은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반항할 틈을 주지 않고 모노테와 하케보의 뒷목을 빠르게 가격했다.
퍽! 퍽!
모노테와 하케보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야엘은 모노테의 몸에서 마나 구속구를 풀고 옆에서 대기 중인 렌 영주성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놈의 옷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벗겨라!”
“예, 기사님.”
병사들은 야엘이 영주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녀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마치 영주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모노테는 순식간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발가벗겨졌다.
“온몸을 샅샅이 뒤져서 숨기는 게 없는지 조사해라!”
“예, 기사님.”
병사들은 모노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다롭게 훑었다.
상대가 마법사라는 말에 그들은 머리카락, 입, 귀, 배꼽, 심지어는 항문까지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뭔가 따로 숨겨놓은 것은 없는 듯했다.
결과가 나오자 야엘은 모노테에게 마나 구속구를 채웠다.
철컥철컥!
그녀는 모노테의 옷과 소지품을 자루에 담아 그렌에게 바쳤다.
다음은 하케보의 차례였다.
야엘은 하케보의 마나 구속구를 풀고 병사들에게 똑같이 명령했다.
“이년의 옷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벗겨라!”
“예, 기사님.”
왠지 아까보다 병사들의 대답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라서 그런지 전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온몸을 샅샅이 뒤지고 숨기는 게 없는지 조사해라!”
“예, 기사님.”
병사들의 목소리가 어쩐지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하케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사들의 손이 꼼꼼하게 훑어 내려갔다.
도중에 소담한 가슴과 토실한 엉덩이에 좀 오래 머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들은 하케보의 머리카락, 입, 귀, 배꼽, 음부, 항문까지 철저히 살펴봤다.
역시 뭔가 이상한 물건을 숨겨놓지는 않은 듯했다.
철컥철컥!
야엘은 하케보에게도 마나 구속구를 채웠다.
하케보의 옷과 소지품을 자루에 담아 바로 그렌에게 넘겨버렸다.
병사들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인권이다 뭐다 해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지구가 아니라 레무리아였다.
상선을 습격하고 마을을 약탈하는 해적!
젊고 예쁜 남녀는 납치해서 실컷 강간하고 데리고 논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싫증이 나면 노예로 팔아먹는다.
이런 쓰레기 같은 해적에게 인권은 무슨…….
토러스 대륙에선 개가 풀을 뜯어 처먹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완전히 홀딱 벗겨진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모노테와 하케보!
병사들과 자경대는 물론이고 투항한 해적들에게까지 실컷 눈요기로 제공됐다.
후다다닥!
그때 서쪽의 영주성 쪽에서 누군가 정신없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얼굴이 보니 무척 낯이 익었다.
“영주님! 헤엑헤엑…….”
“비맥스 행정관!”
온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남자!
그는 렌 영주성을 담당한 행정관 비맥스였다.
“허억허억! 이곳엔 언제 오셨습니까?”
“천천히 얘기해도 되니 일단 숨이나 좀 고르게!”
“예, 영주님. 감사합니다. 허억허억…….”
그렌은 비맥스를 뒤로하고 일단 부두부터 정리했다.
병사들과 자경대를 동원해 해적들을 모두 끌어모아 무장해제를 시켰다.
그런 후, 밧줄로 몸을 꽁꽁 묶어 한쪽에 모아놓았다.
숫자를 세어보니 400여 명이나 됐다.
[해모수: 이놈들을 전부 어떻게 할 거예요?] [마루: 노예로 만들어서 부려먹을 거죠?]해모수와 마루는 그렌이 이들을 어떻게 할지 무척 궁금했다.
[그렌: 당연히 노예로 만들어야지. 이런 나쁜 놈들은 그냥 가만히 놀게 가둬두면 안 돼! 중노동을 시켜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고 배상하게 만들 거야.] [해모수: 어떻게요?] [그렌: 영지의 도로도 깔고, 광산에서 석탄도 캐고, 숲에 가서 벌목도 해야지.] [마루: 공짜 노예가 생겼다고 아주 뽕을 뽑아먹으려는 계획이군요.] [해모수: 노예병으로는 안 쓸 거예요?]해모수가 아주 위험한 발언을 했다.
마루가 뭐라고 하려고 하자 그렌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렌: 이런 쓰레기들에게 칼을 쥐여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차라리 성벽을 쌓게 하는 게 낫지. 절대로 무장을 시키면 안 돼!]확고부동한 그렌의 생각에 해모수와 마루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대신 부두를 가득 채운 40여 척의 해적선을 주목했다.
[해모수: 앞으로 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마루: 작은 것은 어선으로 빌려주고 중대형 해적선과 기함으로 쓰던 대형 해적선은 모두 전투선으로 개조해서 활용하면 되겠네요.] [그렌: 맞아.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야. 바이칼은 삼면이 바다인 곳이니 당연히 해군을 길러야지.] [해모수: 저 배에다 벼락포를 장착하면 아주 볼만하겠는데요!]해적선은 대부분 지구의 대항해 시대 초기에 유행했던 카락과 캐러밴을 많이 닮아있었다.
당장 최고의 대양항행 능력을 갖췄던 갤리온 같은 본격적인 대양용 선박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었다.
여기에다 벼락포 수십 문으로 3단 방열한다면 바로 전열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영주님!”
“이제 좀 살 만해졌소?”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비맥스는 그렌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로잡은 해적들은 모두 노예로 삼고 중노동형을 내릴 것이오.”
“예,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이들을 그냥 부리는 것은 위험하니 모두 노예 인장을 찍어야 하오.”
“그렇게 하려면 돈이 상당히 많이 들게 될 텐데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잊었소?”
“아차! 제가 깜빡했군요. 하하하! 용서해 주십시오.”
5서클 마법사가 눈앞에 있는데 노예 인장을 찍는 비용을 걱정했다.
비맥스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노획한 해적선 중에서 작은 배는 어선으로 개조해 어민들에게 싸게 매각하거나 임대를 놓으시오.”
“영주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해적선 중 중대형 선박은 앞으로 우리 영지의 전투선으로 쓸 것이오.”
“오우! 그럼 우리에게도 해군이 생기겠군요.”
“그렇소. 그러니 해적선을 고치고 개조할 준비를 해주시오.”
“예, 영주님.”
그렌은 잠시 말을 끊고 마을과 항구를 살펴봤다.
“해적선 안을 뒤져 혹시 금은보화나 재물이 있으면 챙겨서 마을의 복구비로 사용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해적선을 샅샅이 뒤져보겠습니다.”
“전장을 정리하고 다친 사람을 한쪽으로 모아주시오.”
“예, 영주님.”
비맥스는 병사들을 불러 그의 명령을 하나씩 수행했다.
그렌의 시선이 항구를 넘어 바다로 향했다.
“항구 앞바다에 아직 침몰하지 않은 해적선도 많으니 전부 끌어다가 고쳐서 쓸 수 있는 것은 수리하고, 가망이 없는 것은 해체해서 재활용하도록 지시하시오.”
“예, 아주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해적들을 심문해서 근거지가 어딘지 알아내고, 필요한 정보를 캐도록 하시오.”
“전문가들을 불러서 제대로 조사해 놓겠습니다.”
비맥스는 그렌의 말을 듣는 사이에도 병사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바이칼족의 전사들은 도와주지 않는 거지?”
그렌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해적이 습격해 오면 서로 도와서 퇴치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맥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같은 영지에 살고는 있지만, 서로 이렇게 따로 노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옆 마을에 해적이 침입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좀 보기에 좋지 않군.”
“…….”
그렌은 바이칼족의 대처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비맥스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감히 그렌의 심기를 건드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병사들이 다가와 군례를 올렸다.
“충!”
“무슨 일인가?”
“다친 사람들을 모으려고 갔는데 이미 치료소에 부상자가 한가득 있습니다.”
“알겠다. 치료소로 가자.”
“예, 영주님.”
병사들에게 해적들을 잘 감시하라 이르고 그렌은 비맥스와 함께 항구의 치료소로 이동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시게.”
비맥스는 치료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렌과 야엘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으으!”
“아이고 나 죽네.”
“나 좀 어떻게 해줘! 너무 아파!”
널찍한 치료소는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치료소에 근무하는 치료사는 겨우 세 명.
이들이 수십 명의 부상자를 감당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상자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치료사들을 열심히 돕고 있었다.
[해모수: 설마 여기가 의원은 아니겠지요.] [마루: 병원은 따로 없나 봐요.] [그렌: 음, 치료소의 시설이 많이 열악하군.]그렌은 치료사가 부상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마루: 치료사는 의사가 아니라 약초사라고 불러야겠어요.] [그렌: 이런 허브를 으깨서 환부에 바르는 게 치료의 전부야.] [해모수: 저런 치료라면 여기 부상자의 반은 죽겠어요.]셋은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레무리아의 현실이었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다치면 신전의 성수를 구입한다.
아니면 사제를 초빙해 치료를 받는다.
그렌도 마법사라서 다치면 다른 마법사가 힐 마법으로 치료를 해주곤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치면 신전에 가거나 마법사들이 치료해 주는 줄 알았다.
“행정관님이 오셨다.”
“영주님?”
“어! 영주님이 오셨다!”
“마법사 영주님이시다.”
부상자들이 그제야 비맥스와 그렌을 발견했다.
그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소란하던 치료소가 일시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치료사들은 이리 나와라!”
그렌의 명령에 피와 땀으로 젖은 남자 치료사 셋이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한목소리로 인사했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저희들도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뎁쇼.”
치료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허브를 으깨서 치료를 하던데… 다른 의술은 알지 못하느냐?”
“예, 저희 셋은 원래 약초를 채집하고 파는 약초사입니다. 스승님을 만나 허브를 이용한 치료술을 배워 지금은 이렇게 치료사가 됐습니다.”
마루의 생각이 맞았다.
이들은 치료사라기보다는 약초사에 가까웠다.
렌 영지는 카시오페라 왕국에서도 거의 포기한 곳이다.
의술이 뛰어난 치료사라면 오라는 좋은 곳도 많을 텐데 미쳤다고 이런 오지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오겠는가!
사정을 짐작한 그렌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지금부터 이곳의 부상자는 모두 내가 맡겠다.”
“예, 영주님.”
치료사 셋은 공손했지만 속으로 아주 불만이 없지 않았다.
이 상황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들의 능력 밖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돈을 긁어 담을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너희 셋에게는 보상으로 금화 하나씩을 내리겠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영주님.”
“내가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을 너희들은 옆에서 돕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성심껏 돕도록 하겠습니다.”
치료사 셋의 얼굴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