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1골드면 10실버다. 쿠페로는 무려 120쿠페다.
적지 않은 돈을 받게 됐으니 좋아할 만도 했다.
그렌은 이들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치료사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대신 노동력을 확보했다.
“먼저 부상자들을 중상자와 경상자로 나누어라!”
“예, 영주님.”
그렌이 명령을 내리자 비맥스가 나서서 진두지휘했다.
치료사와 병사들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지의 최고 권력자가 나서자 치료소의 부산한 상황은 한순간에 정리됐다.
부상자들은 영주가 뭘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다.
“중상자 중 당장 생명이 위독한 자가 누구인가?”
“이쪽입니다. 영주님.”
치료사가 치료소 가장 안쪽의 침대를 가리켰다.
그렌은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상자들부터 살펴봤다.
해적들의 창칼에 당해 오장육부에 손상을 입었거나 팔다리가 끊어진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참혹한 상처들을 살펴보며 그는 낮게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렌은 중상자 중에서도 가장 위독한 자가 누군지 바로 찾을 수가 없어서 마법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마나 뷰! 투시!”
마나 뷰 마법으로 마나가 미약한 자를 찾았다.
곧바로 투시 마법을 펼쳐 환부를 확인했다.
해적의 창칼에 무수히 찔려 이미 오장육부가 작살이 난 어린 병사였다.
이런 중상을 입고도 아직 살아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정화! 힐! 힐! 힐! 힐…….”
그렌은 일단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환부를 정화시켰다.
그런 후, 힐 마법을 난사했다.
투시로 환부를 정확히 뚫어보고 있어 마나를 낭비하지 않았다.
“우와아아!”
“상처가 사라진다.”
그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던 병사들과 부상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실시간으로 상처가 아무는 모습!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렌은 오직 병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렌: 자상이나 창상은 다 치료했는데… 내장에 고인 핏물이 문제네.] [해모수: 정화 마법을 쓰면 안 되나요?] [그렌: 배를 갈라서 열면 될 것 같기는 해.] [마루: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송곳 같은 것으로 배를 뚫어서 밖으로 핏물을 빼내세요.] [그렌: 역시 그게 좋겠지.]마루의 아이디어에 그렌이 반색했다.
그는 공유 인벤토리를 통해 마루가 보내준 공구 상자가 생각났다.
아공간 반지를 열어 공구 상자를 꺼내고 그 안에서 송곳 하나를 찾아냈다.
“정화!”
그렌은 소독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정화 마법으로 대신했다.
“샤프니스!”
이어 송곳에 샤프니스 마법을 걸어 예리함을 더했다.
준비가 모두 끝나자 그렌은 망설이지 않고 병사의 배에 송곳을 푹 찔렀다가 뺐다.
푹! 치익!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는 자신의 마나를 병사에게 밀어 넣었다.
마나가 배 안에 고인 핏물을 압박하자 송곳에 뚫린 구멍으로 핏물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왔다.
“힐!”
모든 치료가 끝나자 그렌은 힐 마법으로 배를 뚫은 구멍을 치료했다.
구멍이 실시간으로 아물며 사라져 갔다.
그렌은 어린 병사의 얼굴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하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시선을 돌려 옆 침대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팔이 잘린 중년의 병사였다.
“이자의 잘린 팔은 가지고 있는가?”
“예, 저쪽에 있습니다.”
“이리 가져와라.”
“예, 영주님.”
치료사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중년 병사의 얼굴은 분을 칠한 것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붕대를 풀어라!”
그렌은 단호하게 말했다.
치료사는 조심스럽게 잘린 팔의 붕대를 풀었다.
당장 환부에서 피가 울컥 치솟았다.
마침 다른 치료사가 중년 병사의 잘린 팔을 가져왔다.
“정화!”
그는 잘린 팔을 손에 들고 정화 마법을 사용했다.
이어 환부에 잘린 팔을 가져다 대고 그레이트 힐 마법을 펼쳤다.
“그레이트 힐!”
놀랍게도 잘린 팔이 환부에 철썩 달라붙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갔다.
6서클의 리스토어나 7서클의 리커버리 마법이었다면 아마 완벽한 치료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힐이나 그레이트 힐 마법으로는 상처를 붙이고 치료하는 것이 전부였다.
팔의 기능이 온전히 돌아올지는 아직 미지수란 뜻이다.
그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자 미련 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렇게 중상을 입은 부상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힐 마법을 난사했다.
강력한 마법의 힘은 생명을 위협하던 자상과 창상을 한순간에 치유했다.
간간이 팔다리가 잘린 것은 그레이트 힐을 써서 붙여줬다.
“영주님! 만세!”
“역시 마법사는 위대하다.”
“우리 영주님은 정말 대단하셔!”
“세상에 어떤 영주가 다친 주민을 이렇게 직접 치료해 주겠어?”
“우리 영주님은 하늘이 내리신 분이야.”
“영주님은 천사의 화신이 분명해!”
그렌이 부상자를 치료하면 치료할수록 점점 민망한 소리가 번졌다.
항구와 마을에 사는 주민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치료소 밖은 수많은 인파로 바글바글해졌다.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은 소식을 빠르게 사방으로 전파했다.
대부분은 영주의 행동을 열렬히 찬양했다.
일부는 다소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주가 부상자를 직접 치료해 주는 것 자체를 욕하지는 않았다.
“경상자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여라!”
“예, 영주님.”
중상자들을 전부 치료한 그렌은 살짝 피곤했다.
힐 마법을 난사하고 그레이트 힐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른다.
남모르게 최상급 마나석으로 마나를 보충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도중에 기절하거나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경상자들이 모두 오밀조밀하게 한곳으로 모였다.
“그레이트 힐!”
그는 경상자들을 향해 한 손을 들고 그레이트 힐을 광역으로 펼쳤다.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이 쏟아졌다.
동시에 부상자들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힐과 그레이트 힐은 병은 치료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처럼 자상과 창상에는 아주 직빵이었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상처가 단번에 치유되자 부상자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에서 이를 본 병사들과 주민들도 신나게 함성을 질러댔다.
“정화!”
그렌은 자신의 몸을 정화 마법으로 깨끗이 소독하고 몸을 돌렸다.
시크하게 치료소를 나서자 그의 뒤에서 아까보다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영주님 만세!”
“영주님 만세!”
뒤따라오는 병사들도 그 함성에 적극 동참했다.
비맥스는 굳이 병사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야엘의 입가는 아까부터 자꾸 씰룩거렸다.
그렌도 순간 울컥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해모수: 그렌 형, 고생이 많으셨어요.] [마루: 노고가 아주 크십니다. 그리고 참 잘하셨어요.] [그렌: 크흠, 내가 뭘 한 게 있다고.]해모수와 마루까지 그렌을 향해 엄지 척을 선물했다.
그렌은 무척 기뻤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그는 전후(戰後) 처리를 위해 비맥스와 함께 야엘을 대동하고 렌 영주성으로 향했다.
해적선단의 렌 영주성 항구 마을 습격!
이 사건의 여파는 생각 외로 엄청났다.
얀, 버틀, 렌 영지 전역에 그렌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늘을 날며 해적과 해적선을 초토화시킨 무용담!
다친 부상자들을 마법으로 치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미담!
바이칼족은 영주와 관련된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렌의 직할지인 세 영주성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달랐다.
만약 이들에게도 상태 창이 있었다면 당장 충성이 맥스가 된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그렌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사업의 효율이 대폭 올라갔다.
그렇게 얀, 버틀, 렌 영지, 아니 바이칼 영지에는 신선한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불의 여왕께서 오셨습니다.”
수석 행정관 클리오의 말에 그렌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엘이 집무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불의 여왕, 엘리샤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렌!”
“엘리샤!”
두 사람은 반갑게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엘리샤는 그렌의 품에 폭 안기며 격한 인사를 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풍만한 몸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엘리샤의 착한 몸매가 오늘도 그렌의 오감을 자극해 왔다.
비키니같이 생긴 가죽쪼가리만 걸친, 노출 높은 복장의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야생 들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리 앉아.”
“고마워!”
둘은 마치 십년지기라도 되는 양 친근하게 굴었다.
사실 그렌이나 엘리샤나 서로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갑자기 어쩐 일이야?”
“왜? 나는 그냥 들르면 안 돼?”
“물론 되지. 하지만 바쁜 네가 이렇게 찾아오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고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거야.”
엘리샤는 두 발을 그렌의 책상에 턱 올려놓으며 입술을 삐쭉거렸다.
“난 네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당연히 기쁘지.”
“정말?”
“물론이지. 엘리샤가 나를 찾아오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헤헤, 그럼 그렇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맹목적이라고 해야 할지…….
엘리샤는 보기보다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클리오는 엘리샤의 눈치를 보면서 차를 따라주었다.
수석 행정관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꼭 그렌 옆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 차는 별론데…….”
엘리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혀를 내밀며 인상을 썼다.
“그래? 잠깐만.”
그렌은 인벤토리에서 여러 개의 캔 음료를 꺼냈다.
콜라, 사이다, 환타, 오렌지 과즙, 복숭아속살, 포도봉봉, 식혜, 구아바 넥타 등 종류도 다양했지만 모두 얼음처럼 시원한 캔 음료였다.
순간 그녀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변했다.
“이거 나 마시라고 내놓은 거야?”
“응, 하나만 골라봐!”
“오잉!”
엘리샤는 바로 책상 위에서 다리를 내렸다.
그러곤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책상 위에 놓인 캔들을 만지작거렸다.
덕분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도 책상 위에 떡하니 올려졌다.
꿀꺽!
그렌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생각지도 못하게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굳이 의도하거나 보려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멜론만 한 것들이 망막에 가득 찼다.
하지만 바로 뒤에 야엘이 서있었다.
결코 마음 놓고 감상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탁! 치익!
엘리샤가 선택한 것은 복숭아 캔이었다.
그녀는 뚜껑을 따고 단숨에 음료수를 비웠다.
그러곤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너무 맛있잖아.”
“그럼 다음에는 차 대신 그걸로 준비할게.”
“다른 것도 하나 마셔보면 안 돼?”
그렌은 일부러 조금 고민하는 척했다.
그러자 엘리샤는 안달이 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으음, 할 수 없지. 딱 하나만 더 마셔!”
“고마워!”
그녀는 신이 난 얼굴로 캔들을 살폈다.
마치 장난감 가게에서 장난감을 고르는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살짝 곤란한 척했다.
“이걸로 하겠어.”
“식혜를 골랐군. 탁월한 선택이야.”
“그래?”
그렌의 칭찬에 엘리샤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그렌은 남은 캔 음료를 재빨리 아공간 반지에 담았다.
그녀는 몹시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식혜를 손에 꼭 쥐었다.
탁! 꿀꺽꿀꺽!
마음을 비운 엘리샤는 바로 식혜를 따서 마셨다.
단숨에 원샷을 한 그녀의 얼굴은 곧 즐거움과 아쉬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것도 무지 맛있다.”
“식혜가 입맛에 맞는 모양이네.”
“다음에 오면 또 줄 거야?”
“물론이지. 어떤 것으로 준비해 놓을까?”
“글쎄.”
엘리샤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복숭아속살도 맛있고 식혜도 맛있었다.
그런데 아직 마셔보지 못한 음료도 아주 맛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엘리샤는 결국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것도 한번 마셔볼래.”
“좋은 선택이야. 지금 네가 마신 것도 맛있지만 다른 음료도 아주 맛있어.”
“그으래?”
엘리샤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렌은 얼마 되지도 않는 캔 음료를 이용해 그녀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 것에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