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잘하셨습니다. 계속 반복하세요. 한 발이 두 발이 되고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응용하면 대각선으로도 이동이 가능합니다. 나중에는 그게 다 보법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아!”
이강산의 감독이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 눈빛 아래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내려치기를 하던 마루!
그의 말을 듣자 뭔가 머릿속에서 확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강산 트레이너의 말이 맞네. 정면으로 한 발 갔다가 오른쪽으로 한 발 가면 그건 오른쪽 대각선 이동이 되는 거잖아. 그리고 한 발만 움직이라는 법도 없잖아. 두 발을 움직이며 연속으로 내려치기를 해도 되고 아니면 빠르게 두 발을 움직여 내려치기를 한 번 해도 되겠네. 이거 갑자기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네.’
원래 무술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다.
기본형이나 기본기를 잘 배워놓으면 파생형은 그것의 몇 배가 튀어나올 수 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루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검도를 무시하고 얕잡아 봤는지 깨달았다.
아니 쥐뿔도 없는 놈이 무술 자체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마음속으로 깊은 반성을 했다.
그러자 그가 하고 있는 기본기 수련이 바로 훨씬 더 진지해지고 엄숙해졌다.
그런 변화는 즉각 이강산의 눈에 띄었다.
‘호오, 이제야 좀 진심으로 할 생각이 드는 모양이네.’
이강산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마루에게 검술의 기본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슥, 휙, 슥, 휙, 슥슥, 휙휙, 슥슥, 휙휙!
검도 교실 안은 두 사내의 열정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본기 수련이다.
하지만 지금 스승과 제자, 트레이너와 신입 회원의 관계에 있는 두 사내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얼마나 목검을 휘두르고 전후좌우 사방(四方) 스텝을 밟아댔을까?
마루의 전신이 또다시 땀으로 푹 젖어 김이 모락모락 오를 정도가 됐다.
그때 누군가 검도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덜컹!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분산되며 두 사내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문을 향했다.
“한 시간도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검도 수련 중이시네요.”
“아! 민정 씨!”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마루와 이강산은 마치 미몽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 참 보기 좋네요. 이렇게 트레이너와 신입 회원이 열정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으니 말이에요.”
김민정은 마루와 이강산, 두 사람 모두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칭찬을 던지며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이지 않자 이강산은 마루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강산 트레이너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이마루 회원님의 체력과 운동신경이 남달라서 앞으로 좋은 결과가 기대되네요.”
“그건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마루는 이강산의 말에 반색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검도 교실을 나왔다.
상대방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나자 이강산은 사무실로, 마루는 샤워실로 향했다.
온몸이 땀에 의해 푹 젖어 끈적거렸다.
쉰 냄새 같은 땀 냄새가 불쾌감을 자극했다.
운동복과 속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온수가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아!
정수리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세 시간 이상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생겨난 땀과 피로감을 빠르게 걷어냈다.
그제야 마루는 더 이상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이 전부 방전된 것을 깨달았다.
잠시 뜨겁고 시원한 물줄기를 맞았다.
그는 제자리에서 숨쉬기 운동을 하며 멍하니 서있다.
온몸이 점점 노곤해져 올 무렵…….
마루는 샴푸와 린스를 꺼내 머리를 감고 샤워젤로 거품을 내어 몸을 닦았다.
‘요새 천연 수세미로 만든 비누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나도 그걸 한번 사서 써볼까?’
마루는 온몸을 가득 덮은 거품을 샤워기의 물로 씻어 내리며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샤워를 마치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탈의실로 가서 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문득 한쪽 벽에 있는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보였다.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전신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와우! 이거 장난 아니네? 내 몸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
당연히 원래 마루의 몸은 이렇게 좋지 않았다.
[해모수: 마루 형,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렌: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일이 지났을 뿐인데 몸은 어지간한 남자 트레이너만큼 잘 만들어졌군.] [마루: 그렇죠? 나도 지금 깜짝 놀랐어요. 원래 내 몸은 이러지 않았는데…….]해모수와 그렌의 말에 마루는 그제야 자신의 몸의 변화를 자신만 깨달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모수: 그러고 보니 몸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키도 좀 큰 것 같아요.] [그렌: 으음, 말을 듣고 보니 정말 키도 좀 커졌어.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짧은 시간에 비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전신 근육이야. 말 근육처럼 쫙쫙 갈라진 것이 마치 근육을 압축시켜 놓은 것 같아.]마루는 해모수와 그렌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 그의 마음은 말 근육보다는 높아진 신장으로 무게추가 많이 기울었다.
[마루: 저기 자동으로 키와 몸무게를 재주는 기계가 있네요. 바로 확인해 볼게요.] [해모수: 오! 그런 기계도 다 있어요? 형이 사는 세계는 참 편리한 도구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렌: 그건 나도 동감이야. 나도 마법사지만 레무리아에선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그렌과 해모수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마루는 자동 신장·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띵!
알림음이 들리자 자동 신장·체중계에서 내려왔다.
LED 보드에 신장 182센티미터, 몸무게 75킬로그램! 그리고 ‘정상’이라는 말이 표시되었다.
“와아! 키가 2센티미터나 더 커졌어.”
마루는 신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란 그는 급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목을 이리저리 틀며 탈의실을 살펴봤다.
다행히 탈의실에는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마루는 혹시라도 잘못 봤을까 봐 다시 LED 보드를 확인했다.
그의 입꼬리가 쭉 위로 올라갔다.
[그렌: 아주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마루: 180센티미터 이하면 루저라는 소리를 듣는단 말이에요. 이제는 확실히 180센티미터를 넘겼으니 더 이상 루저 소리는 듣지 않겠네요. 휴우! 드디어 나의 이 오랜 한(恨)이 풀리고야 말았습니다.] [해모수: 나도 작은 키는 아닌데… 어째 마루 형이나 그렌 아저씨와 비교하니 땅꼬마처럼 느껴지네요.] [마루: 해모수 너도 절대 작은 키는 아냐.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얼추 175센티미터 정도는 돼 보여. 특히 네가 살고 있는 시대의 평균 신장을 따지면 넌 장신에 가깝다고 봐야 해.] [해모수: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마루 형과 그렌 아저씨보다는 작잖아요.] [마루: 대신 넌 물건이 크잖아.] [해모수: 물건요? 아! 내 거 말이에요?] [마루: 그래. 네 물건 보니까 아주 대물(大物)이더라.] [해모수: 그거야 그렌 아저씨가 제일 큰 거 아니었어요?] [그렌: 갑자기 유치하게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그렌이 쑥스러워 한소리 했다.
하지만 마루와 해모수는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는 좋겠다. 키도 크고 그것도 크고…….] [마루: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렌 형의 키가 우리 중에선 제일 크네. 한 190센티미터는 되려나? 아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대략 187센티미터에서 188센티미터 사이로 보여.] [그렌: 키가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야. 물론 물건도 마찬가지고.] [해모수: 아니 왜요? 크면 다 좋은 것 아니었어요?] [그렌: 크기만 하면 뭐 하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것을…….] [마루: …….] [해모수: …….]순간 장난기 가득한 마루와 해모수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렌의 마지막 말은 뭔가 슬프고 비참한 감정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었다.
‘헤에에… 설마 그렌 형이 그렇게 찾기 힘들다는 남자 천연기념물이었어? 정말 안됐다.’
마루는 같은 남자로서 순수하게 그렌을 동정했다.
자신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여자 친구를 사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덩달아 여자 경험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렌처럼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렌은 마법사로서, 마탑의 사서로서 여자 사람을 접촉할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참 불쌍했다.
해모수도 같은 남자로서 그렌의 삶이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그것이 여물기가 무섭게 주루를 들락거리는 청루와 홍루의 기녀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었다.
꽃미남이라고 불릴 정도로 얼굴이 곱상하게 잘생겨서 여자들은 해모수를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이상한 경쟁을 다 했다.
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고 용돈 벌이도 톡톡히 했다.
일찍부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쾌락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정말 황해루(黃海樓)의 총관 서갈봉만 아니었다면… 주루의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마루는 자신의 몸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옷을 입었다.
체육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김민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하지만 마루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한 번 꾸벅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진짜 직업도 마법사, 몸도 마법사인 외로운 청춘!
그로 인해 마루와 해모수는 이날 한참 동안이나 침묵 속에서 지루함을 참는 인내심을 길러야만 했다.
* * *
“마루 씨,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
“그러게요. 파이럿 혜성을 보고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장 나구원의 말에 한소신이 맞장구를 쳤다.
마루는 괜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안면 관리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오늘은 헬 서바이벌 동호회의 정모가 있는 날이다.
불금의 유혹을 물리치고 토요일 오후를 통째로 비웠다.
그런데 어쩐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거 괜히 왔나?’
마루의 얼굴이 조금 불편하게 변했다.
그걸 본 나구원은 금세 웃음기를 거뒀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얘기를 듣고 있는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을 쳐다봤다.
“마루 씨가 뭐를 믿건 우리 헬 서바이벌 동호회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나 회장, 나도 같은 생각이야.”
“회원으로 받아들이죠?”
“강준모가 소개한 분이니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예요. 뭐 좀 특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 찬성입니다.”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장 나구원과 회원들.
그들은 각자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던져댔다.
묘한 분위기 속에 격의 없이 하는 행동이 참 특이했다.
마루는 이런 모습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하긴 대뜸 파이럿 혜성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고 좀비가 세상천지에 깔릴 거라고 얘기한다면… 누가 맞는 얘기라고 웃으며 손뼉을 치겠는가?
그나마 이 정도 반응이라도 얻어낸 것이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나구원이 손을 들자 같은 나이로 보이는 현장비가 손을 들었다.
옆에 앉아있는 한소신이 슬그머니 손을 들자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던 우성존과 장무기도 손을 들었다.
“어? 이렇게 되면 만장일치네.”
“하하하, 헬 서바이벌 동호회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루 씨, 축하해요.”
“아싸, 회원 한 명 늘었다.”
“참, 이번 달 회비는 다들 왜 안 내는 거예요?”
마루는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을 보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세상에는 수많은 동호회가 있다.
서바이벌 동호회는 그중에서도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에 가까웠다.
약간의 마니아기가 있지 않으면 서바이벌 동호회에 참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페인트 탄을 쏘며 모의 전투를 즐기는 서바이벌 게임 동호회라면 모를까?
진짜 서바이벌에 관심이 있어서 참여한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이라면…….
오히려 마루같이 종말을 걱정하는 자가 회원으로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나 회장, 뭐 해? 회비부터 말씀드려야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회비는 한 달에 5만 원입니다.”
현장비가 보채자 나구원은 즉시 얼굴 표정을 바꿨다.
비즈니스 모드로 바꾼 그는 미소와 함께 솥뚜껑 같은 큰 손을 쑥 내밀었다.
마루는 나구원의 화려한 변신(?)에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