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황성 안 궁성을 보니 왕지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미니 맵을 더욱 확대했다.
명나라의 동부 해안과 함께 동지나해가 보였다.
계속 확대해 나가자 이젠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그리고 고국인 고려까지 나타났다.
남쪽으론 대만과 홍콩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동쪽엔 왜구들이 많이 사는 구주(九州)가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곳곳에서 팔각형 모양의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렌이 만들어 준 팔각동패, 열두 곳의 위치였다.
[마루: 팔각동패! 이거 끝내주네요.] [그렌: 미스릴 팔찌에 따로 좌표를 등록하지 않아도, 팔각동패가 있는 곳으로는 언제든 텔레포트할 수 있어. 팔각동패 자체가 마법 좌표이기 때문이지.] [해모수: 미스릴 팔찌에 등록할 수 있는 좌표의 숫자가 최대 몇 개였죠?] [그렌: 여덟 개야.] [마루: 그럼 이론상으론 최대 아흔여섯 곳의 좌표로 텔레포트할 수 있겠군.]해모수는 궁성 안 보화전의 밀실을 첫 번째 좌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열두 개의 팔각동패 중 하나를 왕지현에게 줬다.
이제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텔레포트로 그녀에게 갈 수 있었다.
팔각동패에는 특이한 기능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위급할 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치였다.
예를 들면, 왕지현이 팔각동패의 중앙에 있는 일(一)자 손잡이를 지정한 숫자로 맞추면 해모수가 차고 있는 미스릴 팔찌에 신호가 간다.
이것만으로 그는 이제 어느 곳이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마루: 아무래도 이거 작전이 실패한 모양인데…….] [그렌: 그러게 말이야. 청량산은 물론이고 황성도 너무 조용해.] [해모수: 흐음. 사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닌가요?]마루와 그렌의 실망에도 해모수는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잉!
그때 미스릴 팔찌에서 독특한 신호가 떴다.
[마루: 어! 신호가 왔다.] [그렌: 그런데 황성이 아니네.] [해모수: 이건 뭐죠? 왜 대만해협에서 신호가 오는 거죠?] [마루: 해모수, 이번에 대만과 홍콩, 아니 향항으로 보낸 팔각동패를 누가 가지고 있지?] [해모수: 해삼호의 위지백 함장이요.] [그렌: 그럼 뻔한 얘기잖아. 지금 해삼호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거야.] [해모수: 아!]두 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해모수는 바로 상황이 이해가 됐다.
[마루: 당장 텔레포트 마법으로 날아가!] [그렌: 이곳은 어떻게 하라고?] [마루: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일단 급한 불만 끄고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요.] [해모수: 그게 좋겠네요.]해모수는 마루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먼저 남사성 천무를 불렀다.
“남 천무!”
“예, 전하!”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대역을 세우도록 해라!”
“예, 전하.”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해모수는 자신의 대역을 미리 준비시켜 놓았다.
금의위 교위 하나가 청량각으로 빠르게 올라왔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외모가 비슷했다.
그는 자신의 대역을 맡은 자의 어깨를 한번 두드렸다.
그러곤 곧바로 청량각에서 절벽을 향해 뛰어올랐다.
“금방 돌아오겠다.”
“전하!”
“전하!”
남사성과 오추량이 놀라서 해모수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텔레포트 마법진의 시동어를 속삭이듯 말했다.
“텔레포트!”
번쩍!
해모수의 모습이 꺼지듯 사라졌다.
그러자 이를 목격한 자들이 하나같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남사성은 오추량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봤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소.”
“설마 전하께서 절벽에 떨어지신 것은 아니겠지요.”
“절벽 위로 뛰어오르자마자 바람처럼 사라지셨소.”
“하긴 나도 떨어지는 모습은 보질 못했소.”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오추량이 입을 열었다.
“위국공 전하의 무예가 하늘의 경지에 달한 것이 틀림없소.”
“술법이나 일종의 눈속임일 수도 있지 않소?”
“하하하!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오.”
“어휴! 어찌 됐든 우린 줄을 잘 잡은 것이 틀림없소이다.”
“맞소. 도술이든 술법이든… 위국공 전하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오.”
남사성과 오추량은 놀란 가슴을 달래며 해모수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 * *
대만해협, 대북(타이페이) 서쪽 120킬로미터 바다.
바다 한복판에 네 척의 배가 얽히고설켰다.
배와 배 사이에 긴 발판이 걸렸다.
수십 개의 갈고리가 날아와 뱃전에 걸리고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와아아아!”
“도망가지 못하게 배를 바짝 붙여라!”
“발판을 타고 넘어가라!”
“다 죽이고 배를 탈취하라!”
“공격! 공격!”
해적들은 신나게 고함을 치며 미친 듯이 발판을 타고 넘어왔다.
그리고 곧 피 터지는 혈전이 벌어졌다.
창, 차차창, 창창창!
해삼호(海三號) 함장 위지백은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해적들이 넘어온다. 방진을 구성해라!”
“산탄포를 쏴라!”
“수류탄을 던져라!”
해삼호의 대원들은 급히 갑판에 원형의 방어진을 만들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산탄포를 쏘고, 수류탄을 열심히 던졌다.
펑, 펑, 펑, 펑!
꽝, 꽈릉, 꽝꽝!
사방에서 폭음이 터지며 해적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해적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에서 해적선 세 척과의 전투는 애당초 무리였다.
중과부적인 점은 둘째 치고, 대원들은 아직 전투 훈련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부터 화포를 쐈어야 했는데…….’
위지백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상선을 가장하고 다가온 해적선들!
피한다고 피해봤지만, 떨쳐낼 수 없었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해적선이 너무 가까이 붙어버렸다.
그때라도 격렬하게 저항하고 전투를 회피했다면, 아마 이런 극한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국공께서 무조건 근접전을 피하고 원거리에서 타격전을 벌이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게 기억났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왜 방심하고 왜 자만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상황은 이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백여 명의 대원들은 필사적으로 해적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전멸하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였다.
위지백은 위국공 전하로부터 받은 팔각형의 동패를 꺼냈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즉시 사용하라고 친히 사용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이런 상황에서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마는…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최후의 명령을 완수한다는 마음으로 팔각동패 중앙에 있는 손잡이를 옆으로 돌렸다.
차르르르, 탈칵!
우웅!
뭔가 짜릿한 파동이 느껴졌다.
팔각동패가 살짝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위지백은 잠시 팔각동패를 바라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위국공께서 하사하신 화포만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명령을 반드시 수행할 생각이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 앞에 섰다.
해삼호 안에 화약은 넉넉하다 못해 넘쳐났다.
여기에 불을 붙인다면 해삼호는 물론이고 해적선 세 척도 결코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위지백은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원진을 좁혀라!”
“충!”
다행히 해삼호 대원들은 모두 용감했다.
함장이 옥쇄를 결정하자 전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그 처절한 저항에 해적들도 점차 기가 질려갔다.
위지백은 마지막으로 대원들을 눈에 담았다.
그러곤 장렬히 폭사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스팟!
그때였다.
해삼호 상공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쩍였다.
“멈춰라!”
하늘에서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쏟아졌다.
“으악!”
“악!”
해적들은 일제히 자신의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신기한 것은 해삼호 대원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잠시 멈춰버렸다.
금의(錦衣)에 환도를 차고 나타난 젊은 사내!
그는 허공에서 갑판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휘이익, 쿵!
둔중한 소리가 갑판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설마! 위국공 전하?”
위지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삼호 대원 중에서도 해모수를 본 자가 꽤 있었다.
그들은 해모수의 얼굴을 보자 반색했다.
“위국공 전하께서 오셨다.”
“와아아아!”
대원들은 그동안 술자리에서 해일호(성산일호) 대원들에게 위국공의 무예가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가 바다 한복판에 떠있는 배 위에 홀연히 나타나자, 대원들의 사기는 즉시 하늘을 찔러버렸다.
“뭐야! 너는?”
덩치가 커다란 해적 한 놈이 해모수를 바라보며 인상을 팍 썼다.
하지만 해모수는 해적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위 함장! 어떻게 된 일이오?”
“전하!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위지백은 해모수의 물음에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히 해모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마루: 이유는 나중에 묻고 먼저 다친 사람부터 치료해!] [그렌: 일단 마법을 날려서 해적들을 쓸어버려!] [해모수: 이 새끼들이…….]마루와 그렌의 말이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해모수는 그제야 원형의 방진 안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발견했다.
“힐! 힐! 힐! 힐! 힐! 힐…….”
그는 화가 나는 것도 꾹 참고, 일단 힐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가슴이 뚫리고, 배가 갈리고, 팔다리에 자상을 입은 자들이 순식간에 기적같이 회복되어 일어났다.
“실드! 실드! 실드! 실드…….”
해모수는 이어서 원형의 방진을 이룬 대원들을 향해 실드 마법도 난사했다.
투명한 실드가 방진을 이룬 대원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와아아아!”
뒤늦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중상자들을 보며 대원들이 힘차게 함성을 질렀다.
해모수는 청동 팔찌에 음양기를 넣고 두 개의 마법진을 차례로 활성화했다.
“아이언 스킨! 바이오실드!”
마법의 시동어를 외치자 그의 몸이 황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그의 몸에 호신강기와 흡사한 바이오실드(생체 실드)가 생성됐다.
“우와! 금강역사(金剛力士)다!”
“금강신(金剛神)이다.”
해적들은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이 기이한 현상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늘에서 사람이 뚝 떨어지질 않나!
분명히 당장 죽어도 이상이 없을 중상자가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않나!
이제는 사람의 피부가 황금빛으로 변하더니 금강역사가 나타났다.
이쯤 되면 눈앞에 서있는 젊은 사내는 선계에서 내려온 신장(神將)이 틀림없었다.
“딱 한 번만 물어보겠다. 너희는 누구냐?”
“우리는 해적이다.”
해모수의 물음에 해적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걸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됐다.
“그럼 죽어도 억울하진 않겠군.”
“뭐라고?”
그의 싸늘한 말투에 해적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해모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해적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와아아아!”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해모수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해삼호 대원들은 사기가 충전해서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곤 곧바로 해적들을 향해 분노의 창칼을 휘둘렀다.
창, 차차창, 차차창, 창창창!
그는 눈앞에 왕창 몰려있는 해적들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쇼크 웨이브!”
순간 강렬한 파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전면을 휩쓸어 버렸다.
파앙!
해적들이 일제히 뒤로 날아가 뱃전에 부딪혔다.
그들은 죽는다고 비명과 아우성을 질러댔다.
중상을 입었는지 아무도 쉽게 일어나는 놈이 없었다.
“윈드 커터!”
뒤이어 그는 윈드 커터 마법을 날렸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해삼호 대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해적들을 덮쳤다.
쐐애애애액!
서걱, 서걱, 서걱, 철썩!
윈드 커터는 해적 셋의 몸뚱이를 두 동강 내고도 힘이 남아 한 놈의 모가지를 잘라버렸다.
갑판에 피가 확 뿜어지고 뜨거운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 역겨운 모습을 본 해적들이 놀라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대원들의 사기만 올려줄 뿐이었다.
“죽어랏!”
“대원들의 원수를 갚자.”
해모수로 인해 사기충천한, 복수심에 불타오른 대원들이 일제히 해적들을 향해 밀려갔다.
해적들은 급히 창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원들의 몸을 벨 수가 없었다.
창칼이 상대의 몸 근처에만 가면 뭔가 보이지 않는 막 같은 것이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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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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