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산정에 도착한 해모수는 환도를 뽑았다.
오러를 잔뜩 먹은 칼은 빠르게 황금빛 광채로 달아올랐다.
촤아아아!
그는 복면 살수들을 향해 거세게 환도를 뿌렸다.
초승달 모양의 금빛 검기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사나운 금빛의 검기에 스친 복면 살수들이 허우적댔다.
서걱, 서걱, 사각, 철썩!
마치 무가 잘리듯 몸이 싹둑싹둑 베어졌다.
여기저기 분수처럼 피가 치솟았다.
잘린 팔다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해모수는 굳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복면 살수들이 몰린 곳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직선으로 나는 듯이 달리는 그의 주위로 매정한 금광(金光)만이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쌔액, 쌕, 쑤욱, 쑥, 쓱싹, 쓱싹…….
황금빛 버프를 잔뜩 받은 환도가 춤을 췄다.
현란한 사신(邪神)의 칼날에 걸리는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환도는 사람이든 무기든 갑옷이든 전혀 가리지 않았다.
그저 닿는 족족 무참히 베고 지나갈 뿐이었다.
으악, 크악, 컥, 케엑…….
참혹한 비명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전장은 서서히 피바다로 변해갔다.
“진짜 위국공이 여기 있다. 모두 이놈부터 죽여라!”
꺽다리가 해모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쳤다.
짜리몽땅이도 살기 찬 목소리로 바락바락 악을 썼다.
“위국공을 죽여라!”
“위국공만 죽이면 우리가 승리한다.”
꺽다리와 짜리몽땅이가 질러대는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산정에 널리 울려 퍼졌다.
금의위도 복면 살수도 전부 해모수를 쳐다봤다.
그러나 수백 쌍의 시선이 집중된 당사자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의 방향을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를 향해 비틀어 버렸다.
“주둥이가 찢어져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지 보겠다.”
해모수의 살기 찬 목소리에 두 놈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루: 해모수! 다 죽이면 안 돼!] [그렌: 맞아. 저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살려놓아야 해!] [해모수: 알겠어요. 팔다리는 빼고 입만 벌릴 수 있게 하죠.]마루와 그렌은 해모수의 차가운 말투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행동에 그저 눈만 깜빡거려야 했다.
싹싹싹싹, 쓕쓕쓕쓕, 쓱쓱쓱쓱…….
해모수는 미친 듯이 환도를 휘둘렀다.
헤이스트가 걸린 몸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환도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 상태 그대로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악, 아악, 커억, 케엑…….
해모수가 움직이는 동선에 걸린 복면 살수들!
마치 다져진 고깃덩어리처럼 갈가리 분쇄됐다.
그 처참한 모습에 놈들의 눈빛은 서서히 공포로 물들어 갔다.
“전하!”
“전하!”
때마침 금의위들이 그의 앞에 도착했다.
교위들과 역사들은 순식간에 해모수의 사방을 철통같이 감싸버렸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렇게 자신의 주변을 감싸버리면 더는 복면 살수들을 직접 벨 수 없다.
특히 저 얄미운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자신의 손으로 입을 찢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뜻을 접어야 했다.
해모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공을 향해 빠르게 환도를 휘둘렀다.
촤악!
찐득한 피와 역겨운 살점들이 모조리 땅에 후드득 뿌려졌다.
“뭣들 하는가? 다 쓸어버려!”
“충!”
해모수는 짜증 난 목소리로 금의위와 역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금의위 교위와 역사는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성난 파도처럼 복면 살수들을 향해 진군했다.
척척척척, 척척척척!
금의위는 위력 진군을 하는 것처럼 발맞춰 나갔다.
그러면서도 앞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찌르고 베어버렸다.
차창, 창창창, 차창창!
창칼이 서로 부딪치는 것도 잠시!
으악, 크악, 커억, 케엑, 끄윽…….
복면 살수들의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드! 실드! 실드! 실드! 실드!”
해모수는 금의위를 위해 실드를 난사했다.
이어 다친 금의위에겐 힐 마법을 선사했다.
“힐! 힐! 힐! 힐! 힐!”
이걸로 금의위의 사기는 충전하다 못해 터질 것처럼 올라갔다.
이들의 힘은 온전히 복면 살수들을 향해 잔인하게 폭발했다.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거기에다 해모수가 날리는 분노의 마법 공격도 크게 한몫했다.
“윈드 커터! 윈드 커터! 윈드 커터…….”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경악했다.
위국공이라는 자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 한 명으로 전세가 뒤집힐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거기에다 도술까지 쓰는지 금의위의 몸에 도무지 창칼이 박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살수들의 몸이 우수수 잘려나갔다.
이에 맞춰 금의위의 공세가 질풍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젠 도저히 숫자의 우위에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오히려 우리가 전멸하겠다.”
“어떡하지?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잖아.”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이 황당한 사태가 너무도 곤혹스러웠다.
앞으로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였다.
그들의 등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푹 젖어버렸다.
“포위해라!”
“충!”
그때 갑자기 금의위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금의위 교위와 역사들이 일제히 좌우로 퍼지며 둥글게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짓인가 했다.
포위는 숫자가 많은 쪽이 적은 쪽에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숫자가 적은 금의위가 갑자기 복면 살수들을 거꾸로 포위했다.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이 급변한 사태에 자신들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위국공이 미쳤구나.”
“기회다. 위국공을 잡아라!”
“와아아아!”
복면 살수들도 꺽다리와 짜리몽땅이처럼 기회라고 생각했다.
위국공만 잡으면 굳이 금의위와 이렇게 드잡이질을 할 필요가 없다.
수틀리면 그냥 죽이면 된다.
그들은 일제히 해모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주변을 포위한 금의위와 역사들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해모수의 얼굴은 오히려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쇼크 웨이브! 디버프!”
그는 작게 마법의 시동어를 속삭였다.
순간 강렬한 파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전면을 휩쓸어 갔다.
파앙!
복면 살수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다 일제히 뒤로 날아갔다.
그들은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데굴데굴 굴러갔다.
동시에 허공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디버프 마법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억!”
“허억!”
해모수의 디버프 마법, 즉 쇠약화 마법에 당한 복면 살수들은 기겁했다.
당장 힘이 쭉 빠져 몸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쇠약화 마법은 상대의 근력, 체력, 민첩을 약화하는 보편적인 디버프다.
마법 저항력이 있는 토러스 대륙의 기사라면 모를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디버프에 당한 적들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체 반응에 그만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도술이다.”
“위국공이 저주를 뿌렸어!”
“이럴 수가! 위국공은 사람이 아니야. 신선이야.”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처음에는 한두 놈이 떠들어 댔다.
하지만 공포는 이내 우한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전부를 감염시켰다.
그렇게 정신없는 틈을 타고 금의위 교위들과 역사들의 날카로운 공세가 밀려왔다.
“쳐라!”
“와아아아!”
사기충천한 금의위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차차창, 창창, 창창창!
서걱, 서걱, 철썩, 철썩!
팔다리가 떨어지고, 목이 잘린 머리통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복면 살수들은 무자비한 공세에 그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좀 전만 해도 당장 몰살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전열에 전멸을 걱정해야만 했다.
“저 두 놈은 죽이지 말고 내게 끌고 와라!”
“예, 위국공 전하!”
“충!”
창칼이 부딪치고 함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
그런데도 해모수의 목소리는 귀에 박힐 듯 똑똑하게 들려왔다.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동시에 꿀꺽 침을 삼켰다.
둘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곧 뒤에서도 금의위의 칼날이 밀려들었다.
“이놈들이!”
“안 되겠다. 후퇴하라!”
꺽다리는 화가 나서 마구 칼을 휘둘렀다.
짜리몽땅이는 급히 후퇴를 명령했다.
하지만 둘 다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퍽!
빠각!
어느새 바람과 같이 나타난 남사성과 오추량!
두 놈의 주둥이와 뒤통수를 칼날로 각각 후려쳐 버렸다.
마지막 순간, 칼날을 뒤로 돌리지 않았다면 아마 꺽다리와 짜리몽땅이의 머리통은 진즉에 반토막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두두두두!
비슷한 시각.
아래쪽에서 대량의 인마가 몰려오는 소리가 났다.
복면 살수들은 혹시나 하고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죽은 동태 눈깔 같았던 그들의 눈이 순간 기쁨으로 차올랐다.
“원군이 온다. 조금만 버텨라!”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청량위가 우리를 구원하러 달려온다.”
다 무너져 가던 복면 살수들의 기세가 불꽃처럼 살아났다.
그들은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렸다.
“물러서라!”
그 모습에 해모수가 짧게 소리쳤다.
“충!”
그러자 금의위 교위들과 역사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형의 포위망을 풀지는 않았다.
우두두두!
시선을 돌리자 산 정상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뒤로 오천여 명이나 되는 청량위의 병사들이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비록 꺽다리와 짜리몽땅이가 남사성과 오추량에게 잡혀갔지만.
복면 살수들은 여전히 살기 찬 눈빛으로 해모수를 노려봤다.
묘한 것은 해모수의 태도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청량위의 병사들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봤다.
당장 청량위가 오면 목이 뎅강 잘려나갈지도 모르는데 여전히 여유 만만한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히이잉! 히이이히잉!
푸르릉, 푸릉!
수십 마리의 군마가 일제히 멈춰 섰다.
그러곤 거의 동시에 장수들이 말에서 내렸다.
“하하하! 위국공! 당신은 이제 뒈졌어.”
“크악, 퉤! 젠장 진즉에 항복할 것이지. 이제는 더는 네놈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짜리몽땅이의 말에 이어 꺽다리가 피에 전 침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둘은 자신들의 목에 남사성과 오추량의 칼날이 놓여있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겁도 없이 위국공인 해모수를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마치 다 이긴 싸움이라도 되는 양 정말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거침없는 무례와 패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충!”
척!
갑자기 말에서 내린 장수들이 일제히 위국공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놀라운 모습에 복면 살수들의 눈이 하나같이 찢어질 정도로 부릅떠졌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해모수는 대놓고 짜증을 냈다.
그러자 장수들은 송구하다는 듯 더욱 몸을 낮췄다.
“죄송합니다. 청량위의 배반자를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들은 금의위가 청량위에 침투시킨 금의위의 교위들이었다.
마침 그들의 뒤쪽으로 육소광이 나타났다.
그는 손에 뭔가를 든 수십 명의 병사를 함께 데려왔다.
육소광은 해모수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위국공 전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나이다.”
“수고했다.”
해모수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육소광을 치하했다.
육소광의 뒤로 무릎을 꿇은 병사들의 손에 들린, 피에 젖은 머리가 누군지 그는 이미 확인했다.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맨 왼쪽 병사가 들고 있는 청량위의 지휘사, 목칠성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놈의 표정!
그야말로 죽는 그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청량위의 지휘동지와 지휘첨사, 진무와 천호 등 수십 명의 청량위 핵심 지휘관의 잘린 머리가 늘어섰다.
그것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 목 아래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 황망한 사태에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경악했다.
“어디 다시 한번 그 주둥이를 놀려보시지.”
해모수가 두 놈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꺽다리와 짜리몽땅이는 급히 시선을 내리고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흥!”
해모수는 그런 두 놈을 쳐다보며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고개를 돌려 육소광을 쳐다봤다.
“청량위는?”
“기존의 지휘부를 일소하고 새롭게 지휘관을 임명했습니다.”
청량위의 지휘부를 금의위의 심복들로 싹 갈아치웠다는 뜻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남사성과 오추량을 바라봤다.
“약속대로 두 놈의 입부터 찢어줘라!”
“예, 위국공 전하!”
“네, 위국공 전하!”
해모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사성과 오추량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꺽다리와 짜리몽땅이의 입을 좌우로 찢어버렸다.
“으아악!”
“크아악!”
꺽다리와 짜리몽땅이의 참혹한 비명이 평화로운 산정을 공포로 물들였다.
“너희들 지금 뭐 하고 있냐? 아직도 손에 칼을 쥐고 있네. 역모죄로 구족을 멸해야만 그 칼을 놓을 생각인가!”
이번에는 해모수의 살기 찬 목소리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복면 살수들은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