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그렌: 어휴!] [마루: 형! 왜 그래요?] [해모수: 무슨 걱정 있어요?]그렌의 한숨에 마루와 해모수가 즉각 반응했다.
둘은 마치 미리 짠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렌: 너희들도 봤잖아. 엘리샤가 하는 행동을.] [마루: 봤긴 봤는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해모수: 엘리샤가 그렌 형 좋아하는 거 싫으세요?]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그렌: 혹시 너희들도 알고 있었어?] [마루: 당연하죠. 저렇게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 어떻게 몰라요.] [해모수: 그 정도는 엘리샤의 눈빛만 봐도 알겠구먼.] [그렌: 아하! 알고 있었구나.] [마루: 그런데 무슨 고민 있어요?] [해모수: 뻔하지. 야엘이 눈에 자꾸 밟히는 거야.] [그렌: 헐!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냐? 들어와서 봤니?]정곡을 콕 찌르는 해모수의 말에 그렌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었다.
[마루: 형은 어때요?] [그렌: 나?] [마루: 네, 형은 엘리샤가 싫어요?] [해모수: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저렇게 두 손을 꼭 잡고 있는데.] [그렌: 헉!]그제야 그렌은 자신이 엘리샤의 미드를 손으로 꼭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감히 손을 떼지는 못했다.
어쩐지 그렇게 하면 엘리샤가 무척 싫어할 것 같다는 예감에서다.
확실히 마법사라서 그런지 육감이 꽤 발달해 있었다.
[마루: 형 하는 거 보니까 엘리샤가 싫은 건 아니군요.] [해모수: 싫기는커녕 좋아 죽으려고 하네.] [그렌: 무슨 소리야? 나 그 정도는 아니야.]그렌이 펄쩍 뛰며 말했다.
[마루: 하하하!] [해모수: 푸하하!]하지만 곧 자신이 마루와 해모수의 유도신문에 걸려든 것을 깨달았다.
[그렌: 야! 너희들 계속 이렇게 형 놀릴 거야?] [마루: 미안해요. 그만할게요.] [해모수: 크크. 장난이에요.]마루와 해모수는 놀리는 걸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대신 당장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마루: 난 형과 엘리샤가 결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해모수: 저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그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그렌은 갑작스러운 동생들의 의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루: 바이칼의 영주인 형과 바이칼족의 수호신인 불의 여왕 엘리샤가 결합한다면 얀, 버틀, 렌 영지는 온전히 형의 손안에 들어올 거예요.] [해모수: 저도 형과 불의 여왕이 결합하는 게 당장은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해요.] [그렌: 으음.]마루와 해모수의 의견에 그렌은 안색을 굳혔다.
눈치 빠른 해모수가 슬쩍 물었다.
[해모수: 그렌 형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런데 자꾸 야엘이 걸리는 거 아니에요?] [마루: 솔직히 말해보세요. 야엘이 걱정되시는 거죠?] [해모수: 맞아. 야엘 때문이야. 만약 내가 엘리샤와 결합한다면 아마 야엘은 많이 슬퍼할 거야.]그렌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이런 반응에 마루와 해모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 그럼 정식으로 프러포즈하세요.] [그렌: 뭐라고?]마루의 돌발적인 제안에 그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모수가 끼어들어 마루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해모수: 뭘 그까짓 일로 고민해요? 둘 다 아내로 맞으면 되잖아요.] [그렌: 아!]그제야 그렌은 자신의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렌: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마루: 물론이죠. 야엘은 형이 엘리샤와 결합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이 버림당할까 봐 불안한 거예요.] [해모수: 야엘은 모리스의 기사로 귀족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잘 알아요.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으로 정략결혼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어요. 더구나 그렌 형은 이미 귀족인 자작에다 세 영지를 맡은 영주의 신분이잖아요.]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루: 해모수 말이 맞아요. 야엘은 신분에 대해 자격지심이 커요. 특히 카시오페라에 끌려와 노예로 살았던 기억 때문이라도 형과 결혼해 부인이 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을 거예요.] [해모수: 모르긴 해도 야엘은 귀족의 애첩인 미스트리스 정도만 돼도 아마 만족할 거예요. 귀족가의 영애도 아닌 그녀가 자작 신분의 귀족과 결혼을 꿈꿀 리는 없잖아요. 철없는 소녀도 아니고.] [그렌: 아!]마루와 해모수 때문에 그렌은 머리가 시원하게 열린 기분이었다.
어떻게 된 게 자신보다 토러스 대륙의 귀족에 더해 더 정통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야엘은 그에게 결혼하자는 뉘앙스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몇 번이나 자신의 노예로 살 테니 제발 버리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얘기하나 보다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루: 다행히 불의 여왕도 귀족 출신이 아니고, 야엘도 귀족가의 영애가 아니에요.] [해모수: 엘리샤를 정부인, 야엘을 제2부인로 삼으세요.] [마루: 엘리샤도 형과 야엘의 관계를 이미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렇게 들이대는 건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어요. 정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그냥 한번 슬쩍 떠보세요. 아마 절대로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그렌: 정말 그럴까?]그렌은 소심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루: 당연하죠.] [해모수: 확실해요.]마루와 해모수는 그렌의 물음에 단호하게 확신을 담아 대답해 줬다.
둘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그렌도 슬슬 회가 동했다.
자신이 무슨 목석도 아니고, 이렇게 싱싱하고 탐스러운……. 크흠!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유혹하는데, 가만히 참고만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생각이 일자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엘리샤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금세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덮고는 꽉 움켜쥐었다.
덕분에 손바닥 한가득 그녀의 부드러운 미드를 느껴버렸다.
[그렌: 헉!] [마루: 와우! 화끈하네.] [해모수: 용감하다. 난 점점 이 여자가 마음에 들려고 해! 아니지 이젠 형수님이라고 해야 하나?]그렌은 더 이상 마루와 해모수의 말을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목을 잡아 옆으로 살짝 돌렸다.
그러고는 붉게 반짝이는 엘리샤의 입술에 키스했다.
“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의 입술이 활짝 열렸다.
입에서 단내가 풍기자 그렌은 거침없이 그녀의 입술을 공략했다.
둘은 지상에서 수백 미터 높이의 창공에서 그렇게 짜릿한 첫 키스를 했다.
“그렌!”
“엘리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은 진한 키스를 나눴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엘리샤가 일어나 뒤로 넘어왔다.
아무리 레닌이 안정적으로 활공하고 있다곤 해도 이건 정말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엘리샤는 마치 평지를 걷듯 편하게 뒤로 돌아 넘어왔다.
그렇다고 와이번 위에 넓고 편한 공간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좁은 자리에 둘이 같이 앉는 것은 딱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바로 그의 허벅지 위로 포개어 앉는 것이다.
“그렌!”
“엘리샤!”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꼭 껴안았다.
눈앞에 거대한 멜론 덩어리 두 개가 유혹의 향기를 풍겨댔다.
아래론 뜨거운 욕망이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얇은 천 한 장 사이로 무겁게 짓눌러 오고 있었다.
그렌과 엘리샤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뜨겁게 키스를 퍼부으며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키에에에에엑!
레닌이 길게 포효했다.
와이번은 영리하게도 자신의 주인이 짝짓기하려는 것을 눈치챘다.
천천히 방향을 틀어 이름 모를 산정으로 향했다.
따뜻한 기류를 타고 하강하며 와이번이 발정기에 찾는 거대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레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땅에 착륙했다.
그러자 엘리샤는 그렌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날 한참 동안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듣기에도 민망한 야릇한 교성을 계속 질러댔다.
다음 날부터 그렌과 엘리샤는 매일 만났다.
그들은 와이번 레닌을 타고 아침부터 열심히 영지를 순찰하고 다녔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얀, 버틀, 렌 영지의 도로 공사도 시찰했다.
그렇게 둘이 계속 붙어 다니자, 이윽고 영지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이칼의 영주와 불의 여왕이 사랑에 빠졌다.’
이걸 바라보는 한 여인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 * *
“바이칼족 장로들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네.”
수석 행정관 클리오가 일어나 메인 홀 밖으로 나갔다.
상석에 앉아있던 그렌은 보성녹차를 홀짝이며 활짝 열린 문을 바라봤다.
‘역시 녹차는 보성녹차지.’
그는 마루가 전해준 녹차의 깊은 맛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칼족 장로 열두 명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왔다.
“바이칼 영지의 주인을 뵙습니다.”
“그렌 영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얀, 버틀, 렌 영지의 영주님을 뵈옵니다.”
바이칼족 장로들은 하나같이 그렌을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전에는 고개만 까딱거리던 놈들이다. 그것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인사가 아주 정중했다.
그렌은 마루와 해모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 바이칼족 장로들이 무슨 일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왔는지 그게 의문이었다.
“어서 오시오. 다들 잘 지냈소?”
“그렇습니다. 영주님!”
그렌의 인사말에 대장로가 대표로 한 발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그는 바이칼족 장로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지혜가 뛰어나다는 현자였다.
“다행이군.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이렇게 오셨소?”
“영주님과 긴히 상의드릴 게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갑자기 찾아오게 됐습니다.”
“나와?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인가 보군.”
확실히 무례는 무례였다.
영주를 만나려면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는 것은 어느 쪽의 예법에도 어긋났다.
“바이칼족과 바이칼 영지의 미래가 걸린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 그럼 불의 여왕도 같이 데려오지 않고.”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여왕께서 참석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확신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그렌은 고개를 흔들며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좋소. 그럼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영주님! 저희는 얀, 버틀, 렌 영지의 주인이신 그렌 바이칼 영주님께 바이칼족의 수호신, 엘리샤 글레저 여왕님과의 혼사를 제안합니다.”
“뭐시라?”
그렌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의 뒤에 서있던 야엘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임무를 몽땅 잊어버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요새 솔솔 들려오던 소문에 설마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혼까지 추진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영주님과 여왕님이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놀라서 잘못 들었는가 했다.
하지만 대장로는 아까보다 더욱 또렷하게 말했다.
그렌은 많이 놀랐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엘리샤와 자주 붙어 다녔으니… 이런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공론화될 줄은 몰랐다.
그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야엘을 쳐다봤다.
역시 예상대로 그녀는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렌은 차마 야엘의 얼굴을 더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려 대장로를 쳐다봤다.
“흐음, 불의 여왕이 이 제안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불의 여왕은 이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당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대장로는 차마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결혼은 여자가 조금은 꿀리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다 지금 당신에게 홀라당 반해버려서 바이칼 영주가 아니면 절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빨리 혼사를 성사시키라고 닦달한다는 얘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렌은 엘리샤의 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매일 만나서 종일 붙어 지내며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
성격도 단순하고 화끈한 엘리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사실 더 어려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