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얀, 버틀, 렌의 영주가 불의 여왕과 결혼한다.”
이 소식은 바이칼 영지로 삽시간에 퍼졌다.
곧 산불처럼 카시오페라 왕국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갔다.
왕국의 수도인 에티오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연락이 빗발쳤다.
프릴 마탑에서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당장 에티오 지점장을 통해 축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자 카시오페라 왕국의 맞수 코티아르 왕국은 물론, 부르나 왕국과 모리스 왕국에까지 그렌의 결혼 소식이 전해져 큰 화제가 됐다.
고위 마법사와 그의 호위 여기사와의 로맨스!
이건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모리스 왕국과 빈 영지는 야엘의 존재로 인해 무척 심사가 불편했다.
자국의 기사가 전쟁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됐다.
그런데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카시오페라 왕국의 자작이자 고위 마법사인 영주와 결혼을 하다니…….
도저히 구설수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렌의 결혼 소식을 반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당장 카시오페라 왕국의 영주들부터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야만인의 여왕이자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평소에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는 경박한 여자란 소문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겉으론 축전을 보내고 뒤로는 험담하는 귀족들이 꽤 됐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보통 귀족의 결혼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약혼부터 결혼식까지 아무리 빨라야 최소 1년은 걸렸다.
그런데 그렌 자작은 결혼을 결정한 지 단 2주 만에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거행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카시오페라 왕국의 영주와 귀족들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특사를 보내어 그렌의 결혼식을 축하했다.
명색이 자작의 결혼식이다.
모르는 척 그냥 입을 딱 씻기에는 주변의 평판이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나마 카시오페라 왕실에선 궁정 마법사를 급파했다.
프릴 마탑에서도 파격적으로 7서클의 대마법사를 보내 자리를 빛냈다.
와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거센 함성이 터졌다.
수십만의 바이칼족이 열광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식의 규모만큼은 세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얀, 버틀, 렌 영주성 인근 직영지에서 온 주민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영지민이 한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열화 같은 함성을 배경음으로 거대한 와이번이 포효하며 도도하게 영주성을 선회했다.
키에에에엑!
불의 여왕이 타고 다니는 와이번, 레닌!
녀석은 우아한 자태로 얀 영주성 외성 성벽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휘익, 턱!
레닌의 위에서 엘리샤가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평상시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리에 하얀 면사포만 달랑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엘리샤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결혼 당사자인 그렌까지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참 야성의 매력이 넘치는 신부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신선한 결혼식은 난생처음 봅니다.”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과연 불의 여왕이란 말이 참 어울리는 더운 모습이구려!”
카시오페라 왕실을 대표해 참석한 궁정 마법사이자 6서클의 고위 마법사인 에펠과 프릴 마탑의 특사로 온 7서클의 타워 대마법사가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블랙과 실버 두 가지 색의 멋진 결혼 예복으로 한껏 멋을 낸 오늘의 신랑, 그렌의 귀에는 이들이 하는 말이 너무나도! 똑똑히! 잘! 들렸다.
[마루: 헐! 아주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등장하네.] [해모수: 와우! 우리 큰형수님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계시다. 결혼식에 저런 화끈한 비키니 차림이라니.]놀람인지 감탄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마루와 해모수!
그들도 어지간히 황당했던 모양이다.
그렌은 두 사람이 하는 소리를 듣자 절로 얼굴이 벌게졌다.
‘엘리샤는 불의 여왕이야. 어차피 웨딩드레스를 입혀도 다 불태우고 말 거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포기해 버렸다.
다행인 것은 그의 옆에 불의 여왕 엘리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순결의 상징인 새하얀 웨딩드레스.
곱게 면사포를 쓴 청순 글래머의 미녀.
아낌없이 본인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 아름다운 신부.
바로 야엘이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오늘의 신부다웠다.
유혹적인 쇄골과 아찔하게 드러난 가슴을 강조한 드레스를 입고, 풀 메이크업으로 힘을 빡 주고 나타난 야엘의 미모!
가히 충격적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그녀의 미를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야엘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고결함을 향기처럼 풍겨대고 있었다.
거기에다 그녀의 하얀 목과 귀에 걸린 액세서리!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BVLGARI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세르펜티(Serpenti)가 요요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 컬렉션은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 풍요, 부활, 불멸을 상징하는 뱀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다.
하얗고 깨끗한 살결을 가진 야엘에겐 아주 잘 어울리는 완벽한 위버럭셔리(UberLuxury)였다.
[그렌: 마루야! 결혼 선물 정말 고맙다.] [마루: 아니에요. 그동안 형이 우리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 [그렌: 무슨 소리야. 네가 형수들에게 줄 보석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해모수: 맞아요. 저렇게 정교하게 커팅된 보석들과 멋진 디자인의 액세서리는 그렌 형이나 내가 사는 세상에선 쉽게 구할 수 없는 명품이잖아요.]그렌에 이어 해모수까지 거들자 마루는 괜히 부끄러워 머리만 긁적였다.
[마루: 어쨌든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에요.] [해모수: 마루 형! 나중에 나 결혼하면 잊지 말고 나한테도 꼭 저런 멋진 선물 주셔야 해요.] [그렌: 하하하! 해모수가 샘이 좀 나나 보다.] [마루: 후훗! 어련히 알아서 줄까 봐 벌써 저렇게 보채네요.] [그렌: 왕지현과 어지간히 결혼하고 싶은가 보다.] [해모수: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마루: 아니긴 아냐! 당장 장가가고 싶어서 괜히 보석 핑계 대는 거지?] [그렌: 내가 봐도 그래 보인다.] [해모수: 아니라니까요. 아오! 정말 내 가슴을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미치겠네.]그렌과 마루의 말에 해모수는 펄쩍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해모수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셋이 투덕거리고 있는 사이!
마침내 그렌의 결혼식이 거행됐다.
“이제 얀, 버틀, 렌 영지의 정당한 주인이자 카시오페라 왕국의 자작이며 프릴 마탑의 고위 마법사인 그렌 영주님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특별히 수도 에티오에서 온 초로의 사제가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
와아아아!
순간 거대한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장관이다. 세상에 이런 결혼식이 다 있다니.”
프릴 마탑의 에티오 지점장, 4서클의 중급 마법사 피라미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바이칼 영주와 불의 여왕의 결혼을 축하하러 온 바이칼족은 대략 백만!
얀, 버틀, 렌 영지의 직영지에서 온 영지민도 삼십만에 가까웠다.
그러니 결혼식의 규모만 보면 사상 최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결혼식이 무척 빠르고 간략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엘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그렌이나 엘리샤나 허례허식은 딱 질색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결혼식은 유례없이 초스피드로 흘러갔다.
“…이로써 얀, 버틀, 렌 영지의 정당한 주인이자 카시오페라 왕국의 자작이시며 프릴 마탑의 고위 마법사인 그렌 영주님과 바이칼족의 수호신이자 불의 여왕인 엘리샤 님 그리고 기사 야엘 님은 합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와아아아!
또다시 세상이 떠나갈 듯한 커다란 함성이 진동했다.
사제는 잠시 기다렸다가 함성이 잦아들자 그렌을 바라봤다.
“그렌 영주님, 신부들에게 약속의 반지를 끼워주시죠.”
“알겠소.”
그렌은 기다렸다는 듯 엘리샤에게 다가갔다.
손에는 두 개의 보석함이 들려있었다.
고급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링이었다.
그는 그중 하나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반지를 꺼내 엘리샤의 손가락에 끼웠다.
“고마워요!”
면사포가 흔들리며 흥분한 엘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렌은 엘리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이동했다.
그런 후, 다른 보석함에서 반지를 꺼내 야엘의 손가락에도 결혼반지를 끼웠다.
“아아!”
야엘은 감격으로 인해 손을 벌벌 떨었다.
“이제 그렌 영주님은 아내로 맞이한 신부들에게 언약의 키스를 해주세요.”
사제는 결혼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언약의 키스 선언과 함께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는 어마어마한 하객의 숫자에 질려 크게 긴장했었다.
그래도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아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제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렌은 엘리샤에게 다가갔다.
흥분으로 인해 풍만한 그녀의 가슴이 연신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는 속으로 고소를 지으며 그녀의 면사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엘리샤는 그렌에게 달려들어 거칠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진한 딥 키스를 퍼부었다.
그렌은 미처 예상치 못한 그녀의 기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엘리샤의 키스에 열정적으로 호응했다.
와아아아!
바이칼족은 그 모습에 뜨겁게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들의 수호신이자 정신적인 지도자인 불의 여왕!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하는 합법적인 첫 키스였다.
그러니 바이칼족이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오! 신부가 참 열정적이로군.”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사랑할지 눈에 선합니다.”
“화끈하다 못해 뜨겁겠군요.”
“너무 뜨거워서 침대가 불에 탈까 그게 걱정이네요.”
궁정 마법사 에펠과 프릴 마탑의 대마법사 타워는 놀란 눈으로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못 들을 그렌이 아니었다.
그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다 벌게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엘리샤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렌은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길고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그 끝은 왔다.
그렌의 입술을 욕심껏 탐닉한 엘리샤!
“후우, 후우, 후우!”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뜨거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주위에 사람만 없다면!
당장이라도 그렌을 덮쳤을 것만 같은 살 떨리는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엄지로 엘리샤의 입술을 가볍게 닦아주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엔 오랫동안 이 순간을 참고 기다려 온 한 신부가 서있었다.
그렌은 조심스럽게 야엘의 면사포를 벗겼다.
마치 꽃이 활짝 피어나듯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야엘!”
“영주님!”
둘은 서로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혹적인 야엘의 붉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순간 그녀가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렌은 얼른 야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뭐든 공평하게 해주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행동이었다.
옆에서 동그랗게 눈을 뜬 엘리샤가 눈을 빛냈다.
그녀는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엉뚱한 불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결코 질투는 아니라는 것이다.
“괜찮아?”
“아! 네, 이제 괜찮아요.”
뜨거운 언약의 키스가 끝났다.
야엘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를 쳐다봤다.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
그녀는 급히 오러를 끌어 올려야만 했다.
덕분에 감격스러운 이들의 결혼식은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그렌 영주! 결혼을 축하하오.”
“그렌 영주! 결혼을 축하하네.”
그렌이 엘리샤와 야엘로부터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궁정 마법사 에펠과 대마법사 타워가 다가왔다.
둘은 그렌과 악수에 이어 포옹까지 해가며 그의 결혼을 축하해 줬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간 계산된 행동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행동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봅시다.”
“프릴 마탑에도 한번 들러주시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렌은 마법사인 두 사람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뒤이어 카시오페라 왕국의 각 영지에서 보낸 특사들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