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그렌 영주님! 결혼 축하합니다.”
“저희 영주님께서 그렌 영주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너무 멋진 결혼식이었습니다. 신부들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특사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렌의 결혼을 축하했다.
그런데 직접 온 영주나 백작 이상의 귀족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영주의 가신이거나 심복인 남작과 자작의 위를 가진 귀족들뿐이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그렌이다.
하지만 이따위 정치적인 태도에 그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카시오페라 왕국의 중앙 정계엔 발을 디딜 생각이 없었다.
그에겐 오직 자신의 직영지를 발전시키고 마법을 연구할 욕심뿐이었다.
특사들의 축하 인사가 끝나자 그렌은 성벽 위에서 바깥을 바라봤다.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자 양옆으로 엘리샤와 야엘이 쪼르르 다가와 안겼다.
기쁨과 흥분으로 인해 두 미녀의 볼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백만이 넘는 인파를 향하여 그렌은 마력을 실은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나와 불의 여왕 그리고 야엘의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이를 환영한다. 오늘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겨라! 축제를 시작하라!”
와아아아!
백만이 넘는 인파가 그의 선언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뜨거운 함성과 열렬한 호응에 대지가 지진이 난 듯 진동했다.
두두두두!
그르르르!
외성 문이 활짝 열렸다.
이어 준비한 음식과 요리 및 술통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그렌이 전부 준비한 것은 아니다.
불의 여왕인 엘리샤가 열두 장로들을 들들 볶았다.
그래서 바이칼족이 비축해 놓은 술과 양식을 풀게 했다.
바이칼 상단을 통해 술과 양식을 대량으로 들여왔다.
그렌 자신도 몇 차례나 수도 에티오로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날아갔다.
결혼식과 피로연 그리고 축제에 필요한 물품을 대량으로 사서 아공간에 담아왔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간단하게 바이칼족의 마정석으로 해결했다.
엘리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우리의 우주적 슈퍼호구 엘리샤!
그녀는 그렌의 요청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승낙했다.
그로 인해 죽어난 것은 바이칼족의 열두 장로들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지금 결혼식 피로연 겸 축제는 신나고 흥겹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와! 어마어마한 양이다.”
“술통이 끊이질 않네.”
“음식과 요리가 계속 나오고 있어.”
“도대체 그렌 영주는 얼마나 돈이 많은 거야?”
“저 많은 사람에게 전부 술과 음식을 베풀고 있어.”
특사로 온 귀족들은 엄청난 규모의 축제에 경악했다.
무엇보다 백만이 넘는 영지민을 모두 먹고 마시게 한 그렌의 재력에 감탄했다.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 대부분은 바이칼족이 각자 그들의 마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러나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그렌의 능력에 놀라 자빠질 상황이었다.
“엘리샤!”
“응, 영주…님.”
“야엘!”
“네, 영주님.”
그렌이 부르자 두 미녀는 환하게 피어났다.
그의 품에 은근히 몸을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두 팔에 힘을 꽉 주자, 파르르 떨리는 부드러운 여체가 전신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야말로 잘 부탁해, 아니 부탁해요.”
“영주님, 저도 잘 부탁합니다.”
엘리샤는 오늘 작정하고 나왔는지 나름 조신하게 보이려고 무척 노력 중이었다.
물론 기대와는 달리 별 성과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야엘은 부끄러운 얼굴로 모기 같은 가는 목소리를 냈다.
그렌은 각기 다른 매력의 두 아내를 맞아 너무 좋고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입가에 어린 미소가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클리오 수석 행정관이 다가와 속삭였다.
“영주님, 인제 그만 내성으로 들어가시죠. 귀빈들을 위한 연회가 준비됐습니다.”
“응.”
그렌은 클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엘리샤와 야엘을 각각 양팔에 끼고 보무도 당당하게 내성을 향해 걸었다.
그 뒤를 궁정 마법사와 대마법사를 비롯한 특사들이 따라갔다.
바이칼 영지의 행정관들과 바이칼족의 열두 장로들도 만면에 미소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성의 첨탑 위로 흐르는 푸른 하늘이 유난히 시리게 느껴지는… 참으로 은혜로운 하루였다.
* * *
우두두두두!
설원을 달려가는 야크 떼!
차가운 눈보라를 일으키며 대지를 가로질렀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대지.
그 어디에도 위협적인 천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야크 떼는 조금도 쉬지 않고 무섭게 질주했다.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배가 보인다.”
“거의 다 왔다.”
그때 야크 떼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야크를 말처럼 타고 다니는 자들이 크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빛이 서늘하고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들!
이들은 북해의 거센 파도를 타고 넘어온 바이칼족의 전사들이었다.
우두두두두!
희망이 보이자 야크 떼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귀청을 자극했다.
“우탕가! 한기가 몰려옵니다.”
바이칼 전사들을 이끄는 상(上)전사 우탕가!
그는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우탕가의 부리부리한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느새 여기까지…….”
그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후우우우웅!
날카로운 한기의 토네이도가 그들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맨 끝에서 달려오던 어린 야크가 바람에 휩싸여 붕 떠올랐다.
메에엥!
카가가가가!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잠시!
어린 야크는 순식간에 얼음덩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토네이도에 휩쓸려 산산조각으로 갈려버렸다.
마치 거대한 믹서에 살짝 언 토마토와 얼음 조각을 넣은 것만 같은, 무시무시하게 살 떨리는 모습이었다.
야크 떼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들도 지금, 이 순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두두두두두!
야크 떼는 정말 눈썹이 휘날리도록 열심히 달렸다.
그 위에서 고삐를 쥐고 흔드는 바이칼 전사들도 최선을 다했다.
바람의 영향을 덜 받게 몸을 바짝 숙여 자세를 낮췄다.
야크들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지간한 짐은 그냥 다 버렸다.
조금이라도 야크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고육책이었다.
차라리 좀 굶고 말지.
꽁꽁 얼어서 토네이도에 갈리고 싶진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죽음은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였을까!
뒤를 바짝 쫓아오던 한기의 토네이도와 조금씩 거리가 벌어졌다.
“됐다. 이 기세 그대로 배에 올라탄다.”
“핫핫!”
“효시를 쏴서 출항을 준비하라!”
“핫핫!”
우탕카의 지시에 바이칼 전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미리 효시를 쏘고 대기하고 있던 갤리선을 향해 한 몸처럼 질주했다.
두두두두두두!
배 위로 올라가는 발판이 부서질 듯 진동했다.
실제로 그들이 다 올라가니 발판은 그대로 박살 났다.
“닻을 올려라!”
“야크 떼를 우리로 데려가라!”
“노를 저어라!”
“빨리 돛을 펴라!”
그들은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돛이 펴지고, 하갑판에 내려간 전사들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불안한 눈동자로 밀려오는 한기의 토네이도를 바라보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빠르게 북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화르르릉, 텅!
커다란 돛이 활짝 펴지자 움직이는 배에 속도가 붙었다.
상전사 우탕카는 힘차게 방향타를 돌렸다.
끼끄덩, 삐끄덩!
배가 기울어지며 묘한 소음을 일으켰다.
그래도 방향을 바꾸자 배는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후우우우웅!
하지만 배를 출발시키기 위해 잠시 지체한 사이!
무시무시한 한기의 토네이도가 어느새 바짝 다가서고 있다.
“더욱 노를 빨리 저어라!”
“모든 돛을 다 펼쳐라!”
우탕가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위기를 느낀 바이칼 전사들이 더욱 힘을 내어 노를 저었다.
“바이 칼, 바이 칼, 바이 칼…….”
그들은 마치 ‘영차영차’를 반복하는 것처럼 ‘바이’와 ‘칼’을 나눠서 외쳤다.
소리는 점차 빨라졌고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바이칼의 갤리선은 빠르게 바다 위를 질주했다.
후우우우웅!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기의 토네이도는 어느새 배의 뒤꽁무니까지 쫓아왔다.
카가가가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갤리선 뒤쪽의 고물과 선실이 그대로 갈려나갔다.
놀랍게도 갤리선은 뒤쪽에서부터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한기의 토네이도가 따라붙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우탕카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크게 외쳤다.
물결을 가르는 갤리선과 배의 고물을 갈아버리는 한기의 토네이도를 뚫고, 그의 목소리는 하갑판을 뒤흔들었다.
빠드득, 와드드득!
쩌엉, 쩡!
벌써 하갑판의 뒤편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야앗!”
“바이! 칼!”
“으랏차!”
절체절명의 위기!
바이칼 전사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한기에 먹히면 바로 죽는다는 사실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이들의 놀라운 박력에 한기의 토네이도도 깜짝 놀랐나 보다.
짐승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묘한 소음과 함께 차가운 얼음의 폭풍은 서서히 뒤로 물러갔다.
아니 그 무시무시한 한기의 토네이도를 따돌리고 바이칼족의 갤리선은 토러스 대륙을 향해 빠르게 탈출했다.
점점 멀어지는 악마 같은 한기의 토네이도!
바이칼 전사들은 그 모습에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성공했다.”
“살았다.”
“우리가 해냈다.”
“얼음 폭풍을 따돌렸다.”
하지만 우탕카만큼은 이에 동조할 수 없었다.
‘만약 한기의 토네이도가 이대로 계속 남하하면 어떻게 될까?’
빠르게 뇌리를 스치는 단어 하나에 그는 몸서리를 쳤다.
“울트라 웨이브다!”
자신도 모르게 속삭이듯 머릿속의 단어가 입술을 뚫고 새어 나왔다.
우탕카는 피가 나도록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다는 전설의 초대형 몬스터 웨이브!
그 공포의 ‘울트라 웨이브’가 지금 토러스 대륙 북부를 향해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 * *
“으아아!”
그렌은 몸을 일자로 쫙 펴고 기지개를 켰다.
며칠째 무리를 해서 그런지 온몸이 다 노곤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더 퍼질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밝은 햇빛이 침상을 가득 덮고 있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이불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덕분에 침대 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양쪽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미녀가 각각 무방비하게 누워있었다.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확실히 들어간, 청순 글래머와 정통 글래머의 대결!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슬금슬금 움직인 두 손이 바빠졌다.
순간 신체 일부에 힘이 빡 들어갔다.
조물조물!
주물럭주물럭!
주물럭 고기에 양념을 배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손만 대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우웅!”
“아잉!”
왼쪽의 엘리샤가 몸을 비틀며 먼저 앙탈을 부렸다.
그러자 오른쪽의 야엘도 덩달아 몸을 비비 꼬았다.
그로 인해 굴곡진 S 자 라인들이 마구 요동치며 시선을 강탈했다.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든든한 인생의 친구가 어느새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며칠간, 그렇게 힘을 쓰고도 이 녀석은 도대체 지칠 줄을 몰랐다.
이것은 비단 정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운용한 천지교태술로 인해 불의 여왕 엘리샤가 가진 극양의 순수한 기운을 살짝 흡수해 버린 탓이다.
덕분에 그간 엘리샤와 야엘을 상대로 초반 전승을 거둘 수가 있었다.
‘안 되겠다. 가볍게 한번 사랑을 나눠야겠어.’
그렌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야엘의 아찔한 나신을 덥석 끌어안았다.
사실 굳이 참을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결혼식을 올린 합법적인 부부다.
그러니 둘이 대낮에 사랑을 나누건 말건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는 뜨거운 눈으로 요염한 야엘의 몸을 구석구석 쳐다봤다.
그때 그렌의 즐거움을 단숨에 박살 내는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땡땡땡땡땡땡땡땡땡!
종소리에 놀란 엘리샤와 야엘!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무슨 소리예요?”
“비상을 알리는 타종이야.”
“혹시 해적이 쳐들어왔나?”
엘리샤와 야엘은 다급히 달려가 창문 밖을 살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우뚝 선, 당당한 자존심들이 마구 흔들렸다.
침실에 그윽해진 야릇한 살 내음이 예민해진 그렌의 코를 간지럽혔다.
‘젠장!’
그는 ‘그림 속의 빵’이란 생각이 들었다.
먹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이 절묘한 상황을 참 잘 묘사한 단어였다.
그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드로즈에다 몸에 딱 붙는 기능성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그 위에 문라이트 룬 메일을 장비하고 프릴 로브를 걸쳤다.
엘리샤는 사방으로 난무하던 사자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질끈 동여맸다.
야엘도 빠르게 속옷에 요가복을 걸치고 프릴아머와 마법 로브로 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