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쿵쿵쿵쿵!
밖에서 영주관저의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비상종이 격렬히 울리는 상황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 먼저 나갈게.”
그렌은 엘리샤와 야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침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가서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눈앞에 바이칼족 장로 중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뭔가 아주 다급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불, 불의 여왕께 급히 알려드려야 할 전갈을 가져왔습니다.”
“엘리샤에게?”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불의 여왕 엘리샤가 옷을 입고 침실을 나왔다.
뭐 옷이라고 해봐야 비키니 같은 브래지어와 팬티 한 장뿐이지만.
그래도 이걸 걸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물론 그 차이를 아는 것은 오직 그렌뿐이겠지만.
“팔 장로! 여기까지 웬일이야?”
“지금 울트라 웨이브의 조짐이 보입니다.”
“울트라 웨이브? 그게 뭐지?”
엘리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당장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다.
“울트라 웨이브 모르십니까? 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다는 초대형 몬스터 웨이브 말입니다.”
“아아! 그 울트라 웨이브!”
엘리샤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바이칼족의 열두 장로 중 서열 팔 위의 장로인 팔 장로!
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불의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그렇게 웃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빨리 울트라 웨이브를 대비해야 합니다. 한기의 토네이도가 북해를 건너고 있어요.”
“알았어. 먼저 정찰부터 하고 올 테니까, 열두 장로 소집하고 울트라 웨이브를 맞을 준비를 해!”
“네, 여왕님!”
팔 장로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얼굴이 펴졌다.
하지만 엘리샤는 팔 장로의 표정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쿵!
그녀는 가차 없이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곤 냉큼 그렌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렌, 아니 영주님! 나와 같이 갑시다.”
“어딜?”
“어디긴 어디야, 울트라 웨이브가 시작된다는 북해로 가봐야지. 아니 가봐야지요.”
“허어!”
그는 아직도 존댓말이 잘 안 되는 엘리샤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안 되는 것 가지고 힘 빼지 마!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정말?”
“응.”
“고마워! 이게 생각보다 영 잘 안 되네. 크크. 어쨌든 나가자.”
“좋아.”
엘리샤는 그렌의 손을 잡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저도 같이 가요.”
그때 야엘이 빠르게 달려오며 그렌의 한쪽 팔에 팔짱을 꼈다.
“너도?”
“네.”
그렌이 고개를 돌려 엘리샤를 쳐다봤다.
엘리샤는 잠깐 야엘을 쳐다보다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가자.”
사실 와이번에 자리는 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렌이 한 명을 안고 가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셋은 빠르게 걸어 영주관을 나왔다.
엘리샤는 고개를 치켜들고 입안에 두 손가락을 넣고 힘차게 불었다.
휘이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멀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금세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렌과 야엘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불의 여왕의 와이번, 레닌이 어느새 나타나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펄럭, 펄럭, 펄럭, 쿵!
거대한 동체와는 달리 레닌은 너무도 가볍게 영주관 앞마당에 내려섰다.
엘리샤가 반가운 표정으로 레닌을 쳐다봤다.
그녀는 빠르게 레닌의 날개 뼈를 타고 올라가 앉았다.
“영주님!”
“영주님!”
때마침 마르코스 친위대장과 클리오 수석 행정관이 달려왔다.
“마침 잘 왔다. 마르코스는 지금부터 전 영지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해라!”
“예에? 몬스터 웨이브요?”
갑작스러운 몬스터 웨이브 소리에 마르코스는 기겁했다.
그렌은 굳이 설명을 해주지 않고 이번에는 클리오를 쳐다봤다.
“클리오는 마르코스를 도와 몬스터 웨이브 대비와 총동원령을 차질 없이 시행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주님! 지금 어디 가십니까?”
“불의 여왕과 같이 북해를 다녀오겠다.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알아보려면 와이번을 타고 가는 게 제일 빠르잖아.”
“아! 그것참 좋은 방법입니다.”
“그럼 다녀올 동안 둘이 잘 협력해서 준비하고 있어.”
“예, 영주님.”
“충!”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엘리샤처럼 와이번의 날개 뼈를 밟고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야엘도 그렌을 따라갔다.
그런데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자 주춤거렸다.
그렌은 당황한 야엘에게 손을 뻗쳤다.
그녀를 끌어당겨 안고는 서둘러 안전벨트를 맸다.
“영주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영주님! 잘 다녀오세요!”
마르코스와 클리오가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그렌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와이번이 몇 번 날개를 펄럭거리자 금세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레닌은 힘차게 창공을 향해 날아갔다.
“우와!”
야엘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이번을 처음 타보는 그녀!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이런 야엘의 반응에 고무됐는지 엘리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쩐지 입가에 걸린 미소가 무척 사악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꽉 잡아!”
후웅!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돌연 레닌이 급기동을 시작했다.
“꺄악!”
야엘은 깜짝 놀라서 그렌의 목을 꽉 껴안았다.
살짝 목이 졸린 그는 엘리샤의 장난기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번 겪어본 적이 있는 그렌이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레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와이번은 본능적으로 상승기류를 찾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얀 영주성은 부싯돌만큼 작아져 있었다.
그렌은 놀란 야엘의 몸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
가슴을 짓눌러 오는 두 개의 탄력 있는 부드러움!
추위를 타는지 자꾸 파고드는 그녀의 행동!
그렌은 말없이 야엘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해모수: 작은형수님, 추우신가 보다.] [마루: 형, 하늘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많이 내려가요. 실드라도 좀 치세요.] [그렌: 아!]해모수와 마루의 말에 그렌은 그제야 실드 마법이 생각났다.
“실드!”
그렌은 작게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그를 기준으로 투명한 원형의 실드가 만들어졌다.
대번에 주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어! 이게 뭐야?”
“와아!”
엘리샤가 변화를 감지하고 뒤를 돌아봤다.
야엘도 그렌의 목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무언의 대답을 강요하는 두 여인의 분위기에 얼른 입을 열었다.
“실드 마법이야.”
“아하!”
“역시 마법이었군요.”
“그런데 이거 참 좋다. 바람 때문에 눈물도 안 나오고.”
“추위도 싹 가셨어요.”
엘리샤와 야엘은 거의 동시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두 아내가 좋아하자 그렌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어휴! 이렇게 좋은 마법이 있었으면 진즉에 좀 쳐주지.”
엘리샤는 곱게 눈을 흘기며 그를 쳐다봤다.
“미안해! 나도 이제야 실드 마법이 생각났어.”
“전 괜찮아요.”
그렌은 사과했고 야엘은 괜찮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엘리샤는 그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자꾸 삐딱선 탈 거야?”
“예에?”
야엘은 갑작스러운 엘리샤의 태도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상황에서 너만 괜찮다고 하면 다냐? 그럼 나만 나쁜 년이 되는 거잖아.”
“허억, 죄송해요.”
그제야 야엘은 엘리샤가 왜 화를 내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엘리샤는 바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호호호! 농담이야. 그렇지만 약간의 교육을 할 필요는 있겠어.”
야엘은 엘리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농담이라고 했지만, 전혀 농담한 것 같지 않았다.
“무슨 교육요?”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따로 가르쳐 줄게.”
웃으며 말하는 엘리샤를 보고 야엘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렌은 엘리샤가 또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됐다.
하지만 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을 테니… 굳이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럴 땐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좋다.
괜히 잘못 참견했다가 둘 사이만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친 실드를 살펴봤다.
크기와 모양, 농도와 속성을 바꿔보며 최적의 실드를 생성해 냈다.
그사이 레닌은 빠르게 북해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찾았다.”
“어! 저게 뭐야?”
“혹시 저거 폭풍 아닌가요?”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기의 토네이도!
마치 거대한 검보라색 태풍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뭔가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끈적끈적한 악의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목을 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인 태풍의 모습과도 전혀 달랐다.
형태도 상당히 기형적이고 그 위력도 무척 치명적이었다.
“다가갈수록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한기의 토네이도라더니 정말 세상을 다 얼려버릴 것 같아.”
“저기 보세요. 북해의 바다가 얼어붙고 있어요.”
셋은 거의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야엘의 말대로, 바다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가면 조만간 토러스 대륙까지 위력이 뻗칠 것이다.
그럼 얀 영지 북쪽 앞바다까지 몽땅 어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다가 꽁꽁 얼어붙으면 언제나 그랬듯이, 북해의 몬스터가 대거 쏟아져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몬스터 웨이브, 아니 울트라 웨이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엘리샤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도대체 북해 너머에 뭐가 있길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거지?”
“그건 아무도 몰라. 나도 몇 번 레닌과 함께 날아가서 조사를 해봤지만 성공하진 못했어.”
“왜?”
“하늘에 이상한 장막이 펼쳐져 있어. 실드나 방어막 같기도 하고, 무슨 결계를 쳐놓은 것 같기도 했어.”
“흐음.”
엘리샤의 말을 듣자 그렌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당장 북해 너머를 탐사할 수는 없었다.
한다고 해도 나중에 울트라 웨이브가 끝나면 그때서나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후우우우웅!
가면 갈수록 기온이 무섭게 떨어졌다.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이 레닌의 몸을 미친 듯이 후려쳤다.
더 큰 문제는 레닌의 날개가 서서히 얼어붙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샤! 레닌의 날개 좀 봐!”
“안 되겠다. 레닌! 그만 돌아가자.”
키에에에에엑!
레닌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한기의 토네이도를 향해 날카로운 포효를 터트렸다.
그러곤 이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방향을 틀었다.
이제 더는 살펴볼 게 없었다.
그래서 돌아갈 때는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만약 그렌의 실드가 없었다면 아마 다들 큰 고생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실드로 인해, 안전하고 쾌적한 상태에서 주변을 마음껏 살피고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 마법은 좋은 것이야. 나도 마법이나 배워볼까?”
“배우면 쓸 수는 있고?”
“아니. 난 마법 못 써! 나하고 맞지도 않고……. 그래도 실드 마법은 꼭 배우고 싶다.”
어지간히 실드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엘리샤는 레닌의 몸에서 내려올 때까지 눈앞에 쳐진 실드를 안타까운 눈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해모수: 아무래도 마법 아이템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네요.] [마루: 실드 마법이 인챈트된 아티팩트를 큰형수님께 선물해 주세요.] [그렌: 히유! 그래야 할 것 같다.]그렌은 엘리샤가 보내는 무언의 요구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
펄럭, 펄럭, 펄럭, 쿵!
가벼운 진동과 함께 레닌이 땅에 내려앉았다.
그렌은 수고했다며 레닌의 목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러곤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야엘이 그의 뒤를 쫓아 빠르게 종종걸음을 걸었다.
엘리샤만 뒤에 남아 레닌과 뭐라고 속삭이며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렌 영주!”
“그렌 영주!”
영주의 집무실 앞!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궁정 마법사 에펠과 프릴 마탑의 대마법사 타워였다.
“두 분 아직도 안 돌아가셨습니까?”
“어떻게 그냥 가나?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아아!”
겨우 인사 때문에 이렇게 자신을 기다렸다는 게 참 고맙게 느껴졌다.
각 영지의 특사로 온 귀족들은 어느새 다 떠나버린 상태였다.
아침에 수도 에티오로 이어진 텔레포트 게이트를 열고 한꺼번에 돌아간 모양이다.
그렌은 집무실 바로 옆에 있는 회의실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
“나도 좋네.”
그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보성녹차 티백 몇 개를 꺼내 찻주전자에 담갔다.
마루가 선물해 준 예쁜 찻잔을 꺼내 테이블에 세팅하고 우려낸 녹차를 찻잔에 각각 부었다.
향긋한 녹차 내음이 회의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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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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