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포스탄 대전사!”
“예, 영주님.”
그렌은 바이칼족 전사들을 이끄는 일곱 명의 대전사 중 수장, 제1 대전사 포스탄을 불렀다.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나와 그의 앞에 섰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갑옷처럼 전신을 뒤덮은 사내!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살벌한 살기가 안개처럼 전신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대를 얀 영주성 방어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충!”
포스탄 대전사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즉시 몸을 바로 세우며 크게 대답했다.
“모든 바이칼족 전사와 얀 영주성의 병사는 포스탄 대전사의 지휘 아래 울트라 웨이브를 방어하라!”
“충!”
이번에는 바이칼족 전사와 얀 영주성의 모든 병사가 일제히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렌은 만족한 미소를 짓고 포스탄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이 파격적인 결정에 에펠 궁정 마법사와 타워 대마법사가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그렌 영주! 괜찮겠소?”
“지휘권을 바이칼족 대전사에게 넘긴 것은 좀 성급한 행동 같은데.”
하지만 그렌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두 분이 어떤 염려를 하고 계시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몬스터 웨이브를 방어하는 것만큼은 바이칼족이 전문가입니다.”
“그래도 그렌 영주가 지휘하는 것과 바이칼 대전사가 지휘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네.”
에펠 궁정 마법사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마법사들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카시오페라 왕실 마법사들은 에펠의 말이 맞는다는 듯, 모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뜩 눈에 힘을 줬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타워 대마법사와 프릴 마탑의 마법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울트라 웨이브 방어의 핵심은 바이칼족의 전투력입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얀 영지의 병사로 전쟁의 지휘권을 휘두르는 것은 도둑놈 심보지요.”
“음.”
“흐음.”
“몬스터와의 전쟁은 바이칼족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마법사답게 뒤에서 보조나 잘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마법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렌은 일부러 ‘우리’라는 말로 자신도 마법사라는 것을 강조했다.
부정적인 분위기는 금세 희석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의 말이 맞았다.
얀 영주성 외성에 들어온 바이칼족은 40만이 넘었다.
그중 10만의 전사가 울트라 웨이브 방어에 동원됐다.
버틀 영지와 렌 영지까지 합하면 바이칼족은 무려 30만의 대군을 동원한 셈이다.
그것에 비하면 그렌이 동원한 병사의 수는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투력과 훈련의 숙련도까지 따지면 그 차이는 몇 배로 더 커질 것이다.
결정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해의 몬스터 웨이브를 방어한 것은 바이칼족이다.
그러니 전력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지휘권은 역시 바이칼족 대전사가 갖는 게 마땅했다.
“비록 지휘권은 잠시 넘겨줬지만, 전투의 공훈만큼은 아마 우리 마법사들이 훨씬 클 것입니다.”
“당연하지.”
“그거야 이를 말인가!”
둘 다 심정적으로 아직 불만이 좀 있었다.
하지만 그렌의 말도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마법사가 전공을 세워서 보여주자는 그의 말에 마지못해 승낙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전투준비!”
성벽 중앙에서 포스탄 대전사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성벽 너머를 바라보니 몬스터가 구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그렌은 반사적으로 워키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치이익!
“엘리샤! 나와라! 오버!”
―나왔다. 오버!
워키토키에서 엘리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오버!”
―첫 번째 웨이브는 화이트 오크다. 오버!
화이트 오크는 오크 중에서도 주로 추운 지방에 많이 사는 놈들이다.
일반 오크와는 달리, 몸에 하얀 털이 있어서 화이트 오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뒤는 어떤가? 오버!”
―콜드 스파이더, 예티, 라이칸슬로프, 아울베어(Owlbear), 미노타우로스, 라미아 순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이어지고 있다. 오버!
에펠과 타워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렌의 워키토키를 쳐다보다가 엘리샤의 목소리를 듣자 입을 딱 벌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화이트 오크만 해도 수만, 아니 족히 수십만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 뒤로 이종의 몬스터 웨이브가 줄지어 계속 밀려든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비행 몬스터는 없는가? 오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오버!
“다른 특이 사항은 없는가? 오버!”
―얀 영주성을 우회해 그레이 울프 떼가 지나갔다. 오버!
“알겠다. 계속 정찰 부탁한다. 오버!”
그렌은 서둘러 워키토키를 끊었다.
길게 얘기를 하면 엘리샤가 또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레이 울프 떼라…….”
그는 그레이 울프 떼가 우회했다는 말이 마음에 좀 걸렸다.
하지만 버틀 영주성이나 렌 영주성의 위치와 성벽 높이를 고려하면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 화이트 오크 웨이브가 문제였다.
물론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벼락포 초탄 발사!”
“벼락포 초탄 발사!”
포스탄 대전사의 목소리가 성벽 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바이칼 전사들이 급히 복창하며 사방으로 명령을 전달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성벽 곳곳에서 벼락포가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펑, 퍼퍼펑, 퍼퍼퍼펑!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벼락포 200문에서 쏘아진 포탄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일제히 성벽을 넘어갔다.
해안가 절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화이트 오크 웨이브!
비처럼 음악처럼 쏟아진 강철의 비는 놈들의 중심을 강타했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해안가 앞바다가 폭음을 동반하며 일자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화이트 오크 웨이브는 강력한 폭발로 초반의 날카로운 기세가 날아가 버렸다.
“명중이오!”
“명중이오.”
여기저기서 명중이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얀 영주성이 커다한 함성으로 진동했다.
바이칼족 전사들과 영지병들은 이 놀라운 위력에 한목소리로 환호했다.
“오오! 엄청난 위력이군.”
“놀라운 파괴력이야.”
에펠 궁정 마법사와 타워 마법사조차 벼락포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뒤를 이은 포성에 그들의 감탄사는 단번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벼락포! 일제 방포!”
“벼락포! 일제 방포!”
펑, 퍼퍼펑, 퍼퍼퍼펑, 펑펑펑!
포스탄 대전사의 명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벼락포가 일제히 다시 한번 뜨거운 화염을 토해냈다.
미리 연습한 대로 초탄이 명중하고 탄착군이 형성되자, 포병은 더 이상 기다릴 게 없었다.
이어진 것은 무자비한 벼락포의 일제 방포였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벼락같이 떨어져 내리는 강철의 비!
뛰어난 벼락포의 화력은 화이트 오크의 웨이브를 단번에 지워버릴 듯했다.
아니 실제로 단 세 번의 일제 방포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던 해안가 앞바다가 녹아버렸다.
그로 인해 화이트 오크 떼는 더 이상 돌격을 하지 못했다.
그저 엉거주춤 서서 동족이 갈기갈기 찢겨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정말 가공할 만한 위력이로군.”
“벼락포라는 게 이렇게 강력한 화력을 지닌 것인 줄 미처 몰랐어.”
궁정 마법사 에펠과 대마법사 타워는 벼락포의 위력을 단숨에 꿰뚫어 봤다.
그들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성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해모수: 아이고. 두 분 마법사께서 완전히 기겁하시네.] [마루: 놀랄 만도 하지. 벼락포의 위력이 3서클 마법인 파이어볼을 능가하잖아.] [그렌: 이들은 벼락포의 위력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마법사가 아닌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거야.]그렇다.
에펠과 타워는 벼락포를 단순히 전쟁의 무기로만 보지 않았다.
토러스 대륙에서 수백 년간 공고하게 지켜진 마법사의 지위!
바로 그걸 무너뜨릴 수도 있는… 아주 혁명적이고 위협적인 무기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마루: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죠. 당장 전장을 살펴보세요.] [해모수: 뭘 보라는 거지?] [마루: 벼락포의 포탄에 맞아 죽는 것보다 차가운 북해의 바다에 빠져 죽는 화이트 오크가 더 많지 않아요?] [그렌: 아! 그렇구나.]그렌은 마루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벼락포가 쏜 포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렇지만 화이트 오크의 피해는 폭사보다는 익사가 훨씬 더 많았다.
그는 이 사실을 바로 포스탄 대전사에게 전령을 보내 알렸다.
포스탄 대전사는 그렌의 조언을 절대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때부터 벼락포의 목표는 화이트 오크보단 얼어붙은 북해의 바다를 깨부수는 것에 집중됐다.
벼락포의 이런 선전에 수십만에 달하는 화이트 오크 웨이브는 성벽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만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와아아아!
성벽 일대는 바이칼족 전사들이 지르는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전의는 물 끓듯 들끓어 올랐다.
물론 그렇다고 화이트 오크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화이트 오크들은 이를 갈며 해안가 절벽으로 몰려들었다.
녹아버린 북해의 바다도 한기의 영향인지 빠르게 다시 얼어붙었다.
그로 인해 화이트 오크의 뒤를 이은 ‘콜드 스파이더 웨이브’는 손쉽게 벼락포의 탄착군을 넘어섰다.
“흠! 드디어 우리가 나설 때가 됐군.”
“맞습니다. 이제 우리 마법사들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궁정 마법사 에펠의 말에 카시오페라 왕실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벼락포의 엄청난 위력에 놀란 마법사들이 경쟁심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겉으로는 같은 마법사로서 당연하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의욕을 드러냈다.
“여러분! 기대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면 족했다.
에펠조차 마법사들의 들뜬 분위기에 휩싸였다.
“카시오페라 왕실 마탑 마법사들은 콜드 스파이더 웨이브를 향해 마법 공격하라!”
“예, 마스터!”
카시오페라 왕실 마탑 마법사들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곧장 각자 광역 마법의 캐스팅에 들어갔다.
해안가 절벽 위 성벽에서 강한 마나의 유동이 일기 시작했다.
스무 명의 마법사가 한꺼번에 캐스팅하는 탓에 일대에 마나가 크게 요동쳤다.
“활을 쏴라!”
“바위를 던져라!”
그사이 화이트 오크와 콜드 스파이더가 성벽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바이칼 전사들은 활을 쏘거나 바위를 던졌다.
성벽이 세워진 곳은 높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성벽 바로 앞까지 올라온 몬스터가 화살에 맞거나 바위를 맞자 바로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떨어질 때 혼자 떨어지는 놈은 별로 없었다.
당연히 아래에서 올라오는 동족들까지 모조리 한꺼번에 끌고 떨어져 내렸다.
이 강력한 민폐(?)로 일타쌍피는 기본! 최고 일타십피까지 손쉽게 기록을 달성했다.
그에 더해, 이젠 캐스팅이 끝난 마법사들의 광역 마법까지 쏟아졌다.
“파이어볼!”
“라이트닝 필드!”
“쇼크 웨이브!”
“토네이도!”
“거스트 오브 윈드!”
“플레임 버스터!”
“어스퀘이크!”
“파이어 블래스트!”
“사이클론!”
3서클 이상의 각종 광역 마법이 해안가 일대를 폭격했다.
쾅, 화르륵!
펑, 퍼퍼펑, 펑펑!
휘이잉! 가가각! 카카카칵!
쩡, 쩌엉, 우지직, 첨벙!
화르륵, 화르르륵!
화염이 터지고 바람의 칼날이 쏟아지자 화이트 오크와 콜드 스파이더들은 순식간에 묵사발이 났다.
여기에 더해 지속해서 쏟아지는 벼락포의 포탄은 피해에 피해를 가중시켰다.
크와아!
끼끼끼끽!
그런데도 밀려드는 몬스터 웨이브는 끊임이 없었다.
몬스터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빈자리를 금세 채워버렸다.
게다가 성벽에 막힌 몬스터들은 슬슬 좌우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얀 영주성 전체를 포위한 형국으로 변해갔다.
그로 인해 바이칼족 전사들도 점차 성벽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전장은 얀 영주성 북쪽 절벽 해안가 성벽뿐 아니라 전 성벽으로 확대되어 전투가 벌어졌다.
그래도 역시 가장 많은 몬스터가 몰리는 곳은 북쪽 절벽 해안가 성벽이었다.
여기가 뚫린다면 울트라 웨이브 방어는 그냥 끝이라고 보면 된다.
[해모수: 이거 장기전이 되겠는데요. 바이칼 전사들의 체력도 신경 써야겠어요.] [마루: 벼락포의 포탄과 화약도 문제예요.] [그렌: 난 마법사들이 리타이어될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인데.]해모수와 마루 그리고 그렌의 걱정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울트라 웨이브의 성공적인 극복이었다.
“벼락포 포탄을 더 가져와라!”
“화약이 떨어졌다.”
“화살이 모자라다.”
“바위를 더 옮겨줘!”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우려하던 상황이 전개됐다.
마법사들이 하나둘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
“마나가 다 떨어졌어.”
“좀 쉬어야겠다.”
에펠은 광역 마법 몇 번에 벌써 리타이어된 제자들을 보며 인상을 팍 썼다.
그렇다고 마나가 다 떨어진 마법사들을 더 조일 방법도 없었다.
이때 타워 마법사가 눈치껏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