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그렌은 꿈을 꿨다.
불의 여왕 엘리샤와 야엘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두 미녀의 모습!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들(?)을 용감히 덮쳤다.
그러곤 끝없이 사랑을 나눴다.
그러다가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
그렌은 자신도 모르게 바보처럼 입을 떡 벌렸다.
양옆에 엘리샤와 야엘이 벌거벗은 채 누워있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두 아내의 아름다운 나신을 훔쳐봤다.
분명히 꿈을 꾼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 아까 꾼 꿈이 진짜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지금도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쩐지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그렌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분명히 잘 때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이렇게 홀딱 벗고 있었다.
이 의문을 풀려면 역시 마루와 해모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곤란한 상황에 관해 묻고 싶지 않았다.
조금 창피하기도 했고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별일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그렌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지하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모르게 상태 창의 비밀을 풀려는 생각이었다.
[해모수: 어디 가세요?]
[마루: 형, 야밤에 뭐 하는 거예요?]
[그렌: 지하 연무장에 가서 피라미드 입체 버튼을 한번 눌러보려고.]
[해모수: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해모수는 그렌의 생각에 찬동했다.
[마루: 그런데 괜찮을까요? 뭔지도 모르는데.]
[해모수: 뭔지 모르니까 눌러봐야지요.]
[그렌: 눌러보지 않으면 뭔지 알 수 없잖아?]
[마루: 그것도 그렇지만.]
마루는 왠지 불안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됐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계약서에는 원래 서명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모르는 버튼을 무턱대고 누르는 것은 반대였다.
하지만 해모수와 그렌이 좋다고 하니 마냥 반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뚜벅, 뚜벅, 뚜벅!
계단을 내려가는 그렌은 기분이 좋았다.
온몸에 힘이 넘치고 전신이 아주 상쾌했다.
한숨 푹 자고 나니 150개나 올린 스탯에 몸이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창문을 보니 아직 어두컴컴했다.
새벽은 오지 않았지만 이대로 해가 뜨면 다시 몬스터들과 지겹도록 드잡이질을 벌여야 한다.
그 전까지 일을 보고 돌아가면 될 것이다.
지하 연무장에 들어오자 마루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마루: 형! 혹시 모르니까 형수님들에게 메시지를 남겨놔요.]
[해모수: 아! 그렇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마루의 제안에 해모수가 동의했다.
그렌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지하 연무장 책상 위에다 잠시 수련을 하고 오겠다고 메모를 써놓았다.
[그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해모수: 네.]
[마루: 예.]
이제는 마루도 반대하지 않았다.
결정하기 전이라면 또 모를까,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지금은 망설이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할 때다.
‘뭔지 모르지만 좋은 거 나와라!’
그렌은 그렇게 속으로 희망을 품고 상태 창 싱크로율 바로 옆에 반짝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입체 버튼을 꾹 눌렀다.
화악!
순간 그의 눈앞이 하얗게 빛났다.
“어!”
그는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그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딘가로 강제 텔레포트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리니티 바이오 합체!]
[트리니티 바이오 합체를 실행하셨습니다.]
[각 개체의 싱크로율이 모두 8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성공률은 80퍼센트입니다.]
눈앞에 선명한 글자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 너머로 낯익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루야! 해모수!”
그렌은 점차 선명하게 느껴지는 존재들을 향해 외쳤다.
“그렌 형! 해모수!”
마루는 손을 들고 그렌과 해모수를 각각 가리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모수가 자신의 몸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렌 형과 마루 형이 눈에 보여요.”
셋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고 기뻐했다.
“어! 만져진다.”
“느껴져요.”
“우리 셋 모두 실체가 생겼어.”
그들은 서로의 얼굴과 몸을 만지고 쓰다듬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영혼의 상태로 상대방의 몸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는 서로 말도 할 수 있고 실체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놀라움은 곧 경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트리니티 바이오 합체 실패!]
[각각의 실체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글자를 읽자마자 셋은 급히 서로의 몸을 쳐다봤다.
놀랍게도 발끝부터 분자 단위로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어떡하지? 우리 모두 죽는 거 아니까요?”
“큰일이네. 무슨 방법이 없나?”
그들은 당황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팽팽 굴렸다.
하지만 당장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마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쳐다봤다.
“여긴 피라미드 안이잖아.”
“어! 맞다. 예전에 왔던 그곳이야.”
“저기 피라미드가 있어요.”
해모수의 말에 그렌과 마루는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확실히 이곳은 예전에 한번 왔던 곳이다.
그들은 일제히 허공에 떠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홀로그램 앞으로 다가갔다.
“전에 여기서 서로 손을 맞잡은 거 기억나죠?”
“당연하지.”
“우리 서로 손을 맞잡아 봐요.”
어느새 무릎까지 그들의 실체가 붕괴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셋은 바로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다행히도 기다렸던 글자가 떠올랐다.
[실체가 붕괴하면 영혼도 소멸합니다.]
[트리니티 영혼 합체를 실행할 것을 추천합니다.]
[성공하면 영혼의 소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영혼 둘을 희생하면 영혼 하나와 그 실체가 100퍼센트 확률로 보존됩니다.]
[트리니티 영혼 합체를 실행하시겠습니까?]
셋은 거의 동시에 꿀꺽 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들은 몇 번이나 허공에 뜬 글자를 읽어보며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둘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거로군.”
“영혼 둘을 희생해서 한 명을 살리는 게 트리니티 영혼 합체의 본질이네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슨 이런 개뼈다귀 같은 시스템이 다 있는가!
그들은 화가 났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분자 단위로 분해되는 자신의 몸을 보자 그럴 겨를도 없었다.
잠시 그들은 말을 잃었다.
그렌은 엘리샤와 야엘이 생각났다.
자신의 아내가 된 여인들.
만약 그가 죽는다면 누가 이들을 돌봐줄지 걱정이었다.
마루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이대근과 어머니 김영희!
형 태인과 동생 재용 그리고 막내 윤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사랑하는 민정과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 준 진아의 모습도 떠올랐다.
만약 그가 사라진다면 그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해모수는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해태영과 어머니 박수영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큰형 해대호, 둘째 형 해상호, 셋째 형 해광호!
시집간 큰누나 해지인과 조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내 해소영이 좋은 집에 시집가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슬펐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왕지현과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트리니티 영혼 합체를 실행하시겠습니까?]
다시 한번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누군가 보고 있다가 자꾸 보채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두 다리가 사라진 서로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하자!”
“합시다.”
“방법이 없어요.”
셋은 빠르게 동의하고 ‘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글자가 사라지며 허공에 자신만 볼 수 있는 삼태극 무늬의 버튼이 떠올랐다.
[셋 중 하나의 버튼을 반드시 누르셔야 합니다.]
[모두 버튼을 누르면 결과에 맞춰 트리니티 영혼 합체를 진행합니다.]
그렌은 허공에 떠오른 버튼을 보며 절망했다.
거기엔 자신의 얼굴을 포함해 마루와 해모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누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두 동생 중 한 명을 선택해서 누를 수도 있었다.
“어떡하지?”
그렌은 반사적으로 마루와 해모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루와 해모수는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살고 싶다.’
‘꼭 살아서 엘리샤와 야엘과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나만 살자고 두 아우를 죽일 수는 없어.’
‘그렇다고 나를 희생할 수도 없잖아.’
‘도대체 누구를 살려야 하는 거지? 나? 마루? 해모수?’
그렌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세 개의 버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도무지 뭘 선택하면 좋을지 몰랐다.
어느새 가슴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러다가 팔까지 사라지면 이대로 끝이다.
그렌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이를 악물고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마루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시발!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도대체 너 누구야?”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이따위 잔인한 짓을 강요하는 상대를 원망했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해도, 화를 내보아도 변하는 게 없었다.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한쪽 팔!
마루는 그걸 보자 소름이 돋았다.
‘제길!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나를 살려야 하나?’
‘그럼 그렌 형과 해모수가 죽을 텐데.’
‘나라도 살아야 할까? 아니면 나를 희생하고 둘 중 한 명이라도 살려볼까?’
고민을 해봐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루는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버튼 세 개 중 하나를 꾹 눌렀다.
‘천지신명이시여! 왜 나를 시험하십니까?’
해모수는 당장 하늘을 향해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무릎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도저히 누굴 선택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살자고 형제와도 같은 이들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형제들을 살릴 수도 없었다.
설사 형제 중의 하나를 살린다고 해도, 반드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어떡하지?’
‘꼭 살아서 지현과 알콩달콩 살고 싶었는데.’
‘만약 살아난다고 해도 문제네. 내가 과연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나를 희생해도 둘 모두를 살릴 수는 없어.’
‘누구를 골라야 하지? 나? 그렌 형님? 아니면 마루 형?’
해모수는 머리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없었다.
한쪽 팔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나머지 한쪽 팔도 분자 단위로 빠르게 분해되고 있었다.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면 아마 모두 죽고 말 것이다.
‘에잇! 어차피 한번 죽었던 목숨이다. 뭐가 아쉽냐?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자. 설사 후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해모수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다 다 사라져 가는 팔꿈치로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화악!
피라미드 안이 일순 새하얗게 달아올랐다.
엄청난 빛이 터지며 거의 사라져 가던 셋의 실체를 감싸듯 안았다.
그들의 실체가 중앙으로 옮겨지더니 빠르게 하나로 뭉쳤다.
[트리니티 영혼 합체를 실행합니다.]
[대상 둘이 하나의 영혼을 선택했습니다.]
[트리니티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성공률이 100퍼센트가 됐습니다.]
[트리니티 영혼 합체가 성공했습니다.]
서서히 빛이 사라져 가며 계속해서 글자가 중앙으로 떠올랐다.
[합체에 성공한 실체가 온전히 보존되었습니다.]
[권능과 능력, 잠재력과 스탯 등이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새로운 개체가 완벽히 탄생했습니다.]
파치잉!
강력한 파장과 함께 피라미드 안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동시에 피라미드의 정중앙에 흐릿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웅!
피라미드 안이 진동하며 형체가 점점 뚜렷해졌다.
흐릿한 몸통은 머리와 사지로 나뉘어 분명해졌다.
오관이 뚜렷해지고 전신이 선명한 근육으로 뒤덮였다.
머리 위로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트리니티 바이오 전사가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개체에 이름이 부여됩니다.]
[잔류 사념을 수집해 적합한 이름을 선택합니다.]
[트리니티 바이오 전사의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때 피라미드 중앙에 서있던 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으아아아!”
그는 눈을 뜨자마자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처연한, 한이 서린 비명!
피라미드의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진동했다.
그사이 허공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새롭게 탄생한 트리니티 바이오 전사의 이름이자 코드네임이었다.
[트로이(Troy).]
번쩍!
글자가 떠오르자마자 피라미드 안에 다시 환하게 빛이 터졌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새하얀 빛이었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그 빛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피라미드 안에 존재했던 자의 모습도 꺼지듯 사라졌다.
허공에 둥둥 떠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홀로그램!
그 위에 한 사람의 이름이자 코드네임이 자신의 존재감을 묵묵히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