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마루와 계약을 마친 차광수가 안양으로 돌아갔다.
이대근은 또다시 밖으로 돌았다.
부동산 중개소에 들러 대망 슈퍼 옆집과 건너편 집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봤다.
소명 교회에 들러 빈 창고를 대여할 수 있는가도 물어봤다.
소명 교회의 빈 창고를 빌리는 것은 당회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옆집을 빌리는 일은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주인과 면식이 있어 보증금 없이 한 달에 100만 원씩 내고 2층 전체를 빌리기로 했다.
단 1층 안방은 사용할 수 없고, 그들이 미국에서 돌아오면 바로 집을 비워주는 조건을 걸었다.
건너편 집도 옆집과 똑같이 한 달에 100만 원씩 내고 사용할 수 있게 계약을 맺었다.
역시 조건을 걸었는데, 집이 팔릴 때까지만 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이라도 집이 팔린다면 바로 짐을 빼야 하는 것이다.
옆집이나 건너편 집이나 보증금 없이 집을 빌리게 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다.
비록 한 달에 100만 원이나 되는 월세를 각각 내야 하지만…….
어차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두 집은 마루네 가족의 집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오후가 되자 슈퍼를 김영희 여사에게 넘겼다.
이대근과 마루는 안양과 성남 일대를 돌며 대부업체를 찾아다녔다.
그들은 겁도 없이 마구잡이로 대출을 일으켰다.
은행에 대출금이 좀 남아있지만 버젓이 슈퍼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사실로 인해 대부업체는 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까지 아낌없이 돈을 빌려줬다.
물론 고리대금이나 다름없는 상당한 고리(高利)의 이자를 척척 붙여서 말이다.
하지만 이대근과 마루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돈을 빌렸다.
나중에는 사채업자를 찾아갔다.
사채업자들은 대부업체보다 손이 더 컸다.
삼천만 원에서 최대 오천만 원까지…….
아예 원하는 만큼 돈을 빌려주겠다는 자도 있었다.
당연히 눈이 홱홱 돌아갈 정도로 엄청난 불법 사채 이자율이었다.
당장 속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마루는 이대근이 대부업체와 사채업자들에게 대출을 받는 사이, 개인 자격으로 200~300만 원의 소액 대출을 일으켜 조금씩 자금을 보탰다.
집에 돌아와 계산을 해보니 이대근이 대부업체에서 1억 2천만 원, 사채업자로부터 1억 8천만 원을 빌렸다.
합계 3억 원이나 되는 자금이 확보됐다.
마루가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빌린 대출금 3천만 원을 합치면, 총 3억 3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아버지, 이거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을지 미처 몰랐다.”
“하하하,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허허허, 이거 정말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해결을 할지 걱정이다.”
“절대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제가 다 책임질게요.”
“네가 무슨 수로 책임을 지냐!”
이대근은 대책도 없이 호언장담을 하는 마루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다가 자신이 둘째 아들의 말에 홀라당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신은 마루와 대형 사고를 치고 있었다.
그래도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벌써 이렇게 장성한 게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은 은행도 한번 가봐야겠다. 집을 담보로 최대한 대출을 해야겠어.”
“저는 내일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과 만나서 서바이벌 키트와 좀비 퇴치 키트의 구매 및 판매를 의논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식품 회사에는 전화 안 하세요?”
“지금부터 자리 잡고 전화할 생각이다. 주말이 돼놔서 다들 자리에 있을까 모르겠네.”
“가급적이면 한계치까지 최대한 많은 양을 주문해서 단가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종말 대세일’을 성공시킬 수 있어요.”
“알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마루는 이대근의 자신에 찬 말에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옥탑방으로 올라와 노트북 컴퓨터를 켰다.
그래픽디자인 프로그램을 띄우고 한쪽 옆에 연필과 종이도 가져다 놓았다.
[그렌: 이제야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을 그릴 생각을 했네.] [마루: 정신없이 바빴잖아요. 뻔히 봐놓고 그런 소리를 하시네요.] [해모수: 크크, 그렌 아저씨는 지금 괜히 삐진 척하는 거야.] [그렌: 나 안 삐졌다.] [마루: 하하하,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할게요.] [그렌: 크흠, 그럼 어디 한번 그려볼까!]그렌은 마루의 사과에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몸의 통제권을 받은 그는 즉시 연필을 집어 종이에다 그림을 그렸다.
아니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이 새겨진 복합 마법진을 정성껏 그려 넣었다.
[해모수: 마법진이라는 게 참 복잡하네요.] [그렌: 이것도 지금 최대한 단순화시킨 거야. 원래대로 하면 시간이 배는 더 들어.]마루는 그렌에게 몸의 통제권을 돌려받고 종이를 스캔했다.
[마루: 이렇게 하면 되나요?]그렌은 모니터를 보며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렌: 뭐야? 벌써 다 된 거야?] [마루: 그래픽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이런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좀 더 작게 그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그렌: 더 작게도 가능한 거야?] [마루: 물론이죠.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 [해모수: 우와! 마루 형 대단하다. 수박만 한 마법진이 금세 참외만큼 작게 변했네!]그렌과 해모수는 연신 감탄했다.
겨우 마우스 몇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마법진이 바로 크고 작아지는 게 놀랍기만 했다.
문제는 타투 살롱의 타투 기술자가 얼마나 작게 문신을 새기느냐다.
기술이 정교하다면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 이하로 줄이고 싶은 것이 마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절대 배에다 농구공만 한 크기의 문신은 새기고 싶지 않았다.
[그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정교하게 잘 그렸군. 이대로 그릴 수만 있다면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마루: 그럼 몇 가지 크기로 프린트를 해서 가져가 보도록 하죠. 만약 타투 기술자가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면 제일 작은 것으로 그려달라고 할게요.] [해모수: 부럽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저 정도로 작게 못 그릴 것 같은데…….] [마루: 미리 겁먹을 것 없어. 네가 사는 곳도 잘 찾아보면 쓸 만한 문신 기술자가 있을 거야.]마루는 말로 간단히 해모수를 위로했다.
마법진을 크기별로 나눠서 프린터로 인쇄를 했다.
그는 인쇄된 종이를 가방에 담고 방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과천 시내로 나온 마루는 미리 봐둔 타투 살롱을 찾아갔다.
“어서 오세요.”
“타투 하려고 왔는데요.”
“네, 잘 오셨어요. 혹시 처음이신가요?”
“예, 처음입니다. 아프지 않게 살살 해주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놓은 모양이나 형상은 있으세요?”
“여기 미리 준비해서 그림을 가져왔어요.”
타투 기술자는 근육질에다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다.
마루는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여러 장 꺼내어 보여줬다.
“복부에다 할 생각인데 가능할까요?”
“같은 그림을 몇 개나 넣으시려고요?”
“그게 아니라 이 중에 한 개만 할 거예요. 크기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는지 몰라서 여러 사이즈로 준비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으음, 어디 보자. 동전 크기는 너무 작고 여기 직경 5센티미터 정도가 좋겠네요.”
“똑같이 그려주실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이 정도면 아주 예쁘게 잘 나올 겁니다.”
“그럼 믿고 부탁드릴게요. 가격은 얼마죠?”
“크기는 작지만 무척 정교한 모양이니까 15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
“20만 원 드릴게요. 대신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완전히 똑같이 그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오늘 제가 실력 발휘 한번 해보겠습니다.”
타투어 또는 타투이스트라고도 불리는 타투 기술자다.
마루가 5만 원이나 더 준다는 말에 그는 의욕을 불태웠다.
마루는 상체를 탈의하고 명치 아래에 문신을 넣을 위치를 잡아줬다.
타투 기술자는 흠칫 놀랐다.
말 근육처럼 쫙쫙 갈라진 근육을 보자 마루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루는 그에게 싱긋 미소를 짓고 안락의자에 편안히 누웠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타투 기술자는 보기와는 달리 정교한 솜씨를 선보였다.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이 복합적으로 그려진 마법진을 섬세하게 복부에 새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끔거리는 통증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몸이 점점 고통에 익숙해져 갔다.
나중에는 그냥 딴생각을 하면서 무시할 수준이 됐다.
장장 두 시간이 걸린 끝에, 드디어 지루한 작업이 모두 끝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타투 기술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마루는 양해를 구하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렌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루의 몸의 통제권을 넘겨받아 탈의실의 전면 거울을 통해 직접 마법진이 잘 그려졌는지 확인했다.
[마루: 어때요? 제대로 잘 그려졌어요?] [그렌: 음, 생각보다 기술이 뛰어난 자군.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잘 그려졌어.] [마루: 다행이네요.] [해모수: 잘됐어요.]마루와 해모수가 모두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렌은 잠시 눈을 감고 빠르게 수인을 펼쳤다.
마루의 몸에 인챈트된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의 활성화를 시작한 것이다.
긴 주문 끝에 시동어를 말하자 마루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노란빛이 솟구쳤다.
빛은 3초쯤 문신에 머물러 있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렌: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을 인챈트하는 데 성공했다.] [마루: 아! 그럼 이제 실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건가요?] [그렌: 아니, 아직은 아니야. 문신으로 새겨 넣은 마나 집적진에 마나가 충분히 모여야 실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마루: 실드 마법을 쓸 수 있는 정도의 마나가 언제쯤 다 모이는데요?] [그렌: 그건 나도 몰라. 늦으면 2주가 걸릴 수도 있고 빠르면 사흘 만에 채워질지도 몰라. 최대한 빨리 마나가 담긴 보석이나 옥을 찾아야 해. 그걸로 실드 마법진을 보조해 줘야 그나마 간신히 하루에 한두 번이라도 사용이 가능할 거야.] [마루: 어휴! 산 넘어 산이네요. 그걸 어디 가서 구하죠?]마루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해모수가 즉각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해모수: 나중에 좀비가 창궐하면 오히려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루: 정말 생각해 보니 그러네. 지금이야 돈이 없어서 못 구한다지만 좀비가 창궐하면 아무도 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때 보석상을 털어서 쓸 만한 보석들을 왕창 챙겨야지.] [그렌: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사이 또 뭔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당장 보석상에 가서 마나를 머금고 있는 보석과 옥을 찾아!] [마루: 으음, 알겠어요.] [해모수: 흐음, 난 보석이나 옥을 어떻게 구하지? 왜구를 털어야 하나? 고민되네.]마루는 탈의실 밖으로 나와 타투 기술자에게 최종 검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주의하라며 깨끗하게 소독을 하고 멸균 거즈를 붙여줬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나와 오만 원권 넉 장을 줬다.
근육 덩어리 타투 기술자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악수를 하고 나왔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저녁이 되었다.
마루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꺄악!”
버스 정류장 뒤쪽 골목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어둑해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를 향했다.
그중에는 마루의 시선도 끼어있었다.
“뭘 봐! 이 쥐똥만 한 새끼들아!”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거친 인상의 중년 사내.
살벌한 인상을 쓰며 사람들을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팔뚝 전체에 문신이 가득한 걸 보니 조폭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흉악한 기운을 마음껏 드러내는 조폭의 기세에 놀라고 눌렸다.
그의 손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머리가 잡혀있는 것을 보고도 다들 반대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해 버렸다.
역시 이번에도 서민인 마루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살려주세요!”
머리끄덩이를 조폭에게 잡힌 여자가 애절하게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는 이대로 남자에게 끌려가면 완전히 신세를 조지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머리 가죽이 뽑혀나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에이, 개 같은 세상!”
옆에서 누군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루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봤다.
머리를 곱게 땋은,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거칠게 끌고 가려는 조폭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여고생은 마루가 쳐다보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