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눈이 마주친 순간, 마루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예인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곧 마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고생의 입꼬리 한쪽이 살짝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건 누가 봐도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거기에다 마루는 분명히 들었다.
“병신!”
아주 작게 말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마루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대놓고 욕을 했다.
어려움에 처한 여자를 구해줄 용기도 없는 놈이… 예쁜 것은 알아서 밝힌다고 비난을 하는 상황.
마루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수치와 모멸감으로 인해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렌: 마루, 하얀 원피스 입은 여자를 도와주는 것은 위험해.] [해모수: 그렌 아저씨,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연약한 아녀자가 곤경에 처했으면 당연히 도와줘야죠.] [그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저자의 눈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어. 사람 여럿 잡아본 눈빛이란 말이야. 그리고 왜 마루가 저 여자를 도와줘야 하지? 이건 마루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치고 제명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는 걸 모르니?] [해모수: 그렌 아저씨, 세상을 너무 삭막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사람이라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지요.] [마루: …….]그렌과 해모수의 논쟁을 들으며 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하얀 원피스 입은 여자를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렌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좋은 생각으로 남을 도와주다 오히려 덤터기를 쓰는 더러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도와줘도 고마운 줄도 모른다.
게다가 피해자보단 가해자의 인권만 유난히 부각된 곳이다.
잘못하면 오히려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당하는 시궁창 같은 세상이기도 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나중에 조직폭력배들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마루는 지금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괴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여고생이 자신에게 보인 비웃음과 ‘병신!’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눈과 귀에 입체적으로 끝도 없이 재생됐다.
몇 초에 불과한 그 짧은 시간 동안, 불같이 일어나는 갈등으로 인해 마루는 머릿속으로 피 터지는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결국!
기어코 그는 최악일지도 모를 선택을 하고 말았다.
“에이 빌어먹을!”
마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을 비웃은 여고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네?”
아무리 아름다운 여고생이라고 해도… 수치와 모멸감을 준 상대를 향해 고운 말투가 나오진 않았다.
하얗고 뽀얀 살결을 가진 여고생은 마루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잔뜩 긴장한 채 커다란 눈을 그렁그렁하게 떴다.
“동영상 찍어!”
“네에?”
“지금부터 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확실히 찍어놓으라고! 나중에 경찰에 증거물로 제출하게.”
“아! 네.”
처음에 여고생은 마루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말에 마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깨달았다.
커다란 눈망울에 당장 호기심과 놀라움이 가득 차올랐다.
순식간에 변한 그녀의 태도를 보자 방금 전에 느꼈던 수치심과 모멸감이 조금은 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여고생의 불룩 튀어나온 왼쪽 가슴 위!
선명한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서진아! 예쁜 이름이군.’
마루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골목 안을 쳐다봤다.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골목 입구에 도착하자 그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여기 경찰 좀 불러주세요. 조폭이 젊은 여자를 납치해서 강간하려고 해요. 사람 살려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주세요. 조폭이 길 한복판에서 젊은 여자를 납치·강간하려고 합니다.”
서진아는 마루가 하는 짓을 보더니 그 황당함에 놀라 입을 딱 벌렸다.
그녀는 그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위해… 최소한 조폭을 향해 달려들거나 말릴 줄 알았다.
하지만 마루의 행동은 서진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파격 그 자체였다.
‘후와! 엄청 쪽팔리겠다. 그래도 용감하고 재밌네.’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무작정 조폭에게 달려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적일 듯싶었다.
서진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이내 마루처럼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요! 저기 조폭이 여자를 납치, 강간하려고 해요. 경찰 아저씨 빨리 좀 와주세요. 여러분! 모두 조폭의 얼굴을 찍어주세요. 저놈 아주 나쁜 범죄자예요.”
귀청을 쑤셔대는 커다란 비명 소리!
마루는 갑자기 터져 나온 고함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여고생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마루와 서진아의 눈빛이 자연스럽게 허공에서 부딪쳤다.
둘은 서로에게 인사를 하듯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합창을 하듯 서로의 목소리를 합쳐 더욱 크게 소리쳤다.
“사람 살려요! 조폭이 젊은 여자를 납치하려고 해요. 사람 살려요!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세요. 경찰 아저씨! 이쪽이에요.”
사람은 참으로 약하고도 강한 존재다.
개개인은 약하지만 무리를 지으면 엄청 강해진다는 말이다.
다들 조폭이 무서워 당장은 고개를 돌리고 하얀 원피스의 여자를 외면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까지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불의에 맞서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짜증도 일었다.
마루와 서진아가 합창을 하듯 소리를 치며 조폭을 압박하자…….
버스 정류장을 중심으로 점차 사람들이 하나둘씩 두 사람의 행위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조폭이 여자를 납치한다.”
“경찰 아저씨 빨리 오세요!”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었다.
어느새 열 명을 넘기자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로 불어났다.
그들은 이제 한마음이 되었다.
모두 일제히 천지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 놀라운 모습에 하얀 원피스의 여자를 끌고 가던 조폭이 크게 당황했다.
조폭은 순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허나 수십 명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경악했다.
결국 그는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기회가 오자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손바닥만 한 백(bag) 하나만 간신히 손에 쥔 채 맨발로 골목을 달려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마스카라가 다 지워져 검은 물이 줄줄 눈 아래로 흘러내린 흔적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빨리 도망치세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는 마루와 사람들을 향해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급히 택시를 타고 쌩하니 현장을 빠져나갔다.
마치 태양 아래 드러난 새벽안개처럼…….
조폭을 압박하던 사람들의 함성도 그에 맞춰 빠르게 잦아들었다.
골목 안에서 조폭이 큰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놀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루도 ‘앗 뜨거워라!’ 하는 심정으로 얼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 몸을 숨겼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조폭의 모습은 순식간에 인파에 가려져 어디론가 사라졌다.
툭!
마루는 갑자기 뭔가 자신의 옆구리를 푹 찌르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다행히 자신이 생각했던 조폭은 아니었다.
“오빠!”
“아이고 놀라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진아의 얼굴을 쏘아봤다.
“오빠, 어디 가세요?”
“내가 왜 네 오빠냐?”
마루는 서진아를 향해 톡 한번 쏘아주고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금세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그럼 아저씨라고 불러드릴까요?”
“됐으니까 그만 집에 가라.”
“가긴 어딜 가요? 증거를 확인해야지.”
“증거는 무슨 증거? 이미 상황 종료된 거 몰라. 더 늦기 전에 빨리 집에 가!”
그는 서진아에게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워도 고삐리와 로맨스를 기대할 정도로 굶주리진 않았다.
하지만 서진아는 마루의 옆에 찹쌀떡처럼 달라붙었다.
그러곤 전혀 어디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진아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마치 신기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표정이었다.
“풋! 너 나한테 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괜히 헛고생하지 말고 그냥 가라.”
“오, 오빠!”
마루는 서진아를 떼어내기 위해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성큼성큼 나갔다.
마침 택시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 손을 들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묵직한 손길이 마루의 어깨를 꽉 잡았다.
“이 새끼, 너지?”
“헉!”
마루는 고개를 돌리다 기절할 듯 놀라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까 골목 안에서 본 조폭이 어느새 자신을 쫓아온 것이다.
“왜 이러세요?”
“이런 개새끼! 감히 내 일을 방해했겠다. 너 오늘 나한테 좀 맞자.”
휘익!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우락부락한 근육 덩어리의 조폭이 대뜸 마루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마루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체육관에서 죽어라고 연습하던 권투의 더킹을 이용해 고개를 푹 숙이며 조폭의 주먹을 피하곤, 사이드 스텝으로 한 발 옆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어쭈구리, 이 새끼가 피해!”
휘익!
조폭은 마루가 자신의 주먹을 피하자 크게 화가 났다.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주먹을 크게 휘둘러 왔다.
마루는 눈을 부릅뜨고 이번에는 위빙을 이용해 U 자를 그리며 조폭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어 원투 스트레이트로 조폭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벅!
조폭은 순간 몸을 휘청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인식할 사이도 없이 맞은 마루의 원투 스트레이트에 골이 띵하고 어질어질했던 것이다.
“이런 상놈의 새끼가!”
조폭은 마루의 돌주먹의 위력을 생각하기보다, 자기보다 덩치도 작은 어린놈한테 맞았다는 사실에 분기탱천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심으로 마루를 상대할 마음을 먹은 건지 그의 눈이 뱀의 눈처럼 차갑고 싸늘한 기운을 품었다.
조폭은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마루는 위빙과 더킹을 이용해 그의 손을 피했다.
조폭의 하체가 텅 비자 그는 상대의 무릎관절을 향해 빠르게 로우 킥을 날렸다.
빡!
“큭!”
조폭의 다리가 구부러지더니 몸이 휘청했다.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잔뜩 찌그러졌다.
그제야 마루는 잔뜩 긴장했던 심신(心身)이 서서히 안정됐다.
막상 조폭과 싸워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해모수: 뭐야 이 새끼! 완전 허당 아냐? 진짜 별거 아닌 놈이네.] [그렌: 그래도 조심해! 저놈이 지금 살기를 품었어.] [마루: 예, 알겠어요.]해모수와 그렌의 말에 마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는 냉철한 눈으로 조폭을 쳐다봤다.
정말 조폭의 눈에서 흉악한 살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그는 마치 마루가 손에 잡히기라도 하면 당장 갈아 마시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조폭은 다시 거칠게 마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루는 조폭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이런 상태에선 말보다 차라리 몸으로 해결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졌다.
조폭은 마루를 향해 나름 강하고 빠르게 주먹을 날리고 발 차기를 해댔다.
가끔은 온몸을 던져 마루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마루가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조폭의 움직임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느려터지게 변했다.
마루는 마음속으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면서도 결코 조폭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마루: 정신을 집중하니까 조폭의 공격이 느려졌어요.] [그렌: 응! 그건 뭔가 좋은 징조 같은데…….] [마루: 어! 다시 빨라졌어요. 하지만 피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에요.] [해모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폭의 공격이 갑자기 느려졌다 빨라지다니요?]해모수의 말에 순간 마루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