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마루: 혹시 우리 셋이 동시에 정신을 집중하면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그렌: 셋이 동시에 집중을?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해모수: 재미있겠네요. 우리 한번 시험해 봐요.]마루의 말에 그렌과 해모수가 즉시 정신을 집중해 조폭의 공격을 지켜봤다.
순간 아까처럼 조폭의 공격이 마치 늘어진 테이프처럼 쭈욱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그의 움직임은 느려터진 것처럼 느껴졌다.
[마루: 다시 느려졌어요. 내 예상이 맞았어요. 자! 모두 조폭과의 싸움에 정신을 집중해 주세요!] [그렌: 마루가 놀라운 발견을 했군.] [해모수: 이거 참 대단하네요.]그렌과 해모수는 조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마루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너 이 조폭 새끼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
마루는 조폭이 자신을 때리려고 한 것!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기타 소소한 것들을 모두 기억해 내 사소한 복수심을 불태웠다.
그렌과 해모수, 마루 셋이 정신을 집중하면 할수록 조폭의 움직임은 느려졌고 그만큼 마루에게 여유가 생겼다.
무척 신기했다.
이때부터 마루의 시원한 매타작이 시작됐다.
퍽 퍼버벅, 퍼벅 퍽퍽퍽!
마루의 주먹이 조폭의 몸에 화려하게 작렬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먹과 발을 이용해 골고루 다양하게 쥐어 팼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조폭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슬슬 공포에 물드는 분위기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한때는 작은 조직의 돌격대장까지 했던 몸이다.
그동안 조직 간의 전쟁도 몇 번 겪었고 싸움도 무수하게 해봤다.
하지만 이처럼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평범하게 생긴 이 청년의 정체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퍽!
조폭의 눈먼 주먹이 마루의 턱을 강타했다.
찌릿하고 화끈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걸 본 조폭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다.
처음으로 상대방의 안면에 자신의 주먹을 적중시킨 것이 통쾌했다.
“흐음, 이 정도면 맞을 만하네.”
그러나 마루가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듣자 조폭은 왠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제대로 걸린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결과를 보니 전혀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직 네가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그럼 좀 더 찰지게 맞아보자.”
“그, 그만해라. 아니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마루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조폭은 기겁을 하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는 마루의 얼굴을 살펴봤다.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오히려 마루의 얼굴을 가격한 조폭의 주먹이 뭉개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놈은 사람 같지 않았다.
조폭은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어차피 조폭에게 의리나 자존심 따위는 없다.
약자에게 무자비하고, 강자에게 개새끼처럼 꼬리를 흔들며 비위를 맞추는 것이 조폭의 생리다.
“뭐가? 뭘 그만해?”
“형님, 저 많이 맞았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형님? 지랄도 풍년이네. 내가 왜 깡패 새끼 형님이야?”
마루는 돌변한 조폭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이런다고 놈을 그냥 이대로 보내주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잘못을 했으면 응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빡, 빠빡!
마루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조폭의 턱과 양쪽 옆구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조폭은 순간 세상이 핑 도는 느낌에 휘청거렸다.
그러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마루는 땅바닥에 개구리처럼 퍼져버린 조폭을 보면서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러 한 대 맞아봤는데 왜 별 느낌이 없지? 이 자식 덩치만 크지 원래 솜 주먹이었나?’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꺄악! 오빠, 너무 멋있어요.”
몸을 돌리는 순간, 가슴에 뭔가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서진아가 자신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마루는 깜짝 놀라서 얼굴을 뒤로 확 빼고 그녀를 쳐다봤다.
“으엑, 야! 너 왜 이래?”
서진아는 온몸을 던져 마루에 품에 폭 안기며 제자리에서 방방 뜨고 있었다.
향긋한 여자의 향기와 함께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묵직한 볼륨감!
당황한 마루는 얼굴을 붉히며 서진아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서진아에게는 그런 마루의 수고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에 두 팔을 걸고는 목걸이처럼 매달려 댔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악당을 때려잡은 슈퍼히어로!
지금 그녀에겐 마루가 마치 슈퍼히어로의 모습처럼 비치고 있었다.
쉽게 말해 백마 탄 왕자님 콘셉트, 현대에 맞춰 각색이 되어 서진아의 소녀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다는 말이다.
“서진아! 진정해라! 진정해!”
“오빠, 진짜 짱 멋있어요.”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어머!”
그제야 서진아는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급히 마루의 목에 건 팔을 풀고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다.
마루는 그녀의 행동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기복이었다.
옆을 보니 조폭이 아직도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 뻗어있었다.
마루는 혹시 조폭이 죽은 게 아닌지 걱정되어 다가가 살펴봤다.
그러나 고르게 올라갔다 내려가는 가슴의 기복을 보고는 괜한 걱정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루는 서진아를 슬쩍 한번 쳐다봤다.
그러곤 그녀를 피해 반대쪽으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다급해진 서진아가 한 손을 들며 소리쳤다.
“오빠, 저 아까 싸우는 모습 동영상으로 다 찍어놨어요.”
서진아의 말에 마루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작심을 하곤 다시 성큼 걸음을 옮겼다.
“히잉, 정말 이러실 거예요? 좋아요. 그럼 이 영상을 인터넷과 SNS에 쫙 뿌려도 되죠?”
마루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유턴을 하더니 서진아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고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가까운 빵집, 아니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서진아는 그런 마루의 행동에 승리의 V 자를 그렸다.
“너 뭐 먹을래?”
베이커리의 한쪽 창가에 자리를 잡은 마루!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묻자 서진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생글거렸다.
“커피나 한 잔씩 하죠?”
“그, 그러자.”
그녀의 말에 심쿵!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사실 그녀를 매몰차게 밀어내긴 했다.
하지만 그도 뜨거운 피를 가진 청춘이라 예쁜 서진아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생긋 웃는 미소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나자 서진아가 살짝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소곤거렸다.
“오빠, 더우세요? 갑자기 얼굴이 왜 그렇게 붉어졌어요?”
“그러게. 좀 덥네.”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자 서진아는 더욱 자신의 얼굴을 마루에게 들이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이 그려지고 있었다.
“혹시 저보고 막 심쿵거리고 그러는 거 아니죠?”
“그, 그럴 리가…….”
마루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오는 것은 미처 막지 못했다.
“뭐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굳이 아니라고 하시니 그런 줄 알아야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서 스마트폰이나 내놔!”
그는 일부러 조금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서진아는 엉뚱한 질문으로 응수했다.
“오빠, 사귀는 여자 친구 있어요?”
“그건 왜?”
“그건 왜라니요? 당연히 궁금하니까 물어보는 거죠.”
“그러니까 네가 왜 그게 궁금하냐고?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앞으로는 저하고 친하게 지내실 거잖아요.”
“뭐지? 이 미친 자신감은? 흥!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호호호, 유치하게 왜 이러실까? 오빠도 예쁜 진아가 좋으면서!”
쿵!
그녀는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고 몸을 비틀며 애교를 떨었다.
마루는 또다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존예! 심장에 해로운 여인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좋다고 고개를 마구 끄덕일 뻔했다.
하지만 필사의 인내심을 발휘해 간신히 그 위기(?)를 넘겼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스마트폰이나 줘!”
“히잉, 알겠어요. 여기 있어요.”
서진아는 마루의 얼굴을 슬쩍 한번 쳐다보더니 조금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 모습, 아니 그 자태가 너무도 청순했다.
또 한편으론 그의 태도로 인해 조금 힘든 것처럼 보였다.
마루는 그녀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아까와는 좀 다른 의미로 심장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요물!
정말 이 여자는 요물이다.
자신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래서 그런지 마루는 서진아의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쉽게 찾지 못하고 무척 헤매고 있었다.
“제가 찾아드릴게요.”
그녀는 하얀 손을 내밀며 마루를 위해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나 마루는 마치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열심히 서진아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불쑥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마루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자신의 번호를 찍은 후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어디서 많이 들어본 피아노 연주곡이 서진아의 스마트폰에서 울려 퍼졌다.
마루는 서진아의 얼굴과 그녀의 손에 들린 자신의 스마트폰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도리질을 했다.
“참 쉽게 번호를 따가네. 내 스마트폰으로 네가 찍은 동영상 다 넘기고 네 스마트폰에 있는 것은 전부 삭제해라. 알았지?”
“네, 알겠어요. 대신 제가 가끔 전화해도 되죠?”
“아니 왜?”
“그야 당연히 오빠하고 얘기하려고 그러죠.”
“그러니까 내가 왜 너하고 전화로 얘기를 해야 되는데?”
마루가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서진아는 그 모습에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아하! 이제 알았다. 오빠 한 달만 기다리세요. 그럼 저 성인 돼요.”
“뭐? 너 고등학생 아니었어?”
“맞아요. 고 3이에요. 그런데 제가 일이 좀 있어서 1년 쉬었거든요. 그러니까 한 달 뒤에는 성인이 돼요.”
“그래? 그거야 뭐……. 크흠.”
서진아의 말에 마루의 눈빛이 자신도 모르게 초롱초롱 빛났다.
그 반응에 서진아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서 이러시는 거 맞죠?”
“응? 뭐, 뭐가?”
“아니에요. 굳이 그런 걸 지금 따져서 뭐 하겠어요. 한 달이 지나면 저절로 밝혀질 텐데요.”
“…….”
마루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둔해도 서진아가 무슨 뜻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마루는 괜히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본 서진아는 귀엽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손가락을 두드렸다.
간단하게 동영상 두 개가 마루의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가 화인(火印)처럼 그의 스마트폰에 남겨졌다.
“어? 내 사랑 지나? 이게 뭐야?”
“뭐긴요? 내 전화번호죠.”
“아이고 머리야. 모르겠다. 어쨌든 이걸로 우리 퉁 치자.”
“뭘요? 설마 커피 한 잔 사주고 우리의 인연을 끊겠다는 말은 아니시죠?”
화가 난 표정으로 마루를 노려봤지만…….
서진아의 모습은 그저 귀엽고 예쁘기만 했다.
마루는 왜 남자들이 그렇게도 예쁜 여자에게 환장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자신부터 그녀가 뭔 짓을 해도 다 귀엽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마루는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을 서진아에게 곧이곧대로 다 보여주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가만, 그것보다 아까 너 나한테 욕했지? 먼저 사과…….”
“오빠, 아까는 진짜 죽을죄를 졌어요. 정말 죄송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진아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가지런히 자신의 배에 대고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했다.
마루는 그녀의 뛰어난 순발력에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크흠!”
마른 헛기침을 하며, 그는 또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 했다.
서진아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중력의 법칙에 따라 내려온 교복 사이로, 풍만한 그녀의 가슴 라인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마루는 서진아가 일부러 노리고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고 한 행동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문제는 달덩이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이… 이미 그의 뇌리에 사진처럼 때려 박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