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로브를 쓴 사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바람으로 인해 먼지가 훅 하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미르 용병단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 디나는 살짝 인상을 썼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고치고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미르 용병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디나는 훤칠한 키에 로브를 입은 사내를 쳐다보며 눈에 힘을 줬다.
빨리 여기 온 용건이나 말하라는 나름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브를 입은 사내는 디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마지못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디나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로브의 사내가 건넨 종이를 받았다.
둘둘 말려있는 종이를 펴고 빠르게 읽어본 순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브를 입은 사내를 다시 찬찬히 살펴봤다.
로브의 어깨 부분을 보니 ‘프릴 마탑’의 상징인 네잎클로버가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마법사님이세요?”
“그렇습니다.”
“아니 그럼 진작 마법사님이라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
그가 기억하기로 눈앞의 여자는 자신에게 직업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당당함에 살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디나가 순발력 있게 치고 나왔다.
“여기 소파에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크흠, 네! 그러죠.”
디나는 로브의 사내를 소파로 안내하고 나서 즉시 사무실 안쪽에 있는 방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사내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머리를 덮고 있는 로브를 뒤로 넘겼다.
가려진 그의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볼은 붉게 상기되었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해모수: 아니 그렌 아저씨! 왜 이렇게 긴장을 하세요?] [마루: 혹시 여자와 말 처음 섞어봐요?] [그렌: 그, 그건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젊은 여자와 말을 하니까 말이 잘 안 나오네.] [마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별로 존예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해모수: 내가 봐도 긴장할 정도의 미인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렌: 저 정도면 예쁜 거 아니야?] [마루: 전혀요.] [해모수: 진짜 평범한 얼굴이에요.]그렌은 마루와 해모수가 강하게 도리질을 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볼 때는 꽤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루와 해모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보다.
여자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는 건가?
아니면 취향의 문제인가?
알 수 없었다.
[그렌: 어쨌든 미르 용병단까지 무사히 잘 도착해서 참 다행이지?] [해모수: 프릴 마탑에서 이튼 영지의 영주성까지 편하게 마차를 타고 왔고, 거기서 다시 이곳 시겔 마을까지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운송 마차를 타고 왔는데 무사히 도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마루: 엉덩이가 좀 배기긴 했지만 그리 어려운 여정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렌: 크흠, 그런가?]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태도에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자신의 말에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
[마루: 미르 용병단과 계약할 거죠?] [그렌: 응,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마탑의 도서관장이 추천서를 써줬으니 미르 용병단과 계약하는 것이 순리일 거야.] [마루: 무엇보다 2서클 초급 마법사라는 것을 꼭 밝히세요. 여기는 서클이 하나라도 높아야 대접을 받는다면서요?] [그렌: 맞아. 용병 세계에서도 마법사는 서클이 무조건 높아야 더 좋은 대접을 받아.]그렌은 마루의 조언에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며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야 할지 생각했다.
덜컹!
사무실 안쪽에 있는 방문이 열렸다.
디나가 소파에 앉아있는 그렌을 향해 다가왔다.
그렌이 고개를 돌려 디나를 보자 그녀보다는 그녀의 뒤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먼저 눈에 띄었다.
호남형의 중년 사내가 그렌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법사님, 저는 미르 용병단의 단장 마르코스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그렌입니다.”
마르코스는 다짜고짜 그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웃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은 예리하게 그렌의 전신을 빠르게 한번 훑고 지나갔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온몸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는 마르코스!
솥뚜껑만 한 그의 손에 가냘픈 손이 잡히자 그렌의 몸이 위아래로 마구 흔들렸다.
“추천서는 잘 읽었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미르 용병단에서 마법사님을 초빙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차에 이렇게 직접 저희 미르 용병단을 내방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용병단에 가입하기 위해 오신 것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정말 제대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미르 용병단은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에 정식으로 등록된 중형 용병단으로 카시오페라 왕국의 동부에 있는 라키 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르 용병단으로 말할 것 같으면…….”
“…….”
마르코스는 마치 그렌의 십년지기(十年知己)라도 되는 양 굉장히 친한 척했다.
그렌은 엄청난 친화력으로 무장한 마르코스가 입에 거품을 물면서 미르 용병단을 소개하는 것을 그저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새 탁자에 계약서 한 장을 꺼내놓을 때까지 그렌은 변변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눈만 말똥거려야 했다.
“자, 그럼 여기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우리 미르 용병단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참, 1서클 견습 마법사 맞죠?”
숨도 안 쉬고 정신없이 떠들어 대는 마르코스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렌!
1서클 견습 마법사냐고 묻는 말에 안드로메다로 출장 갔던 정신을 간신히 되찾아올 수 있었다.
“아닙니다.”
“네? 1서클 견습 마법사가 아니라고요?”
“네, 1서클 견습 마법사가 아니라 2서클 초급 마법사입니다.”
“네에?”
그렌의 첫마디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마르코스였다.
하지만 2서클 초급 마법사라는 말에 얼굴에 금세 함박웃음꽃이 피었다.
마탑의 도서관장의 추천서에는 분명히 1서클 견습 마법사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무슨 기연이라도 얻었는지 2서클 초급 마법사가 되다니…….
미르 용병단으로는 오히려 경사가 난 셈이었다.
마르코스는 번개같이 탁자에 위에 올려놓은 계약서를 잡아챘다.
사정없이 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 얼른 새로운 계약서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2서클 초급 마법사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지요.”
“일단 계약서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물론 그러셔야죠.”
그렌은 마르코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탁자 위에 놓인 계약서를 빠르게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특별히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없었다.
토러스 대륙에 있는 모든 마탑이 회원으로 있는 토러스 대륙 마탑 연합!
이미 오래전에 용병이 되고 싶어 하는 마법사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와 협의를 끝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마법사 용병 고용 표준 계약서’이다.
덕분에 토러스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용병 마법사들은 일반 용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좋은 고용 환경에서 용병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렌도 마법사라 당연히 마법사 용병 고용 표준 계약서를 기본으로 작성한 계약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마루: 계약 기간 1년에 언제든 계약 파기가 가능하고, 기본급 보장에다 전리품 습득 시(時) 우선 획득 권리, 전리품 분배는 파티 내에서 두 사람 몫을 가져간다니…….] [해모수: 거기에다 전투 시 최우선 보호 조항과 명상 시간 보장 그리고 잡일은 아예 하지도 않게 되어있네요. 심지어는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의뢰는 거부권까지 포함되어 있어요.]마루와 해모수는 무슨 이런 불평등한 계약서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해모수: 나쁜지 않은 게 아니라 마법사에게 말도 안 되게 유리한 계약서예요.] [마루: 확실히 마법사가 귀족이네요. 일반 용병들의 계약서를 보지는 못했지만 절대 이런 종류의 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을 거예요.]그렌은 해모수와 마루의 말에 힘입어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렌 마법사님, 우리 미르 용병단에 입단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하하하, 이렇게 겸손하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마르코스는 다시 한번 그렌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그렌은 또 한 번 온몸에 진도 7도의 지진이 일어나는 충격을 받았다.
“디나, 3부대장 로건과 3파티장 제니퍼를 오라고 해.”
“네, 단장님.”
디나는 마르코스의 뒤에 서있다가 그가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그렌 마법사님도 우리와 한식구가 되셨으니 간단히 미르 용병단의 조직에 대해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미르 용병단 단장 마르코스는 2서클의 초급 마법사 그렌을 영입할 수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는 미르 용병단의 조직과 현재 맡고 있는 의뢰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했다.
미르 용병단은 토러스 대륙의 모든 용병들을 아우르는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에 정식으로 등록된 중형 용병단이다.
일반적으로 용병 10명까지는 ‘파티’라고 부른다.
소형 용병단은 최대 100명까지 용병을 보유한다.
중형 용병단은 100명 이상으로 최대 300명까지 용병을 모집할 수 있다.
대형 용병단은 보통 300명 이상의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정도는 돼야 영지전이나 국가 간의 분쟁에 참가할 수 있었다.
미르 용병단은 100명이 조금 넘는 용병으로 구성된 중형 용병단이다.
하지만 중형 용병단치곤 규모가 좀 작은 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제 간신히 소형 용병단의 수준을 벗어난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주로 하는 의뢰는 몬스터 토벌.
카시오페라 왕국의 동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라키 산맥의 몬스터 퇴치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미르 용병단은 단장 마르코스를 중심으로 부단장 헤론과 네 개의 부대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
1부대에서 3부대까지는 각각 30여 명의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 4부대만 용병 10명으로 지원과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1부대장 모리스, 2부대장 테일러, 3부대장 로건, 4부대장 세파라가 현재 각 부대의 장(長)을 맡고 있다.
1부대에서 3부대까지, 각 부대는 10명의 용병으로 구성된 세 개의 파티가 존재한다.
마르코스는 그렌을 3부대의 3파티에 배속하려는 생각으로 3부대장 로건과 3파티장 제니퍼를 사무실로 불러들인 것이다.
“참, 그런데 3부대의 3파티장은 제니퍼라는 유능한 여자 용병입니다만, 혹시 여자라서 기분이 나쁘시거나 곤란할 일은 없겠습니까?”
“전혀요. 남자건 여자건 유능한 사람이 파티의 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역시 그렌 마법사님은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일부 마법사님은 여자가 내리는 명령에 대해 거북하다고 거절하기도 했거든요.”
어디를 가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있는 모양이다.
그렌은 물론 마루와 해모수는 이런 면에서 무척 사고가 자유롭다.
덕분에 마르코스 단장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사실 제니퍼는 그 어떤 남자 파티장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능력 있고 유능한 파티장이다.
마르코스는 제니퍼 파티에 마법사를 배속시키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세 번 다 퇴짜를 놨다.
파티장이 여자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제니퍼는 그로 인해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이번 마법사는 고리타분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법사를 제니퍼의 파티에 배속할 수 있게 된 마르코스는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처럼 편안해졌다.
덜컹!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그렌과 마르코스가 기다리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체형이지만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는 3부대장 로건.
여자 용병치곤 키가 크고 눈에 확 띄는 미모를 지닌 제니퍼.
둘은 마르코스 앞으로 다가와 절도 있게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단장님.”
“단장님께 인사드립니다.”
“하하하, 어서 와. 로건! 제니퍼! 모두 이쪽으로 앉아.”
“감사합니다.”
“네.”
로건과 제니퍼는 그렌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마르코스의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이 보이는 태도만으로 미르 용병단의 기강이 얼마나 잘 서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먼저 인사드려! 이번에 우리 미르 용병단에 들어오신 2서클 초급 마법사 그렌 님이야. 앞으로 제니퍼와 한솥밥을 먹게 될 테니까 잘 모시도록 해!”
“아!”
“네에?”
로건과 제니퍼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