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0
40화
그동안 제니퍼가 여자라서 마법사들이 그녀의 파티에 배속되는 것을 거부한 전례가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움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정말 제 파티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물론이지. 어서 인사드리지 않고 뭐 하고 있어!”
제니퍼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르코스를 쳐다봤다.
그러자 마르코스는 얼른 그녀에게 인사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그의 말에 제니퍼는 즉각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저는 제니퍼입니다. 3부대 3파티의 파티장을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그렌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렌은 제니퍼의 정중한 인사에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켜 마주 인사를 했다.
마르코스와 로건은 이런 그렌의 격의 없는 행동에 놀랐다.
하지만 이게 또 마음에 들었는지 그만 환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제니퍼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야 마법사라는 까다로운 족속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울더라도 자기 방에 들어가 남몰래 혼자 울어야 한다.
함부로 눈물을 보이면 분명 다른 용병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다.
“그렌 마법사님은 오늘부로 여기 3부대 3파티, 통칭 33파티에 배속되셨습니다. 3부대 전체는 내일 라키 산맥의 몬스터 토벌을 위해 시겔 마을을 나서게 됩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이번 몬스터 토벌 의뢰를 33파티와 같이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거부해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거부라뇨? 33파티에 배속됐으니 이제부터는 당연히 33파티와 같이 움직여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파티장인 제니퍼가 그렌 마법사님을 모시고 나가서 내일 몬스터 토벌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
마르코스가 그렌을 쳐다보며 제니퍼에게 말했다.
그녀는 얼른 그의 말을 받아 또랑또랑하게 답했다.
“네, 단장님! 그렌 마법사님, 몬스터 토벌은 내일 아침에 출발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오늘 중으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모실 테니 필요한 물품이 뭔지 말씀만 해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의욕이 넘치는 제니퍼의 눈빛은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렌은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천연기념물 그렌에게 제니퍼 같은 미모의 여자 용병은 쥐약이다.
아직은 눈을 직접 마주칠 용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때론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고 가까이하지 않으려 해도 가까워지는 법이다.
그녀의 예쁜 얼굴과 착한 몸매가 저절로 그의 눈에 각인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해모수: 디나보다 제니퍼가 백배는 더 예쁘다. 그렌 아저씨! 잘해봐요.] [마루: 설마 여기 여자 용병들은 전부 제니퍼처럼 예쁘게 생긴 것은 아니겠죠? 그렌 형, 자꾸 그렇게 힐끔힐끔 제니퍼의 가슴을 훔쳐보지 말아요. 차라리 보려면 그냥 당당하게 쳐다봐요. 그게 더 자연스러워요.] [그렌: 내, 내가 언제 제니퍼의 가슴을 훔쳐봤다고 그래!]그렌은 마루가 하는 소리에 놀라 말을 더듬었다.
[해모수: 하하하, 그렌 아저씨도 어지간히 숙맥이시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렇게 놀라고 당황하세요?] [마루: 혹시 제니퍼가 마음에 들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작업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그렌: 자, 작업은 무슨 작업?]그렌은 해모수와 마루의 장난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두 사람의 쉬운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포기하면 편해진다.
그렌은 오늘 소중한 진리 하나를 배웠다.
마르코스는 그렌을 위한 용병 패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리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얇은 패!
미르 용병단의 용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 패다.
원래 용병이 되면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에서 등급에 따라 각각 철, 구리, 은, 금으로 만들어진 용병 패를 발급받는다.
철로 만든 용병 패를 가진 용병을 ‘아이언 용병’ 또는 최하급 용병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가장 무력이 떨어지고 이제 갓 용병이 된 신출내기들을 뜻한다.
구리로 만든 용병 패를 가진 용병은 ‘브론즈 용병’으로 불린다.
아이언 용병에서 시작해 전투와 몬스터 토벌 등 각종 경험을 쌓고 승급한 용병들이다.
토러스 대륙의 대부분의 용병이 바로 이 ‘브론즈 용병’에 속한다.
은으로 만든 용병 패를 가진 용병은 ‘실버 용병’이다.
무력은 어지간한 기사에 맞먹고 경험과 의뢰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각 용병단의 간부로 초빙되어 가거나 혹은 중소 용병단의 단장이 되기도 한다.
금으로 만든 용병 패를 가진 용병은 당연히 ‘골드 용병’이라 부르다.
무력은 말할 것도 없고, 풍부한 경험에 위기 대처 능력 또한 발군이다.
귀족이나 왕가의 비밀 의뢰를 맡거나 은밀하게 일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드 용병 위로 미스릴로 만든 용병 패를 가진 용병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에서 구체적으로 이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무력과 의뢰 해결 능력이 검증되면 대륙 용병 길드를 통해 단계별로 승급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높은 등급의 용병이 낮은 등급의 용병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의뢰비를 받는다.
그로 인해 까다로운 승급 심사임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의 신청률이 무척 높은 편이다.
또한 높은 등급의 용병일수록 대륙 용병 길드에서 제공하는 각종 편의 시설을 사용하는 데 걸리는 제한이 없다.
쉽게 말해서 용병에게는 등급이 그냥 깡패라는 말이다.
그렌과 제니퍼는 마르코스와 로건의 기대 섞인 시선을 뒤로한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제니퍼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그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크게 융기되는 압도적인 그녀의 자존심!
그는 감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못했다.
“그렌 마법사님, 혹시 지금 묵으시는 숙소가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렌이라 불러주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렌 님.”
제니퍼는 마법사인 그렌에게 아주 깍듯했다.
마법사란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서 아주 귀한 인적자원이다.
고로 마법사의 지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중하게 그렌에게 물었다.
“일단 우리 미르 용병단 숙소로 가서 짐을 푸시죠. 그러고 나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좋습니다.”
그렌은 그녀의 제안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퍼는 그가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자 크게 기뻤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예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렌은 예쁜 여자의 미소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자마자…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들킬세라, 그렌은 급히 로브의 후드로 머리 전체를 덮었다.
다행히 마법사가 후드를 덮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다.
그러므로 제니퍼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드 안에 얼굴을 숨긴 그는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참아야 했다.
제니퍼는 2층짜리 건물 세 채가 품자로, 한 울타리에 모여있는 곳을 향해 갔다.
“이곳이 우리 미르 용병단 3부대가 머물고 있는 숙소입니다.”
그녀의 하얀 손이 위로 들렸다.
그렌은 제니퍼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파티가 사용하는 것은 오른쪽 건물입니다.”
“아! 네.”
33파티가 머무는 2층 건물은 아담했다.
제니퍼와 그렌을 포함해서 총 열 명의 용병이 함께 지내는 숙소.
굳이 규모가 큰 건물일 필요는 없었다.
“1층의 방 세 개는 남자 용병 여섯이 둘씩 나눠 쓰고 있어요. 2층의 방 세 개는 저를 포함해 여자 용병 셋이 쓰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을 비워드릴게요.”
“네.”
그렌은 제니퍼의 말에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앞마당과 뒷마당에는 각각 수련장이 준비되어 있어요. 보통 앞쪽에선 탱커와 근거리 딜러들이 수련을 하고 뒤쪽의 수련장에서는 원거리와 사제인 힐러가 수련을 합니다. 그렌 님은 마법사시니 뒷마당에 있는 수련장을 쓰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한번 1층을 천천히 둘러보시고 2층으로 올라오세요. 저는 먼저 가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제니퍼는 그렌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 후 쏜살같이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곧 2층에서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부산한 소음이 일었다.
그렌은 잠시 2층의 창문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앞마당과 뒷마당에 있는 수련장을 차례로 구경했다.
1층에 가서 복도를 한번 힐끗 쳐다보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아직도 부산한 소리가 2층에서 계속 들려왔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를 최대한 늦췄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시간을 많이 줄일 수는 없었다.
“어머, 벌써 올라오셨네!”
그렌은 순간 멈칫했다.
팔다리가 훤히 드러난 레더 아머를 입은 건강미 넘치는 여자!
사제복을 입은 청순가련형 여자!
복도엔 전혀 다른 매력의 두 여자가 자신을 흥미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들을 살펴봤다.
그러자 그렌보다 마루와 해모수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해모수: 어? 여기 둘도 꽤 미인인데…….] [마루: 진짜 미르 용병단은 여자 용병들을 모두 미인들로만 뽑는 건가?] [그렌: 으음.] [해모수: 하얀 옷 입은 여자, 참 청순하고 예쁘다! 그런데 좀 연약해 보여요.] [마루: 사제복 같은데……. 힐러인가? 그럼 레더 아머 입은 여자는 궁수겠군. 건강미인이라고 불러도 되겠네!]해모수와 마루가 그렌을 위해 빠르게 두 여자를 평가해 줬다.
그렌은 잘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옮겨서 그녀들의 뒤쪽을 쳐다봤다.
널찍한 복도를 따라 문이 세 개가 활짝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제니퍼가 곧 그중 하나의 문에서 튀어나왔다.
“그렌 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급하게 방을 치우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그렌 님이 앞으로 쓰실 방입니다.”
그렌은 담담히 제니퍼가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갔다.
크기가 작지 않은 방!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의자 하나가 단출하게 놓여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화장실 겸 욕실이 보였다.
큼직한 욕조 하나가 자리 잡은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 안에는 뭔가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방금 전까지 여자들 중 누군가가 이곳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렌 님, 여기 소개시켜 드릴 파티원들이 있습니다. 이쪽은 소피아! 원거리 딜러로 궁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소피아예요.”
“반갑습니다. 그렌입니다.”
그렌은 최대한 담담하게 소피아를 향해 인사했다.
소피아는 깜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존심과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는 마법사다.
그런데 일개 용병, 아니 그것도 여자 용병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오다니…….
제니퍼가 그걸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얀 사제복의 여자가 고새를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그러자 제니퍼가 얼른 그렌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로즈예요. 치유의 능력을 가진 사제랍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로즈예요.”
“그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네? 아, 아니… 저도 잘 부탁드려요.”
로즈도 소피아만큼이나 크게 놀랐다.
마법사답지 않은 그렌의 털털한 모습!
둘은 그렌의 이런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하얀 치아를 마음껏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렌은 세 여자 용병의 환한 미소로 인해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안구가 정화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런 즐거움은 비단 그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마루와 해모수도 그렌 덕택에 절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렌 님, 그럼 씻고 나오세요.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니퍼가 소피아와 로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렌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로브의 후드를 열어젖혔다.
사우나라도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렌!
화끈한 열기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모습이었다.
마루와 해모수는 어떻게 그의 동정(童貞)부터 먼저 해결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