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그렌은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로브를 벗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잡기도 전에 미르 용병단부터 갔던 터라 그는 당장 샤워부터 하고 싶었다.
옷을 전부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렌은 찬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앞에 섰다.
쏴아아아!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땀에 절어버린 몸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그는 한동안 차가운 물로 샤워를 즐겼다.
몸과 마음이 전부 새로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렌은 욕조 밖으로 나와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가방 안에서 새 속옷을 꺼내 입고 깨끗한 셔츠와 바지도 찾아 입었다.
잘 세탁된 뽀송뽀송한 새 로브도 꺼내 위로 걸쳤다.
거울을 통해 비친 자신의 모습!
그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중요한 물건은 전부 마법 주머니에 넣어놓았다.
덕분에 그는 배낭만 방에 두고 빈손으로 가볍게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덜컹!
“어머, 나오셨다.”
“빨리 제니퍼 불러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렌의 몸이 마치 돌덩이처럼 굳었다.
소피아와 로즈가 문 앞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렌은 자신의 긴장된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마루가 강하게 외쳤다.
[마루: 그렌 형, 그렇게 자꾸 피하기만 하면 여자에 대한, 아니 미녀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 않아요. 오히려 자꾸 눈을 마주치고 친하게 지내다 보면 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어있단 말이에요.] [해모수: 그렌 아저씨는 도대체 뭐가 문제지? 두 여자가 옷을 홀딱 벗고 서있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예요?] [그렌: 아, 알았어. 마루의 말대로 한번 노력해 볼게.]마루와 해모수의 말에 그렌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고개를 원위치로 돌리고 소피아와 로즈의 얼굴을 쳐다봤다.
물론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소피아와 로즈에겐,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뚫어지게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사인 그렌의 날카로운 시선에 둘은 흠칫 놀랐다.
혹시 자신들이 뭔가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건가?
괜히 마법사의 화를 돋운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 소피아와 로즈는 그렌의 시선을 피해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그렌은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고 유쾌해졌다.
마치 그들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도 떨렸다.
하지만 마루의 말대로 조금은 여자에 대해, 아니 미녀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 것 같았다.
어색한 몇 초의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다.
이윽고 제니퍼가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그렌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렌 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왔어요.”
제니퍼의 사과에 그렌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싱그러운 미소를 한 번 짓고는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소피아와 로즈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열심히 뭔가를 소곤소곤 속삭였다.
“몬스터 토벌은 처음이시죠?”
“네, 처음입니다.”
“혹시 무기나 방어구는 가지고 계세요?”
“아니요. 없습니다.”
“으음, 그럼 일단 우리 미르 용병단 무기고로 가서 쓸 만한 무기나 방어구를 한번 찾아보는 게 좋겠어요.”
제니퍼는 그렌을 미르 용병단 창고로 이끌었다.
“이 마을에는 대장간이나 무기상점이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가격도 괜찮고 쓸 만한 무기나 방어구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 미르 용병단 용병들에겐 미르 용병단 무기고에서 구매하는 것만큼 저렴하진 않습니다.”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군요. 마법사 전용 무기나 방어구도 있습니까?”
“아마 많이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눈에 띄는 마법사 전용 무기나 방어구를 사시면 곤란합니다. 사람이나 몬스터나 적은 우리 파티에서 마법사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죽이려 들기 때문에 반드시 일반 용병으로 위장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이런 얘기는 책을 통해 많이 접해봤다.
굳이 제니퍼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미르 용병단 무기고에 도착했다.
제니퍼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용병들을 향해 손을 한 번 들어줬다.
무기고의 경비를 서고 있던 용병들도 제니퍼를 보자 얼른 한 손을 치켜들었다.
미르 용병단 안에서 제니퍼는 꽤 인기가 있어 보였다.
어째 용병들의 시선이 그녀를 떠날 줄을 몰랐다.
무기고는 상당히 크고 넓었다.
겉으론 거대한 창고처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목제 선반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제니퍼, 여긴 웬일이야? 쓰던 활이 부러지기라도 했어?”
“웨하스, 잘 지냈지?”
“응, 덕분에.”
“여긴 그렌 마법사님이야. 우리 33파티에 들어오셨는데… 내일 몬스터 토벌에 같이 갈 계획이야.”
제니퍼의 말에 웨하스는 정색을 했다.
그는 즉시 자세를 바로잡고 그렌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법사님! 웨하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렌입니다.”
그렌은 웨하스의 정중한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놀라고 황송해진 웨하스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여댔다.
제니퍼는 웨하스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남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했다.
하긴 어느 누가 감히 마법사 앞에서 긴장하지 않겠는가!
“웨하스가 그렌 님을 위해서 적당히 쓸 만한 무기와 방어구를 추천해 줘!”
“내, 내가? 그, 그래도 될까?”
웨하스는 살짝 말을 더듬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제니퍼는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그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그렌 님, 혹시 특별히 원하시는 무기나 방어구 있으세요?”
“글쎄요. 아직 여기에 어떤 무기와 방어구가 있는지 모르니 제니퍼 파티장의 말대로 적당히 추천을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렌의 말을 받은 것은 제니퍼가 아니라 웨하스였다.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선반의 숲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웨하스는 무기와 방어구 몇 가지를 챙겨왔다.
쿵!
꽤 무게가 나가는지 묵직한 소음이 일었다.
“이건 예전에 우리 미르 용병단에서 활약하신 3서클 마법사님이 쓰던 무기와 방어구입니다. 다른 것보다 먼저 이것부터 한번 살펴보시죠.”
“네.”
그렌은 웨하스가 가져온 무기와 방어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쇳조각이 방사형으로 달려있는 메이스!
손바닥만 한 소형 쇠뇌!
팔뚝을 살짝 덮을 만한 크기의 소형 버클러!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가죽 갑옷 세트!
그렌은 제일 먼저 메이스를 들어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이스치곤 무게가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던 것이다.
“이건?”
“느끼셨습니까? 가볍죠? 메이스로 위장한 마법 지팡이입니다. 그렇다고 메이스가 아니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마법 지팡이로도 쓸 수 있고 메이스의 역할도 가능합니다.”
그렌은 메이스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자루가 벼락 맞은 버드나무로 된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손잡이를 잡아 옆으로 돌렸다.
역시 딱 분리가 되면서 안에서 알사탕만 한 수정 구슬이 튀어나왔다.
수정 구슬은 곳곳에 금이 가있었다.
아무래도 한계를 맞이한 모양이었다.
손잡이 안쪽을 살펴보니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교묘하게 마법 증폭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 좋군요.”
그렌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정교하게 그려진 마법 증폭진!
수정 구슬 대신 최하급 마나석이라도 하나 구해 넣는다면 실전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메이스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작은 소형 쇠뇌를 집어 들었다.
“이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2연발 쇠뇌입니다. 전에 사용하시던 마법사님께서는 마법을 이용해 시위를 당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요?”
웨하스의 말에 그렌은 큰 흥미를 느꼈다.
일단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2연발 소형 쇠뇌는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마법을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쇠뇌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물론 마탑의 마법사들은 괴짜가 많아 별의별 특이한 무기를 다 만들어 낸다.
그래도 마법으로 시위를 당기는 쇠뇌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전무했다.
쇠뇌를 살펴보니 곳곳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그중 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마나의 힘을 이용해 시위를 당기게끔 설정된 근력 강화 마법진이 인챈트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마나를 많이 잡아먹겠어. 미리 시위를 당긴 뒤에, 안전핀을 걸어놓고 사용하는 방식이군.’
그렌은 2연발 소형 쇠뇌가 마음에 들었다.
테이블 위에 쇠뇌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소형 방패인 버클러를 살펴봤다.
광택이 다 죽은 은색의 원형 버클러!
왼손에 걸자 정확하게 손에서 팔꿈치까지만 방어가 가능했다.
혹시나 해서 버클러 안쪽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강화 마법진과 충격 흡수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전에 사용하던 마법사가 누군지 모르지만 확실히 3서클 마법사다운 정성과 솜씨가 담겨있었다.
그렌은 무엇보다 무게가 가벼운 것이 마음에 들었다.
버클러를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가죽 갑옷 세트를 살펴봤다.
“이건 무슨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죽 갑옷 세트입니까?”
“웨어울프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방어구를 즐겨 사용하시던 마법사님께서 미르 용병단을 떠나실 때 해준 말입니다.”
“으음.”
그렌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웨어울프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죽 헬멧, 가죽 갑옷, 가죽 신발을 차례로 살펴봤다.
이 가죽 갑옷 세트를 쓰던 마법사도 키가 꽤 컸는지 그의 몸에도 그럭저럭 잘 맞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렌은 가죽 갑옷 곳곳에 은밀하게 새겨져 있는 강화 마법진과 충격 흡수진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이거 전부 얼마나 하죠?”
“혹시 구매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가죽 갑옷 세트는 판매용이 아닙니다. 미르 용병단 소속 용병들에게만 대여하는 물건입니다. 전에 사용하시던 마법사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렌은 자신의 턱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럼 대여는 얼마나 합니까?”
“보증금으로 360쿠페, 대여료로 1년에 120쿠페를 내시면 됩니다.”
대륙 공용 화폐는 토러스 대륙 4대 왕국 왕실의 합의 하에 유통시키고 있으며 골드, 실버, 쿠페로 이루어져 있다.
1골드가 10실버, 1실버가 12쿠페로, 1골드는 120쿠페가 된다.
“골드로 환산하면 보증금으로 3골드, 대여료로 1년에 1골드란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1년 뒤에는 돌려줘야 합니까?”
“아닙니다. 일단 그렌 님께서 대여를 하시면 직접 반납을 하시기 전까지는 다른 용병들에게 대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단 파손 시에는 각각 메이스 1골드, 쇠뇌 1골드, 버클러 1골드, 가죽 갑옷 세트 3골드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결국 이 무기와 방어구의 가격은 총 6골드라는 말이군요.”
“그런 셈입니다.”
제니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무기와 방어구의 대여 가격이 비쌌다.
1골드면 평민 한 가족이 세 달은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렌은 달랐다.
무기와 방어구에 새겨진 마법진의 가치를 보고는 비싸다는 생각을 아예 접었다.
‘이건 무조건 내가 쓴다. 보증금 3골드에 대여료 1골드가 비싸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마나석이 없어서 무기와 방어구에 새겨진 마법진들을 당장 활성화시킬 순 없지만 그건 마법상점에서 구매해서 쓰면 된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그렌은 바로 금화 네 개를 꺼내 웨하스에게 건넸다.
웨하스는 금화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웨하스, 그렌 님에게 쇠뇌용 볼트와 가죽 갑옷 손질용 기름을 챙겨드려!”
“그건 제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제니퍼의 말에 웨하스는 그렌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 볼트와 기름을 챙겨왔다.
그사이 그렌은 제니퍼에게 물었다.
“마법상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겔 마을에는 없고 이튼 영주성에 있습니다.”
“으음, 이거 곤란하게 됐군.”
그렌의 말에 제니퍼는 영문을 몰라 눈만 말똥거렸다.
‘효율이 좋지는 않겠지만 최하급 마나석 가루가 좀 있으니 일단 그것을 써야겠다.’
몬스터 토벌이 끝나고 나면 그렌은 제일 먼저 마법상점이 있는 도시로 가서 마나석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법사님, 여기 있습니다.”
쇠뇌용 볼트가 넉넉히 담긴 통과 가죽 갑옷 손질용 기름 한 통!
웨하스로부터 서비스로 받은 물건을 잘 챙긴 그렌은 무기고를 나섰다.
제니퍼가 옆에서 들어준다는 것을 그는 단박에 거절했다.
그렌은 무기와 방어구가 담긴 묵직한 부대를 메고 일단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