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식량과 약품은 어디서 팝니까?”
“그건 그렌 님이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4부대의 지원 팀이 일꾼들과 짐마차를 가지고 현장에서 직접 보급해 줍니다.”
“4부대가 보급을 맡고 있군요.”
“네, 우리 33파티는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장비만 잘 챙겨서 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지원부대가 알아서 할 거예요.”
“그럼 비상용 육포와 내가 먹을 부드러운 빵만 좀 챙기면 되겠네요.”
“제가 육포 맛있게 하는 집을 압니다. 같이 가시죠.”
제니퍼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육포를 파는 가게는 미르 용병단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마법 주머니에는 아직도 육포가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렌은 비상용 육포만 좀 챙기려고 했다.
그러나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 감미료가 첨가된 육포의 맛을 보자 욕심이 났다.
결국 육포가 한 아름씩 들어간 포대를 몇 개나 샀다.
그 모습에 제니퍼는 그렌이 어디 가서 배고파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렌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니퍼가 가죽 갑옷 입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렌은 아쉽게도 거절하고 말았다.
지금은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직은 슬픈 모태 솔로의 현실이다.
[마루: 꽤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얻은 것 같네요?] [그렌: 운이 좋았어.] [해모수: 저걸 입으면 누구도 마법사라고 보지 않겠어요.] [그렌: 그으래?]그렌은 로브를 벗고 가죽 갑옷 세트를 하나씩 입어봤다.
가죽 헬멧, 가죽 갑옷, 가죽 신발!
차례로 장비를 하자 확실히 용병 태가 물씬 풍겼다.
허리에 쇠뇌를 걸고 왼팔에 버클러를 찼다.
오른손에 메이스까지 들자 영락없는 용병의 모습이었다.
[마루: 산에 올라가면 추우니까 로브 하나쯤은 걸치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해모수: 몬스터 토벌한다고 뛰어다니면 오히려 덥지 않을까요?] [마루: 하루 종일 몬스터 토벌이나 하고 있을 것 같아? 야영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하잖아.] [해모수: 그런가?]해모수는 아직 몬스터 토벌이 뭔지 감이 잘 안 잡히는 듯했다.
그렌은 무기를 한쪽 탁자에 내려놓고 가죽 갑옷 세트를 벗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명상에 들어갔다.
몬스터 토벌이 시작되면 당장 사용해야 할 마법을 선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지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라는 것을 그렌은 잊지 않고 있었다.
명상에 들어가자 금세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법들을 생각해 봤다.
머릿속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시뮬레이션했다.
당장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부족한지 하나씩 예측이 가능해졌다.
[그렌: 1서클의 마법인 매직 미사일과 그리스를 적절히 사용하고, 스트렝스와 매직 아머로 몸을 보호해야겠다. 2서클의 마법은 윈드 커터와 실드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바인드나 홀드 같은 속박 마법으로 전투를 보조해야겠네.] [마루: 좋은 생각 같아요.] [해모수: 마법사니까 직접적인 전투에 낄 일은 아마 없겠죠?]해모수의 말에 그렌의 평정심이 깨져버렸다.
[그렌: 만약 몬스터에게 직접 공격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마루: 스트렝스 마법을 걸고 냅다 뛰어서 도망쳐야지요.] [해모수: 으음, 차라리 육체의 통제권을 제게 넘기시는 건 어때요?] [그렌: 으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해모수: 만약 몸을 쓰게 될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마루 형이나 제가 그렌 아저씨 대신 육체를 통제하는 것이 좋겠어요.] [마루: 그건 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네.] [해모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요. 일단 살고 봐야죠.] [마루: 그렇긴 하지만…….]마루는 해모수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렌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그렌도 쉽게 답을 내지 못했다.
[그렌: 최악의 경우에는 그런 방법도 한번 생각해 보자.] [마루: 네.] [해모수: 그러세요.]그렌은 다시 명상에 들어갔다.
한참 동안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며 마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다.
저녁이 되어 배가 고파오자 밖으로 나가서 음식을 사 먹는 대신, 마법 주머니에서 오늘 산 부드러운 빵과 독특한 맛이 일품인 육포를 꺼내 먹었다.
이튼 지방의 독특한 향신료와 감미료가 들어간 육포!
상당히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맛있었다.
물론 매일같이 이렇게 먹으라면 사양할 것이다.
하지만 저녁 한 끼 때울 정도로는 충분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소화도 시킬 겸 마탑에서 복사해 온 병장기술 중 둔기술과 방패술을 꺼내 살펴봤다.
다행히 초보자도 쉽게 익힐 수 있게 자세한 그림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그렌은 어렵지 않게 둔기술과 방패술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쪽으로 가구를 모두 밀어버렸다.
널찍해진 방 안에서 메이스와 버클러를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 봤다.
대충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이 왔다.
그러나 그렌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마루와 해모수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동작이 영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 일단 다른 동작은 전부 포기하시고 그냥 메이스를 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동작 딱 한 가지만 연습하세요. 버클러를 쓰는 것도 뭘 막으려고 하지 마시고,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들고는 그냥 흘린다고 생각하면서 방어하면 될 거예요.] [그렌: 아, 알았다.]그렌은 해모수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구와 몸을 부대끼며 싸워본 적이 없는 그렌이다.
몸을 쓰는 것이 서툰 그가 둔기술과 방패술을 익힌다고 당장 그것을 실전에 잘 써먹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한두 가지만이라도 몸에 익게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게 나았다.
휙휙 훅, 휙휙 훅!
해모수는 마치 시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렌은 해모수의 친절한 지도 아래 비스듬하게 서서 메이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동작을 두 번, 버클러를 들어 머리를 가리는 동작을 한 번씩 반복했다.
30분도 되지 않아 그렌의 팔다리는 심하게 떨려왔다.
그의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마루와 해모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해모수: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이 정도만 해요.] [마루: 씻고 쉬도록 하세요.]이렇게 그렌의 둔기술과 방패술 수련은 30분 만에 간단히 끝나버렸다.
그렌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라앉혔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로 몸에 흘린 땀을 씻어내고 개운한 기분으로 나왔다.
물기를 닦고 속옷과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당장 침대로 올라가 눕고, 아니 쉬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마법사로서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침대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마법 주머니를 열었다.
마법 주머니에서 고대 마법서와 해석을 위한 고서(古書)!
하급 마법서와 마탑에서 복사해 온 각종 마법 서적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라도 빨리 고대 마법서를 해석하는 것이 좋겠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나태하게 시간을 허비할 순 없지. 마나를 모으는 거야 해모수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깨달음을 얻어 3서클로 올라서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리고 마루와 해모수를 위해 인챈트 마법 연구도 병행해야 해.’
그렌은 스스로 강하게 마음을 다지며 고대 마법서와 고서를 펼쳤다.
그는 차근차근 고대 마법서를 읽고 해석해 나가며 깊은 뜻을 풀이하고 연구했다.
깜깜하기만 했던 혼돈 마법의 숨겨진 비밀들이 양파처럼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갔다.
사라락, 사라락!
방 안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제외하곤 고요한 적막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책을 보는 그렌.
문뜩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온 그는 물병의 물을 마셨다.
그러다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에 시선이 갔다.
‘아차, 아직 무기와 방어구에 새겨진 마법진을 활성화시키지 않았구나.’
그렌은 물병을 내려놓고 탁자로 다가갔다.
그는 메이스를 잡고 손잡이를 돌려 수정 구슬을 빼냈다.
엄지와 검지로 수정 구슬을 잡고 자세히 살펴봤다.
수정 구슬에는 사방으로 금이 가있었다.
안에는 마치 텅 빈 것처럼 그 어떤 마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석이라도 하나 끼워 넣으면 좋겠는데…….
당장 최하급 마나석 하나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수정 구슬이라도 멀쩡했다면… 아쉬운 대로 직접 마나를 주입해서 썼을 것이다.
그러나 수정 구슬은 이미 수명이 다한 상태였다.
그렌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마법 주머니에서 최하급 마나석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각종 마법 시약을 담는 데 사용하는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빈 병 하나.
수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스푼도 꺼냈다.
그는 먼저 최하급 마나석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열었다.
수정 스푼으로 최하급 마나석 가루를 가득 펐다.
반투명한 작은 빈 병의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을 채웠다.
서너 번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병은 금세 최하급 마나석 가루로 가득 찼다.
그렌은 최하급 마나석 가루가 가득 담긴 작은 병의 뚜껑을 잘 닫았다.
부드러운 천으로 병을 몇 번 감싸고 밀봉한 후 얇은 실로 돌돌 동여맸다.
그런 후, 분리된 메이스의 손잡이 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신기하게도 크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그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렌은 분리된 메이스의 손잡이를 메이스 자루에 맞추고 도로 끼워 넣었다.
오른손을 손잡이에 댄 채 작게 활성화 주문을 외웠다.
“활성화!”
마지막으로 시동어를 외치자…….
화악!
메이스의 손잡이에서 환한 빛이 터지며 메이스 전체로 퍼져나갔다.
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초도 되지 않아 금세 사그라졌다.
그래도 메이스 안에 숨겨진 마법 증폭진이 온전히 활성화된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마법 증폭이 일어나려나? 온전한 마나석도 아니니 5퍼센트나 나올까 모르겠네.’
최하급 마나석을 끼워 넣었다면 그래도 마나 증폭이 10퍼센트 정도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나석 가루!
그것도 최하급 마나석 가루를 활용한 것이라…….
본래 기능의 반만 따라가도 다행이었다.
그렌은 메이스 손잡이 안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대충 일어나는 반발력을 계산해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스를 탁자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쇠뇌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만 한 2연발 소형 쇠뇌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기였다.
쇠뇌를 뒤집고 손잡이 부분을 살펴봤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마법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비틀어 돌리자 쇠뇌와 손잡이가 쉽게 분리됐다.
손잡이 안을 살펴보니 다 깨진 수정 구슬 조각들이 보였다.
그는 쇠뇌를 탁자의 모서리에 탁탁 쳤다.
깨진 수정 구슬 조각들이 와르르 튀어나왔다.
그렌은 메이스와 마찬가지로 각종 마법 시약을 담는 데 쓰는 엄지만 한 작은 빈 병에 수정 스푼을 이용해 최하급 마나석 가루를 담았다.
빈 병이 가득 채워지자 뚜껑을 닫았다.
부드러운 천을 꺼내 몇 번 감싸고 다시 얇은 실로 동여맸다.
그는 최하급 마나석 가루가 담긴 병을 쇠뇌의 손잡이 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크기가 딱 맞는지, 쇠뇌와 결합시키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렌은 곧바로 활성화 주문을 쓰고 시동어를 외쳐 마법진을 활성화시켰다.
역시 메이스 때처럼, 손잡이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와 쇠뇌 전체로 번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은 꺼지듯 사라졌다.
그는 쇠뇌의 시위를 하나씩 잡아당겼다.
엄청난 반발력을 예상했다.
그런데 마치 얇은 고무줄을 잡아당기는 느낌뿐이었다.
그는 두 개의 시위를 모두 걸고 쇠뇌용 볼트를 꺼내 각각 장전했다.
욕실 겸 화장실 옆 나무 벽을 목표로 쇠뇌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퓽퓽!
팍팍!
생각보다 큰 소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나무 벽 속으로, 쇠뇌용 볼트 두 개가 거의 끝까지 들어가 박혀버렸다.
그렌은 놀란 눈으로 다가가 볼트 끝을 잡아당겼다.
너무 깊이 박혀서 아무리 잡아당겨도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볼트 두 개를 버렸다 생각하고 아예 깨끗이 포기했다.
다시 시위를 잡아당기려던 그렌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쇠뇌의 중간에 묘하게 생긴 버튼을 발견한 것이다.
마법진의 끝이 버튼까지 이어진 것을 확인한 그는 순간 뇌리에 불이 반짝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