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4
44화
3부대장 로건은 2부대장 테일러와 악수를 나누고는 인수인계를 서둘렀다.
시에라 요새 안팎에 혹시 이상한 현상이나 안 좋은 징후는 없는지 물어봤다.
미르 용병단 전용 창고의 재고도 이상 없는지 확인했다.
4부대의 지원 팀이 재고 확인을 같이하며 이번에 가져온 보급품을 창고에 넣었다.
로건은 3부대를 시에라 요새 안의 미르 용병단 숙소인 3층 건물로 데리고 갔다.
“모두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어라. 오늘 저녁 근무는 3부대 1파티에서 맡는다. 1파티는 모든 잡무에서 열외다. 나머지는 쉬어도 좋다. 이상! 해산!”
“해산!”
“해산!”
“해산!”
로건의 말에 각 파티장이 해산을 부르짖었다.
미르 용병단 3부대의 모든 용병들이 눈앞에 있는 3층 건물로 향했다.
그렌도 33파티의 용병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곧 몸을 뒤로 물려야 했다.
“그렌 님! 그렌 님!”
“네?”
고개를 돌려보니 로건이 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렌은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말똥거리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렌 님, 잠시 저와 같이 요새 사령부로 가시죠?”
“네? 요새 사령부요?”
“시에라 요새 사령관이신 네바다 장군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미르 용병단에서 마법사님을 모셔왔으니 아마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선택이 아닌 의무!
로건의 말을 들은 그렌은 바로 눈치챘다.
마법사라는 고급 인력이 들어왔으니 시에라 요새 사령관에게 당연히 보고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렌은 로건의 의도를 알아채고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감사합니다.”
로건은 웃는 낯으로 그렌의 옆에 서있는 제니퍼를 쳐다봤다.
“제니퍼 파티장, 그렌 님의 짐을 숙소로 옮겨줘요!”
“네, 알겠습니다.”
제니퍼가 3부대장 로건의 말에 각이 딱 잡힌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렌은 그녀가 손을 내밀자 지체 없이 자신의 배낭을 건넸다.
로건은 그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대 몬스터 장벽이 그들을 향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중앙에 있는 저 메인 타워가 시에라 요새 사령부입니다.”
“굉장히 크고 높군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전 시에라 요새의 규모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지금은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조금 식상한 면이 없지 않지만, 뭐 그래도 올 때마다 조금씩 감동이 되곤 합니다.”
로건은 용병답지 않게 목소리가 참 맑았다.
그리고 매너도 좋았다.
물론 그만큼 실력이 있으니 3부대의 대장을 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용병보다는 시청의 고위 공무원이나 귀족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탄탄한 몸을 지닌 로건!
실력은 미르 용병단 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겉모습은 전혀 용병 같지 않아 가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곤 한다.
메인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입구에서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로건과 그렌은 간단한 검문을 받고 통과했다.
요새 사령부까지 계단을 타고 걸어 올라갈 줄 알았던 그렌!
하지만 정면에 보이는 승강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됐다.
물론 승강기를 타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마루를 통해 이보다 더한 승강기를 여러 번 타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적인 충격은 아예 없었다.
로건은 마음속으로 ‘역시 마법사라서 그런지 승강기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메인 타워 끝에 도착하자 승강기 문이 열렸다.
그들은 경비를 서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시 한번 검문을 받고 난 후에야 사령관실로 안내됐다.
“각하, 미르 용병단 3부대장 로건과 그렌 마법사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아니 안으로 모셔라!”
안에서 굵고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로건은 평소와는 다른 네바다 장군의 말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그렌이 뒤따랐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네바다 장군님!”
“어서 오게. 로건!”
네바다 장군과 로건이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
그렌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들어와 사령관을 살펴봤다.
네바다는 로건이 인사를 할 때와는 달리, 그렌이 들어오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네바다는 굳이 그렌 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반갑소. 이곳 시에라 요새의 사령관인 네바다 장군이오.”
“처음 뵙겠습니다. 프릴 마탑의 마법사 그렌입니다.”
네바다의 악수에는 손뼈가 부러질 것 같은 묵직한 힘이 실려있었다.
저릿한 고통이 일었지만 그렌은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그렌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하오체를 쓰고 있는 네바다!
마법사를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장난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도 잘못 짚었다.
일반적으로 몸이 허약한 다른 마법사들과는 전혀 달리 그렌은 아주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네바다의 이런 장난에 쉽게 당하지 않고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마법사치곤 몸 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는 모양이오?”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체력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뻔한 질문에 식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네바다는 그렌의 말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금색의 머리와 수염을 빼면 꼭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처럼 생긴 전형적인 무장(武將)!
네바다는 시에라 요새에 마법사가 왔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처럼 허약하지 않은 그렌의 건강한 모습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네바다는 그렌에게 조금씩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건, 미르 용병단에서 용케 마법사를 영입했군.”
“네바다 장군님, 우리 그렌 마법사님은 그냥 마법사가 아닙니다. 2서클의 초보 마법사입니다.”
“그래? 미르 용병단에서 혹시 능력 있는 새 스카우트 팀장이라도 뽑았나? 전에 딱 한 번 3서클의 마법사를 영입하곤 그동안 한 번도 2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데려오지 못했잖아.”
네바다는 미르 용병단의 상황에 대해 꽤 정통한지 정확히 빈틈을 쑤시고 들어왔다.
놀란 로건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며 그렌의 눈치를 살폈다.
“네바다 장군님, 갑자기 그렇게 우리 미르 용병단의 흑역사에 대해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듣는 그렌 님도 이렇게 곤란해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내가 보기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하하하,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로건은 속으로 네바다를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사실 그렌은 미르 용병단에 거저 굴러 들어온 호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 찾아온 행운!
스카우터가 직접 찾아가 노력해서 초빙을 해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렌은 전혀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의 대거리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네바다는 한참 동안 로건을 놀려먹고는 그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기대가 크오. 우리 자주 만납시다.”
“네,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오겠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3서클로 올라갈 것 같소?”
“그, 그거야 마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겠습니까?”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고 지금이 딱 그 모양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서클이 올라가는 것은 정말 목숨과도 같은 일이다.
언제 서클이 올라가는지 그걸 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 시기를 정확히 아는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도적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마법사는 2서클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오기도 한다.
또 어떤 마법사에게는 평생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서클이 올라가는 것은 마나의 의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놈 하는 짓이 은근히 괘씸하네. 마법사에게 언제 서클이 올라가느냐고 묻다니……. 만약 내가 당신 언제 소드 마스터 되냐고 묻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뭐, 그래도 장난기가 많을 뿐 나쁜 놈은 아닌 거 같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마.’
그렌은 네바다 장군이 묻는 말에 속으로 발끈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별로 미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순수한 그의 눈빛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날은 그렇게 네바다 장군과의 면담 같지 않은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났다.
그렌은 로건과 같이 숙소로 돌아와 자신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1층 식당에 들러 이른 저녁도 먹었다.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와 해모수의 잔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열심히 메이스를 휘두르고 버클러를 쓰는 법을 배웠다.
명상을 한 후, 내일 쓸 마법을 메모라이즈했다.
고대 마법서를 꺼내 열심히 해석과 연구를 병행했다.
눈이 피로한 느낌이 들어 잠시 침대에 누웠다.
잠깐 쉰다는 것이 정신을 잃은 것처럼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수마(睡魔)에 깊이 빠져 허우적대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어 동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렌: 이런, 깜빡 잠이 든 모양이네.] [마루: 잠이 든 정도가 아니라 엄청 심하게 코를 골았어요.] [해모수: 꽤 피곤했나 봐요.]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제 그 정도로 피곤했었는지 자신은 전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렌: 이거 체력이 영 말이 아니네.] [마루: 앞으로 운동 좀 하셔야겠어요.] [해모수: 오러 연공법이나 포스 연공법을 익히는 게 좋겠어요.] [그렌: 그건 안 돼! 오러 연공법이나 포스 연공법은 내가 익힌 서클 마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서 너무 위험해.] [마루: 몇 서클부터 충돌을 하는데요?] [해모수: 그래요? 위험해요?]해모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렌은 마루의 질문을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렌: 모르긴 해도 3서클 이상이 되면 충돌할 거야.] [마루: 그럼 3서클이 되기 전까지 수련하면 되잖아요.] [해모수: 그건 마루 형 말이 맞네요. 3서클 되면 그만두면 되잖아요. 그리고 정말 3서클은 언제 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요?] [그렌: 그거야. 그렇지.]그렌은 마루와 해모수가 하는 말을 듣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둘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색이 마법사가 기사와 용사들이 익힌다는 오러 연공법이나 포스 연공법을 익히는 것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존심 때문에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연공법을 무시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렌: 휴우! 알았어. 포스 연공법을 익히도록 할게.] [해모수: 왜 오러 연공법을 안 익히고 포스 연공법을 익혀요?] [그렌: 오러 연공법은 포스 연공법보다 서클 마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더 높아. 물론 잘 익힐 자신도 없고……. 그래서 포스 연공법을 익히겠다는 거야.] [해모수: 아아!]그제야 해모수는 그렌의 말을 이해했다.
마루는 눈치가 제로(0)인 해모수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루: 너도 어지간히 눈치가 없구나. 마법사인 그렌 형이 오러 연공법이나 포스 연공법을 익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좀 생각을 하고 살자. 우리!] [해모수: 에엑, 그런 거였어요? 미안해요. 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해모수가 사과하자 그렌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렌: 괜찮아. 나도 해모수가 무슨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닌 줄은 잘 알아. 다만 내 재능이 기대한 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많이 안타까울 뿐이야.] [마루: 그래도 형이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야 우리가 살아요.] [해모수: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그렌 아저씨에게 상처를 줬네요.] [그렌: 아냐. 난 괜찮아. 그러니 해모수가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지금처럼 마루와 해모수가 내게 솔직하게 쓴소리를 해줘야 내가 마법사의 외고집에 빠져들지 않고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어.] [마루: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해모수: 앞으로 말하기 전에 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말할게요.] [그렌: 그래. 둘 다 모두 고맙다.]그는 마루와 해모수가 정말 고마웠다.
세상에 홀로 남아 동떨어진 것처럼 살아가는 그렌!
두 사람은 그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언제나 100퍼센트 자신의 편이 되어 강하게 지지해 주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
마루와 해모수는 그렌에게 빙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그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다.
둘은 그렌의 마음을 느끼자 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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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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