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휩쓸려 나가자 마루는 환호성을 질렀다.
[마루: 우와아아! 명중이다. 잘했어.] [해모수: 다행이다.]해모수는 힐끗 고개를 뒤로 돌려 넘어진 우르카이들을 쳐다봤다.
[마루: 우르카이 한 놈이 지금 너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어. 네 뒤쪽 대각선 방향이야. 시계로 말하자면 다섯 시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해모수: 쇠뇌로 잡아볼게요.] [마루: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 온다. 셋, 둘, 하나, 지금이야.]마루가 신호를 주자 해모수는 달리는 관성을 이용해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허공에서 빙글 한 바퀴 몸을 돌리더니 자신을 잡으러 달려오는 우르카이의 목을 향해 쇠뇌를 발사했다.
퓽!
캉!
그억!
척! 다다다다다…….
아쉽게도 목표했던 우르카이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배틀액스(전투용 도끼)가 들려있었다.
놀란 우르카이는 급히 자신의 배틀액스로 해모수가 쏜 쇠뇌의 볼트를 막았다.
아슬아슬하게 배틀액스 끝에 걸린 볼트가 튕겨나갔다.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모수가 쏜 쇠뇌의 볼트로 인해 신경이 분산된 우르카이는 필연적으로 달리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돌린 해모수는 땅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곤 곧바로 날 듯이 다시 쌩하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를 노리고 달려드는 우르카이는 방금 전의 그 한 놈만이 아니었다.
맨 앞에 서너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십여 마리, 다시 그 뒤쪽 너머에 수십 마리가 더 쫓아오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 한번 발을 삐끗하면 그렌의 육체를 통제하고 있는 해모수는 바로 사로잡히게 될 거라는 말이다.
[마루: 이제 그렌 형의 차례예요. 해모수, 쇠뇌를 집어넣고 메이스를 뒤를 향하게 잡아.] [해모수: 네.] [그렌: 준비됐어.]해모수와 그렌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모수가 메이스를 한쪽 옆구리에 끼는 모습을 지켜봤다.
각도를 살피자 너무 아래쪽이었다.
[마루: 조금만 위로 올려.] [해모수: 이 정도면 됐어요?] [마루: 아니, 이번에는 너무 올렸어.] [해모수: 지금은 어때요?] [마루: 딱 좋아. 그렌 형, 제가 말하면 그리스 마법을 쓰세요.] [그렌: 알았어.]해모수와 그렌 그리고 마루가 삼위일체(三位一體)로 마음을 합치자 그 어느 때보다 오감(五感)이 날카로워졌다.
그렌은 그리스 마법이 메이스의 자루를 따라가면서 밖으로 쏘아져 나가게 마법 수식을 바꿔 준비했다.
마루는 흔들리는 메이스의 각도를 지켜보다 소리쳤다.
[마루: 쏴요.]“그리스!”
쓰윽! 꽈당꽈당!
[그렌: 어떻게 됐어?] [마루: 성공을 하긴 했는데 바로 앞이 아니라 뒤에 있는 놈들이 걸려 넘어졌어요.] [해모수: 이런, 다시 합시다.] [마루: 해모수, 조금만 더 힘내라. 거의 다 왔다.] [해모수: 알았어요.]이제 그렌의 몸은 바위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에 맞춰 속도가 점점 떨어져 갔다.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 마법이 꼭 성공해야만 할 절실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마루: 지금 쏴요!]“그리스!”
쿠억, 쿠어억, 컥…….
우당탕 쿵 탕!
이번에 정말 제대로 걸렸다.
바로 뒤쪽의 매끄러운 바닥에 그리스가 걸리자 달려오던 우르카이 두 놈이 동시에 미끄러졌고 그들로 인해 뒤따르던 우르카이들이 연속으로 넘어져 굴러 내려갔다.
덕분에 나중에는 십여 마리의 우르카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굴러 내려갔다.
중상은 아니라 해도 확실히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마루: 나이스 샷!] [해모수: 야호!] [그렌: 어휴! 다행이다.] [마루: 정말 기가 막힌 마법 한 방이네요. 이제는 모두 달리는 것에 집중합시다. 셋이 동시에 집중하면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질지 모르니까 말이에요.] [그렌: 그래.] [해모수: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의 말대로 달리는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렌도 해모수가 달리는 일에 집중하자 같이 달리기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마루까지 집중을 하자, 마루가 혹시나 하고 한 말이 진짜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바람의 압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몸이 튕기듯 쏘아져 나갔다.
[그렌: 어?] [마루: 아!] [해모수: 으응?]그렌과 마루 그리고 해모수가 동시에 속으로 감탄성을 터뜨렸다.
정말 기대도 안 했던 곳에서 대박이 터졌다.
이로써 셋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게 됐다.
둘이 집중하면 집중력 두 배!
셋이 집중하면 집중력이 세 배가 되어, 효과도 세 배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이다.
[마루: 대박, 앞으로 우리 셋이 동시에 집중하면 뭐든지 못할 게 없겠구나.] [그렌: 몸치인 나도 앞으로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울 수 있겠어.] [해모수: 이거 어째 아주 예감이 좋은데요. 정말 우리 나중에 일내겠어요.]셋은 뒤에서 우르카이들이 쫓아오는 것도 잊은 듯 즐거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바위 언덕 위에 있는 동굴까지 달려가는 레인저와 용병들은 점점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평지에서 전력으로 달려도 힘이 든데 이렇게 경사진 언덕길을 전력으로 질주하니 체력이 안 떨어지려야 안 떨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어코 레인저 하나가 다리가 꼬인 듯 자빠졌다.
그 뒤에서 달리던 용병 하나도 넘어진 레인저에게 발이 걸려 쓰러졌다.
둘은 자신들이 쓰러질 때 받은 충격보다 터질 것 같은 폐의 고통으로 인해 급히 숨을 몰아쉬기에 바빴다.
해모수는 힐끗 동굴을 쳐다보더니 달려가는 그대로 몸을 낮춰 쓰러진 레인저의 허리 벨트 뒤쪽을 잡아 일으켰다.
“무조건 달려!”
그렌이 해모수의 의도를 눈치채고 소리쳤다.
해모수는 쓰러져 있는 용병도 같은 방식으로 허리 벨트를 낚아챘다.
레인저와 용병은 놀라서 두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것을 멈추더니 동굴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다행히 그들은 너무 늦지 않게 동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해모수가 도움을 준 레인저와 용병은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나뒹굴더니 다시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두 사람은 그 와중에도 그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눈빛으로나마 감사를 표했다.
해모수는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한 손을 들어주고는 동굴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맨 뒤에서 제일 늦게 꼴찌로 달리던 그렌이다.
하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그의 뒤로 레인저와 용병들이 십여 명이나 더 뛰어 들어왔다.
그만큼 순간적으로 집중된 그의 달리기 속도가 엄청 빨랐다는 방증이었다.
“우르카이들이 동굴 안으로 못 들어오도록 당장 동굴 입구를 바위로 틀어막아.”
“네, 소대장님.”
“모두 힘을 합쳐서 바위를 옮겨! 거기 용병 둘은 방패를 들고 우르카이의 난입을 견제해.”
“네.”
동굴로 들어온 레인저와 용병들은 거친 숨을 가라앉힐 사이도 없이 서둘러 주변에 쌓여있는 커다란 바위들을 서로 힘을 합쳐 옮기기 시작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해모수는 육체의 통제권을 그렌에게 넘겼다.
그렌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동굴 입구가 잘 보이는 뒤쪽 끝으로 가서 섰다.
약이 바짝 오른 우르카이들이 노도(怒濤)처럼 동굴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리스! 윈드 커터!”
꽈당, 꽈당, 꽈당!
쿠엑, 꾸억, 키엑!
우르카이들이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다가 한꺼번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 위로 그렌의 윈드 커터가 지나갔다.
우르카이들의 팔다리가 우수수 떨어져 나가며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우르카이도 보통은 아니었다.
윈드 커터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급히 몸을 비틀어 머리와 가슴 등 급소가 될 만한 곳을 피했다.
그 뒤로 레인저들의 화살 세례가 쏟아져 내렸다.
쿠웨에엑, 쿠어어억, 케에엑, 크아아악…….
[그렌: 젠장, 이번에도 한 놈을 못 죽였네.] [마루: 괜찮아요. 덕분에 레인저들이 화살을 쏴서 쉽게 잡아 죽이잖아요.] [해모수: 그런데 저렇게 화살을 마구 쏴도 될까? 화살은 보충이 안 될 텐데…….]해모수의 혼잣말에 그렌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다들 화살 아껴 쏘세요.”
그렌이 소리치자 그제야 흥분했던 레인저들이 이성을 찾고 신중하게 화살을 한 발씩 날렸다.
처음에는 마구 화살을 썼다면 지금은 우르카이의 급소를 정확히 노리고 한 발 한 발 치명적인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스!”
꽈당, 꽈당, 꽈당!
쿠엑, 꾸억, 키엑!
그렌은 마나가 뭉텅뭉텅 흘러나가자 이제는 그리스 마법만 사용했다.
마나 대비 제일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해모수: 혹시 모르니 저놈들의 사체를 끌어들이죠?] [그렌: 사체는 왜?] [해모수: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중에 식량이 부족해지지 않겠어요?] [마루: 맞는 말이긴 한데… 저 우르카이는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렌: 몬스터의 피에는 독성이 있어. 그렇다고 모든 몬스터를 못 먹는 것은 아니야. 일부 몬스터는 식용(食用)이 가능하다고 해.] [마루: 그럼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렌: 불행히도 우르카이는 먹을 수 없어.] [마루: 아!] [해모수: 그래도 사체를 안으로 끌어들여서 장비라도 챙겨야죠.] [그렌: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그렌은 필립과 제니퍼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들은 그렌의 그리스 마법을 잘 쓰기 위해서도 통로에 우르카이 사체가 쌓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창을 이용하거나 갈고리를 던져서 우르카이 사체를 안으로 끌어들여 동굴 한쪽에 쌓기 시작했다.
우르카이들은 집요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좁은 동굴 입구로 인해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었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 놈들이다.
여럿이서 한꺼번에 서로 들어오려다 오히려 서로의 행동을 제약하는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그 바람에 레인저의 치명적인 화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피해를 가중시켰다.
그렇게 우르카이들은 몇 번이나 동굴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계속 피해를 입자 어느 순간 발길을 딱 끊어버렸다.
“갔나 보다.”
“가긴 어딜 가? 우르카이는 한번 노린 먹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거 몰라?”
“이런 거지 같은 새끼들…….”
레인저 둘의 대화는 동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그렌은 그들의 대화에 쓴웃음을 지었다.
필립 중위가 동굴 입구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일단 우리는 살았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 다들 아까 봤지? 수백 마리의 우르카이가 덮쳐오는 것을 말이야. 그런데 우린 그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살아남았다. 그러니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라. 그리고 방어선을 구축한다.”
“…….”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벌써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립 중위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의 배낭 안에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마법 수정구가 있었던 것이다.
“소대장님이 마법 수정구를 가지고 계신다.”
“이제 살았다.”
“희망이 보이네.”
그제야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렌은 필립 중위가 내민 마법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이 중에서 마법사는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바위 언덕을 내려갈 때만 해도 오십 명에 육박하던 숫자였다.
그런데 어느새 열 명이나 죽어버렸다.
그중 대부분이 요새로 돌아가던 중 제일 앞에서 정찰을 하다가 우르카이들에게 습격을 당한 레인저들이었다.
필립과 제니퍼는 남은 사십 명을 네 개의 조로 나눠 돌아가면서 동굴 입구를 지키게 했다.
그런 후, 마법 수정구를 이용해 시에라 요새 사령부와 통신을 시도했다.
다들 동굴 입구를 최대한 막고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세우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렌은 일행 중 유일한 마법사라 모든 경비와 잡무에서 제외됐다.
어느 정도 방어를 위한 장애물 설치가 끝나자…….
레인저와 용병들은 모두 동굴 벽에 몸을 기댄 채 전투 배낭을 열었다.
전투 배낭 안에서 육포와 물을 꺼내 먹고 마시면서 소모된 열량을 채워 넣었다.
그렌도 동굴 안쪽의 움푹 팬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매콤한 맛의 육포와 부드러운 빵을 꺼내 함께 천천히 씹어 먹었다.
목숨을 걸고 달리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는지 육포와 빵을 몇 개나 먹었는데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
적당히 육포와 빵으로 배를 채운 그렌은 물로 입가심을 했다.
“휴우우우우!”
긴 한숨을 쉰 그는 이내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닥을 치고 있는 마나를 모으기 위해 마나 호흡을 시작한 것이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 육체의 통제권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마나를 모으는 것은 제가 할게요.] [그렌: 그래줄래? 고맙다. 해모수!] [해모수: 천만에요. 대신 꼭 살아날 방법을 찾도록 하세요.]해모수가 그렌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