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우르카이 사체를 동굴 안으로 가져와라.”
“네.”
필립 중위의 말에 레인저들이 힘을 모아 우르카이들의 팔과 다리를 잡아 동굴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동굴 입구에 우르카이 사체를 그대로 놓아두면 그리스 마법이 잘 안 걸리고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된다.
물론 우르카이 사체를 동굴 안으로 가져가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 박혀있는 화살만 수거해도 보급품을 받지 못하는 레인저에게는 큰 힘이 됐다.
전쟁은 힘과 체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과 전술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서로를 속이며 기만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적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비록 지금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밀려서 동굴 안에 갇힌 채 포위된 신세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전략과 전술은 승패를 뒤집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렌 님, 수고하셨습니다.”
필립 중위가 그렌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마법사의 무서움과 괴팍함을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본 필립 중위다.
그는 애초에 마법사와 척을 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이유로 비록 자신이 계급은 높지만 그렌에게 결코 말을 함부로 하거나 경망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오늘 그렌이 몇 번 사용한 그리스 마법의 효과만으로도 지금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천만에요. 그런데 오늘만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요새 사령부에 다시 한번 연락을 취해야겠습니다.”
“마법 수정구에 마나를 채워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립 중위가 그렌에게 함부로 못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렌이 없으면 마법 수정구에 마나를 채울 수 없다.
마법 수정구가 먹통이 되면 그들은 요새 사령부와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지고 고립된 채로 죽음을 기다려야만 한다.
이미 마법 수정구를 통해 요새 사령부에 자신들이 갇혀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으니 지금쯤 구조대나 우르카이 토벌 병력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저… 죄송합니다만 빵이나 육포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필립 중위는 이제 그렌에게 고개를 90도 각도로 깊숙이 숙였다.
그렌은 마법 주머니에서 부드러운 빵이 들어있는 빵 자루 하나와 육포가 가득 담긴 부대 하나를 넘겼다.
“사나흘은 버틸 수 있는 빵과 육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요새 사령부에 잘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 안에 여기서 탈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필립 중위는 그렌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당장 식량이 떨어진 게 아닌가 걱정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렌이 마법 주머니에 식량을 넉넉히 넣어 가지고 다녀서 사나흘의 시간을 벌게 됐다.
필립 중위는 빵 자루와 육포가 든 부대를 레인저 부소대장에게 넘겼다.
그는 제니퍼를 불러 같이 동굴 입구로 갔다.
마법 수정구로 요새 사령부와 통신을 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모든 레인저와 용병들이 그들이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렌은 그들의 대화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통신이 끝나면, 제일 먼저 자신에게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제니퍼가 얘기를 해줄 것이다.
그렌은 그것보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쉴 만하면 쳐들어와서 힘을 빼놓고 있는 우르카이들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그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 [마루: 그러게요. 우르카이는 잔혹하고 영특한 놈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너무나 무식한 방법이에요. 그동안 최소한 이삼십 마리는 죽어나갔을 텐데…….] [해모수: 그럼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렌: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마루: 입장을 반대로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되잖아요. 만약 우르카이들이 동굴에 갇혀있고 우리가 동굴 밖에 있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어요?] [해모수: 보통 동굴에 갇힌 짐승을 잡으려면 불을 질러서 나오게 하지 않나요? 아니면 동굴 반대쪽의 다른 입구를 통해서 기습을 하든가.] [그렌: 아! 맞다.] [마루: 정말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해모수: 뭐야? 이 분위기! 정말 내가 제대로 맞힌 거예요?]해모수는 그렌과 마루의 반응에 신이 났다.
하지만 그렌은 해모수가 말한 대로 일이 진행됐을 때 일어날 일을 예측하더니 당장 똥줄이 타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립과 제니퍼에게 달려가 당장 자신의 생각, 아니 해모수가 말한 위험성을 전했다.
두 사람은 그렌의 말을 듣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넘어가진 않았다.
“발 빠른 레인저 하나를 동굴 입구로 보내서 우르카이의 동향을 확인하라.”
“토드, 브라이언, 소피아, 셋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혹시 다른 출입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
필립과 제니퍼가 레인저와 용병들을 움직였다.
결론적으로 그렌의 조언은 탁월했다.
아니 해모수의 생각 그대로였다.
동굴 바깥쪽을 빠르게 살피고 온 레인저는 동굴 입구 한쪽에 나뭇가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또한 토드, 브라이언, 소피아도 30분 뒤 우르카이 전사들이 동굴 반대쪽에 출입구를 만들려고 땅굴을 파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필립은 제니퍼와 그렌을 불러 셋이 같이 의논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는 없었다.
동굴 입구에 불을 지르기만 해도… 연기 때문에 모두 질식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우르카이 전사들이 동굴 뒤쪽으로 땅굴을 파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출입구가 두 개라면 결국 전력을 양쪽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이틀 동안 다섯 명이 죽었다.
지금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겨우 서른다섯 명이다.
이 숫자로 양쪽에서 힘으로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우르카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에라 요새 사령부에서는 어떻게 한답니까?”
“이틀 정도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흘이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답니다. 넉넉잡고 나흘만 버티면 구출될 겁니다.”
“지금 우르카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나흘은커녕 이틀도 버티기 힘듭니다. 자체적으로 뭔가 좋은 수를 내어야만 합니다.”
“…….”
“…….”
그렌의 말에 필립과 제니퍼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물었다.
눈만 말똥거리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해모수: 저… 그런데 바람의 방향이 동굴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요.] [그렌: 뭐라고?] [마루: 아! 우르카이 전사들이 땅굴을 판 것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구나.]그렌은 해모수와 마루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필립과 제니퍼는 그렌의 표정이 바뀌자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렌은 자신의 검지를 입속에 넣고 빨아 잔뜩 침을 묻힌 뒤 허공으로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손가락 한쪽이 금세 차가워졌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입니다. 일단 동굴 입구를 바위로 최대한 틀어막읍시다.”
“그다음은 어떻게 합니까?”
“땅굴을 파고 있는 우르카이 전사들을 끈질기게 방해해야지요.”
“저놈들이 동굴 입구에 불을 지르면 연기 때문에 그것도 다 소용없는 짓이 되지 않을까요?”
제니퍼가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그렌은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해모수와 마루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중얼거렸다.
“자! 모두 바람의 방향을 한번 느껴보세요. 바람의 방향이 동굴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동굴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르카이 전사들이 동굴 반대편에서 땅굴을 판 것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그러니 연기 때문에 질식사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머, 정말 그렇군요. 역시 그렌 마법사님은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현상을 알아내신 거죠?”
“놀라운 일이군요. 저라면 절대 이런 것을 발견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필립과 제니퍼가 잔뜩 흥분해서 그렌을 띄워줬다.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그렌은 쑥스러움에 볼이 잔뜩 상기됐다.
하지만 확실히 기분만큼은 아주 째지게 좋아졌다.
“모두 그렌 님의 말씀을 다 들었을 줄 안다. 지금부터 팀을 둘로 나눠서 한 팀은 동굴 입구를 폐쇄하고 다른 한 팀은 땅굴을 파고 있는 우르카이 전사들의 작업을 방해한다.”
“힘과 체력에 자신 있으면 이쪽으로, 전투력과 한 방 공격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저쪽으로 가라.”
“네.”
“예.”
동굴 안의 레인저와 용병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모두 살고자 하는 욕망이 충만하게 치솟고 있었다.
“그렌 님은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난 당분간 명상에 들어가겠습니다. 적을 물리칠 한 방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필립과 제니퍼는 그렌의 마법이 당장 아쉬웠다.
하지만 적들을 물리칠 한 방을 만들어 오겠다는 말에 껌뻑 넘어갔다.
그렇다고 그렌이 당장 명상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동굴이 어느 정도 폐쇄되고 우르카이 전사들이 땅굴을 파는 것이 어느 정도나 걸릴지 먼저 가늠을 해봐야 했다.
우르카이는 한번 공격을 하고 나면 최소한 세 시간 동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도 뭔가를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렌은 필립과 제니퍼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빵 자루와 육포 부대를 모조리 넘겼다.
이제 그의 마법 주머니에는 혼자 딱 일주일을 견딜 수 있는 빵과 육포만 남았다.
세 시간 뒤, 우르카이 정찰병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동굴이 막힌 것을 알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대신 동굴 입구에 나뭇가지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우르카이가 불을 지른다.”
바위틈으로 밖을 감시하고 있던 레인저 하나가 소리쳤다.
모든 레인저와 용병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대기했다.
화르르륵, 화르르르!
나뭇가지는 엄청난 속도로 타들어 갔다.
그로 인해 연기가 동굴 안으로 자욱하게 밀려들었다.
하지만 곧 동굴 안쪽에서 강하게 바람이 불어와 동굴 입구 쪽으로 밀려 나갔다.
“와아아아아아!”
순간 동굴이 떠나갈 정도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필립과 제니퍼를 포함한 모든 레인저와 용병들은 일제히 그렌을 쳐다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그 눈빛을 보아하니 경외와 존경의 염(念)이 담겨있었다.
그렌은 순간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동굴 안이 서늘한지 입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푹 뒤집어썼다.
대처 방법을 알려줬으니 이제 필립과 제니퍼가 알아서 잘해낼 것이다.
그렌은 몸을 돌려 동굴 안쪽에 조용한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마루: 확실히 결심한 거예요?] [그렌: 응, 난 서클 마법을 버리고 혼돈 마법을 배우기로 선택했어.]그렌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해모수: 그거 위험한 것 아니에요? 스승도 없이 혼돈 마법을 배우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렌: 지금 내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야. 해모수, 네가 날 많이 도와줘야겠다.] [해모수: 도와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어차피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에 불과하잖아요.] [그렌: 맞아. 내가 서클 마법을 깨뜨리고 마나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면 해모수 네가 고대 마법서에 나오는 혼돈 마법의 카오스 볼을 만드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마나를 모아야 해.] [마루: 해모수, 사실 이번 일의 성패는 너한테 달려있어. 최선을 다해라!]해모수는 마루의 말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해모수: 어휴! 결국 한 시간 안에 지금 그렌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2서클의 마나양보다 훨씬 더 많은 3서클에 해당하는 마나를 모으라는 소리잖아요?] [마루: 맞아.] [해모수: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그렌: 그게 뭔데?] [마루: 혹시… 너 우리 셋이 동시에 집중을 해서 마나를 모으자는 거 아냐?]해모수는 마루가 자신의 생각을 바로 맞히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해모수: 하하하!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우리 셋이 집중하면 세 배의 효과가 나잖아요. 그럼 충분히 카오스 볼에 서클 마법의 3서클에 해당하는 마나를 모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렌: 좋아. 한번 해보자.] [마루: 그래. 3서클 가즈아!]셋은 그렇게 의기투합을 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흥분이 가라앉자 그렌은 침을 한 번 꿀떡 삼켰다.
먼저 자신의 심장 옆에서 열심히 돌고 있는 서클 두 개를 관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