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53
53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몸 밖으로 나가서 실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피부를 타고 전신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이강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렌과 해모수에게는 선명하게 보이는, 연하고 노리끼리한 빛이 마루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 이게 뭐예요? 이게 실드예요?] [그렌: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을 그려 넣었는데…….] [마루: 실드 마법진 인챈트가 실패했나요?] [그렌: 허 참! 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그렌은 크게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준비됐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이강산 트레이너가 중앙으로 나오며 물었다.
마루는 서둘러 보호구를 착용하고 그의 앞으로 나아갔다.
이강산은 마루에게 적의 공격을 목검으로 어떻게 막고, 튕기고 또 흘리는지 시범을 보였다.
마루는 혼란한 정신을 수습하며, 일단 이강산이 가르쳐 주는 방어술을 열심히 배웠다.
해모수도 일찌감치 실드에 관한 일은 포기하고 같이 집중했다.
덕분에 집중력이 두 배가 되어 빠르게 방어술의 요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들 중 유일하게 그렌만이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이해했습니다.”
“그럼 가볍게 공격을 해볼 테니 한번 막아보세요.”
“그러죠.”
이강산이 목도를 잡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마루도 심호흡을 한번 하고 같이 목도를 앞으로 내밀었다.
“흐읍!”
딱, 따다닥, 딱딱!
두 자루의 목검이 빠른 속도로 부딪쳤다.
이강산이 일부러 기합 소리를 내며 먼저 공격했다.
마루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하나씩 막아냈다.
그것도 잠시!
이강산의 목검에 조금씩 힘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공격해 오는 루트도 점점 다양해졌다.
하지만 마루도 마냥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이강산의 방어술이 나름 쓸 만해 보인다는 생각에 해모수가 정신을 집중해서 마루를 돕고 있었다.
덕분에 이강산의 공격을 가까스로, 아슬아슬하게 잘 막아냈다.
그 모습을 본 이강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마루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자신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그것도 금방 자신이 가르쳐 준 방어술을 이용해서 말이다.
대련 중이 아니었다면 당장 크게 칭찬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막을 때 너무 긴장해서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어요. 최소한의 동작과 힘으로 방어를 해야 바로 반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네.”
이강산은 마루에게 가볍게 조언을 하고 다시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마루가 공격해 들어오는 목검을 보면서 일일이 막거나 쳐내고 있었다.
“잘하시네요. 이제 연환(連環)으로 공격하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넵.”
마루는 이강산 트레이너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마루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는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빠른 공격이 쇄도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자 마루의 머리, 어깨, 목, 가슴, 배에 이강산의 목도가 차례로 떨어지며 묵직한 충격을 주었다.
만약 보호구를 입지 않았다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정신을 집중해 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강산의 공격을 받고 그가 가르쳐 준 방어술을 펼쳐 막는 행위 그 자체로 마루는 지금 아주 좋은 실전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루는 두들겨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목도를 휘둘러 댔다.
딱!
“앗!”
그런데 너무 의욕이 과했던 것일까?
이강산의 목도가 순간적으로 마루의 팔목을 후려쳤다.
그곳은 보호구가 신체를 덮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즉시 목도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다급히 다가왔다.
놀란 표정으로 마루의 팔목을 잡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은데요.”
“팔목 아프지 않아요?”
“안 아픈데요.”
“그래요? 휴우우! 그거참 다행입니다. 제가 좀 의욕이 과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닙니다. 대련을 하다 보면 뭐 의욕이 과해질 수도 있죠.”
이강산은 그 자리에서 계속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계속 마루의 팔을 붙잡고 살폈다.
“팔목에 맞은 게 아닌가?”
“호완 끝부분을 친 것 같은데요.”
“그래요?”
마루는 그의 말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강산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목도로 팔목을 맞았다면 당장 타박상으로 시퍼렇게 부어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마루의 팔목 그 어디를 살펴봐도 그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그렌은 크게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렌: 실드 마법진의 효력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어! 실드가 몸 밖에서 생성된 게 아니라 얇은 막처럼 피부 위를 덮어버린 거야.] [마루: 그게 무슨 소리예요? 피부 위를 덮다니…….] [그렌: 일종의 생체 실드가 된 거지.] [해모수: 생체 실드요?]해모수는 그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루도 해모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렌은 둘의 반응에 잠시 머릿속으로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름 정리가 되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쉽게 설명했다.
[그렌: 아무래도 내가 인챈트했던 실드 마법진이, 서클 마법이 아닌 고대 마법서에 나오는 실드 마법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원인 같아.] [마루: 아직 제대로 해석도 끝나지 않은 고대 마법서의 마법진을 나한테 썼단 말이에요?] [해모수: 에엑? 그럼 그렌 아저씨가 마루 형에게 인체 실험을 한 셈이네!]마루와 해모수가 깜짝 놀라자 그렌이 서둘러 해명했다.
[그렌: 아냐, 그건 오해야. 절대 그런 것이 아니야. 난 기존의 실드 마법진보다 고대 마법서에서 나오는 실드 마법진이 훨씬 강하고 효율적이라서 그걸 가져가 썼을 뿐이야. 절대 인체 실험을 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지금 마루의 몸에 만들어진 실드는 중대형 몬스터 중에도 상급 몬스터에게나 볼 수 있는 생체 실드야. 어떻게 보면 일반 실드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실드란 말이야.] [마루: 정말이에요?] [해모수: 어째 믿음이 가지 않네요.]그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마루와 해모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실드 마법진을 인챈트해 준다고 하더니 몬스터에게서나 볼 수 있는 생체 실드를 걸어줬다.
거기에다 한 번도 테스트해 본 적이 없는 고대 마법서에서 나오는 마법진을 마루의 몸에 그려 넣었으니 당연히 의심할 만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렌은 즉시 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렌: 일단 마루와 해모수에게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사려 깊게 행동하지 못했어. 하지만 고대 마법서에 나오는 실드 마법진을 선택한 것은 지구에 마나가 너무 희박해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였어. 절대 네 몸에 인체 실험을 해서 내 연구 욕심을 채우려고 한 것은 아니야. 제발 믿어다오. 진짜 단 한 치의 사심도 섞이지 않았어.] [마루: 어휴! 알았어요. 그만하세요. 믿을게요.] [해모수: 그래요. 우리가 믿어주지 않으면 또 누가 믿겠어요!]그렌의 사과에 마루와 해모수는 일단 화를 풀었다.
그의 말을 믿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렌의 몸에 빙의했을 때 이미 마루와 해모수는 그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강산은 더 이상 마루와 대련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고급 방어술을 가르쳐 줬다.
아무래도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한 보답의 일환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단 한 번 가르쳐 주는 이 고급 방어술을 과연 마루가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마루는 물론 해모수에 이어 그렌까지 집중하기 시작하자 이강산에겐 비전(祕傳)에 속하는 고급 방어술이 통째로 마루에게 옮겨지기 시작했다.
마칠 시간이 되자 그는 혹시 마루의 팔목에 이상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봤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이 없자 안심하더니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마루는 샤워실로 들어가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체육관에 와서 여러 가지 유용한 고급 방어 기술과 수법을 배운 유익한 날이었다고 자평했다.
“안녕하세요?”
체육관을 나서는데 문 앞에서 누군가 인사를 했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마루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안녕하세요?”
김민정 트레이너의 어여쁜 얼굴이 그의 동공을 가득 채웠다.
몸에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에…….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청순 글래머 미녀라는 수식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운동 끝나고 집에 돌아가시는 길이세요?”
“네. 그런데 김민정 트레이너는 지금 출근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오늘은 그만 일찍 퇴근하려고 가방 가지러 왔어요.”
“아! 그렇군요.”
마루는 순간 뭔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김민정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왠지 촉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굳이 자신에게 퇴근하려고 가방을 가지러 왔다는 얘기는 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생각됐다.
무엇보다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어색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먼저 자리를 피하려 들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나에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할 때, 해모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빠르게 외쳤다.
[해모수: 마루 형,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딱 보니 썸을 타는 각인데…….] [마루: 넌 대체 그런 말투 어디서 배웠냐?] [해모수: 요즘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데요! 그나저나 그렇게 가만히 장승처럼 서있을 거예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같이 마시러 가자고 해봐요.] [마루: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해?] [해모수: 절대 그럴 리 없을 테니까 사내답게 빨리 먼저 말하세요. 그리고 싫다고 하면 집에 가면 그만이지 뭐가 그렇게 겁나요?] [마루: 아니야. 나 겁 안 나.]생각해 보니 해모수의 말대로 해도 자신에게 크게 손해날 일은 없어 보였다.
같이 가겠다고 하면 로또를 맞은 격이다.
만약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그냥 인사하고 집으로 가면 그만이다.
마침내 마루는 결단을 내렸다.
“저, 날씨도 더운데 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러 갈래요?”
“좋아요.”
“네? 뭐라고요?”
“좋다고요. 요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가방만 가지고 금방 나올게요.”
“아! 네에.”
마루는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냥 미친 척하고 한번 던져본 말이었다.
그런데 김민정이 그걸 덥석 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해모수: 거봐요. 내가 된다고 했죠?] [마루: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 오늘 무슨 계(契) 타는 날이야?] [해모수: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했어요. 마루 형은 감히 아무도 말을 붙이지 못하는 미녀에게 용감하게 대시해서 성공한 거예요.] [마루: 하아, 지금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해모수: 하하하, 맞아요. 그만 바보처럼 굴고 어서 버스 정류장에나 가보세요.] [마루: 알았어. 해모수, 어쨌든 고맙다.] [해모수: 천만에요. 잘해봐요.] [그렌: 축하한다.]해모수가 잘해보라고 밀어주고 그렌은 축하를 해줬다.
마루는 그때부터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며 심호흡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김민정과의 관계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자꾸 긴장되는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빵!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는데 갑자기 빨간색 미니 쿠퍼가 서더니 짧게 경적을 울렸다.
고개를 숙여 차 안을 살펴보니 김민정이다.
“타세요.”
그녀의 말에 마루는 당당하게 김민정의 애마에 동승했다.
이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이 많아 불편한 듯 보였다.
김민정은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신호등을 몇 개 지나고 나자 마음이 편해진 김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마루를 힐끗 쳐다봤다.
“혹시 배 안 고프세요?”
“네?”
“저 지금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밥 먹고 싶다고요.”
“아아! 그럼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마루는 순식간에 그녀와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왠지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사이로 발전한 기분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아니요. 전 너무 느끼한 거만 아니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습니다.”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네요.”
“그런가요?”
마루는 자신이 방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남자들이 느끼한 게 싫다는 얘기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파스타 같은 이탈리안 푸드는 먹고 싶지 않다는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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