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6
6화
그렌은 우선 테이블 하나를 깨끗이 치웠다.
그리고 그 위에 마법 주머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꺼내 놨다.
하나씩 확인을 하는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급 마법서에는 1서클에서 3서클까지의 다양한 마법이 적혀있었다.
당장 그렌에게 이것보다 더 소중한 물건은 없었다.
1서클의 마법은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2서클의 마법은 아예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1서클의 견습 마법사인 마탑의 사서에겐 2서클 이상의 마법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3서클까지 다양한 마법이 들어있는 하급 마법서가 생겼다.
열심히 연구를 한다면 설사 2서클 이상의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1서클 마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도움이 돼줄 것이다.
최하급 마나석 가루는 마법진을 그리는 데 꼭 필요한 마법 재료다.
최하급 포션과 해독제는 위기의 순간 목숨을 구해줄 소중한 아이템이다.
각종 마법 시약은 안 그래도 돈이 없어 항상 마법 재료가 부족했던 그렌에게 단비와도 같다.
거기에다 돈주머니를 가득 채운 금화!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구해 연구할 수 있게 해줄 희망의 필수품이다.
옷 가방은 트웨인의 옷과 신발, 양말 같은 것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냥 깔끔하게 화로에 넣고 태워버렸다.
빵 자루 안에는 부드러운 빵이 가득했다.
마탑에 들어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빵이었다.
그렌은 빵을 보자 반사적으로 배가 고팠다.
당장 부드러운 빵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물병도 일반적으로 흔한 것이라 굳이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깨끗한 물을 채워 다시 마법 주머니 안에 고이 넣어뒀다.
낡은 고서(古書)!
그렌은 책상 위에 고서와 고대 마법서를 동시에 펼쳐놓았다.
의자를 가져와 책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한 장씩 읽어봤다.
책장을 넘기는 그의 얼굴에서 점차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역시 트웨인은 고대 마법서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구나. 이 고서만 있으면 고대 마법서를 해석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렌은 흥분된 마음으로 정신없이 고대 마법서를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석을 위한 고서가 옆에 있다고 해도 단번에 고대 마법서를 완전히 해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문을 한번 힐끗 쳐다본 그렌.
잠시 생각을 멈추고 관자놀이를 양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일단 죽음의 모래부터 돌려주고 와야겠다. 마탑 사서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하급 마법서를 연구하고, 고대 마법서도 해석해 보자. 어느 정도 마법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면 기회를 봐서 마탑을 잠시 나와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어. 마법사 길드가 있는 큰 도시로 가서 간단한 의뢰를 받고 움직이면 돈도 벌고 모험도 할 수 있을 거야. 돈주머니에 금화가 가득하니 앞으로 굳이 궁상을 떨며 살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렌은 빠르게 자신의 미래를 새로 설계했다.
마법 주머니 안으로 책상 위에 널려있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트웨인처럼 로브 안에 은밀한 주머니를 하나 만들었다.
자신의 로브 안쪽 안감에 튼튼하게 주머니를 달고 나자 겉으론 전혀 그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렌은 바닥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런 후, 정제된 죽음의 모래를 가죽 주머니에 잘 담았다.
방문을 나서며 로브의 모자를 푹 뒤집어쓴 그렌.
그의 허리가 천천히 앞으로 굽어지고 있었다.
* * *
달그락달그락!
휴대용 스테인리스 버너 위에서 노란 냄비 뚜껑이 춤을 춘다.
강력한 부탄가스의 화력이 단숨에 라면을 팔팔 끓였다.
덩달아 옥탑방의 온도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탈칵!
젓가락을 입으로 쪽쪽 빨고 있던 마루는 얼른 불을 끄고 버튼을 눌렀다.
휴대용 스테인리스 버너는 불만 끈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렇게 부탄가스의 주둥이를 앞으로 밀고 있는 놈을 풀어버려야 안전해진다.
냄비 뚜껑을 열자 배 속의 식충이들이 환장을 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조리된 라면 냄새가 금세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라면에는 역시 김치.
만고의 진리다.
작은 플라스틱 김치 통을 열었다.
시큼털털한 김치 냄새가 라면 냄새와 합쳐져 앙상블을 이뤘다.
입에 절로 침이 고이고 자꾸 꿀떡꿀떡 삼키게 된다.
젓가락으로 뜨거운 면을 집어 냄비 뚜껑 위에 올린다.
후후 불어 식히고 그 위에 김치 한 조각을 찢어 올려놓았다.
젓가락으로 빙빙 돌린 후 집어 입안에 쏙 넣고 씹어대자…….
하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후루루룩!
아삭아삭!
새벽같이 일어난 마루는 이렇게 오천만의 양식, 라면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다 큰 장정이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적어도 라면 두 개에다 달걀 하나는 풀어 넣어야 간신히 배가 찰까?
하지만 꼭두새벽같이 다들 자고 있는 1층 부엌으로 내려가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오는 것은 민폐나 다름없다.
물론 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라면 면발을 다 집어 먹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신 마루.
하지만 아직도 배가 고팠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장의 간식이 아직 남아있다.
러시아의 미녀들까지 반하게 만든 세계적인 과자!
‘초코파이 정(情)’이 바로 그것이다.
1974년 4월, 오리온에서 처음 출시된 이래 수십억 개가 팔려나갔다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장수 과자.
달콤한 초콜릿을 감싼 빵 사이에 있는 마시멜로우의 폭신함이 더해져,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며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며 절로 미소가 돌게 만든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냄비와 김치를 밖에 내어놓고 생수병을 집었다.
차가운 물을 꿀꺽거리며 마신 마루.
남은 물로는 입안을 헹구고 티슈를 하나 꺼내 입가를 닦았다.
전기장판의 힘으로 바닥이 펄펄 끓고 있는 침대.
엉덩이를 침대 속으로 쏙 밀어 넣은 그는 이불을 덮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노트북을 집어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노트북을 열자 곧 익숙한 시작 화면이 떴다.
와이파이(WiFi)가 잡히자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역시 이메일(email)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중소기업에도 모두 이력서를 보냈다.
혹시나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없나 살펴봤다.
물론 이미 반쯤은 포기한 상태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 이렇게 확인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다.
“이런! 오늘도 꽝이네.”
온갖 스팸 메일로 더럽혀진 자신의 이메일.
순결한 처녀처럼 깨끗하게 정리하고 포털 사이트로 접속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클릭했다.
‘연예인 화보 누출.’
이번엔 또 누구지?
절로 궁금해진다.
이런 게 왜 궁금한지 사실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피 끓는 청춘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속에 음란 마귀가 있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도 모르는 관음증?
아니야. 절대 그런 것은 아닐 거야.
그렇다고 아예 안 보면 뭔가 괜히 자신만 손해 본 느낌이 든다.
에이, 이런 화상!
몇 번 클릭하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도 여기저기 블로그와 카페에서 누출된 연예인의 화보를 링크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라? 유민정? 아니 얘가 화보를 찍었어? 헉! 몸매가 장난이 아니네? 가슴도 엄청 크잖아?’
마루는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꿀떡 삼키면서 살살 스크롤을 내렸다.
정신이 번쩍 나고 노트북의 화면 픽셀 하나하나까지 느껴질 정도로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됐다.
어디 남태평양의 섬이나 괌, 사이판 같은 곳에서 찍었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닷가를 배경으로…….
관능적이고 요염한 유민정의 섹시한 여체가 절로 심쿵하게 만들었다.
[헉!] [으헉!]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며 신경을 온통 귀로 돌렸다.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슬쩍 방문을 쳐다보니 잘 잠겨있었다.
문고리도 확실히 채워져 있다.
만약 누가 올라온다고 해도 무안을 당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원래 가족들은 그의 옥탑방까지 잘 올라오지도 않는다.
‘잘못 들었나?’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마우스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살살 굴려 스크롤을 내렸다.
“억!”
이번에는 자신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화보의 최고 하이라이트 사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엄청난 고화질의 예술적인 누드 작품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떠올랐다.
이건 정말…….
흐음! 진짜 예술이다.
[허엇!] [으허억!]이번에는 확실히 들었다.
분명히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것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기분의 목소리, 아니 목소리들이었다.
‘누구지? 혹시 해모수와 그렌! 설마 그럴 리가?’
마루는 자신이 생각해도 황당한 추측에 즉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자신의 의식 안에 해모수와 그렌의 영체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마루: 이게 누구야? 해모수와 그렌 아저씨 아냐?] [해모수: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았지?] [그렌: 안녕!] [마루: 어떻게 알긴, 그렇게 놀라서 소리를 치는데 어떻게 몰라? 그리고 안녕이라니요? 지금 안녕 할 때가 아니잖아요?]마루가 화를 내자 해모수와 그렌은 즉시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가만있었다.
[해모수: …….] [그렌: …….]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마루: 지금 둘이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묵비권이라도 행사하겠다는 겁니까? 당장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말 안 할 거예요?] [그렌: 저… 사실은 우리도 잘 몰라.] [해모수: 형! 맞아요.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집에 돌아와서 잠이 들었는데, 눈뜨니까 이렇게 형의 몸속이었어요.] [마루: 그게 정말이야?] [해모수: 정말이에요. 맹세해요.]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기가 막혔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세상에! 다른 차원의, 다른 시간대의 두 영혼이 나에게 빙의를 해오다니! 이런 건 분명히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스토리인데……. 가만 내가 그동안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그 판타지 소설은 어떻게 됐지? 제목이 《혈(血)크》와 《소울넷(SOULNET)》이었지? 그런데 차기 작품은 나왔던가? 어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잠시 삼천포로 가출했던 마루의 정신이 돌아왔다.
[마루: 지금 이거 나한테 빙의한 거 맞죠?] [그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마루의 몸속이더라고.] [마루: 어휴!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이제는 빙의까지 경험해야 하다니. 그것도 한꺼번에 둘씩이나.]마루는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이대로 두 영혼이 계속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렌: 혹시, 이거 로테이션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마루: 네? 로테이션요?] [그렌: 응, 마루가 잠이 들면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깨어나 그중 하나로 빙의가 되는 거지. 그렇게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깨어난 사람의 몸속으로 둘씩 들어가게 되는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어.] [마루: 그건 오히려 확인하기 어렵지 않겠네요. 내가 잠이 들면 저절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해모수: 그래도 형! 당장 자는 것은 좀 곤란해요. 지금 방금 일어나 놓고 또 잘 거예요?]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그러다 자신의 노트북 화면에 지금 뭐가 떠있는지 생각났다.
왜 해모수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마루: 해모수! 너 솔직하게 말해봐. 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야? 아니면 지금 저 연예인 화보를 더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해모수: 혀, 형! 지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저런 음란한 여자의 몸을 보고 싶어 하겠어요?]해모수는 크게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이런 해모수의 태도에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루: 해모수! 너 지금 몇 살이야?] [해모수: 그건 갑자기 왜 물어봐요?] [마루: 열아홉 살인가?] [해모수: 아마 그 정도 될 거예요.] [마루: 한창 뜨거울 때지.] [그렌: 푸하하하하!]마루의 말에 그렌이 먼저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렌의 입장에서 보면 열아홉 살의 해모수나 스물여섯 살의 마루나 뜨거운 청춘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른세 살의 그렌도 젊다면 젊은 아직 한창의 나이였다.
지금 누가 누굴 보고 웃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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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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