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잠시 전령들에게 얘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해모수는 전투준비를 하는 해광호와 그의 병사들을 내버려 두고, 조금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령들에게 다가갔다.
“한 명은 여기 남아서 대기하고, 둘은 각각 영월소와 성산백호소에 가서 현재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다. 이상!”
해모수의 명령을 받은 두 전령은 즉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과 화살집을 넘기고 각각 영월소와 성산백호소를 향해 말 머리를 돌렸다.
눈치 빠른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해모수는 남은 전령 하나를 쳐다봤다.
아직도 속이 거북한지 잔뜩 인상을 쓴 전령이 멍청하게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해모수는 그를 향해 한마디 하려다 내버려 뒀다.
“어휴, 넌 그냥 여기서 쉬고 있어라.”
“예, 죄송합니다.”
하나 남은 전령의 상태가 영 메롱이었다.
저런 놈을 쓰느니 차라리 없는 셈 치고 내버려 두는 것이 더 좋을 듯했다.
해모수는 즉시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해광호와 병사들은 이미 쇠뇌에 화살을 장전해 놓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끄는 것보다 네가 우리를 이끄는 것이 좋겠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해모수는 해광호가 지휘권을 양보하자 굳이 겸양을 떨지 않았다.
“우리는 저기 앞에 보이는 넓은 길목까지만 갑니다. 절대 마을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왜구들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저 앞까지 빠르게 달려가서 주변의 왜구들에게 쇠뇌와 활로 공격을 합니다. 적들이 몰려오면 모두 함께 중간에 서있는 저 큰 나무 아래까지 이동한 후 다시 원거리 타격을 가합니다. 적들이 나무 아래까지 몰려오면 우리는 다시 이곳으로 물러선 후 적을 공격합니다.”
“만약 적들이 이 안까지 쫓아오면?”
“당연히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지요.”
“하하하. 재미있는 작전이군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거 진짜 묘수(妙手)네요.”
“좋은 복수(復讎)가 되겠어.”
여진족 출신 병사 셋이 해모수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고려 유민 출신 병사 둘도 그들과 얼굴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방은 무조건 쇠뇌를 씁니다. 그리고 쇠뇌 한 발은 만약의 사태를 위해 끝까지 쓰지 않고 남겨둡니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해모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해모수는 즉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진격하자는 의미였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해모수와 해광호 그리고 다섯 명의 병사, 아니 궁기병들이 일제히 동현을 향해 달려갔다.
“何だ, あいつら(뭐야 저놈들)?”
“明の兵士だ(명나라 병사들이다)!”
“捕まえて殺せ(잡아 죽여라)!”
약탈에 심취해 있던 왜구들에게 몇 명 되지도 않는 기병의 등장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유희에 불과했다.
근처에 있던 왜구들은 약탈한 물건을 바닥에 던져두고 해모수와 해광호 일행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지금이다. 쏴라!”
핑, 피피핑, 핑핑핑!
크악, 케엑, 커억, 으악…….
달려오던 기병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일제히 쇠뇌를 쐈다.
변변한 방어구를 갖춰 입지 않은 왜구 몇 놈이 쇠뇌용 화살에 맞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해모수와 해광호 그리고 다섯 명의 병사는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일 가까이 있는 순으로, 차례로 교차 사격을 가했다.
주변은 순식간에 왜구의 피와 비명으로 가득해졌다.
핑, 핑핑, 핑핑핑…….
크아악, 으아악, 아악, 큭…….
화살 하나가 왜구의 한쪽 눈을 관통해 뇌를 뚫었다.
뒤를 이은 화살은 목을 가르고 들어가 목뼈를 뚫고 삐쭉 튀어나왔다.
그렇게 십여 명의 왜구들이 쓰러지자 그제야 놀란 낭인무사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広く囲む(넓게 포위하라).”
해모수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루는 낭인무사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마루: 해모수, 저놈이 넓게 포위해서 잡으려고 한다.] [해모수: 그래요? 알겠어요.]해모수는 즉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저놈들이 우리를 넓게 포위하려고 합니다. 나무 있는 곳까지 천천히 후퇴합시다.”
“알았어.”
“예.”
“네.”
옥탑방에서 홀로 섬나라의 ‘이꾸’ 문화와 ‘야메떼’ 문화를 배운 마루!
어설픈 일본어 실력이나마 시간과 차원을 격하고 지금 이 순간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핑, 핑핑, 핑핑핑…….
크아악, 으아악, 아악, 큭…….
그사이 또다시 십여 명의 왜구들이 온몸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왜구들이 어느새 목숨이 아까운지 주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오히려 해모수 일행에게 마음 놓고 날뛰라며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격과 다름없었다.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쏘세요.”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앞으로 좀 더 갑시다.”
해모수는 왜구들이 머뭇거리면 머뭇거릴수록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그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사정거리에 있는 놈들만 착실하게 쏴 죽였다.
그가 쏜 날카로운 화살들이 왜구의 이마를 뚫고, 목을 관통하고, 심장에 박혔다.
“今何をしている(지금 뭐 하는 거야)? 一緒に攻撃しろ(함께 공격해라)!”
와아아아아아!
뒤늦게 나타난 낭인무사 하나가 왜구들에게 호통을 치며 공격을 독려했다.
이에 자극받은 왜구들이 일제히 해모수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제야 해모수는 손을 치켜들고는 빙글빙글 돌리며 외쳤다.
“나무 아래로 퇴각!”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그들은 바람처럼 달려서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했다.
“멈춰라! 모두 여기서 다시 공격 개시!”
핑, 핑핑, 핑핑핑…….
크엑, 으악, 카악, 커억…….
커다란 나무 아래까지 달려간 해모수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반전했다.
그러곤 쫓아오는 왜구들을 향해 마구 화살을 날려댔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땅바닥에 수십 명의 왜구들이 피를 질질 흘리며 쓰러지게 됐다.
그렇지만 활과 화살은 해모수 일행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 화살이 날아온다.”
“숲 입구로 퇴각!”
해모수는 일단 안전을 위해 퇴각 명령을 내렸다.
숲 입구에 도착하자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사이 해모수는 앞으로 조금 나가서 개량궁을 들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왜구의 활은 사거리가 짧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비록 고려의 각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능을 개량한 개량궁이다. 절대 사거리에서 뒤질 이유가 없어.’
해모수는 시위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활을 들고 다가오는 왜구 중 한 놈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호흡을 멈추고 활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는 시위를 놓았다.
피잉!
화살은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삽시간에 왜구의 머리통이 꼬치에 꿰이듯 단번에 뚫려버렸다.
풀썩!
활을 든 왜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광호와 병사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해모수의 멋진 궁술을 지켜본 해광호와 병사들은 그의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들은 해모수를 따라 자연스럽게 왜구의 궁수들만 집중적으로 노렸다.
집중사격을 받은 왜구의 궁수들이 화살에 맞아 하나같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궁수를 모두 잃자, 아니 원거리 타격 능력이 사라지자 왜구들에게 또다시 악몽이 되풀이됐다.
핑, 핑핑, 핑핑핑…….
크엑, 으악, 카악, 커억…….
해모수 일행은 신나게 화살을 날렸다.
화살에 맞은 왜구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왕창 몰려오면 뒤로 물러나서 활을 쐈다.
너무 많은 숫자가 추적해 오면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약이 오른 낭인무사들은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그들의 기병을 불러들였다.
또한 나무로 급조한 방패도 가져와 방패부대를 편성했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먼저 공격을 해온 것은 날카로운 대도(大刀)를 든 왜구의 기병 다섯이었다.
얼핏 보면 참마도(斬馬刀)와 구별하기 힘들게 생긴 왜식 대도!
그 무식한 놈을 들고 정면으로 달려오는 왜구의 기병은 엄청난 포스를 풍겼다.
한순간에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해모수가 외치는 한마디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저놈들 미친 거 아냐? 모두 사람을 노리지 말고 말을 쏘세요.”
그의 말에 다들 사람보다 훨씬 크기가 큰 말을 노리고 화살을 날렸다.
이히히히힝, 이히히히힝!
쿵, 데구르르!
우당탕, 쿵, 탕!
마갑(馬甲)도 씌우지 않은 군마!
그걸 타고 겁도 없이 궁기병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왜구의 기병들!
결코 끝이 좋을 수는 없었다.
궁기병이 쏜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자신의 말에 깔려 묵사발이 되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지며 즉사하는 놈도 있었다.
그나마 제일 온전한 편이 낙마하면서 척추가 부러져 그 자리에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우는 놈이었다.
물론 그런 모습은 해모수 일행에게 일말의 동정조차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해모수 일행이 더욱 날뛰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이었다.
하지만 왜구도 모두 머릿속에 똥만 넣고 다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문을 쪼개서 가져온 놈들과 나무로 대충 조잡하게 급조한 방패를 든 놈들이 나타나자 해모수 일행의 사정이 크게 나빠졌다.
정말 왜놈들의 손에 들린 것은 별게 아니었지만, 화살을 막아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궁기병의 효용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곳은 포기합니다. 뒤로 도망쳤다가 우회해서 반대편에서 공격합시다.”
“우하하하! 그거참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
동현의 입구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입구가 사방에 나있었고 왜구들도 이쪽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해모수 일행은 마을의 반대편으로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왜구들과 드잡이질을 벌였다.
원거리에서 왜구들을 활로 쏴 죽이며 착실히 숫자를 줄여나갔다.
뿌우우우우우웅!
한참 동안 신나게 적을 공격할 때, 해안가에서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해모수 일행을 상대하던 왜구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쫓아가자.”
“안 됩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내 말은 해안가로 가자는 소리야.”
“그것도 안 돼요. 저긴 숫자가 너무 많아요. 아차 하면 포위당해 몰살할 수도 있어요.”
해광호는 해모수의 만류에 입맛을 다시며 아까워했다.
그렇다고 아이처럼 똥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숫자가 줄면 그때 공격하는 것이 더 나을 듯했다.
이미 자신들이 잡아 죽인 왜구의 숫자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됐다.
이 정도면 일곱 명이 충분히 선전(善戰)한 셈이다.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이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숲에 매복을 해놓고 우리가 저놈들을 유인했으면 아마 왜구를 세 자리 숫자로 잡아 죽일 수 있었을 거예요.”
“흐음, 어쨌든 네 덕에 우리가 큰 공을 세우게 됐구나.”
“너무 큰 공을 세워도 좋지 않아요. 적당히 줄여야겠어요.”
해광호는 해모수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을 줄여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건……. 어?”
해모수가 해광호에게 설명을 하려는 순간!
그의 눈에 해대호가 이끄는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대호 총기께서 병력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직접 가서 만나보자.”
해광호는 해모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자 곧바로 말 머리를 돌렸다.
우두두두두두!
“모두 무사했구나!”
“어서 오십시오.”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해대호가 밝게 웃자 해광호와 해모수가 말에서 내린 후 그에게 군례를 올렸다.
뒤따라온 병사들도 모두 일제히 말에서 내려 군례를 했다.
“왜구의 시체가 많은 것을 보니 전투가 치열했던 모양이군.”
“말을 타고 도망 다니면서 원거리 타격만 했습니다. 해모수의 공이 큽니다.”
“그래?”
해광호가 해모수의 공이 크다고 하자, 그의 뒤에 서있던 병사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대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해모수를 쳐다봤다.
해모수는 그들에게 살짝 묵례를 하고는 빠르게 말했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 왜구들이 모두 퇴각한 것이 아니에요. 해안가를 보면 왜구의 관선이 남아있고, 약탈한 물건을 옮기는 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이 저놈들을 공격해 잡아 죽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작전을 한번 짜보자.”
“네.”
해대호는 일단 휘하의 소기들을 모두 불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