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62
62화
해광호와 해모수를 비롯해 직접 전투에 참여한 다섯 명의 병사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작전 회의를 했다.
해대호의 눈짓을 받은 해모수가 간단히 전투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말하자 다들 좋은 작전이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작전 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해대호의 명령이 떨어졌다.
“진군(進軍)!”
해대호의 호기로운 외침 소리가 해안가를 울렸다.
전면에 방패병이 걸어가고 바로 뒤에 창을 든 병사들이 바짝 붙었다.
그 뒤로 모든 병사들이 활을 들고 쫓아갔다.
그 모습에 놀란 왜구들이 동현에서 약탈한 물건을 배에 실어 나르다 말고 무기를 들었다.
우두두두두두!
성산백호소의 병사들과 왜구들의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해모수와 해광호를 비롯한 역전의 용사 다섯 명이 그 사이를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가며 활을 쏘았다.
핑, 피핑, 피피핑…….
컥, 으악, 크아악…….
화살에 맞은 왜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화가 난 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순식간에 왜구의 전열이 무너지고 혼란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帰ってこい! 行を立て(돌아와라! 줄을 서라)!”
낭인무사들이 급히 앞으로 나서서 소리를 질렀다.
왜구들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해모수와 해광호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만으로 왜구의 신경은 양쪽으로 분산됐다.
게다가 명나라 병사들을 우습게 봤는지 아직도 반수 이상은 약탈한 물건을 열심히 배에 싣고 있었다.
“멈춰! 일제사격!”
피핑, 피피피핑, 핑핑핑핑…….
쏴아아아아!
크악, 으악, 아악, 커억, 큭…….
해대호는 병사들을 이끌고, 마치 근접전을 치를 것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적당한 사거리를 확보하자 방패병을 앞에 세워두곤 뒤쪽에서 여유 있게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활을 쏘는 숫자가 이미 수십 명이다.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제는 소나기처럼 들린다.
쏟아지는 화살의 비를 정통으로 맞은 왜구들의 몸에 붉은 꽃이 피며 번져갔다.
“ちくしょう(畜生), だまされた. 突撃(개새끼들, 속았다. 돌격)!”
와아아아아아아!
눈앞에서 십여 명의 왜구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낭인무사들은 속은 것을 알고 즉시 돌격 명령을 내렸다.
수십 명의 왜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개떼처럼 달려왔다.
그 피의 광기와 살기는 멀리서 보고 있던 병사들의 마음을 공포로 물들였다.
“일제사격 후 뒤로 십보(十步) 이동!”
해대호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사전에 계획한 대로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해대호의 명령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즉시 화살을 날린 다음 뒤로 열 걸음 물러섰다.
“다시 사격 후 뒤로 십보 이동!”
병사들이 화살을 쏘고 뒤로 이동하고, 다시 화살을 쏘고 뒤로 움직였다.
그들은 이 반복적인 행위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 심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대호와 해모수도 이제 갓 신병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왜구와 근접전을 펼쳐 이길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근접전은 무조건 피했다.
아예 처음부터 원거리 타격으로 승부를 보려 한 것이다.
근접전을 펼칠 것처럼 하다가 활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돌변해서 신나게 화살을 날려댄 것도 모두 이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방패병 밀집 방어! 창병은 대기하라.”
계속된 화살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를 기막히게 뚫고 달려드는 왜구들이 있었다.
해대호는 밀집 방어를 펼친 채 방패병을 전면에 내세워 든든한 벽을 쌓았다.
이미 도망치기에는 왜구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채 해대호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사전에 예상한 범주 안이었다.
해대호와 소기들은 공포에 전염되지 않고 휘하의 병사들을 잘 이끌었다.
와아아아아아!
살기 찬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왜도를 들고,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왜구들의 모습!
가히 야차(夜叉)와도 같았다.
그런 왜구들의 노란 이빨이 이제는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두두두두두!
그때, 어디선가 대지를 진동시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왜구들의 뒤쪽에서 쐐기 모양으로 돌진하는 궁기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해모수와 해광호 그리고 다섯 명의 말을 탄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중앙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참마도로 왜구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목이 댕강 잘리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옆구리가 베여 쩍 벌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척추가 끊어지는 고통에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참혹한 전장!
어쩌면 왜구들은 자신이 쌓은 업보(業報)에 대한 대가를 지옥이 아닌 현세(現世)에서 미리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에 질세라, 해모수도 환도로 눈에 걸리는 왜구들의 목을 닥치는 대로 후려쳤다.
마치 오이의 꼭지를 따듯, 몸에서 머리통을 사정없이 쩍쩍 분리시켰다.
머리가 사라진 왜구들의 몸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와 바닥을 온통 붉은 물감으로 물들여 갔다.
그 엄청난 박력에 돌격해 오던 왜구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우두두두두두!
해모수와 해광호를 비롯한 다섯 명의 궁기병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틀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전장을 빠져나가자 해대호가 크게 외쳤다.
“방패병! 충격에 대비하라.”
쿵, 쿠쿵, 쿵!
창, 차차창, 창창창!
마침내 왜구들이 달려와 온몸으로 방패에 부딪쳤다.
일부는 방패의 위로 열심히 칼질을 했다.
하지만 방어만을 생각해 만든 사각 방패의 벽은 튼튼했다.
적들에게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포위 공격!”
와아아아아아!
이번에는 해대호가 이끄는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움직였다.
방패병들의 좌우에서 병사들이 나와 빠르게 왜구들을 반 포위했다.
창병이 방패병 사이에서 왜구들을 향해 창을 쑤셔댔다.
화가 난 왜구들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격하게 반격해 왔다.
그러나 이미 병력의 숫자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있었다.
들려오는 것은 대부분 왜구들이 내지른 단말마뿐이었다.
창, 차차창, 창창창!
으악, 크악, 카악, 커억, 아악…….
사실 수십 명이나 되는 왜구들의 일제 돌격은 무시무시했다.
허나 활을 쏘고 뒤로 이동하고 다시 활을 쏘고 뒤로 이동하는 전법으로 인해 거리를 벌렸고, 화살에 맞은 왜구들은 빠르게 전투 불능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거기에다 돌진해 오는 왜구의 뒤편에서 중앙을 가로지르며 파고든 공격!
바로 해모수와 궁기병들의 활약으로 인해 다시 왜구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 무기라도 한번 휘둘러 본 왜구는 채 스물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제 반 포위된 상태로 집중 공격까지 당해야 했다.
“방패병 전면 압박! 창병은 보조하라. 마무리는 화살이다.”
와아아아아아!
해대호가 다시 큰 목소리로 명령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바로 학살이 시작됐다.
동수(同數)라면 절대 왜구들과 근접전에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두 배 이상의 숫자로 포위 공격을 한다면 승리가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방패병이 전면에서 압박하고 좌우에서 창병이 보조하는 사이,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몸에 하나둘씩 박히자 왜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쉽게 말해 왜구들과의 전투는 철저히 원거리 타격으로 끝냈다는 말이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승리했다.”
마지막 왜구가 쓰러지자 다들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해대호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해모수와 해광호의 입가에도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허나 전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모두 창으로 확인 사살해라.”
해광호가 독하게 명령을 내렸다.
굳이 왜구를 살려줄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병사들이 실전에서 피 맛을 보길 원했다.
적을 죽여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
가히 백전노장과 신병 정도의 차이가 생긴다.
어차피 해적에 불과한 쓰레기 같은 놈들이다.
한 놈이라도 빨리 죽여 없애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푹, 푸욱, 푹푹!
으악, 크악, 컥, 켁…….
여기저기서 끔찍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흥분한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은 너도나도 창칼을 들고 중상을 입어 다 죽어가는 왜구들의 목과 심장에 구멍을 냈다.
처음에는 공포에 떨던 병사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는 살짝 피의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원군(援軍)이다.”
“영율소의 병사들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다.”
“전열을 정비하라. 다시 진군한다.”
해대호는 빠르게 전열을 정비해 병사들을 아까처럼 질서 정연하게 진군시켰다.
그들의 진군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중간중간 쓰러져 있는 왜구들의 멱을 따버려야 했기 때문에 조금씩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한편 영율소의 병사들은 무슨 생각인지 무작정 왜구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해모수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해모수: 아니 저 미친놈들! 왜 저렇게 막무가내로 달려가지?] [마루: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보네.] [그렌: 공을 탐내는 것 같은데…….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너무 대책 없이 달려든다.] [마루: 해모수! 저놈들 신경 쓰지 말고, 너는 어서 저기 조각배들이나 확보해.] [그렌: 그게 좋겠다. 저놈들은 왜구들과 싸우라고 내버려 두고, 빨리 조각배에 있는 왜구를 잡아 죽여. 배가 없으면 저놈들은 어디로 도망가지도 못해.] [해모수: 그렇군요. 잘하면 저 관선도 나포할 수 있겠어요.] [마루: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지.] [그렌: 조각배를 빼앗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될 것 같다.] [해모수: 기회를 봐서 저걸로 관선에 오르는 것도 좋겠어요.]해모수는 급히 자신의 생각을 해광호와 다섯 명의 궁기병에게 알렸다.
이제는 궁기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섯 명의 병사는 말에서 활을 쏘는 것이 익숙했다.
아니 어쩌면 저들은 원래부터 궁기병의 피를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조각배를 탈취하자는 말입니까?”
“맞아요. 저게 없으면 왜구는 독 안에 갇힌 쥐가 됩니다.”
“좋은 생각이야. 한번 해보자.”
해광호가 해모수의 의견에 찬성하자 다섯 명의 궁기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작전은 별거 아니었다.
그냥 가까이 다가가서 활로 마구 쏴 죽이는 것이다.
우두두두두두!
해모수 일행은 왜구와 영율소 병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몇 척의 조각배를 향해 달려갔다.
약탈한 물건을 배에 싣고 있는 왜구들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활을 쏴줬다.
핑, 핑핑, 핑핑핑…….
크엑, 으악, 카악, 커억…….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쏟아지는 화살 공격!
왜구들은 속수무책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이걸 보니 몽골의 궁기병이 괜히 세계를 제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명적인 전략적 우위를 가진 채 싸운다고나 할까?
적의 전투력과 방어력이 아무리 높아도 소용이 없다.
누구든 개활지에서 이런 식으로 치고 빠지는 공격을 견뎌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다 죽었다. 이제 조각배로 올라가서 저쪽으로 옮기자!”
“예.”
해광호가 외치자 궁기병 다섯 명이 즉시 말에서 뛰어내려 조각배로 달려갔다.
그들은 조각배 위로 오르자 왜구가 약탈해 온 물건들을 전부 밖으로 집어 던졌다.
배가 가벼워지자 모두 노를 잡고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이들이 조각배를 몽땅 이동시킨 방향은 왜구와 영율소 병사들이 한창 싸우고 있는 전장의 반대편인 왼쪽 해안가였다.
“제가 가서 큰형님을 모시고 올게요.”
“이쪽으로 오지 말고 왼쪽 해안가에서 보자.”
“네.”
해모수는 해광호의 의도를 알아채고 즉시 말에 박차를 가했다.
군마는 바람처럼 달려갔다.
해모수는 해대호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진군하던 병사들은 즉시 해대호의 명령에 따라 왼쪽 해안가로 방향을 바꿨다.
“어쩌려고 그래?”
“저 군선을 노획하려고요.”
“진짜야?”
“네. 믿을 수 있는 날랜 병사 열다섯만 주세요.”
“알겠다.”
해대호는 즉시 휘하의 소기들을 소집했다.
열다섯 명의 날랜 병사를 선발해 해모수에게 붙여줬다.
또한 성산백호소에 전령을 보내 남은 병력을 몽땅 불러들였다.
물론 감시탑에서 왜구의 관선을 감시할 최소한의 병사와 전령은 남겨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