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해모수는 병사들을 이끌고 왼쪽 해안가로 달려갔다.
해안가에는 이미 조각배들이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 안에 있던 궁기병 하나가 해모수를 보자 손으로 관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왜구들의 관선에서 조각배가 내려옵니다.”
“뭐시라?”
해모수는 고개를 돌려 왜구의 관선을 바라봤다.
정말 조각배가 내려오고 왜구들이 그 위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마루: 이건 하늘이 내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야.] [그렌: 아예 관선을 갖다 바치려고 드는군.] [마루: 관선에 타고 있던 놈들은 해모수 일행이 조각배를 탈취해 갔으니 자기편을 구하려고 조각배를 내린 겁니다.] [그렌: 그렇겠지. 하지만 저렇게 다 기어 나오면 관선은 누가 지켜? 배 안은 텅 비게 되잖아.] [해모수: 그러게 말이에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섯 명의 궁기병과 열다섯 명의 병사에게 말했다.
“이건 아주 절호의 기회입니다. 모두 조각배 다섯에 나눠 타고 기다렸다가 저들이 해안가에 도착하면 우리는 반대로 관선을 향해 출발합시다.”
“예!”
“네.”
다들 성산백호소의 실세인 해모수의 말에 이견을 내지 않았다.
특히 같이 싸우면서 전우애를 다지게 된 궁기병 다섯 명은 오히려 재미있다고 킥킥대며 웃기까지 했다.
뒤늦게 해광호가 합류하자 해모수가 다시 한번 작전을 설명해 줬다.
영율소에서 출동한 병사들과 왜구들의 전투는 점점 치열해졌다.
해대호는 병사들이 왜구들과 난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난전에 빠진 왜구의 뒤를 치다가 같이 난전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관선에서 내린 조각배에 타고 다가오는 왜구들을 노리기로 결정했다.
저 조각배들만 탈취하면 왜구들은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럼 언제든지 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해모수와 해광호 그리고 다섯 궁기병은 군마를 모두 모아 해대호에게 넘겼다.
해대호는 말을 탈 줄 알고 활을 잘 쏘는 병사들을 뽑아 군마를 배정해 임시로 궁기병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앞서 궁기병을 어떻게 써먹는지 해모수가 모범을 보여줬다.
그러니 굳이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서 잘 싸울 것이다.
영율소에서 출동한 병사들이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해안가에 왜구를 태운 조각배들이 도착했다.
그 모습에 양쪽에서 동시에 병사들이 움직였다.
하나는 해모수 일행이 조각배를 타고 왜구의 관선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대호가 말을 탄 병사들을 보내 조각배 안의 왜구들을 공격게 한 것이다.
양동작전(陽動作戰)은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왜구의 관선에선 그들이 보낸 조각배가 해안에 도착해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해모수 일행이 조각배를 타고 반대쪽에서 관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발견을 하긴 했다.
해모수와 병사들이 관선의 뒤편에 조각배를 대고 줄사다리를 타고 배 위로 거의 다 기어 올라왔을 때 말이다.
운이 좋았다.
그리고 더 운이 좋은 것은 관선 안에 노 젓는 노예들을 제외하고 왜구는 채 열 명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 위로 올라온 병사들은 일제히 왜구들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왜구들이 인상을 쓰며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창, 차차창, 창창!
크악, 커억, 으악!
병장기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자극했다.
해모수와 해광호도 급히 개량궁을 치켜들었다.
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보는 족족 화살을 날렸다.
핑핑핑핑!
켁! 아악!
왜구가 다섯 놈쯤 남게 되자 그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싸워봤자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무기를 버렸다.
그들은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항복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같이 싸우던 병사들은 전혀 싸움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살기를 머금은 창칼이 날카롭게 빛나며 쇄도했다.
놀란 해모수가 즉시 중간에 끼어들어 왜구를 죽이려는 병사들을 만류했다.
“지금 죽이면 안 돼. 이 배를 움직일 인원이 필요하다.”
해광호는 해모수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봤다.
“배를 어디로 옮기려고?”
“일단 왜구의 관선을 성산백호소 해안가로 이동시킬 겁니다.”
“그다음은?”
“당연히 이 배 선창에 들어있는 물건을 쓱싹해야죠.”
“아! 크흐흐흐… 무슨 말인지 알았다. 내가 먼저 내려가서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해 볼게.”
해광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선창에 뭐가 있는지 상상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조심하세요.”
“알았어.”
“참, 노를 젓는 노예들도 확인해 주세요.”
“그래.”
해광호는 궁기병으로 활약한 고려 출신 병사 둘을 불러서 같이 선창으로 내려갔다.
그사이 해모수는 포로로 잡은 왜구들을 닦달해서 관선을 바다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해모수의 곁으로 여진 출신 병사 셋이 다가왔다.
“정말 대단한 무용(武勇)입니다.”
그들 중 하나가 다짜고짜 해모수의 무용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다들 수고해 주신 덕분이지요.”
해모수가 겸손히 머리를 숙였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거야 세 분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해모수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장에서 같이 싸웠으니 전우(戰友)라 할 수 있고, 친구가 되었다면 생사를 함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해씨 형제들과 뜻을 같이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푸하하하하,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충성 맹세라도 할까요?”
“겉으로 충성해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음이 단심(丹心)이라야 하나가 되지요.”
“내 심장은 단 한 번도 붉지 않은 적이 없소. 여진과 발해가 친구였던 것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저희를 많이 도와주세요.”
“내가 볼 때는 앞으로 우리가 잘 봐달라고 부탁드려야 할 것 같소이다.”
“하하하, 어느 쪽이든 서로 이끌고 도와주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해모수의 용감무쌍함에 감동한 세 명의 여진족 출신 병사!
그들은 화끈하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뜻을 같이하자고 해모수가 운을 띄우자마자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해모수는 이 세 명의 여진족 출신 병사가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론 쓸 만한 인재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됐다.
[마루: 해모수, 잘했다. 궁기병은 구하려고 해도 어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병종이 아니야. 앞으로 이들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해모수: 그런데 이들을 쉽게 믿어도 될까요?] [그렌: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자신의 목적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거지.] [해모수: 그래요?] [마루: 일단은 믿음을 가지고 대해야지. 그리고 만약 배반을 하면 반드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네가 힘을 길러야지.] [그렌: 마루의 말이 정답이네.] [해모수: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정했다.
그는 여진족 출신 병사 세 명과 통성명을 했다.
또한 이들의 활약을 조목조목 칭찬해 주면서 확실히 환심을 샀다.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초원에서 같이 자란 죽마고우(竹馬故友)다.
부모님을 따라 산동으로 들어왔다가 난리 통에 가족들과 헤어져 지금껏 셋이 함께 살아왔다고 한다.
이번에 산동성 전역에서 실시된 강제 징병에 걸려 억지로 끌려왔고 성산백호소의 병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속으로 아주 불만이 대단했다.
하지만 오늘 해모수와 같이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한번 벌이고 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몸 안에 숨겨져 있던 전투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또한 해모수와 운명적으로 강하게 묶여있는 것을 깨닫고는 먼저 접근했던 것이다.
다행히 해모수도 이들이 마음에 들었다.
나름 성격이나 행동거지도 궁합이 잘 맞았다.
여진 삼총사는 해모수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꼭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덩달아 이들의 얼굴엔 연신 미소가 한가득 그려졌다.
“해모수!”
무슨 일인지 해광호가 해모수를 찾았다.
“네, 갑니다. 다들 이따 봅시다.”
해모수는 여진 삼총사에게 손을 들어주곤 선창으로 걸어갔다.
그가 다가오자 해광호는 좌우를 한번 빠르게 살폈다.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해광호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창에 금은보화와 비단, 도자기, 고려 인삼(高麗人蔘) 등 보물이 한가득하다.”
“셋째 형 말고 선창 안으로 또 누가 들어갔었어요?”
“나만 들어가서 확인했다. 하지만 같이 간 병사 두 명도 바보는 아닐 테니… 뭔가 귀중한 물건이 들어있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당장 선창부터 봉인(封印)하세요. 성산백호소 해안가에 도착하면 금은보화와 고려 인삼만 챙겨서 은밀한 곳에 숨겨둡시다.”
“알았다. 그런데 저걸 다 먹으려는 속셈이 아니었냐?”
“당연히 아니죠. 만약 다 가져가면 당연히 의심을 살 테니 적당히 챙겨야죠. 그래서 부피가 큰 비단과 도자기, 곡물 같은 것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금은보화와 고려 인삼만 챙기려는 겁니다.”
해광호는 해모수의 생각에 적극 찬동했다.
해모수는 금은보화와 고려 인삼을 챙기기 전에 먼저 앞으로 함께할 이들을 뽑기로 했다.
“셋째 형, 아무래도 선창에 같이 내려간 두 병사를 포섭해야겠어요.”
“으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가서 한번 얘기해 볼게.”
“그러세요. 저기 세 여진 병사는 제가 이미 포섭해 놨어요.”
“그으래? 잘됐구나. 그럼 전부 일곱이네.”
“금은보화와 고려 인삼이 들어있는 상자를 옮길 수 있는 적당한 숫자입니다.”
해광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궁기병으로 활약한 고려 유민 출신 병사 둘을 데리고 갑판 한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셋이 뭐라고 얘기를 나누자 대뜸 두 병사가 해광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해광호가 슬쩍 한 손을 치켜들어 일이 잘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에 해모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포로가 된 왜구들을 이용해 그들의 관선을 성산백호소 앞 해안까지 이동시키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면 동현 마을 해안가에서 왜구들과 몇 번의 전투를 더 벌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배에서 닻을 내리자 해모수는 즉시 해광호와 다섯 명의 궁기병을 데리고 선창으로 들어갔다.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를 제외한 병사 두 명의 이름은 홍유와 강조였다.
그들은 선창 안에 들어있는 금은보화를 비롯한 보물들을 보자 입을 딱 벌렸다.
“이게 다 뭐야?”
“금은보화가 상자에 가득하네.”
“뭔 놈의 보석들이 이렇게 크냐?”
“비단이 아주 산처럼 쌓여있구먼.”
“이거 전부 비싼 도자기 아냐?”
해모수는 정신이 살짝 나가있는 해광호의 어깨를 툭 치며 작게 말했다.
“다른 것은 일절 필요 없어요. 금은보화가 담긴 상자 두 개와 고려 인삼이 담긴 상자만 챙기세요.”
“알았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다.
이런 것을 혼자 먹으려고 하면 당연히 배탈이 난다.
차라리 알맹이만 쏙 빼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챙길 것을 다 챙긴 해모수와 해광호는 다시 선창을 봉인했다.
해모수와 해광호는 일행을 데리고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렸다.
조각배를 타고 해안가에 도착하자, 그들의 뒤로 포로가 된 왜구들과 노를 젓는 노예들이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관선을 지키는 병사 몇 명만 남겨두고 그들은 모두 성산백호소로 이동했다.
“문 열어라.”
“아니 이게 다 뭐야?”
“잔말 말고 열기나 해.”
성산백호소의 목책을 지키던 병사들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해광호는 목책 안으로 들어가자 즉시 병사들을 동원했다.
제일 먼저 왜구들을 밧줄로 꽁꽁 묶고 튼튼한 창고 하나에 모두 처박았다.
그 옆의 창고도 하나 비우고 왜구의 관선에서 노를 젓던 노예들을 깡그리 안에 몰아넣은 후 문을 걸어 잠갔다.
해모수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상자 두 개를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에 숨겨뒀다.
대신 고려 인삼이 들어있는 상자들은 해대호의 방 안에 들여놓았다.
그런 후, 마구간으로 가서 당나귀 네 마리를 끌어내어 등에 안장을 올렸다.
급한 대로 이거라도 타고 동현으로 내려가려는 것이다.
“셋째 형은 이곳을 지키세요. 난 이들과 같이 동현으로 가볼게요.”
“조심해라.”
“네.”
해모수는 해광호에게 손을 흔들며 당나귀에 올라탔다.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도 당나귀를 타고 그의 뒤를 쫓았다.
해광호는 해대호가 이끄는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에 대한 걱정보다 당장 당나귀를 타고 가는 그들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배꼽을 잡았다.
어째 아까 질풍처럼 목책을 빠져나가던 위용과는 참 거리가 먼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