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쿠, 쿠쿵, 쿵쿵쿵!
창, 차창, 창창창!
동굴의 반대편에 도착하자 땅이 울리는 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제니퍼와 용병들은 급히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상황은 어때요?”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몇 개 안 되는 구멍은 아직 작아서 덩치가 큰 우르카이 전사가 동시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구멍이 뚫리고 있고, 이미 뚫린 구멍의 크기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큰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제니퍼의 물음에 레인저 하나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서 브리핑했다.
우르카이 전사들이 구멍을 뚫고 있는 곳은 동굴 안쪽 끝에 있는 움푹하게 파인 벽이다.
동굴 안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용병들과 레인저 여럿이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들은 연신 화살을 날리고 창으로 우르카이 전사를 찌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제니퍼는 빠르게 눈으로 주변을 한번 훑어봤다.
당장 급한 것은 지친 레인저와 용병들을 조금 쉬게 해주는 일이었다.
“다들 지친 것 같은데 우리가 교대해 드릴까요?”
“그거 듣던 중 아주 반가운 소립니다.”
다들 제니퍼의 말에 반색을 했다.
덩치가 크고 체력이 월등히 좋은 우르카이 전사들과 좁은 구멍을 사이에 두고 드잡이질을 하는 일은 체력의 소모가 무척 컸다.
그래서 최소한 30분 간격으로 2교대는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르카이 전사들을 상대하는 레인저와 용병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차에, 지원을 나온 제니퍼와 용병들이 당장 교대를 해주겠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대는 곧바로 이뤄졌다.
제니퍼와 새로 지원 온 용병들은 지친 레인저와 용병 일부를 올려 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그들은 금세 지옥 같은 반복 작업에 질려갔다.
우르카이 전사가 몸으로 밀고 들어오면 창으로 찔렀다.
얼굴이 보이면 활로 쏴서 죽이는 일을 무한 반복했다.
쿵! 와르르르르!
갑자기 왼쪽 맨 끝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길, 구멍이 하나 더 뚫렸다.”
토드의 말에 뒤에서 쉬고 있던 레인저와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의 눈에 드레이크의 아가리처럼 생긴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운이 없네. 이번에 뚫린 구멍은 너무 크다.”
“다들 뭐 해? 바위라도 굴려서 구멍을 막아야지.”
“그래. 맞다. 어서 움직이자.”
레이저와 용병들은 급한 대로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굴려 새로 생겨난 구멍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곧이어 우르카이 전사가 구멍을 통해 들어와 위협적인 고함을 질러댔다.
쿠워어어어!
그러나 이미 우르카이 전사들과 질리게 대거리를 하고 있는 레인저와 용병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대신 바로 분노의 응징을 가했다.
“죽어랏!”
푹, 푸푸푹!
“쿠웨에엑!”
천하에 두려울 게 없다는 우르카이 전사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쑤셔대는 창에 온몸이 찔리자 비명을 안 지를 수가 없었다.
놀란 우르카이 전사가 뒤로 물러나자 새로운 우르카이 전사가 바통 터치를 하고 나타났다.
덩치가 큰 우르카이 전사는 무식하게 힘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구멍에 밀어 넣은 바윗덩어리가 단단한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주었다.
구멍의 입구 자체를 좁혀버리자 우르카이 전사는 상체만 앞으로 쑥 내민 채 불안한 자세로 레인저와 용병의 활과 창을 상대해야 했다.
그래도 우르카이 전사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이쪽은 세 명이나 동원해야 하니 확실히 수지가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쿵! 와르르르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에는 벽의 오른쪽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젠장맞을! 또 뚫렸네.”
“빨리 막아.”
“방패로 막고 있을 테니까 당장 바위 좀 굴려와.”
“이 근처에 굴릴 바위가 어디 있어.”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빨리 굴려와.”
쉬고 있던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새로 난 구멍 앞에 서서 방패를 동굴 바닥에 내려찍고는 탄탄하게 세웠다.
그 뒤로 레인저들이 활을 들고 포진했다.
임시로 이렇게라도 우르카이 전사의 공격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토드, 슐러, 도너 나가서 구멍을 막을 만한 바위를 찾아와.”
“오케이.”
“네.”
“콜!”
제니퍼가 소리치자 토드, 슐러, 도너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동굴 안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거라도 가져가자.”
“너무 작아.”
“그럼 저건 어때?”
“너무 큰 거 아니야?”
“큰 게 차라리 낫다. 저거로 하자.”
셋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 하나를 지목했다.
그러고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열심히 굴리고, 밀고, 끌고 해서 간신히 구멍을 향해 옮겼다.
“헥헥, 다들 이리 와서 좀 도와줘.”
토드가 지친 목소리로 소리치자 용병 몇 명이 달려와 힘을 보탰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여러 명이 함께 힘을 쓰자 아까와는 달리 좀 수월하게 바위를 옮길 수 있었다.
쿵!
거대한 바위 하나가 새로 뚫린 구멍 한쪽을 틀어막았다.
이 바위는 구멍의 크기를 줄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연히 레인저와 용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겨우 한숨 돌렸다.”
“아! 난 죽을 것 같아.”
“잠시만 기다려. 내가 가서 지원을 요청하고 올게.”
“아니야. 차라리 내가 가겠어.”
토르와 슐러의 말에 제니퍼가 소리쳤다.
제니퍼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직접 가서 이 상황을 필립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을 빠르게 달려갔다.
거의 전력 질주에 가까운 속도라 금방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달리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멀리 동굴의 벽 한쪽이 또다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니퍼는 이를 악물고 허파가 터져라 질주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믿음직한 그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렌 님,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제발 빨리 돌아오세요.’
제니퍼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그렌이 돌아오기를 소망했다.
그렌이 돌아오기만 하면 왠지 지금의 위기가 금세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 * *
100미터가 넘어가는 고층 빌딩을 세우는 공사는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는다.
몇 년의 공사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의 노력과 중장비가 동원돼야만 가능하다.
요새는 커튼월 기법 같은 최신 설계 공법이 발달해서 그나마 공사 기간이 많이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고층 빌딩을 무너뜨리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놀랍게도 겨우 몇십 초에 불과하다.
수년 동안 피땀 흘려 건설한 수고가 무색하게, 폭약을 써서 건축물(구조물)을 해체하는 데몰리션(발파 해체 공법)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렌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고위 서클의 마법사도 아닌, 이제 겨우 2서클을 만드는 데 들어간 세월이 무려 10년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렵게 이룩한 서클을 부수고 해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에 불과했다.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인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강한 탈력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무기력증의 바다에 빠진 것같이 허우적댔다.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마루와 해모수가 그걸 보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마루: 그렌 형! 정신 차려요.] [해모수: 그렌 아저씨! 왜 그래요? 정신 나갔어요?] [그렌: 어? 아! 미안. 서클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충격 때문에 내가 잠시 정신 줄을 놓았던 모양이다.] [마루: 이제 괜찮으세요?] [해모수: 어휴, 깜짝 놀랐네.] [그렌: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나 때문에 둘이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셋 중에 가장 맏형으로 듬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허당 같은 비루함만 보여주고 있었다.
[마루: 조금 쉬도록 해요. 마음이 가라앉으면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그렌: 아니야.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그리고 나 괜찮아. 바로 시작할 수 있어.] [해모수: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어차피 그렌 아저씨가 처음 기초만 잡아놓으면 마나를 모으는 것은 제가 하면 되니까요.] [마루: 그건 그렇지. 정말 괜찮겠어요?]마루는 좀 불안했다.
괜히 성급하게 시작해서 대사(大事)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렌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렌: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야. 한시라도 빨리 내가 힘을 되찾아야 해. 현재 나는 서클을 잃어버린 마법사야. 어린아이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했단 말이야.] [마루: 조심하세요.] [그렌: 그래. 조심할게.] [해모수: 그럼 지금 시작하는 겁니까?] [그렌: 응, 바로 시작한다.]그렌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고대 마법서를 해석해서 얻은 비전대로 혼돈 마법학의 기초를 닦는 작업을 시작했다.
서클 마법은 심장의 옆에 마나의 고리를 만들어 그곳에 마나를 쌓고 회전시킨다.
한계까지 마나가 축척되면 다시 새로운 마나의 고리를 만들어 마나를 흡수하고 회전시킨다.
마나의 고리는 서로 부딪치지 않고 대칭과 조화를 이루며 회전하고 또 공명한다.
그렇게 계속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마나의 고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마나를 불리며 강해지는 것이다.
반면 혼돈 마법은 마나의 고리 대신 공처럼 생긴 카오스 볼을 만든다.
이곳에 마나를 쌓고 회전시키며 점점 크기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서클 마법과 다른 점은 아무리 마나가 많이 쌓여도 마나의 볼, 즉 카오스 볼의 숫자를 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가상의 원심력을 이용해 압축을 한다.
강력한 의지로 카오스 볼을 회전시켜 마나를 압축하면서 점점 크기를 늘려나가면, 서클 마법과는 달리 제한 없이 상위 레벨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혼돈 마법학에서 사용하는 마법의 술식은 서클 마법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더 단순하고 간단하다.
그래서 위력은 많이 약하지만, 대신 빠르고 정교하게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
혼돈 마법학의 시작은 카오스 볼을 만드는 작업부터다.
혼돈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카오스 볼을 가지고 사용한다.
그렌은 고대 마법서를 해석해서 얻은 비전 그대로 카오스 볼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해 강한 의지를 불어 넣고 심혈을 기울여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라고 하는 에비비틱란과 우란의 씨앗(난초의 일종, 약 110만 개를 모아야만 겨우 1그램이 됨)만큼 작은 카오스 볼을 하나 만들어 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카오스 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카오스 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마나 덕분이다.
강제로 서클을 부수고 해체시켜 마나를 몸 밖으로 배출시켰다.
그의 서클에서 떨어져 나온 마나는 아직 그렌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그의 몸에서 그리 멀리 떠나있지 않았다.
물론 마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렌: 카오스 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마루: 수고하셨어요.]그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혼돈 마법학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잘 내디딘 것이다.
혼돈 마법의 시작인 카오스 볼이 수백 년의 시간을 격하고 드디어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모수: 그럼 이제 제 차례인가요? 바로 시작합니다.]해모수는 기다리기가 지루했는지 그렌이 카오스 볼을 만들자 바로 몸의 통제권을 가져가 버렸다.
그러곤 이제 본격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웅!
해모수에게는 서클이나 카오스 볼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몸도 아니었고 마나를 모으는 것은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절대적으로 좌우했다.
거기에다 그렌의 서클에서 떨어져 나온 마나들이 아직도 그의 몸 주변에 가득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렌에게 행운으로 돌아왔다.
우웅!
에비비틱란과 우란의 씨앗만 한 카오스 볼에 마나가 빨려 들어갔다.
카오스 볼은 빠르게 덩치를 키워 겨자씨만큼 커졌다.
겨자씨만 한 카오스 볼은 다시 열심히 마나를 끌어모아 좁쌀만큼 덩치를 불렸고 더욱 많은 마나를 빨아들였다.
좁쌀 크기의 카오스 볼은 쌀알 크기로 변하면서 서서히 회전을 시작했다.
쌀알 크기의 카오스 볼은 팥알만 해졌고 점점 크기를 불려 다시 콩알만 해졌다.
카오스 볼이 점점 덩치를 불려갈수록 회전은 더욱 강하고 빨라졌다.
그로 인해 막대한 양의 마나가 순식간에 압축되고 정제되어 갔다.
카오스 볼은 진주알만 한 크기에서 한동안 더 이상 덩치를 불리지 않고 마나만을 빨아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를 넘었는지 다시 빠르게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