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우와! 진짜 넓다.”
“쓸 만하네.”
윤아가 부러움이 섞인 말투로 옥타브를 높였다.
김영희 여사는 오히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매처럼 날카로운 눈이 방과 부엌, 거실을 막론하고 온 집 안을 샅샅이 스캔(scan)하듯 훑고 지나갔다.
“마루야, 이게 네 방이지?”
“네, 여기가 제 방이고 거실 반대편에 빈방이 하나 더 있어요.”
마루의 말에 윤아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쏜살같이 거실을 가로지르며 반대편 방을 향해 달려갔다.
덜컹!
그녀는 문을 뽑아버릴 기세로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곤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여기도 괜찮네. 엄마! 나 이리 이사 올래.”
쫙!
“꺄악!”
방앗간에서 찰지게 떡을 치는 소리가 윤아의 등짝에서 울려 퍼졌다.
윤아는 몸을 활처럼 휘고 몸을 비비 꼬면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네가 정녕 죽고 잡냐?”
개그인지 아니면 원래 말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영희 여사의 사투리에 윤아는 찔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격렬하게 반항했다.
“엄마, 왜 때려? 여기 방 하나 남으니까 내가 좀 쓰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네 방 놔두고 여길 네가 왜 와? 그리고 여기 네가 얻었냐? 네 오빠가 월세 내고 처음 사는 집이잖아. 여동생이 돼가지고 오빠를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맨날 뭔가 뜯어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쯧쯧쯧!”
윤아는 김영희의 폭풍 잔소리에 할 말을 잃고 마루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애절해 보였다.
물론 그건 100퍼센트 연극이다.
하지만 마루는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당해주며 살아왔다.
그에게는 뭐를 해도 귀엽고 예쁜 막내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곤란하고 한 달 후에 한번 생각해 볼게.”
“정말이지?”
“응.”
윤아는 마루의 말에 손으로 등을 벅벅 긁으면서도 의기양양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팩 돌리더니 김영희 여사를 째려봤다.
“엄마! 들었지? 마루 오빠가 나 여기 살아도 된대.”
“그래. 잘 들었다. 한 달 뒤에 생각해 보겠다고. 까불지 말고 얼른 청소나 해.”
“우이씽!”
“지금 청소 안 하면 네 오빠한테 말해서 아예 문지방도 못 넘게 할 거다.”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냐. 누가 안 한대?”
“아니, 이년이 지금 어디서 소리를 박박 질러! 정말 너 오늘 나하고 한 따까리 할래?”
“헤엑! 아니 어머니. 제가 무슨 소리를 질렀다고 그러세요? 부엌 청소는 제가 할게요.”
“헛소리하지 말고 화장실 청소나 해.”
“예, 화장실 청소는 당연히 이년이 하겠습니다.”
윤아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역시 어머니 김영희 여사를 당해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한 달 뒤에 생각해 본다던 마루의 말을 되새기는지 그녀의 얼굴은 회심의 미소로 가득했다.
“에이고, 저 속없는 년!”
김영희는 철딱서니 없는 막내딸을 쳐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곤 마루의 손에 들린 진공청소기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넌 가서 네 일 봐라.”
“아니에요. 청소는 제가 할게요.”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럼 거실만 하세요. 방은 이미 제가 다 청소해 놨어요.”
“알겠다. 그럼 들어가서 좀 쉬든지.”
“예.”
마루는 김영희의 완고한 눈빛을 보자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그로선 막을 수 없었다.
김영희는 일단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젖히고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위이이이잉!
커다란 가죽 소파 두 개가 L 자형으로 놓여있는 거실!
옆의 부엌까지 개방형이라 꽤나 넓어 보였다.
대형 LED TV가 우아하게 벽에 걸려있다.
그 옆으로 전문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클래식 오디오와 스피커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에는 대형 양문 냉장고, 오븐, 전자레인지 등 각종 주방 기기가, 베란다 옆 다용도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완비되어 있었다.
‘이런 고급 가구와 각종 가전제품까지 다 갖춰진 집이 월세 100만 원이면 나쁘지 않지.’
김영희는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2층 전체를 월세로 얻은 것에 대해 나름 만족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00만 원씩이나 월세를 내가면서 꼭 옆집 2층을 얻어야 하는지 불만이었다.
하지만 마루와 남편 이대근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녀는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두 사람이 파이럿 혜성 사태가 일어나면 옆집 전체가 자신들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녀의 욕심을 계속 자극한 것도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김영희 여사는 마루가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둘의 계획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다.
진공청소기로 거실의 바닥을 전부 청소했다.
김영희는 욕실 겸 화장실로 가서 윤아를 살펴봤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윤아는 이 집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열심히 빡빡 닦고 있었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김영희는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 안에 뭘 채워 넣어야 할지 생각해 보며 식기와 주방 기구를 하나씩 살펴봤다.
어디서 구했는지 보기만 해도 부티와 귀티가 나는 세련된 녀석들이다.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상황이라 김영희는 부엌을 청소하기가 한결 편한 것을 느꼈다.
그냥 쓱쓱 먼지만 닦아내도 반짝반짝 광이 나니 청소할 맛이 나는 것이다.
마루는 어머니 김영희 여사와 막내 여동생 윤아가 자신을 대신해 집을 청소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빈방이었다면 무슨 돈으로 가구를 채워야 할지 걱정부터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방을 비롯한 2층 전체가 이미 멋진 디자인의 가구와 최고급 전자 제품, 대형 백색 가전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실 마루가 더 이상 손댈 곳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화장실까지 딸린 자신의 방!
중앙에는 퀸 사이즈 베드가 놓여있고…….
창가에는 인체 공학적 디자인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 벽에는 피카소가 그린 것과 비슷한 요상하게 생긴 그림이 대형 액자에 담겨 걸려있고 반대편 벽 전체는 거울로 모자이크를 한 옷장이 있었다.
스르르륵!
마루는 옷장으로 가서 오른쪽 문을 옆으로 밀었다.
부드럽게 문이 열리자 넓고 깊은 옷장 안이 텅 비어있는 것이 보였다.
옷걸이에는 단출하게 양복 한 벌과 운동복 몇 벌만 걸려있어 휑한 느낌이다.
그는 앞으로 이 안을 뭐로 다 채워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왼쪽 문을 옆으로 밀었다.
오른편 옷장과는 달리 왼편 옷장 안은 온갖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장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는 아직 뜯지도 않고 넣어둔 박스부터 꺼내서 개봉했다.
박스 안에서 아이템을 하나씩 꺼내 옷걸이에 걸거나 한쪽에 잘 분류해 놓았다.
모든 박스를 개봉하고 나서 옷장 안을 본 그는 이제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 됐다.
마루는 도검 제작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하고 택배로 받은 무기들부터 하나씩 꺼내 직접 상태를 확인했다.
칠성검, 별운검, 대도, 일본도, 소도, 개량궁, 컴파운드 보우, 리커브 보우…….
전문가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봐도 왠지 명장(名匠)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옷장 왼편에는 도검 제작 회사에서 주문한 무기만 들어있지 않았다.
아버지 친구이자 안양에서 공업사를 하시는 차광수 사장.
그가 보낸 각종 무기와 방어구, 장비들도 가득했다.
쇠뇌, 쇠뇌용 화살(볼트), 카본 화살, 스테인리스 스틸 화살촉, 스테인리스 스틸 창(槍), 방검복, 전투 조끼, 전투화, 전투 배낭…….
안양의 공업사에서 배달해 준 무기와 방어구, 장비들은 마루만 쓸 것이 아니었다.
이대근과 김영호는 물론 형과 두 동생, 심지어는 시집간 누나와 매형의 것까지 모두 준비를 해놓았다.
아직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앞으로 파이럿 혜성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2주도 안 남은 상황.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슬슬 기회를 봐서 사실을 털어놓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마루는 옷장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김영희 여사와 윤아는 아직까지 청소에 열중하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대문을 나섰다.
대망 슈퍼에서 알바로 일하고 있는 박종호의 모습이 보였다.
“종호야!”
“어? 마루 형, 어서 오세요.”
알바생 박종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루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성실한 박종호와 항상 열심인 마루는 서로 코드가 잘 맞는지 금방 친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오래 알고 지낸 학교 선후배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바빴니?”
“아뇨? 그냥 꾸준했어요. 형은 이사 잘했어요?”
“응, 덕분에…….”
이사라고 해도 바로 옆집 2층인 관계로 딱히 가져간 물건이 거의 없었다.
양복 한 벌과 운동화 몇 벌, 속옷 몇 장과 양말 몇 켤레가 전부다.
마루는 박종호의 어깨를 가볍게 한번 쳐주고는 대망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시원한 거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니다. 아까 물 마셨다.”
이대근은 마루가 슈퍼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그의 뒤쪽을 흘낏 살폈다.
김영희 여사가 같이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아직 옆집 2층에 계세요.”
“윤아는?”
“윤아도 거기 같이 있어요. 청소를 도와주고 있어요.”
“해가 서쪽으로 뜰 일이네.”
이대근은 윤아가 김영희를 도와 청소를 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쉽게 믿기는 어려우신 모양이다.
“장부책 좀 볼게요.”
“여기 있다.”
마루가 장부책을 찾자 이대근은 책상 위에 꽂아놓은 장부책을 빼 마루에게 건넸다.
마루는 이대근을 향해 살짝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오늘 들어오고 나간 입출금 상황을 확인했다.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덕분에 대망 슈퍼에서 주문하는 식료품의 양도 상당했다.
이 모든 것이 종말 대세일 덕분이다.
“매출이 많이 늘었어요.”
“매일 이렇게만 팔린다면 부자 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진 않을 거예요. 파이럿 혜성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마루의 흘리는 말투에 이대근이 착잡한 표정을 하고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디데이 사흘 전에는 종말 대세일을 접자.”
“네, 물론 그래야죠. 혹시 누나와 매형한테 연락 없었어요?”
“아직 없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디데이 전날 저녁까지 같이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요?”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꼭 가족회의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 네 누나가 내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않을 거다.”
“으음, 차라리 매형한테 직접 전화하시는 것은 어때요?”
“이미 전화해서 똑같이 얘기했다.”
장인이 사위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매형은 누나와 함께 꼭 집에 올 것이다.
마루는 아버지의 말에 안심을 하고는 다시 장부책을 살폈다.
“소명 교회 창고가 이제 거의 다 찼나 보군요?”
“컨테이너 트럭 몇 번만 오면 더 이상 채울 곳이 없다고 하더라.”
“그럼 건너편 집을 좀 써야겠네요.”
“거긴 마당이 넓으니까 아예 컨테이너를 몇 개 쌓아도 좋을 것 같구나.”
“그럼 그렇게 할게요.”
마루는 아버지의 말을 한쪽에 잘 메모해 놓았다.
“이번 주까지는 종말 대세일을 확대 실시하고, 다음 주로 넘어가면 재고를 확인하면서 판매를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자.”
“서바이벌 키트와 좀비 퇴치 키트 판매는 매출이 더 증가하지 않네요.”
“동네에서 살 사람은 다 샀으니 아무래도 더 이상 매출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게다.”
“그럼 서바이벌 키트와 좀비 퇴치 키트 판매는 이번 주까지만 팔고 접도록 하겠습니다.”
“재고가 좀 남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니에요. 지금도 헬 서바이벌 동호회 홈페이지를 통해 아름아름 팔려나가고 있으니 디데이 전후로 해서는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을 겁니다.”
이대근은 마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그런데 중고 컨테이너는 사셨어요?”
“이미 주문해 놨다. 며칠 뒤에 가져올 거야.”
“우리 집과 옆집, 건넛집은 언제 보강 작업 한대요?”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하더구나.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 옆 골목을 틀어막을 철문은요?”
“그건 지금 한창 만들고 있을 거야. 아마 늦어도 다음 주 초에는 설치 공사를 시작하겠지.”
“잘됐군요.”
마루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준 이대근이 이번엔 아들에게 질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