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74
74화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식료품을 대량 구매할 생각이냐? 이리저리 계약금을 걸고 분납과 할부, 심지어는 외상으로 식품 회사에서 물품을 대량 조달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데…….”
“설마 그새 빌린 돈을 다 쓰셨어요?”
“그건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소명 교회 창고를 빌려서 채워 넣은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만 해도 수십억은 될 거야. 거기에다 우리 집 창고, 옆집과 건넛집 창고까지 따지면 정말 엄청난 물량이야. 만약 썩지만 않는다면 우리 식구가 수십 년을 먹어도 남을 게다.”
“그렇군요.”
마루는 3억을 넘게 빌렸는데 벌써 돈을 다 써버리자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당장 대망 슈퍼에서 현찰이 들어오고 있었다.
헬 동호회 홈피를 통한 서바이벌 키트와 좀비 퇴치 키트 판매가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치고 있는 상황이라 어느 정도 돈의 여유는 있었다.
‘하긴 돈을 남기는 것도 좋은 건 아냐. 파이럿 혜성이 지구에 도착하면 돈은 바로 휴지 조각이 될 테니까. 만약 돈이 남게 되면 차라리 골드바를 사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골드바를 살 생각은 진즉에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골드바를 살 정도로 돈이 남게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는 한소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다.”
―마루 형! 어쩐 일이세요?
“잘 팔리니?”
―아까 전화해서 물어보셔 놓고 또 물어보시네.
마루는 한소신의 말에 그제야 아침에 했던 통화 내용이 기억났다.
“하하하, 그런가?”
―제가 대박은 못해도 중박은 친다고 말했잖아요. 매일 하루에 최소 100개씩은 나가고 있으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아 참, 그랬지. 소신아, 다른 게 아니고 앞으로 들어오는 돈 전부 골드바로 바꿔놓았으면 좋겠다.”
―네? 골드바요? 아니 왜요? 아!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종말이다 뭐다 어수선해지면 금값이 뛸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소신은 금세 마루의 의중을 파악했다.
마루는 한소신이 뛰어난 참모형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맞아. 그러니까 골드바 사면 나한테 전부 가져와라. 그리고 정산은 앞으로 일일 정산이다.”
―흐음, 좋아요. 그런데 저와 성존이 형 몫도 골드바를 사는 데 보태는 것은 어때요?
“왜, 너희도 투자하려고?”
―헤헤, 같이 시작했으니 같이 돈 벌어야지요.
“좋아. 그렇게 하자. 대신 보관은 내가 하고 나중에 파는 시점도 내가 결정한다. 오케이?”
―좋아요. 그거야 당연히 마루 형이 결정해야지요. 믿고 가겠습니다.
“믿긴 뭘 믿어?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 사람으로 보이냐?”
―헤헤, 마루 형이 어디로 도망갈 사람은 아니죠.
“하하하, 그래. 내가 튈 것 같으면 우리 집, 아니 우리 대망 슈퍼로 쳐들어와라.”
―크크크, 꼭 그렇게 할 겁니다.
마루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골드바가 얼마나 자신의 손에 들어올지 모른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골드바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루 형, 컨테이너 왔어요.”
“알았다.”
마루는 박종호의 말에 장부책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식품인 통조림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 차량이 대망 슈퍼 앞에 서있었다.
마루는 컨테이너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이 차를 타고 소명 교회 창고로 갔다.
마침 사찰 집사님이 밖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었다.
바로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해모수: 뭐야 이거? 설마 이게 전부 먹을 건가?] [마루: 맞아. 전부 생존을 위한 식료품과 생필품이야.] [그렌: 정말 어마어마하구나!]해모수와 그렌은 창고 안에 높이 쌓여있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보고는 놀라서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마루도 자신이 직접 창고를 빌리긴 했지만, 산더미처럼 가득 쌓인 식료품과 생필품의 양을 보고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이거 내가 정말 대형 사고를 쳤구나. 3억 원이 넘는 돈을 빌려서 30억 원어치의 물건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쌓아놓고 있었어.’
일단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확보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모자라면 문제지만 남는 것은 무조건 좋았다.
이날 마루는 몇 번이나 물건을 싣고 온 컨테이너 차량과 같이 온 끝에 결국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그는 소명 교회에서 빌린 창고의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것도 모자라 쇠사슬로 묶은 후 이중으로 커다란 자물쇠까지 채웠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쳐다보지도 않는 곳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곳을 보물 창고라 부르며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매봉산 정상.
마루는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포스 연공법을 수련했다.
말이 산 정상이지 그가 살고 있는 과천시 문원동 주민들에게 매봉산은 동네 뒷산이나 마찬가지다.
“후우우!”
기마 자세에서 왼발을 앞으로 내민다.
뒤이어 천천히 왼손을 안에서 바깥으로 원을 그리면서 밀어낸다.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다.
천천히 오른손을 같은 방식으로 안에서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면서 밀어낸다.
일곱 걸음을 전진한다.
반대로 뒷걸음질 치며 역동작으로 일곱 걸음을 돌아온다.
전후좌우(前後左右), 사방(四方)과 상하(上下)를 점하며 몸을 움직일 때!
동작과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각 동작에 맞는 수인(手印)도 칼같이 따라 들어온다.
비 오듯 땀이 흐르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마이티 파워 포스 & 포스 연공법은 기본적으로 외공(外功)이자 동공(動功)이다.
꾸준히 기본 포스 연공법만 익혀도 체력을 키워주고 뼈와 근육을 단단히 만들어 준다.
또한 인체의 잠재력을 자극해 극대화시키는 묘용이 있다.
그러나 포스 연공법을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포스를 불러일으키고 쌓은 다음 다시 증폭시키는 것이다.
온몸에 가득 포스를 채우면 포스는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내는 파워 포스가 된다.
종국에 가서는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르는 힘을 준다.
마루는 오늘도 포스를 느끼지 못했다.
또 하루를 그냥 허망하게 보내는 것 같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정수리에서 한 줄기 청명한 기운이 흘러나와 머리 전체로 흘러갔다.
‘뇌가 온도를 느낄 수 있나?’
의문을 가졌던 것이 무색하게 그의 뇌는 시원한 청량감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눈이 맑아지고 귀가 열리고 코가 뻥 뚫리고 혀에 공기의 맛이 느껴진다.
피부에 닿는 바람의 흐름과 온도 차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히 인지된다.
대지를 굳건히 밟고 있는 발아래에서 흙이 눌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마루: 어! 이게 뭐지?] [그렌: 포스를 느낀 것 같아.] [마루: 정수리에서 뭔가 시원한 기운이 나오더니 머릿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렌: 그게 느껴진단 말이야?] [마루: 네, 오감이 뚜렷해지고 주변의 기운이 확실히 느껴져요.] [그렌: 하하하, 축하한다. 드디어 포스를 느꼈어.] [해모수: 마루 형, 축하해요.] [마루: 일단 고마워요. 그런데 정말 내가 포스를 느낀 게 맞나요?] [그렌: 맞는 것 같아. 앞으로 포스를 느끼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포스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있게 되겠지.] [마루: 아!]마루는 그렌의 설명을 듣자 크게 감동했다.
자신의 자질이 떨어져 포스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로 인해 그동안 남모를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포스를 느끼게 되자 이제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기만 했다.
[그렌: 처음에는 정말 좁쌀만큼 작은 포스를 느끼게 될 거야. 눈을 뭉쳐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커지듯, 이 작은 포스를 이용해 점차 크게 불리고 확장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온전한 포스를 가지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작다고 실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포스 연공법을 수련해서 포스의 양을 늘려봐.] [마루: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렌: 천만에.]마루는 그렌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그는 몸에 힘을 빼고 제자리에 서서 차분히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청명한 기운 한 줄기가 자신의 머리 안에 들어와 뇌세포를 살살 자극하고 있는 것을 또렷이 느꼈다.
무슨 목적으로 포스가 자신의 뇌를 자극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는 긴 심호흡을 마지막으로 포스 연공법 수련을 마쳤다.
산 정상을 내려오다 중간에 약수터를 들렀다.
가족들을 위해 페트병 한가득 약수를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을 내려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과천 종합 격투기 체육관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꾸준히 수련한 것이 포스를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준 것 같았다.
물론 김민정 트레이너의 어여쁜 얼굴을 보면서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하지만 권투를 가르치는 유명우 트레이너, 특공 무술의 대가 지옥한 트레이너, 검과 고급 방어술을 가르쳐 주고 있는 이강산 트레이너!
이 3인방이 자신의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들이라는 것을 아마 누구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마루는 세 명의 트레이너를 생각하자 미소보다는 왠지 뽀드득 이가 갈렸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조금은 애증(愛憎)이 생긴 모양이다.
‘나중에 두고 보자. 배로 갚아주겠어.’
마루는 소심한 복수를 다짐하며 조심히 산길을 내려왔다.
동네 입구로 들어서자 그는 빠르게 전력 질주를 했다.
집까지는 20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라 정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현관의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그는 약수를 가득 담은 페트병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후우우! 어휴 땀 냄새!”
마루는 그제야 자신의 몸이 땀으로 푹 젖어 쉰 냄새가 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부여잡고는 얼른 욕실 겸 화장실로 달려갔다.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 던졌다.
쏴아아아아!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져 온몸을 훑어 내렸다.
절로 길게 한숨이 나오며 온몸의 긴장이 쫘악 풀렸다.
그는 샴푸와 린스로 머리를 감았다.
긴 목욕 타월에 보디 젤을 묻혀 거품을 낸 후 온몸을 박박 닦아냈다.
땀과 때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까지 몽땅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 그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방으로 들어가 새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꼬르륵!
누가 배꼽시계 아니라고 할까 봐 그의 배는 정확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마루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우유와 식빵, 잼과 치즈를 꺼냈다.
토스트기에 전원을 넣은 후 식빵을 넣고 잠시 기다렸다.
바삭바삭하게 식빵이 구워져 나왔다.
잼을 바르고 치즈를 얹자 간단히 샌드위치가 만들어졌다.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먹어댔다.
어느새 손에는 토스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목이 마르자 우유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금세 우유 한 통이 다 비워지며 그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해모수: 마루 형, 그런데 바로미터인가 뭔가 확인 안 해요?] [마루: 아차, 잠깐만.]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는 바로 가죽 소파로 가서 편안하게 앉았다.
푹신한 가죽 소파가 허리를 받쳐줬다.
그냥 이대로 눕고 뒹굴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루는 강하게 고개를 한번 털었다.
오른쪽 눈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좀 헷갈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왼쪽 눈을 감고 왼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런 후에 오른쪽 눈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해모수와 그렌이 말하던 그 바로미터가 나타났다.
[마루: 보인다. 보여.] [그렌: 역시 우리 모두 바로미터를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데 이런 게 왜 우리한테 생겼지?] [해모수: 혹시 형 것도 깜빡거려?] [마루: 아니 내 건 전혀 깜빡거리지 않아. 옆으로 누운 막대기같이 생긴 것 안이 텅 비워져 있어. 흐음, 생긴 것이 꼭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HP, MP, EXP 바(bar)처럼 생겼네.] [해모수: HP, MP, EXP 바? 그게 뭔데?] [마루: 온라인 게임의 인터페이스에 나오는 건데 HP는 생명력, MP는 마력, EXP는 경험치를 나타내는 거야. 보통 일정 크기의 막대로 양을 표시하는데 생명력을 나타내는 막대가 최저치인 0이 되면 캐릭터가 죽게 되지.]마루는 가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게임을 했다.
덕분에 해모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