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아무런 꾸밈도 없는 행복, 그 자체가 느껴지는 서진아의 맑고 깨끗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서 찬란하게 피어났다.
마루는 수프를 입에 넣다 말고 멍한 표정이 되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말 보면 볼수록 눈부신 미녀였다.
“그럼 이제 오늘의 메인 요리인 랍스터를 내오겠습니다.”
“와아아아!”
서진아의 말에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물개 박수를 쳐댔다.
어떤 맛일까? 기대감이 절로 증폭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전자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커다란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바닷가재 특유의 향이 순식간에 식탁을 가득 채웠다.
곧 벌겋게 잘 익은 커다란 바닷가재가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모습을 드러냈다.
서진아는 마루의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접시에 바닷가재 한 마리를 통째로 올려놓았다.
그러곤 자신의 앞에도 마루의 접시 위에 올린 바닷가재보다 조금 작은 녀석을 한 마리 가져다 놓았다.
“이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그녀는 바닷가재를 스팀으로 찐 커다란 냄비 바로 옆에 놓인 냄비를 들어 식탁의 중앙으로 가져왔다.
뚜껑을 열자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진 바닷가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튀겨서 양념을 버무린 거예요.”
“맛있겠다. 바닷가재도 참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거구나.”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먹는지 시범을 보일게요.”
서진아는 마루 옆으로 다가와 위생 장갑을 꼈다.
그러곤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바닷가재의 관절을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이리저리 툭툭 꺾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절대 쉽게 자신의 속살을 내줄 것 같지 않던 바닷가재가 너무도 무력하게 온몸이 착착 해체되어 속이 꽉 찬 속살을 드러냈다.
“이제 제가 만든 랍스터 소스에 한번 찍어서 먹어보세요. 아!”
서진아는 말로는 찍어서 먹어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자신이 발겨낸 바닷가재의 속살을 직접 소스에 찍어 그의 입으로 가져왔다.
마루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러곤 입안에 들어오는 바닷가재의 속살을 날름 받아먹었다.
“으음!”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육즙이 팍팍 터져 나오는 쫄깃한 바닷가재의 속살!
그녀가 만든 특제 소스와 어울리자 마치 바닷가재들이 혀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것 같은 감동적인 맛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이걸 드셔보세요. 아!”
“아!”
그새 학습이 됐는지 이번에는 그의 입이 자동으로 활짝 열렸다.
바닷가재를 튀겨서 양념으로 버무린 맛은 어떨까?
입안에 들어온 녀석을 잘근잘근 씹어대자 바야흐로 미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건 마치 자신의 혀가 양념의 바다 속에 퐁당 빠져 휘저어지는 것 같은 맛이었다.
“맛있다.”
“정말요?”
“응, 정말 맛있는데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네!”
“그 정도예요?”
“네가 상상하는 표현, 그 이상의 맛이야.”
마루는 조금도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생각나는 느낌 그대로 말해줬다.
그가 한 말은 미래의 요리사, 서진아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위로 올라갔다.
좋아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하고 자꾸 몸을 비비 꼬았다.
“아 참, 우리 할머니도 랍스터 좋아하시는데…….”
서진아는 급히 새 접시를 두 개 꺼냈다.
첫 번째 접시에 바닷가재의 발긴 속살과 소스를 담아 쟁반 위에 올렸다.
두 번째 접시엔 바닷가재를 튀겨서 양념으로 버무린 것을 껍데기를 싹 발라 담았다.
그녀는 쟁반 위에 포크 하나를 올리고 냉큼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냠냠…….
그사이 마루는 바닷가재를 정말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바닷가재로 배를 채웠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정말 바닷가재 속살만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서진아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요리한 바닷가재를 전해주고 돌아왔다.
그녀는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 우아한 동작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가냘픈 손가락으로 단단하기 그지없는 바닷가재를 툭툭 부러뜨리는 그녀!
마치 무림의 고수가 지강(指罡)이라도 방출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 모습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역시 요리사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대가의 손길은 원래 다 저런 일이 가능한 건가?
그는 그저 경이에 찬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비슷하게 해보려고 나름 흉내를 내봤다.
하지만 서진아가 하는 것처럼 쉽게 바닷가재의 속살을 발겨낼 수는 없었다.
마루는 서진아의 바닷가재 속살을 발기는 재주를 일단 달인의 경지라고 인정하고 그냥 깨끗이 포기했다.
역시 포기하니까 맘이 편해진다.
졸졸졸졸!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백포도주까지 한 병 가져와 그의 포도주 잔에 따랐다.
물론 자신의 잔에도 듬뿍 따라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루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녀가 오늘을 기점으로 성인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잔소리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그냥 가볍게 한번 웃어주고 말았다.
바닷가재를 먹으면서 백포도주를 마셨다.
입안이 개운해지고 미각이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포도주를 곁들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놓인 바닷가재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다.
그것도 모자라 튀긴 바닷가재에 양념을 버무린 것까지 초토화시킨 마루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김치찌개와 잡채가 보였다.
역시 한국인은 밥과 김치를 먹어줘야 한다.
그는 김치찌개와 잡채로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해모수: 마루 형, 오늘 너무 과식하는 거 아녜요?] [마루: 글쎄, 이 정도면 배가 불러야 하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네. 자꾸 더 먹으라고 몸에서 당기는 기분이야.] [그렌: 몸에 무리만 가지 않으면 조금 더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포스를 느낀 후라서 몸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해모수: 아! 그게 있었군요.]해모수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마루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서진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제 보니 하는 짓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좋다고 맹목적으로 용감하게 다가오는 행동!
통통 튀는 말투와는 달리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
거기에다 요리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난 요리 실력도 있었다.
막 성인이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생각하는, 속이 깊고 정이 많은 마음을 보면 어디다 내놓아도 빠질 것 같지 않은 여자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럿 혜성이 떨어지면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겠지.’
마루는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에 속이 타들어 갔다.
“오빠, 왜 그래요? 혹시 너무 많이 먹어서 배 아파요?”
“아, 아니야. 트림이 나오려다 말아서 그랬어.”
그는 급히 핑계를 대고는 포도주 잔을 들었다.
백포도주를 천천히 마시면서 점점 발갛게 달아오르는 서진아의 볼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진아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이대로 묵과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냉정하게 가족만 챙기겠다는 이기적이고 차가운 그의 생각과 계획!
어느새 조금씩 서진아의 사랑스러운 눈빛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휴, 안 되겠다. 진아야!”
“네?”
마루가 한숨을 쉬면서 진아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하고는 그를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7월 7일 저녁에 우리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 생각이야. 너도 올래?”
“정말요? 내가 가도 돼요?”
“응. 와도 괜찮아. 할머니도 꼭 모시고 같이 와.”
“할머니까지요?”
“혼자 집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기왕 오는 김에 할머니도 같이 모시고 와서 바비큐 파티 하면 좋지 뭐.”
“알겠어요. 꼭 모시고 갈게요.”
“그래. 약속이다. 꼭 와야 해?”
“네, 그런데 그날 무슨 특별한 날이에요?”
“그건 오면 내가 말해줄게.”
“알겠어요.”
서진아는 마루의 전향적인 태도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계속 자신이 다가갈 때마다 튕기기만 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자신을 많이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다 마루의 집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에 초대까지 받았다.
그녀는 앞으로 마루와 잘될 것 같은 예감에 몸을 가늘게 떨며 기쁨을 만끽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는 준비한 선물을 가져왔다.
“생일 축하한다.”
“제 선물이에요?”
“그래.”
마루가 쇼핑백을 건네자 서진아는 함박웃음을 흘리며 서둘러 선물을 꺼냈다.
예쁘게 잘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그녀는 조심스럽게 열었다.
“어? 이게 뭐야? 은장도 아냐?”
“이게 널 지켜줄 거야.”
“푸핫, 오호호호호!”
서진아는 마루가 진지한 표정으로 건네는 그의 선물에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세상에 생일 선물로 은장도를 주다니…….
그녀는 마루의 뜬금없는 생일 선물에 빵 터져버렸다.
마루는 미친 듯이 웃어대는 그녀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서진아의 반응도 조금 이해가 가긴 했다.
그때 안방에서 할머니가 나오셨다.
“다들 식사는 많이 했어?”
“네,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아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별거 아니에요.”
할머니는 빈 접시가 담긴 쟁반을 손수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마루는 할머니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진아가 은장도를 할머니에게 보여주려고 하자 그는 즉시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그녀는 혀를 한번 내밀고는 쇼핑백 안에 얌전히 은장도를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마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나 한잔 같이할까?”
“네, 좋습니다.”
“보성에서 가져온 녹차가 있는데…….”
“아주 좋네요.”
온화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따뜻한 말에 마루는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서진아의 처지를 생각하자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우리 거실로 가서 마셔요.”
“그럴까?”
마루가 할머니를 바라보자 손녀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서진아는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과일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할머니를 도와 차를 준비했다.
할머니가 좋아하신다는 전통 다기와 찻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은 그녀는 뜨거운 물을 부어 녹차를 우려냈다.
“이름이 마루라고 했나?”
“네.”
“마루면 하늘(꼭대기)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군, 좋은 이름이야.”
“감사합니다.”
“부모님은 안녕하시고?”
“네, 두 분 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손녀가 차를 우려내기를 기다리며 할머니는 마루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녀는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마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참 보면 볼수록 곱게 늙으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손녀가 우려낸 녹차를 마루에게 손수 따라주셨다.
“앞으로 우리 진아를 잘 부탁하네.”
“네? 아! 네.”
마루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냥 예의상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서진아의 얼굴이 금세 홍시처럼 변해갔다.
할머니와 마루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그렇게 오순도순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창가로 스며든 달빛 아래!
술을 한잔한 절세가인(絶世佳人)의 하얀 목이 더욱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 * *
“여보세요?”
―마루 오빠, 도착했어요?
“응, 나 학동역이야.”
―시간 칼같이 맞춰서 오셨네요. 딱 열 시예요.
“원래 내가 시간은 잘 지키는 편이지. 어디로 갈까?”
―제가 문자로 장소를 보내드릴 테니까 그 앞에서 만나요.
“알았어.”
전화를 끊자 곧바로 김민정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뉴탑 호텔?”
마루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만나자고 하는 곳이 호텔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설마!”
마루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괜한 기대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학동역에서 목적지까지는 걸어서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온갖 군상들을 구경하며 걷자 그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오빠!”
“어, 민정아!”
뉴탑 호텔에 도착하자 정문 앞에서 김민정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몸에서 살짝 술 냄새가 났다.
“벌써 한잔한 거야?”
“네, 친구들과 만나서 저녁 먹다가 가볍게 입가심으로 맥주 좀 마셨어요.”
“그랬구나.”
마루가 김민정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술기운에 의해 볼이 발그레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그러는 오빠도 술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요?”
“나도 오늘 저녁 생일 파티에 가서 포도주 몇 잔 마셨어.”
“잘됐네요. 그럼 우리 술은 생략하고 바로 놀러가요.”
“어디로?”
“저기 아래로요.”
“저건?”
김민정이 가리키는 하얀 손가락을 따라갔다.
그의 눈에 강남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펜타곤’의 이름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