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는 지방 및 수도의 각 요충지에 설치된 군사를 통괄하는 기관으로 줄여서 ‘위(衛)’라고 부르고 대체로 5,600명의 병사를 배치했다.
전국에 180~200여 개의 위가 설치되었고 1개의 위 아래 5개의 천호소가 소속됐다.
천호소(千戶所)는 보통 ‘소(所)’ 라 부르고 1,120명의 병사를 지휘했다.
천호소는 전, 후, 좌, 우, 중의 다섯 개의 천호소로 구분하고 한 개 천호소 아래 열 개의 백호소가 소속됐다.
백호소(百戶所)는 112명으로 설치된다.
백호소는 백호(百戶)가, 천호소는 정천호가 담당했으며 위의 최고 지휘관인 위지휘사(衛指揮使)는 도지휘사사의 통제를 받았다.
“보고드립니다. 영월소의 도강원 정천호께서 오셨습니다.”
성산백호소의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이 얼굴을 하얗게 물들인 채 달려와 보고했다.
“안으로 정중히 뫼셔라!”
해모수는 큰형인 해대호를 대신하여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초병은 해모수의 말에 군례를 올리더니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진짜 왔네?”
“내가 말했잖아요. 반드시 올 거라고.”
“어떻게 하지?”
“일단 모두 밖으로 나가서 영접을 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해모수! 우린 너만 믿는다.”
해대호는 해모수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몸을 떨어댔다.
그의 뒤에 서있는 둘째 형 해상호와 셋째 형 해광호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해모수를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모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더니 형제들의 등을 떠밀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성산백호소의 출입문은 이미 양쪽으로 활짝 열려있었다.
말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는 영율소의 정천호와 부천호(富千戶), 진무(鎭撫)와 백호의 모습이 사뭇 기세등등하다.
그러나 해모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가득한 허장성세(虛張聲勢)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아무리 기세를 올려봤자 그뿐이다.
지금 이 순간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쪽이다.
[그렌: 저놈들 왜 저렇게 당당하지?] [마루: 처음부터 힘과 계급을 이용해 기를 팍 죽이려는 작전 같아요.] [해모수: 흐음, 아직도 똥오줌을 구별하지 못하나 봐요.] [그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당장 태도가 180도로 변하게 될 거야.] [마루: 아까 미리 써놓은 장계(狀啓) 두 장을 잘 사용해라!] [해모수: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잔뜩 긴장한 해대호와 해상호는 제일 앞에서 말을 타고 들어오는 자에게 다가가 깍듯이 군례를 올렸다.
“도 정천호를 뵙습니다.”
“도 정천호를 뵙습니다.”
해대호와 해상호가 영율소, 즉 영율천호소의 최고 지휘관인 도강원 정천호에게 군례를 올렸다.
성산백호소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고개를 일제히 숙이며 같이 군례를 했다.
그 모습에 도강원은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렸다.
“반갑다. 난 영율소의 도강원 정천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성산백호소의 총기 해대호입니다.”
“성산백호소의 총기 해상호입니다.”
“성산백호소의 소기 해광호입니다.”
“성산백호소의 전령 해모수입니다.”
해모수까지 인사를 하고 나자, 도강원의 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막 말에서 내린 거대한 덩치는 부천호 개옥산이다.
“도강원 정천호께서 지금 너희 같은 놈들 인사나 받겠다고 행차하신 한가한 분으로 알고 있느냐? 어서 가서 당장 여기 백호를 불러오너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던 해모수는 개옥산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놈은 성산백호소에 백호가 부임하지 않은 상태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모르고 있다.
그는 이 사실을 깨닫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꾸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그러나 해모수와는 달리, 해대호는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성산백호소에는 백호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 최고 지휘관입니다.”
“뭐시라?”
부천호 개옥산은 해대호의 말에 인상을 팍 썼다.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떠들어 댄 꼴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허면 동현까지 내려와 전투를 벌인 병사들은 누구란 말이냐?”
“그건 저희들이 맞습니다. 영율소에서 지원을 요청해 그에 응한 것입니다.”
“뭐라고? 그럼 백호도 없는 잡졸들이 왜구들과 대등한 전투를 하다 못해 전멸을 시켰단 말이냐?”
“……!”
부천호 개옥산의 말에 해대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게 되면 성산백호소의 병사들이 바로 잡졸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총기에 불과한 자신이 천호소의 지휘관인 정천호를 상대한다는 게 무척이나 두렵고 떨렸다.
하지만 개옥산의 무례한 언사에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해대호는 허리를 쭉 펴고 개옥산을 노려봤다.
“잡졸이라는 말은 좀 지나친 말씀 같습니다.”
“그럼 잡졸을 잡졸이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
개옥산은 해대호의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호통을 쳤다.
해대호는 계속되는 이유 없는 모욕에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수십 번이나 그렸다.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자 도강원 정천호 앞이라는 사실로 인해 긴장했던 몸의 떨림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해대호는 개옥산과 말을 섞어봐야 좋은 소리가 못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시선을 도강원에게 돌렸다.
“크흠, 헌데 도 정천호께서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로 행차하셨습니까?”
도강원은 개옥산과는 달리 무척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해대호를 쳐다봤다.
“정말 동현에서 전투를 벌인 자들이 이곳의 병사가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영율소의 지원 요청에 응해 저를 비롯한 부장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내려가 왜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백호도 없이 자네들의 힘만으로 왜구를 물리쳤다고?”
“그렇습니다.”
도강원은 해대호의 당당한 말투에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식의 일부가 와르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갑자기 해모수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전령(傳令)은 즉시 이 장계를 가지고 성산위(成山衛)로 달려가 지휘사(指揮使)께 바로 올리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전령은 해모수의 오른쪽 품에서 나온 장계를 받아 자신의 품속에 깊숙이 넣었다.
그러곤 곧바로 상시 대기 상태에 있는 군마(軍馬)를 향해 걸어갔다.
도강원은 그 모습을 본 순간 등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이대로 저 전령을 보낸다면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잠깐!”
도강원은 급히 걸어가고 있는 전령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전령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해대호가 도강원을 향해 물었다.
“도 정천호께선 어찌 그러십니까?”
“지금 저 전령이 가지고 가는 장계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고?”
도강원이 깜짝 놀라서 소리치자 해대호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도 정천호께서 아무리 영율소의 지휘관이라고 하셔도 저희 성산백호소에서 상부인 성산위에 직통으로 보내는 장계의 내용까지 누설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총기인 저와 정천호의 신분의 차이는 크다 하나 엄연히 저희 성산백호소의 지휘권은 성산위에 있음을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으음.”
도강원은 총기 해대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사실 해대호의 말이 모두 맞다.
성산백호소는 성산위에서 만든 감시초소라 당연히 성산위의 지휘 통솔을 받는다.
산동 위지휘사사의 통솔을 받는 영율소와는 엄연히 지휘권이 분리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상부가 가는 전령을 막고 장계를 중간에서 가로채 함부로 열어보는 짓은 군율로 엄히 다스리는 중죄다.
확실히 함부로 나서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아니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지금 누구 안전이라고 감히 그런 망발을 하는 건가? 정녕 치도곤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텐가? 당장 도 정천호께 사죄드리지 못하겠느냐?”
해대호의 말에 도강원이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자 그의 옆에 서있던 개옥산이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난리를 쳐댔다.
허나 해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조개처럼 꾹 다문 채 당당하게 서있었다.
그사이 해모수가 슬쩍 도강원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도강원 정천호께 아룁니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누추하지만 군영의 본채로 잠깐 들어가셔서 말씀을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는 누구냐?”
“성산백호소의 수(首)전령입니다. 또한 도강원 정천호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도강원은 새파랗게 젊은 해모수의 얼굴을 보고는 크게 화를 내려고 했다.
정천호면 지금의 연대장 정도의 직위다.
백호소의 지휘관인 백호가 중대장급이고 총기(總旗)가 소대장과 비슷한 직위다.
소기(小旗)면 열 명을 지휘하는 분대장급인데…….
해모수는 그런 소기도 아닌 그냥 일개 병사인 전령이다.
지금 감히 졸병이 연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도강원의 입장에서는 화가 좀 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해모수가 한 말을 속으로 몇 번 되새기곤 고개를 돌려 해대호를 쳐다봤다.
해대호는 도강원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량의 지혜에 비할 바는 아니나 성산백호소의 지낭(智囊)이라고 부를 만한 녀석입니다.”
“그으래?”
도강원은 해대호의 말에 일단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감히 일개 총기가 정천호인 자신의 앞에서 제갈량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기막힌 일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누구 앞에서 수작질이야!”
부천호 개옥산은 해대호와 해모수가 하는 짓을 보더니 파르르 얼굴 가죽을 떨면서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그만!”
하지만 그의 행동은 도원강의 일갈(一喝)에 의해 바로 멈춰졌다.
그 모습에 한 사람이 곧바로 움직였다.
“전령, 잠시 나를 따라와라.”
“네.”
해모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령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곤 통나무로 만들어진 군영의 본채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전령은 삭막한 분위기에 급히 해모수의 뒤를 좇아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도강원은 해대호를 다시 한번 진중히 쳐다보더니 해모수와 전령이 들어간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를 부천호 개옥산과 두 명의 진무가 따르고 있었다.
“…….”
“…….”
군영의 본채 회의실 중앙에 놓인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도강원과 해모수가 마주 섰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전령을 바라봤다.
전령은 그 사이에 끼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기 싸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먼저 말을 하거나 움직이는 자가 지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도강원의 뒤로 개옥산과 두 명의 진무!
해모수의 뒤로 해대호와 두 형제가 분위기를 살피며 조신하게 서있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해모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도강원은 정천호다.
명색이 영율소의 1,112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이란 말이다.
해모수는 감히 도강원과 기 싸움 따위를 벌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전령은 장계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잠시 나가있어라.”
“네.”
전령은 십년감수(十年減壽)했다는 표정이 됐다.
얼른 품속에서 해모수가 준 장계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먼저 읽어보시지요.”
“그래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도강원은 해대호를 쳐다보며 물었지만 대답은 해모수를 통해 들었다.
분명히 해모수보다 해대호의 계급이 더 높았다.
그런데 왜 해대호가 직접 나서지 않고 해모수가 자꾸 나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강원은 당장 그것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장계가 눈앞에 있는지라 잠시 자신의 의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사라락사라락!
봉투 안에 밀봉된 장계가 꺼내지고 도강원의 손에 의해 활짝 펼쳐졌다.
빠른 속도로 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져 갔다.
눈에 띄게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은 도강원은 장계를 거칠게 구겨버리더니 탁자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강원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기가 팍 죽은 소리로 물었다.
“휴우우우! 이 장계에 나와있는 내용이 전부 사실인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