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85
85화
[그렌: 왜구들이 하는 짓을 보니 성산백호소가 목표인 것 같아.] [마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북현 마을로 약탈부대를 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해모수: 당장 집으로 사람을 보내야겠어요.] [마루: 강조가 안면이 있으니 그를 보내면 되겠네.]마루의 말에 해모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조, 부탁이 있다.”
“네? 부탁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느닷없이 나온 부탁이란 말에 강조의 눈에는 의아함이 묻어 나왔다.
“북현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대피하라고 말 좀 전해줘. 그렇게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해씨 사 형제는 아버지 해태영과 어머니 박수영 그리고 막내 여동생 해소영을 북현 마을로 이주시킬 때부터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대비해 산속에 미리 대피소를 마련해 놓았다.
강조가 해씨 일가가 살고 있는 집에 가서 대피하라고 말을 전한다면, 해씨일가의 식솔들은 곧바로 산속의 대피소로 숨어들 것이다.
강조는 해모수를 향해 군례를 올리곤 곧바로 북현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해모수가 이번에는 양규를 불렀다.
“양규!”
“네.”
“성산위로 가서 왜구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보고해라. 저들이 노리는 것은 성산위가 아니라 성산백호소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원군(援軍)을 청(請)해라!”
“알겠습니다.”
해모수는 품속에서 유지(油紙: 기름 먹인 종이)에 싸인 종이와 세필(細筆)을 꺼내 빠르게 장계를 썼다.
봉투에 장계를 넣고 밀봉한 그는 전령의 표기와 함께 양규에게 넘겼다.
양규는 해모수를 향해 군례를 올리고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곤 빠르게 성산위를 향해 말을 달렸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해모수는 퉁그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퉁그란, 성산백호소로 가서 왜구들이 성산백호소를 노리고 있다고 전해! 우리는 잠시 여기서 대기하고 있겠다.”
“알겠습니다. 바로 다녀오죠.”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해상호 총기에게 얘기해서 죽폭(竹爆)과 화살을 넉넉히 받아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죽폭은 해모수가 마루의 도움을 받아 장은철을 통해 만든 수류탄의 일종이다.
다 자란 큰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 가운데 시가(cigar) 모양의 종이로 감싼 화약을 넣고 그 사이를 쇳조각과 돌조각으로 채운 뒤, 나무 막대기를 붙이고 밀봉한 단순한 구조다.
사용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냥 도화선에 불을 붙인 뒤 적당히 기다렸다가 던지면 그만이다.
죽폭 안의 화약이 터지면 그 폭발력으로 인해 쇳조각과 돌조각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가 주변의 적을 살상하게 되는 것이다.
해모수는 비밀리에 장은철과 함께 이미 몇 차례 실험까지 하고 난 후라 죽폭의 위력을 의심치 않았다.
퉁그란은 해모수의 명령에 말을 돌려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걸어가면 꽤 되는 거리지만 말을 타고 가면 금방인 곳이다.
해모수는 퉁그란이 돌아오기까지 이 언덕 위에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말에서 내린 해모수에게 바토르가 다가오더니 육포를 건넸다.
차하루는 물주머니를 꺼내 물을 마셨다.
그들은 언덕 위에 앉아 열심히 육포를 씹으면서 왜구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왜구의 관선 열두 척은 해안가에 닻을 내리고 조각배를 내렸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왜구들을 뭍으로 날랐다.
숫자를 세어보니 한 척당 대략 오십 명 내외의 왜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상륙하고 있는 왜구의 수는 육백 명에 달했다.
“숫자가 너무 많은데…….”
“적어도 육백은 넘겠어. 우리 성산백호소의 병사가 이백이니 딱 세 배잖아.”
해모수의 침중한 목소리에 바토르가 손가락으로 열심히 세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좀 줄여놓을 필요가 있어.”
만약 저 왜구들이 몽땅 성산백호소로 몰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해모수는 어떻게 하면 적의 병력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을까 열심히 머릿속으로 궁리했다.
“만약 왜구가 이쪽뿐만 아니라 동현 쪽 해안가를 이용해 비슷한 숫자를 상륙시켜서 양쪽으로 올라온다면 어떻게 될까?”
“제기랄! 그럼 우린 다 죽는 거야.”
차하루의 말에 바토르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차하루의 말에 해모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1,200 대 200.
아무리 생각해도 전멸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굳이 란체스터의 법칙(Lanchester’s Law : 전투행위의 결과를 손실률과 잔존 병력의 수로 모형화한 수학적 모델.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항공 공학자인 F. W. 란체스터가 고안하였으며, 힘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살펴보고 체계적으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을 의미한다.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에 나오는 미분방적식을 대입해 보지 않더라도 전력(戰力)이 6:1의 비율이라면 그 전투는 해보나 마나 한 것이다.
물론 전투라는 것이 꼭 병력의 숫자만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다.
공격과 방어, 지형, 성(城)의 위치, 사기(士氣), 병력의 질, 무기의 질과 숫자, 전략과 전술의 유무 등으로 인해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현대전이 아닌 이상 여섯 배나 많은 왜구들을 목책에 의지해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해모수: 어떡하죠?] [마루: 뭘 어떡해? 적이 정말 양쪽에서 공격을 해오는지부터 확인해야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시간 차 전투를 하면 돼.] [해모수: 시간 차 전투요?] [마루: 그래. 시간 차 전투! 양쪽에서 600씩 올라오면 1,200 아냐? 1,200 대 200으로 싸울래? 아니면 600 대 200으로 싸울래?] [해모수: 아! 그러니까 양쪽에서 올라오는 왜구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동을 지연시키고 그사이 남은 한쪽과 전투를 하라는 말이군요.] [마루: 맞아.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해모수는 마루의 말에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굳이 1,200 대 200으로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왜구들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게 이동을 방해하는 데 성공한다면 승률이 대폭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마루의 말을 들은 그렌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해모수에게 주옥같은 조언을 했다.
[그렌: 마루의 말대로 동현 쪽에 왜구가 상륙해서 올라오는지부터 확인해라. 그게 우선이야. 그리고 만약 동현 쪽 해안가로 왜구가 상륙해서 올라오고 있다면 영율소로 전령을 보내 원군을 청하도록 해. 제대로 왜구의 뒤를 잡아 족칠 수만 있다면 아마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을 거야.] [해모수: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마루: 동현 쪽에 왜구가 상륙을 하든 안 하든, 그렌 형의 말대로 영율소로 전령을 보내 원군을 청하는 것은 꼭 해야 해. 원군이 올 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싸우는 병사들에게 큰 희망이 될 테니까.] [해모수: 그게 좋겠네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조언을 전부 수용했다.
그는 영율소로 전령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열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소기에 불과한 자신이 직접 전령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성격이 차분한 차하루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즉시 성산백호소로 가서 해대호를 만나 영율소로 원군을 청하라고 말이다.
또한 동현 방향으로 간 홍유 일행과 접촉해 그쪽의 상황도 알아오게 했다.
차하루가 말을 타고 성산백호소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조와 양규가 차례로 군마를 타고 돌아왔다.
“해 소기, 해씨 일가의 식속들이 모두 대피소로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해모수는 강조의 말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가족이 안전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양규의 다음 말에 그런 기분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해 소기,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응? 그게 뭔데?”
“성산위에서 당장 성산백호소로 원군을 보낼 수 없답니다. 성산위 앞바다에 떠있는 왜구의 관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견제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조건 그냥 버티고만 있으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이런 개 같은 새끼들!”
해모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산위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마구 욕을 해댔다.
원군을 보내지 않고 무조건 버티라는 말은 곧 옥쇄(玉碎)를 하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 성산백호소는 바둑에서 말하는 사석, 즉 죽은 돌이 된 것이다.
“이따위로 일 처리를 하니 충성심이 생길 턱이 없지.”
“나쁜 새끼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우릴 버려버리네.”
“어디 두고 보자.”
해모수를 비롯한 바토르, 강조, 양규는 성산위의 이런 냉정한 결정에 모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영율소로 원군을 청하라고 차하루를 보냈다. 만약 영율소의 도강원 정천호께서 원군을 보내주신다면 우리 성산백호소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정말 무조건 버텨야 산다.”
“아!”
강조와 양규는 해모수의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구들이 이동할 준비를 갖추고 성산백호소를 향해 움직이기 전에, 우리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을 택해 지연작전을 펼칠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전투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네, 해 소기.”
“예, 해 소기.”
강조와 양규는 해모수의 말에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각자 자신의 군마로 가서 육포를 먹고 물을 마셨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어날 전투를 위해 무기와 장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해모수와 바토르도 자신의 군마로 가서 무기를 챙기고 전투준비를 했다.
잠시 후, 성산백호소로 갔던 퉁그란과 차하루가 늙은 말 두 마리에 잔뜩 짐을 싣고 달려왔다.
“해 소기,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다. 어떻게 됐어?”
퉁그란은 차하루를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러자 차하루가 퉁그란 대신 보고를 했다.
“해대호 총기께서 영율소로 원군을 청하는 전령을 보내셨습니다.”
“그거 잘됐군.”
“성산백호소에서 마침 보고를 위해 돌아온 홍유 일행을 만났는데, 동현 쪽의 왜구들은 이제 막 상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구의 선단은 열두 척의 관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기랄, 진짜 양쪽에서 쳐들어오네.”
해모수는 차하루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발로 땅을 세차게 한번 밟았다.
그의 발이 한 치나 땅속으로 푹 파고들었다.
차하루는 해모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마저 보고했다.
“일단 홍유 일행을 이쪽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동현 쪽의 왜구들이 올라오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 먼저 이쪽의 왜구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잘했어. 안 그래도 숫자가 부족했는데… 그들이 합류하면 저 왜구 놈들을 괴롭힐 수 있는 충분한 숫자가 될 거야.”
해모수는 차하루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하루가 현명하게 판단해 일을 잘 처리했다.
어느 쪽이든 성산백호소로 향하는 발길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동현 쪽은 노영희와 김통정이 남아서 계속 감시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저들이 이동을 시작하면 효시(嚆矢)를 쏘라고 했습니다. 효시를 본 성산백호소는 봉화를 올려서 우리에게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차하루가 해모수에게 보고를 하는 사이, 북현 마을 동쪽 해안가에 상륙한 왜구들이 서서히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 본 해모수와 병사들이 지체 없이 군마에 올라탔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중!
언덕 위쪽에서 홍유, 배장손, 박위가 말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모수는 잠시 이동을 멈추고 그들을 기다렸다.
“해 소기, 저희들이 왔습니다.”
“모두 수고했다. 일단 우리는 저 아래로 내려간다.”
“네.”
“예.”
해모수가 제일 먼저 말 머리를 돌려 언덕 아래로 달려갔다.
그의 뒤를 쫓아 나머지 병사들이 빠르게 말을 몰았다.
우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그들의 뒤쪽으로 먼지가 풀풀 솟구쳐 올랐다.
해모수는 해안가가 잘 보이는, 관목(灌木)이 우거진 숲속에 말을 세웠다.
“멈춰라! 여기 어때?”
“좋은데요. 해안가와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니 궁기병이 활동하기 딱 알맞은 위치입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우린 유인작전을 시작한다.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 셋이 가서 적을 꾀어와. 실시!”
“실시!”
해모수의 말에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는 웃으면서 해안가를 향해 말을 달렸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육백여 명의 왜구들은 이미 진군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다들 한 손에 칼을 하나씩 꼬나 쥐고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기마(騎馬) 셋!
왠지 횃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의 어리석은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