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98
98화
기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오러를 다루는 기사는 더더욱 구하기 힘들다.
“오러를 다룬다면 노예 각인 마법을 풀어야 하니 대신 마법 계약서를 쓰셨군요.”
“정확합니다.”
역시 카드 쳐서 용병단 단장을 딴 게 아니었다.
마르코스는 단번에 상황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유추해 냈다.
능력이 뛰어난 만큼 이해도 빠르고 대화하기도 편했다.
“그렌 마법사님의 호위를 위해 미르 용병단에서 기사급 전력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호위 기사를 직접 구해오셨으니 대신 고용비 10골드를 매달 그렌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크흠,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하하하!”
“역시 그렇죠? 무하하하!”
그렌과 마르코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win―win)이었다.
그렌은 두 달만 지나면 야엘을 사기 위해 노예상인에게 지불한 20골드가 생긴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요?”
마르코스가 갑자기 무게를 잡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면?”
“카시오페라 왕국과 코티아르 왕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유는요?”
“카시오페라 왕국과 코티아르 왕국 그리고 부르나 왕국, 이렇게 세 왕국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틴틴산이라고 아십니까?”
“물론이죠. 라키산에 버금갈 정도로 몬스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지금 틴틴산에 마나석 광산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마나석 광산요?”
이번에는 그렌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나석은 마법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그렇다고 마법사에게만 유용한 것만은 아니다.
왕궁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대 마법, 대 물리 방어 마법진!
공간을 도약하는 텔레포트 마법진!
각종 마법 아이템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처럼 마나석의 용도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니 이런 마나석이 나오는 마나석 광산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한 왕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나석을 캐서 팔면 어마어마한 자금을 마련할 수가 있다.
팔지 않고 그냥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국력과 외교력이 올라간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사대 왕국은 마나석 광산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몇십 년 만에 갑자기 떡하니 나타난 새로운 마나석 광산이라니…….
이제 사대 왕국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꼭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처음 틴틴산에서 마나석 광산을 발견한 것은 부르나 왕국입니다. 마나석 광산 자체가 부르나 왕국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코티아르 왕국에서 부르나 왕국이 마나석을 채굴하기도 전에 방해 공작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 그래서 부르나 왕국에서 그들과 친한 사이인 카시오페라 왕국에 도움을 청한 거군요.”
“정답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우리는 라키 산맥에 있는 시에라 요새 담당이잖아요.”
마르코스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중앙군도 아니고, 우리 용병들한테 담당 구역이 어디 있습니까? 돈만 많이 주면 그게 제일 좋은 거죠.”
“그래서 마르코스 단장은 이 사달에 발을 담그시겠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이미 카시오페라 왕국에서 틴틴산에 병력을 급파했습니다. 또한 용병들을 모아 보낼 계획이라더군요.”
“그럼 아직 시간이 좀 남았군요.”
그렌의 말에 마르코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카시오페라 왕실에서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용병단의 크기를 불문하고 용병 마법사를 보유한 용병단은 모두 왕궁에서 주는 특별 의뢰를 받아달라고 말입니다.”
“의무 사항입니까?”
“꼭 그렇진 않지만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왕실을 들먹였는데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뒤탈이 날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번 의뢰는 조건이 아주 좋습니다. 보통 일반 기사의 일당이 2실버, 전쟁 수당이 하루 10실버인데… 아예 두 배로 올려주겠답니다.”
돈 얘기가 나오자 마르코스가 점점 흥분했다.
그렌도 괜히 덩달아 흥분된 목소리가 됐다.
“그럼 마법사는요?”
“3서클 마법사의 경우, 오러를 다루는 기사인 엑설런트 기사보다 대우가 좋습니다. 엑설런트 상급 기사와 동격으로 일당 1골드, 전쟁 수당이 하루 4골드나 됩니다.”
“와우! 이거 정말 조건이 너무 좋은데요.”
이번에 프릴 마탑 에티오 지점에 가서 아주 절실하게 느꼈다.
마법사에게 골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무조건 좋다는 것을 말이다.
그렌의 눈빛이 긍정적으로 변하자 마르코스가 오히려 조금 신중해졌다.
“아무래도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그거야 전적으로 그렌 님에게 달렸지요. 용병단에 용병 마법사가 있느냐 없느냐, 또 서클이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용병단의 일당과 전쟁 수당이 배 이상 차이 날 수 있습니다.”
마르코스의 눈빛이 이제는 은근하다 못해 아예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렌은 살짝 인상을 쓰면서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그럼 좀 기다려 봅시다. 원래 아쉬운 놈이 우물을 먼저 파는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연하죠. 내 생각에는 조만간 왕궁에서 직접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까 내성에 있는 왕실 마법부에 들렀다 왔습니다. 거기서 이걸 받아왔지요.”
그렌이 은패를 꺼내 보여줬다.
순간 마르코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그렌 준남작님! 이제 확실히 귀족이 되셨네요. 무하하하!”
은패를 보자 마르코스는 대번에 알아채고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제니퍼와 로즈도 크게 놀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표정도 선보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김칫국물을 사발로 들이켰다 살짝 얹힌 것 같은 모습이랄까?
“왕실 마법부에서 뭔가 낌새를 채신 거군요.”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나저나 참 눈치 빠르시네요.”
“헤헤, 먹고살려다 보니 어떻게 이렇게 됐습니다.”
“나쁜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럼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하하하! 일단 참전하는 쪽으로 생각해서 상황을 정리해 보세요. 그동안 나도 미리 준비 좀 해놓아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그렌 준남작님을 믿고 미르 용병단의 일부를 틴틴산으로 보낼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렌과 마르코스는 빠르게 입장을 정리했다.
마르코스는 그렌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미르 용병단 단장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자 제니퍼와 로즈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 그렌 마법사님.”
“그렌 준남작님.”
둘이 용건을 채 꺼내기도 전에.
그렌은 한 손을 들어 제니퍼와 로즈의 말문을 막았다.
“피곤해서 나 좀 쉬어야겠어. 우리 나중에 보자.”
“그렌 님!”
“아이 참! 그렌 준남작님, 잠깐만요.”
제니퍼와 로즈는 그렌이 준남작이 된 것을 보고는 애가 닳은 듯했다.
그러나 그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쌩하니 특실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와 보니 야엘이 침대를 독차지한 채 쌕쌕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렌은 로브와 갑옷을 벗고는 침대 한쪽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야엘이 아무리 천하절색이라도, 그는 자신의 침대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마차를 타고 온 여독과 오늘 하루 벌어진 스펙터클한 일들로 인해 침대에 눕자마자 수마가 찾아왔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와 기분 좋은 물컹거림이 느껴진다.
그는 잠을 자며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카시오페라 왕국의 수도.
에티오에 도착한 첫날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아드민 남작님을 뵙습니다.”
“그렌 준남작, 반갑습니다.”
한숨 자고 나왔더니 1층 테이블에 왕실 마법부의 아드민 남작이 와있었다.
그렌은 마르코스를 향해 살짝 눈짓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자 아드민 남작이 말없이 그렌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렌은 아드민 남작을 보지 않고 먼저 주위를 살폈다.
여관 안팎은 왕실 마법부의 병사들로 쫙 깔려있었다.
아드민 남작의 뒤에는 왕실 마법부에서 봤던 시종들이 시립해 있었다.
창밖으로 보니 어느새 하늘은 석양에 물들어 불타올랐다.
“…….”
“…….”
아드민과 그렌은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지는 게 되는 양.
둘은 그저 말없이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아쉬운 게 없는 그렌과 목적이 분명한 아드민은 입장이 많이 달랐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드민이었다.
“크흠! 마법사가 묵기에는 좀 누추한 곳이군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마법사는 허례허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아드민의 가벼운 잽에 그렌도 가벼운 잽으로 응수했다.
“최근에 서클이 빠르게 오르신 걸 보니 이제야 그렌 준남작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나 봅니다.”
나름 그렌에 대해 미리 알아봤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렌이 굳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하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어쨌든 그 덕에 아드민 남작님 같은 진짜 귀족도 만나고 더불어 준남작도 됐네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앞으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접니다.”
아드민은 그렌을 이리저리 찔러보며 반응을 살폈다.
허나 거액이 달린 일이라 그렌의 대응이 녹록지 않았다.
아드민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결국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우리 카시오페라 왕실에서는 좋은 조건으로 마법사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괜찮은 의뢰를 하나 맡기고 싶습니다.”
“틴틴산의 일이겠지요.”
“알고 계셨습니까?”
“마나석 광산이 발견됐다는 풍문은 들었습니다.”
“그게 벌써 소문이 났군요.”
그렌의 말을 듣자 아드민은 볼을 살짝 긁으며 플랜 A를 즉시 폐기했다.
“일반 의뢰비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왕실의 의뢰를 받아주세요.”
“왕실의 의뢰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먼저 구체적인 조건을 듣고 싶습니다.”
“엑설런트 상급 기사와 동일하게 일당 1골드, 전쟁 수당 하루 4골드입니다.”
“이번에 왕실에서 일반 기사급 용병을 고용하면서 의뢰비를 두 배로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당 4실버에 전쟁 수당이 하루에 2골드 정도라더군요.”
“크흠, 맞습니다.”
아드민의 미간에 골이 살짝 깊게 파였다.
그렌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정곡을 찔렀다.
“마법사는 일반 기사 의뢰비의 보통 두 배 정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당 8실버에 전쟁 수당 하루 4골드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엑설런트 상급 기사급인 일당 1골드, 전쟁 수당 4골드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일부러 마법사를 홀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의뢰비가 나올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그럼 얼마를 원하는지 한번 말씀해 주세요. 가능하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렌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던 것이다.
“일당 3골드에 전쟁 수당 하루 12골드는 받아야겠습니다.”
“네에? 그건 좀 도가 지나치군요. 일당 2골드에 전쟁 수당 8골드 드리겠습니다.”
아드민은 자신의 계획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플랜 B도 폐기했다.
하지만 그렌은 오히려 그보다 한 발 더 치고 나갔다.
“아직 제 조건을 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으음. 일단 들어보죠.”
“일당 3골드에 전쟁 수당 하루 12골드, 제 호위 기사는 일당 1골드 전쟁 수당 4골드에 왕실 기사단급 무기와 장비 및 소모품 일체를 제공하고 왕실 마법부의 창고를 열어 전투에 필요한 물품과 재료를 무한 제공하는 겁니다.”
아드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만만하게 봤다가 잘못하면 옴팡 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호위 기사의 무기와 장비를 왕실 기사단급으로 맞춰달라니요. 게다가 왕실 마법부의 창고를 아예 털어버리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제가 틴틴산에 가서 코티아르 왕국 마법사들과 기사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옳다는 말입니까?”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마법사가 전쟁에 참여하면 소모되는 마법 물품은 의뢰자가 제공하는 거 아닌가요?”
“그거야 뭐…….”
생각해 보니 그렌의 말도 맞았다.
아드민을 비롯한 왕실 마법부는 지금 이 상황을 단순한 용병 동원의 하나로 치부했다.
하지만 본질은 전쟁!
이건 무조건 국지전, 아니 전쟁으로 비화될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