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코티아르 왕국에서 캠펠과 도스 영지를 중심으로 국경선에 파병을 했다고 하더군요. 틴틴산에는 왕국 3대 기사단 중 하나인 코난 기사단을 급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이번에는 아드민도 제법 놀란 모양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그렌의 옆에 앉아있는 마르코스에게 향했다.
뭐라고 따지려고 해도 그렌이 마르코스의 용병단에 속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은 아직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용병단의 단장이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니…….
아무래도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로 정보가 새나간 모양이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카시오페라 왕국에서 왕국 기사단 중 하나인 카스 기사단을 급파했죠? 제나 영지에서 영지 병사를 총동원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으음.”
아드민이 침음을 흘리자 그렌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굳이 부르나 왕국이 요네스 영지의 병사를 틴틴산으로 보내고 부르나 왕국 기사단 중 하나인 브라운 기사단을 급파했다는 소식까지 전하진 않았다.
협상은 일단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먼저 차지하고 보는 게 장땡이니까 말이다.
“틴틴산의 마나석 광산을 차지하는 왕국이 곧 토러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에 속합니다. 만약 왕실 마법부가 제가 요구하는 것을 맞춰줄 생각이 없다면 전 그냥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그렌의 냉정한 말에 아드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왕실 마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아드민 남작은 바보가 아니다.
특권 의식으로 가득 차 똥오줌도 구분 못 하는 이름만 귀족인 놈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비록 서클은 1서클에 불과하지만 카시오페라 왕국의 왕실 마법부에서 행정을 총괄하는 자답게 안목이 대단했다.
그렌의 무리한 요구에 살짝 열은 좀 받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드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렌 준남작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이건 전쟁을 가정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너무 지나칩니다. 만약 이걸 받아들이면 왕실 마법부는 앞으로 계약하는 모든 마법사에게 동일하게 이 조건을 적용해야 합니다. 당장 그 정도의 출혈을 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드민 남작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저도 입장이 있다 보니 쉽게 수용할 수는 없겠네요. 이번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렌의 딱 부러지는 선언에 아드민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은 왕실 마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위치다.
일당과 전쟁 수당을 두 배는 모를까 세 배를 주면서 비싼 마법 물품까지 보급품으로 무한정 내줄 수는 없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아드민은 그렌을 다시 찾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노련한 행정가답게 만에 하나를 위해 실낱같은 여지는 남겨뒀다.
아드민 남작과 시종이 떠나자 여관 안팎의 병사도 물러갔다.
기다렸다는 듯 마르코스가 다가와 그렌에게 작게 속삭였다.
“괜찮을까요?”
“뭐가요?”
“너무 강하게 나가신 것 같아서요.”
“다들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마르코스가 눈에 의문부호를 만들어 냈다.
“마나석 광산은 치킨 게임입니다.”
“치킨 게임요? 그게 뭡니까?”
“한마디로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가 없다는 고대의 말입니다. 최후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되는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아!”
그제야 마르코스는 그렌의 말을 이해했다.
“왕실 마법부의 의사 결정 라인에 문제가 좀 있네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명백한 국지전, 즉 전쟁입니다. 전쟁을 하는데 보급을 안 하겠다고 하면 그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겁니다.”
“왕실 마법부의 창고를 개방하는 것도 아마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물론이죠. 하지만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면 제일 먼저 왕실 마법부의 창고를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급에서 우위를 차지합니다. 마법 물품과 재료가 한두 푼도 아니고 그걸 각 마법사가 알아서 댄다면 당장 허리가 휘어버릴 겁니다.”
“그렌 준남작님의 말씀대로라면 왕실의 마법부의 창고를 먼저 개방하는 왕국이 선기를 잡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실 협상이 결렬된 걸 제일 아쉬워하는 사람은 그렌이었다.
잘만 됐다면 왕실을 제대로 벗겨먹을 수도 있었는데…….
아드민 남작이 만만한 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협상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렌과 마르코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아드민 남작이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그렌 준남작!”
“아니 어떻게 다시 오셨습니까?”
마차를 타고 온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헐레벌떡 뛰어온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까 제시한 조건 아직 유효한 거 맞죠?”
“예, 조건만 맞으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렌의 장담에 아드민은 안색을 펴며 주먹을 꼭 쥐었다.
“좋습니다. 그럼 갑시다.”
“예에? 어디로요?”
“왕실 마법부로 가야지요. 왕실 마법부 창고를 열어달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럼 미르 용병단도 같은 조건으로 고용하는 겁니까?”
“미르 용병단은 이미 기존 의뢰비의 두 배로 주는 걸로 얘기가 끝났습니다. 이건 그렌 준남작 같은 마법사에게만 해당되는 겁니다.”
마르코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걱정 말고 먼저 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 호위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렌은 마르코스의 말을 수용했다.
특실로 올라가자 야엘이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야엘, 가자!”
“어디로요?”
“우리는 틴틴산으로 간다. 그 전에 먼저 네 무장부터 챙길 거야.”
“예.”
무장을 챙긴다는 말에 야엘은 반색했다.
명색이 기사인데 갑옷은 고사하고 롱 소드 한 자루도 없다.
누가 욕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1층으로 내려가자 아드민이 야엘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위 기사라는 자가 여자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것도 피골이 상접한 절색의 미녀라는 언밸런스!
“어서 갑시다.”
아드민은 무척 서둘렀다.
뭔가 다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달카닥, 달카닥, 달카닥…….
그렌과 야엘을 태운 아드민의 마차는 빠르게 대로를 달려갔다.
마차의 창을 통해 밖을 보니 확실히 부산한 게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였다.
왕실 마법부에 도착하자 아드민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시종에게 그렌과 야엘을 부탁하고 떠나는 모습이 뭔가 아주 다급해 보였다.
“저는 아드민 남작님의 시종 스프레이입니다. 그렌 준남작님과 야엘 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네.”
그렌은 평범하게 생긴 스프레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먼저 계약을 하러 가시죠.”
스프레이의 안내로 그렌과 야엘은 귀빈실로 들어가 계약을 맺었다.
계약 조건은 그렌이 요구한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일당 3골드에 전쟁 수당 하루 12골드입니다. 호위 기사에게 왕실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무기와 갑옷을 지급하고 소모품 일체를 보급하는 조건입니다. 또한 왕실 마법부의 창고에서 필요한 물품과 재료를 원하는 만큼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혹시 왕실 마법부의 공방도 잠시 쓸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그럼 출발하기 전에 잠시 썼으면 좋겠는데.”
“준비해 놓겠습니다. 여기 야엘 님도 호위 기사로 같이 가실 거죠?”
“물론이지.”
“호위 기사는 일당 1골드에 전쟁 수당 하루 4골드입니다.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다른 특별한 요구 사항이 없으시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그렌은 기쁜 마음으로 왕실 마법부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한 달만 잘 버텨도 그렌 450골드, 야엘 150골드!
합쳐서 600골드라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알짜배기 의뢰였다.
물론 의뢰비는 매일 수도 에티오에 있는 미르 용병단 은행 계좌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이게 될 예정이다.
이로써 그렌은 카시오페라 왕국에서 틴틴산으로 급파된 전력과 합류하게 됐다.
“우리 카시오페라 왕실 마법부와 계약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천만에.”
“먼저 야엘 님을 모시겠습니다.”
스프레이는 다른 시종을 불러 야엘에게 붙였다.
“어디로 가는 거지?”
“카시오페라 왕국의 왕실 기사단이 사용하는 무기고와 병기창입니다.”
혼자 떨어져 나가자 야엘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긍하곤 몸을 돌려 시종을 쫓아갔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요?”
“그러세.”
왕실 마법부의 복도를 가로질러 걷다가 왼쪽으로 난 문으로 나갔다.
뒤쪽에 튼튼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삼엄한 경비가 있는 것을 보니 여기가 바로 왕실 마법부의 창고였다.
방명록에 직접 이름을 적고 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선반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입구가 막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스프레이는 입구에 대기 중인 창고 관리자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왕실 마법부의 제2창고를 맡고 있는 스토레지입니다.”
“반갑네.”
“여기 저희 창고 목록이 있으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거나 종이에 적어주십시오.”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면 좋겠는데…….
물건이 너무 많아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이편이 그렌에게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는 창고 목록을 가지고 테이블 한쪽에 자리했다.
두꺼운 창고 목록을 펼치고 미리 생각해 뒀던 것들을 찾아 빠르게 종이에 적었다.
[그렌: 마루, 가장 필요한 게 폭발 물질과 독, 백린과 황린이라고 했지?] [마루: 맞아요. 화약이 있으면 좋은데 꼭 그게 아니라도 화약 대용으로 폭발하는 물질이 있으면 돼요. 그런데 황린이나 백린도 있어요?] [그렌: 마탑에는 없는 게 없어. 설사 똑같은 것은 없을지라도 효능이 비슷한 물질은 마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 [마루: 석유나 휘발유 같은 가연성 물질은요?] [그렌: 그런 거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마루: 흑연, 산화철, 알루미늄, 천연고무, 파라핀, 셀룰로이드, 알코올, 쇠구슬, 쇠로 된 용기 등도 한번 찾아주세요.] [그렌: 알았어.]그렌이 왕실 마법부의 창고를 찾은 이유는 마루의 조언이 컸다.
마법은 위대하다. 하지만 무한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그렌이 가야 할 곳은 사지(死地)가 될지도 모른다.
사대 왕국에서 보내는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정예병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장소다.
그런 곳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는 것은 그냥 죽으러 가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소총과 수류탄, 지뢰나 클레이모어 등을 가지고 가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각종 폭발물이다.
레무리아에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화약이 없다.
하지만 화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폭발 물질을 제조할 수는 있다.
덕분에 마탑의 창고에는 대포도 있고 총기도 있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굳이 귀찮게 폭발 물질을 제조하고 대포와 총기를 만들어서 쓸 이유가 있을까?
뭔가를 폭파시키려면 그냥 파이어 애로우나 파이어볼 같은 화(火) 속성 마법을 쓰면 된다.
피곤하게 폭발 물질이나 대포와 총포를 만드는 짓 따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이곳에서 지구처럼 화기(火器)가 발전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마루: 전에 제가 말한 대로 기폭 장치로 쓸 것도 만들어야 돼요.] [그렌: 그건 이미 생각해 뒀어. 기폭 장치는 발화 마법진에다 시간 지연 마법진을 결합하면 간단해.] [마루: 오! 정말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오히려 기폭 장치는 지구의 것보다 더 간단하고 깔끔하게 나오겠네요.]마루는 그렌의 발상에 환호했다.
폭탄이란 무엇인가?
화약에 불을 붙이면 폭발한다.
거기에다 기폭 장치를 달아 시간을 지연시키면 그게 현대적인 개념의 폭탄이다.
그 폭탄 안에 쇠구슬 같은 파편을 넣으면 수류탄이나 지향성 파편 대인 지뢰, 즉 클레이모어가 된다.
함정을 만들고 기폭 장치를 달면 부비 트랩도 만들 수 있다.
쇠구슬 대신 가연성 물질을 넣으면 네이팜탄이나 소이탄이 된다.
백린을 넣으면 백린탄, 황린을 넣으면 황린탄이다.
이 중에서 제일 만들기 힘들고 중요한 것이 화약이다.
그런데 마탑에서 대량생산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화약 같은 폭발 물질은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