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ck Driver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94
“…………?”
얼굴에 쏟아지는 수분의 감촉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라인펠트를 바라본다. 어느새 손에 든 것인지 작은 들어 올린 상태에서…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 나름 진지한 말을 전달한 타이밍에 왜 이런 알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인지…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행위를 예의 바른 라인펠트가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찰 수밖에 없었다.
서류작성에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된 그 액체를 어째서 뿌린 걸까? 왜 굳이 그것을 ‘허공’에 뿌린 걸까?
“음….?”
그때 코끝을 향해 들어오는 은은한 꽃향기에 또다시 의문에 찬 소리를 흘렸다. 이 냄새는 라인펠트가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뿌린 그 향기였다. 병이 달라서 다른 액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동일한 액체가 들어있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해 라인펠트의 손에 쥔 병을 확인했다. 붉은 띠가 둘러져 있다. 분명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띠도 무늬도 문양도 없는 투명한 소병이었을 텐데 지금은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띠가 둘러져 있다. 착각이었던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책상 위에 올려둔 병에는 분명 붉은 띠는 없었을 터…
“죄송합니다. 조금 먼지 냄새가 심해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사고를 멈추게 하듯 라인펠트는 완성된 서류를 나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머릿속의 의문을 뒤로한 채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들여 안의 내용을 확인한다. 음… 모르겠다. 말은 특수한 힘에 의해 통하지만 여전히 문맹인지라 이 나라의 글을 읽을 수가 없다.
“못 읽겠군.”
“별 내용은 아닙니다. 박스터님을 아무런 검문 없이 통과시키라는 내용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고마울 따름의 내용이다. 시간을 투자한 가치가 있는 보람 있는 소비가 아닐 수 없다. 기쁘기 짝이 없는 말에 어느새 라인펠트의 이상 행동에 대한 의문은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만이 남게 됐다.
“그런데 박스터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그녀와 박스터님의 관계는….”
미소가 지워진 찌푸린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녀.. 두말할 것도 없이 ‘세리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세리아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나의 경우 그 당시 전신을 불태울 것 같은 분노에 침식돼 맛이 가버릴뻔했었고 소유와 멜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미쳐버려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를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의 격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같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망자를 끌어들이는 체질…
그것을 복수의 재료로 삼아 현재보다 더욱 강한 체질로 개선시켜 버렸다.
그야말로 저주.. 그것도 악랄한 저주주변에서 누군가 죽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가 되어버릴 정도다. 아무리 죄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쳐도 6년이나 그 체질로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원망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 그 원망 덩어리로 뭉쳐있을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인 채 섹스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아….”
떠올리자마자 말 대신 깊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라인펠트야 원래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식으로 일이 잘 풀린 것이지만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이딴 부탁을 한다면 곧바로 귀싸대기를 후려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나와 원수지간인 상대에게 저 부탁을 한다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어렴풋이 밖에 예상할 수 없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100% 거절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을 꺼내는 것 자체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다.
라인펠트 때의 난이도가 5라고 친다면 세리아는 20.. 아니 아예 측정불가급이다.
“너 나와 세리아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네… 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잖아?”
죄송스럽다는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얼굴로 사죄의 말을 하는 라인펠트는 꾸중을 듣는 강아지처럼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다 큰 처녀에게 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찰랑거리는 금발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저지르고 나서야 어린애 취급해서 화가 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리 싫지 않은 것인지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본인이 싫어하지 않는다면 어정쩡하게 그만둘 필요는 없었기에 멜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비단실 같은 머리카락의 감촉을 즐기듯 쓰다듬었다. 덕분에 침체되어 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재차 떠오르자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에 쓰러질 것 같았다.
“역시.. 힘들겠지?”
사정을 알고 있을 라인펠트에게 동의를 구하듯 묻는다.
“네 힘들겠죠. 적어도 만약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거절할 겁니다. 그전에 부탁 따위도 하지 않겠지만…”
마지막 말은 작아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혼잣말이라고 생각해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저 중요한 사실은 다른 두 사람에 비교해 난이도가 헬이라는 것이다. 원체 인생 자체가 헬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기에 바보처럼 웃으면서 넘길 수도 없었다. 저주를 교섭 재료로써 사용할 수도 있지만 몇 번의 승급을 거친 소유가 원래의 성향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정령석을
생각하면 쉽지도 않고… 그것이 있다면 차라리 한 단계 더 승급하는데 사용하여 전력을 증강시키는 쪽이 유용하다. 그 망할 고등학생이나 관리자와 한판 붙는 날이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조만간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후를 생각하면 그것을 교섭 재료로서 사용하는 것은 목숨을 깎아먹는 것과 동일하다. 최후이자 최악의 방법으로 강제적인 수법.. 즉 강간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웬만해서는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다. 물론 마음은 무겁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 멜을 위해서라도 저지를 수밖에 없지만…
“그녀가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제게 있기는 합니다.”
밑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나에게 구원의 손길과도 같은 말이 뻗어졌다.
“진짜!?”
그 놀라운 정보에 라인펠트의 어깨를 잡아끌어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을 바로 눈앞에까지 이동시켰다.
“있습니다, 단지.. 박스터님이라고 해도 가문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쉽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즉.. 어느 정도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권력의 힘인가? 무엇인가를 사용하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처녀조차 나에게 받친 라인펠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그에 응당하는 리스크가 따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문의 이득과 큰 관련이 있을 터다. 과연 내가 그에 준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뭘 해주면 돼? 아니면 뭘 주면 돼? 뭐든 말해봐.”
“정말로 지불하실 작정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라워하는 라인펠트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벌써부터 부담되어 죽을 맛이었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다. 끄덕고개를 세로로 흔들어 의사를 표시한다.
“괴로우실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굳건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묻는 라인펠트그 태도에 괜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던 나는 메말라가는 목에 마른침을 꿀꺽하고 넘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런 진지한 태도인것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고 두 귀를 쫑긋 세운채 다음의 말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 ”
응..?
”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왜 눈을 감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
왜 그러신가요?
” ”
아니.. 눈을 왜감아야 하는 거야?
”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나한테 뭘 시킬 생각이길래 눈을 감으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라인펠트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내가 눈을 감거나 거부하지 않는 이상에는 상황이 진행될 수 없다고 생각해 불안감은 남아있지만 시키는 대로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덕분에 바로 앞에 보이던 라인펠트의 얼굴은 물론이고 빛 하나 보이지 않고 새까만 어둠의 장막만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러면 된 거야?”
“네 괜찮습니다. 제가 됐다고 할 때까지 눈을 뜨거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
불안과 동시에 도대체 무엇을 시키려는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며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1분이 넘는 시간을 샜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어프로치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고 라인펠트가 무엇을 준비하거나 하려는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먼지 냄새와 은은한 꽃향기가 섞인 실내에 감도는 냄새와 풀잎의 향만이 비강을 간지럽힐 뿐이…
풀냄새? 새로운 향의 정체에 의아해하던 중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의 표면 위를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예상하지 않고 있던 감촉에 놀란 나는 라인펠트의 지시도 잊은 채 감고 있던 눈꺼풀을 벌컥 하고 올린다. 비강을 자극하는 냄새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인펠트의 풍성한 금발에서 샴푸 대용으로 사용되는 약초의 향 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흘러들어오는 원인은 나의 입술과 라인
펠트의 입술이 겹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윽..!?”
너무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 입술에 날카로운 고통에 신음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맞닿아있던 입술이 떨어져 나왔다.
“죄송합니다. 조금 실수를 한 모양이네요.”
반 강제적인 느낌으로 자신이 키스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태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손가락을 뻗어 나의 입술을 쓱 하고 닦아 냈다. 라인펠트의 손가락 끝에 묻어있는 액체는 붉다.
아마도 나의 피라고 예상됐다. 떨어지기 직전 입술을 깨물기라도 한 탓에 상처가 난 것일까? 지금은 별로 아프지 않다. 이 정도의 작은 상처라면 금방 회복되기 때문에 신경 쓸만 요소는 아니었다. 그저 지금 상황에서 신경을 써야 할 것은..
“가, 갑자기 뭐.. 뭘 하는.. 거야?”
나에게 키스를 해온 혹은 입술을 깨문 의미를 알 수 없는 행위에 대해 묻지 않으면 안 됐다.
단지 당혹스러움과 더불어 나이에 맞지 않게 숫처녀처럼 부끄러운 감정이 샘솟아 올라와 불타오를 것 같은 열기에 휩싸여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보수를 받았을 뿐입니다만..?”
피로 붉게 얼룩진 손가락의 끝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간 라인펠트는 피보다 더 붉은 혀로 그것을 살짝 핥는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천박해 보일지도 모를 행위였지만 라인펠트가 하니 고귀한 흡혈귀 같았다.
“보수라니…”
설마 보수라는 게 세리아에게 나의 부탁을 관철 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련된 것?
“가문의 위신이 걸려있으니까에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었… 어?”
“네 그래서 받았습니다.”
“이게? 가문의 위신과 저울질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자신의 입술을 가리킨다. 이딴 게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인 일이었다. 하지만..
“가문의 수장인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라는 반응하기 미묘한 대답을 태연한 얼굴로 내뱉었다.
“그럼 보수도 받았으니 약속대로 제가 가지고 있는 패를 넘겨드리겠습니다. 후후후”
피로 살짝 얼룩진 입술이 호를 그리며 천역 덕스럽게 미소 짓고는 어안이 벙벙해진 나에게서 등을 돌려 책상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딥다크한 전개 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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