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ck Driver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70
“그만큼도 아니지. 너희들의 거짓으로 점철된 구역질 나는 연기를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거 잘 됐네.”
녀석의 비꼬는 말에 자극받을 일 없이 덤덤하게 답했다.
“후우….”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보다는 ‘준비’를 하는 쪽이 건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망을 억지로 희망이라는 얇은 막에 감싼 뒤 뭘 할
거지?”
“너 새끼의 계획을 박살 낼 생각이다만?”
굳어진 몸을 스트레칭하며 답한다.
“하하하하하하! 우습군! 네가 뭘 할 수 있지? 확실히 너는 특이점이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순수한 영혼 상태의 나에게 그 어떤 해코지도 할 수 없고 애초에 그 육체 능력으로는 여기까지 닿을 수조차 없다!”
녀석의 말대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손도 발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체는 물론이고 영력이 담긴 공격조차 아무런 효과도 없다.
게다가 지금의 나로서는 있는 힘껏 점프를 뛰어도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른 나라면 닿는다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체를.. 관리자를 본 것은 아니다. 목적으로 하는 것은 위
한참 더 위의 장소에 있는 것어두운 밤 하늘 위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오늘따라 유독 둥글고 강한 빛을 뽐내는 달이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달을 보는 순간 몸에 반응을 시작한다.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팽창하는 것과 함께 온몸의 혈액과 세포 하나하나가 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이 단숨에 전신을 덮쳐온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는 익숙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회수를 반복하고 있었건만 이 격렬한 고통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나의 입에서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비명이 세어져 나왔다.
“흐으으으으으…!!”
지옥을 연상시키는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대가라고 하듯 온몸에 힘이 넘쳐온다. 늑대인간아린에 의해 내려진 저.. 아니 축복그로 인해 달을 보는 순간 격심한 통증에 시달리지만 그 뒤에 인간을 초월하는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는 짐승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반인 반정령 상태인가? 그 정도의 신체능력이라면 여기까지 닿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그것뿐이다. 이곳까지 온다고 해봤자 네놈이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과연 그럴까?”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관리자의 말을 비웃는다.
그리고 동시에… 지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육체가 로켓처럼 하늘 위를 향해 발사된다. 인간으로서는 도구도 도움도 없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 늑
대인간은.. 나의 육체는 하늘 위로 도약해 목적지까지 쉽게 도착했다. 하지만 나의 턴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깜짝 쇼다!”
한쪽 밖에 없는 팔이 구체를 향해 뻗어진다. 사람 머리보다 큰 크기였지만 늑대인간이 된 지금 한 손으로도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 행동에 의미는 없다. 아무리 반인 반정령의 육체라고 해도 지금의 나를 붙잡을…”
“붙잡을 수 있다고 병신 새끼야!”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으로 관리자(구체)를 붙잡는다. 무엇인가를 잡았다는 감촉 자체는 없지만 가볍기는 해도 약간의 무게감을 느낀다.
“뭐, 뭐라고…!?”
관리자의 절규와 함께 뛰어올라간 육체가 지상에 사뿐히 착지한다. 여전히 손안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뿜어내는 구체가 들려져 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어떻게 만질 수 있는 거지? 세계의 굴레에 벗어난..!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네놈 따위가 만질 수 있는거냐아아아아아아아!!”
그 말에 설명을 덧붙일 수 있는 만큼 자세하지 않다.
단지 대답하자면…
“체질이다.”
라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소유 녀석도 몹시 놀랐지만 나는 영체를 만질 수 있다. 덕분에 소유의 몸을 만지거나 때리거나 한 일도 종종 있다.
솔직히 득을 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쓸모없는 체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쓸모없다고 생각된 체질이 마지막에 와서 빛났다. 물론 이 녀석이 말한 순수한 영혼인지 뭔지 하는 존재와 소유 같은 영체는 종류가 다르다는 것 같지만… 애초에 그거든 이거든 나의 체질 자체가 특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녀석도 체질의 혜택을 받아 만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됐다. 조금 불안은 남았지만 어째서인지 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 있다는 일은 아니었지만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왜일까..? 혹시 영체를 만질 수 있다는 나의 체질은 이때를 위해 준비해둔 것이기라도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체질을 준 뒤 망할 각본을 짠 신에게 상욕을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건 뒤로 미루기로 한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손아귀에 확실히 잡혀있는 이 녀석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현실도피는 그만해라. 꼴사나우니까.”
“큭…! 아니.. 확실히 상정 외의 사태지만 그것뿐이다. 나를 잡았다고 해서 어쩔 거지? 때릴 건가? 터트릴 건가? 그럼 폭발이 앞당겨질 뿐인 일!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네놈도 네놈이 소중히 아끼는 자들도 전원 나와 함께 소멸하는 거다!”
“쫑알 쫑알 시끄러워! 애초에 터트릴 생각도 부술 생각도 없었거든.”
녀석을 손에 꽉 쥔다.
단지 상처를 받으면 더 빨리 터진다는 것 같았기에 어느 정도 힘은 조절했다. 그 상태로 천천히 자세를 잡는다. 어떤 자세냐고? 당연 녀석을 들고 달릴 자세다.
“간다아아아아아아!!”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를 토해내며 커다란 몸이 바람처럼 앞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의 몸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속도의 영역
뛰어난 각력을 가진 짐승이 아닌 이상에야 나오지 않는 속도가 육체에 머문다. 감상을 말하자면 빠르다. 아무튼 빠르다. 트럭의 전속력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릴지 모르지만 지상의 생명체 중 단연코 상위에 위치한 속도 시속으로 따지면 60km 이상1시간에 60km를 이동할 수 있는 속도녀석의 범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에는 힘들지만… 나뿐만
이 아니라 라인펠트 쪽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폭발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만큼은 충분할 수준이다. 멜도 소유도 라인펠트도 아린도 세리아도 얀도 살 수 있다. 단지.. 그 생존 명부에 나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죽는다.
그래 죽는다. 박스터라는 인간은 여기서 소멸한다. 본의 아니지만 이 빌어먹을.. 뭣 같은 존재(관리자)와 함께 육
체도 영혼도 사라진다. 그런데도 괜찮냐고? 당연.. 괜찮을 리가 없다! 죽는 건 싫다. 소멸되는 건 싫다. 어떤 의미로 영혼이 아예 사라지는 거니까. 그 무시무시한 공간에 끌려가는 일은 없기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조금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살고 싶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무의 공간에 끌려간다고 해도 살아가고 싶었다.
여전히 아빠로서의 책임감을 짊어질 용기도 기개도 없지만…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 멜과 소유와 좀 더 여러 곳을 티격태격하며 여행하고 싶었다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좀 더 그 애정을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바램찾아올 리 없는 확정된 미래끝의 끝에 도달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강인한 악운을 타고났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살 가능성은 0% 소수점조차 남아있지 않은 절대적 확률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영혼도 시체도 남기지 않고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퇴장한다. 아아아 두렵고 무섭다. 생명을 가진 이로써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그 개념 자체가 너무나도 두렵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꿔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섭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육체는 반대편을 향해 최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등을 돌려 뛰어가봤자 녀석의 자폭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사히 도망간다고 쳐도 이런 몸으로는 결국 죽음뿐이다.
“………….”
숨을 몰아 내쉬며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출발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몸은 엉망진창인 상태가
돼있었다. 빳빳하고 윤기나는 모피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그 안에 감춰진 피부는 녹아내린지 오래다. 보이는 것은 그 안쪽에 있는 근육뿐.. 하지만 그 조차도 흐물흐물 녹아내려 더욱 안쪽에 위치한 뼈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나의 몸이 이렇게 된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관리자의 영혼에 의한 것이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끄럽게 울부짖는 구체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나마 그때는 가벼운 화상 정도로 끝났고 늑대인간의 특출난 재생력이 힘을 발휘해 고통을 감수한다면 별일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1분 1초가 흘러갈수록 녀석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더더욱 높아져 갔다. 순식간에 빳빳한 모피를 태우고 피부에 화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 이때까지는 재생력으로 어떻게든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이 괴물 같은 육체로도 버틸 수 없는 열기에 녀석을 붙잡고 있는 손을 시작으로 단숨에 녹아내려가기 시작했다. 앗 하는 사이 피부가 녹고 근육이 녹아내리며 뼈가 보여왔
다. 이대로라면 구체를 쥐고 달리는 것은 무리.. 놓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나에게 오른팔은 없다. 의수로 대처하던 트럭은 멜과 소유가 타고 가버려 가지고 있는 건 오직 왼팔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체를 떨어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배에 꽂아 넣었다. 가져가는 순간 순식간에 바람구멍을 뚫어준 덕분에 그 안쪽에 꽂아 넣을 수 있었다.
단지.. 그 부분으로부터 구멍이 넓혀져서 또다시 떨어트리게 될뻔했지만.. 몸을 최대한 웅크려 가슴으로 고정시켰다. 이 상태라면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도 금방이었지만… 그것은 녀석(구체)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강력한 열기를 뿜어낸다는 것은 폭발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그때도 그랬다. 연가시를 닮은 기생충 형태의 마수그 당시에도 폭발하기 직전 엄청난 고온을 뿜어내고는 폭발
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도 슬슬 한계다.
“내가… 내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이 내가아아아아아!!”
녀석은 착란한 것 마냥 시끄럽게 품 안쪽에서 울부짖었다. 그와 동시에.. 구체가 주르륵하고 품 안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
자연스레 시선이 몸통 쪽으로 향한다.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인체 표본의 일부를 누군가 훔쳐 간 것 같은 모습구체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에 다 녹아내린 것인지 살도 내장도 뼈도 전부 녹아져 가슴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어떻게 이러고 살아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혹시 나는 불사신인가? 하지만 거기서 깨달았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유체이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으로 점점 시점이 높아지며 상반신 대부분이 녹아 소멸된 자신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죽었다는 것을 깨달을새도 없이 사망해버린 모양이었다.
“하…”
자신의 시체를 이런 식으로 확인한다는 경험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관리자의 혼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을 알리는 신호라고 자각한 순간… 나의 의식은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끌려 들어가며 중단됐다.
============================ 작품 후기 ============================아아 드디어… ======================================================
에필로그 1 관리자에 의한 폭발이 있고 나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왕의 재해사람들은 그 사건을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고귀한 희생으로 많은 생명을 구한 ‘트럭의 기사’ 의 존재가 꼬리처럼 붙었다. 마왕과 싸우고 사악한 간계로 멸망할뻔한 세게를 자신의 한
목숨 희생하여 구해낸 영웅실제와는 조금 달랐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트럭의 기사는 그런 식으로 각인되어 있었고 그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수도에는 생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커다란 동상이 세워졌다.
“………………….”
그리고 수도의 중심에 세워진 그 동상 앞에 한 명의 아이가 서있었다. 피폐해졌던 때와는 다르게 3년 동안 국력을 회복하고 예전의 번화한 수도의 모습을 되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한가득 있는 그 장소에서 아이만이 다리를 멈춰 세운 채 동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이는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흑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자른 아이였다. 하지만 흑발보다 드문 것은 그 피부색하얗지도 까맣지도 않은.. 황색의 톤을 하고 있다.
“뭐야 이건…?”
다른 인종과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아이의 입에서 나이와는 조금 동떨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모습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성인 남성처
럼 굵고 낮았다.
“누구 허락 맡고 이딴 동상을 세운 거야..? 심지어 나보다 잘생겼잖아? 내가 저런 쾌남일 리가 없잖아.”
아이는 굳어진 얼굴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누가 듣는다면 머리의 상태를 의심할만한 발언이었다. 동상의 인물을 자신이라고 표현하는 걸 듣는다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아이는 동상의 인물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그 인물의 아들 정도라면 모를까 본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
가 있었다.
“아아.. 쪽팔려 죽겠네….”
그러나 아이의 모습은 상당히 진지했다. 거짓이나 허언을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없다. 애초에 그 목소리도 그렇지만 말이나 표정 그 자체가 아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그것은 흡사 아이의 몸에 ‘어른’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고귀한 영웅 트럭의 기사 박스터라니… 무슨 벌칙게임이야? 아.. 라인펠트한테 말하면 철거해주려나?”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투덜 거리며 오만상을 찌푸린 아이는 동상에서 휙 하고 등을 돌렸다.
“찾았다!”
그와 동시에 인파를 꿰뚫고 한 명의 여성이… 새하얀 머리카락과 피부의.. 남자라면 자연스레 시선이 갈 정도의 미녀가 아이에게 달려와 자신보다 한참 작은 몸을 양손으로 껴안은 채 가뿐히 들어 올렸다.
“자, 잠…!?”
애교 부리는 고양이처럼 자신의 뺨을 비벼오는 여성의 행동에 아이는 당혹스러워하며 저항한다.
그러나 아이와 성인의 근력 차이에 의해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는 없었다.
“멜..! 그만해!”
아이는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여성,.. ‘멜’은 자신의 뺨을 떼어 놓았다.
“후우… 몸이 작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엄청 불편하네.”
겨우 안정된 상황에 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고 그것을 애정 어린 미소로 답한 멜은…
“뭐 하고 있었어. ‘삼촌?'”
이쪽도 머리의 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호칭으로 아이를 불렀다.
“쉿..! 사람들 있는대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
아이는 허겁지겁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시끄러운 공간에서 멜의 소리는 흘러 들어가지 않은 것인지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이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돼?”
“평범하게 이름을 부르면 되잖아?”
“박스터?”
“너한테 이름을 불리니까. 기분이 묘하네.”
쑥스럽다는 듯 자신의 뺨을 긁적이는 아이그 행동 역시 아이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찌찌 대왕은 어디 있어?”
“언니라면 귀찮다고 먼저 갔어.”
“그 망할 것…!”
아이는 빠드득하고 이를 갈며 이곳에는 없는 누군가에게 원
망을 표출했다.
“하아.. 어쩔 수 없네. 가자 멜”
“어디?”
“라인펠트의 저택”
거기서 아이와 멜의 교환은 끝났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안은 채 멜은 인파의 사이에 섞여 들어가 그 모습을 감추었다. 에필로그 2 어느 저택의 정원
그곳에는 떠들썩한 소리가 가득했다. 원인은 꺄꺄 거리며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4명의 아이가 원인이었다. 전원이 2살에서 3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두 명 여자아이가 두 명머리색은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전원이 흑발로 통일된 아이들그런 아이들을 4명의 여성이 정원 한편에 설치된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보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제 3살이 되어가는군요.”
그중 풍성한 금발을 늘어트린 여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말도 하기 시작했어.”
갈색의 머리카락을 나로 땋은 주근깨의 여성이 무뚝뚝한 소리로 답했다.
“제 아이도 마찬가지랍니다.”
주근깨 여성의 말에 수긍하듯 푸른 기가 감도는 흑발의 기품 있는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아빠가 없다는 거에 깨닫는 거 같단 말이지…”
마지막으로 적발에 갈색 피부의 건강미 넘치는 여성이 얼굴을 흐리며 말했다.
“다들 마찬가지라는 거군요.”
“…. 좀 더 크기 전에 아저씨를 소개하지 않으면…”
“지금 상태에서요?”
“아무리 애들이 어려도 그건 좀…”
말이 끝나기 무섭게 4명의 여성은 깊은 한숨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내쉬었다.
“큰일이군요. 아이들의 걱정도 되지만… 더 나이를 먹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습니다만..”
“……. 헛소리는 꿈에서 해.”
“그렇죠. 헛소리는 꿈에서나 해야죠. 물론 당신도요.”
“자, 잠깐..!? 애들도 있는데 갑자기 불붙지 마! 때가 올 때까지는 싸우지 않기로 했잖아!”
순식간에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억제하듯 적발의 여성이 허둥지둥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는지 험악한 공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대신 미묘한 분위기가 그녀들의 사이에서 감돌았다. 서로를 경계.. 혹은 견제하는듯한 시선을 힐끔힐끔 보냈다.
“그건 그렇고.. 아이들이 ‘아빠’를 많이 닮았군요.”
“다들.. 머리카락이 까매.”
“제 쪽은 모계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다른 애들보다 한층 더 까맣게 보이네요.”
“누가 보면 형제인 줄 알겠네! 응..? 아니 형제는 형제인가? 배는 다르지만 씨는 같으니까?”
적발의 여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순간.. 잠식됐던 험악한 공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제 아이가 가장 아빠를 닮은 것 같네요.”
“……… 아니 우리 아이가 제일 닮았어.”
“농담들을 참 잘하시네요? 머리색 빼고는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요?”
“또 왜 싸우고 그래..!? 근데 닮기로는 우리 애가 제일 닮지 않았어? 피부색도 제일 비슷하고..”
그 순간 날카로운 시선이 적발의 여성에게 집중된다.
“어어…”
당황해하는 적발의 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지둥 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결판이 나지 않겠네요. 역시 본인에게 선택받는 게 가장 빠르겠군요.”
“….. 당신들의 패배는 정해져있어.”
“당신들에는 그쪽도 포함되어 있겠지만요.”
“그러니까 너희들 싸움은 그만하라고..!”
아이들 못지않게 시끄러운 소리로 떠드는 여성들.. 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화목한 공간과 다르게 그녀들의 사이에는 진흙탕을 연상시키는 질척이는 감정만이 강하게 맴돌고 있었다.
에필로그 3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솔직히 나도 이 상황 자체가 당혹스럽기 짝이 없기에 뭐부터 말해야 할지 곤란하다. 일단.. 나박스터는 죽었다. 정확하게는 박스터라는 인간의 ‘육체’는 관리자의 자폭에 말려들어가 소멸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죽지 않았다. 상당히 모순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헛소리는 아니고 진실이다.
나는 살아 있다. 육체는 확실히 소멸됐지만 영혼은 살아났다. 이렇게 말하면 소유 녀석 같은 귀신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나에게는 확실히 육체도 있다. 본래의 몸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움직일 수 있고 물건을 만질 수도 있는 육체가 있다.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 육신을 설명하려면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3년 전상반신의 대부분이 녹아 사라지고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직후 새하얀 빛에 휩싸여 의식을 잃었던 그 순간 이후각오는커녕 울고불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시간조차 없이 의식을 잃어버린 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회복했다. 그런 내가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놀란 얼굴을 한 소유와 활짝 웃고 있는 멜이었다. 어째서 멜과 소유가 여기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이 쇠사슬로 속박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려고 해봤지만… 말은커녕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도대체 나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소유 녀석이 트럭에 설치된 거울을 가리켰고 다행히 눈동자는 움직이기에 그곳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명을 내지를뻔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갓난아이 정도 크기의 ‘내’가 비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내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인가! 애초에 나는 거기서 소멸한 게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라고 패닉에 빠져 있던 나에게 소유는 차분… 하지는 않고 상당히 동요하는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멜이 낳았다. 누구를? 나를… 물론 진짜로 아이(나)를 낳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멜은 인간과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음에도 생식기능
은 없다. 분명 나와 성관계를 맺었지만 멜이 임신을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태.. 아이의 몸은 무엇이냐고? 대답을 하자면 ‘분신’이다. 솔직히 소유 녀석이 횡설수설한 것도 있고 잘 모르는 영력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멜이 ‘임신’ 했다고 말했을 때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에 대한 개념을 소유 녀석이 ‘분신’이라는 애매모호한 표
현을 써 설명한 탓에 멜은 내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이 말 그대로 ‘분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나와 이어져 있는 덕분에 자신의 몸 안에 박스터라는 인간의 육체와 동일한 것을 만들었다. 표현하자면,. 클론 혹은 예비 육체라고 해야 할까? 멜의 말로는 31세의 육체까지 성장시킬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그전에 내가 죽어버린 것이 원인으로 아직 아기의 상태.. 미완성인 상태의 그릇(육체)에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그것을 들은 나는 ‘뭐야 그건!?
“이라고 마음속에서 절규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멜이 만든 새로운 육체에 탑승한 나는… 더 이상 ‘인간’ 이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인가 했지만… 소유 녀석의 말로는 멜의 힘으로 만들어진 탓에 그 성질도 멜과 똑같은 존재가 됐다는 것원래부터 인간과 멀어지고 있었지만.. 한번 죽고 새로운 육체에 탑승함으로써 진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뭐야 그건!’이라고 두 번째의 절규를 마음속에서 내뿜었다.
아무튼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소멸되지 않은 것이니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멜과 같은 존재가 돼버린 탓에 이대로라면 몇십 년을 갓난 아이로 살아야 한다는 것 같았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멜처럼 영력이 꽉 찬 정령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됐다. 살아남은 건 좋지만 그렇다고 갓난 아이로 몇십 년도 살수 없었기에 우리는 곧장 마수 사냥에 들어갔다. 그러나… 육체를 성장시킬 만큼의 정령석을 떨구는 마수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중형 마수 자체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왕’인 존재가 소멸된 탓인지 전부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그 탓에 중형 마수를 찾아 헤매는 여행을 3년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초등학생 정도의 육체까지 성장하기는 했지만…. 성인일 때와 비교하면 턱없이 불편하다. 대신 나도 소유나 멜처럼 ‘영력’을 다룰 수 있기에 편해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숨 쉬듯 능력을 사용하는 멜이나 오랜 시간 영체로서 활동한 소유와 다르게 햅쌀급의 나로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능숙하지 않았다.
결국 어찌 됐든 육체를… 적어도 고등학생 때 정도까지는 돌려놓지 않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거기까지 성장시키는데 들어가는 정령석을 입수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인간도 아니고 꼬맹이가 되어버려 성장을 위해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닌 나지만.. 그 사이에 확실하게 살아있다는 것과 지금 나의 현 상황을 전달했다. 물론 이런 몸으로 만나는 것은 꺼려져 삼자에게 맡겼다. 그 이후로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간간이 소식이 전달되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인 펠트로부터 자신의 저택에 얼굴을 비추
어달라는 간청이 왔다. 내 ‘아이들’의 얼굴을 볼 겸 잘 있는지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녀들을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태어나는 순간 옆에 있어주지 못한 죄악감에 마수 탐색을 멈추고 그대로 수도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막 마차에서 저택의 앞에 내린 상태”
아아… 이 모습 진짜 싫은데.
” 나도 모르게 불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나는 귀여워서 좋은데!”
그렇게 말한 멜은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등 뒤에 꽉 누르며 껴안았다.
“그래…”
뭐라 반응하는 것이 곤란해 쓴웃음을 지으며 답하고는 철장 사이로 저택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아…”
잔디 깔린 정원을 아장아장 걷고 구르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단숨에 정원에 노는 아이들이 나의 자식이라는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전원이 나와 같은 흑발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내 안의 무엇인가가 그 아이들이 나의 핏줄이라는 것을 속삭였다.
“……………….”
아이들을 본 나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그저 우뚝 솟은 나무처럼 그 자리에 못 박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치챘을 때는 이미 나의 두 다리는 열린 저택의 문을 지나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었고 어느새 그 앞까지 도착했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에 아이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주시
한다. 더러움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걸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지금 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자신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안녕 얘들아”
나도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몸을 수그린다. 그리고…
“갑작스럽겠지만 내가 너희들의….”
거기서 말을 멈춘다.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 너무 송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자칭할 자격은 나에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태어날 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거기에 지금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은 연령의 육체다. 이런 반푼이 같은 내가 아이들에게 아빠라고 밝혀도 되는 걸까?
책임을 짊어질 각오도 없는 내가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 사고를 계속하며 자칭하는 말을 내뱉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던 나였지만…
“놀.. 자!”
한 명의 아이가 나의 옷자락을 쥐고는 태양과도 같은 눈부신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것을 신호로 하듯 다른 아이들도 나의 발밑에 모여들어
‘놀자!’
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얼어붙어있던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굳어진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나랑…”
상냥한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고 양팔은 모여있는 아이들을 감싼다.
“나랑… 아빠랑 놀자,”
고민하던 한마디가 망설임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 작품 후기 ============================연재한지 1년이 넘었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습니다만 어찌됐든 시원섭섭하네요… 제대로 된 후기는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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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결이 났습니다. 연재 기간으로 치면 작년 2월부터 했으니 1년하고 조금 넘은 시간이군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만.. 어찌 됐든 중도 포기하지 않고 완결 낼 수 있었다는 거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다만 좀 더 잘 쓸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좀 더 괜찮은 전개를 지향하기 위해 2부를 통체로 갈아엎었지만 그래도 좀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쪽으로 나갈 수 있었지 않았나 좀 더 깔끔하고 좋은 마무리가 있지 않았나.. 자기반
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렇게 후회도 남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많이 모자란 소설입니다만..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봐주셨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록 물질적인 보답은 못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좀 더 재미있고 괜찮은 글을 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1년의 시간 트럭의 기사를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p.
s 신작을 준비 중입니다만..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겠네요. 준비가 다되고 업로드할 때가 오면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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