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ck Driver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8
예상외의 일은 있었지만 의뢰는 완료했고 내가 봤던 은갑곰의 모피보다 한층 더 큰 물건도 보수로 받은 데다가 왠지 모르겠지만 부적 비슷한 것도 받았고 가장 심각했던 왼쪽 손목도 완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운전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이상체질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곧바로 마을을 떠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급성장을 이룬 멜을 언제까지 화물칸에 가둬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멜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 태도가 변한 얀을 보니 떠나겠다는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를 아빠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품 안에서 아이처럼 잠들었던 그 이후 얀의 태도는 변했다. 원래부터 나에게 스킨십을 강행해 오던 얀이었지만 그 스킨십을 종류가 바뀌었다. 전에는 몸으로 유혹한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가족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과격하지 않고 야하지도 않은 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어린아이 때의 멜과 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접해왔
다. 원인은 물론 그날 밤의 일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지게 된 탓인지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품 안에서 잠든 적이 없었던 것인지 얀은 내가 취한 행동에 ‘가족’이라는 존재를 느껴버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얀이 나를 보는 눈빛에는 신뢰가 담긴 친애의 정 비슷한 무엇인가가 잔뜩 담겨 있어.. 여러 가지 의미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떠난다’라는 말을 하기 굉장히 힘든 상태다. 원래는 얀을 봐서 하루 정도만 더 있다가 떠날 생각이었건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어 하루를 더 소비할 수밖에 없
었다. 그리고..
“삼촌! 삼촌! 삼촌! 나 밖에 나가고 싶어..!”
보는 눈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넓어진 트럭의 화물칸에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멜이 손발을 파닥파닥 거리며 외쳤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하루만 더…”
“그렇게 말하고 벌써 3일째잖아…”
“미안…”
뭐라 변명할 거리가 없던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할 수밖에 없
었다. 알고는 있지만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얀을 내버려 두고 떠난다 라는것은 허들이 너무 높다. 물론 멜에게 느끼는 죄악감도 상당했기에 괴로울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복잡한 상황에 ‘소유’가 불만을 토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멜의 경우 나의 말에 절대적.. 이라고 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해서는 잘 따르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그것이 아닌 소유의 경우 설득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벌써 3일째 이 마을에 체류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
고 소유는 나를 나무라거나 하지 않았다. 딱히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거나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다. 그저 트럭의 ‘내부’를 꾸미는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톤 트럭이 되면서 원래의 화물칸과 비교해 약 2배 정도의 넓이가 됐다. 하지만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쌓여진 골판지 박스는 너저분하게 한쪽 구석에 쌓여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너저분한 상자들과 넓어진 공간 이 2 가지가 소유의 본능(?)을 자극 한 것인지 대대적으로 화물칸을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소유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벽걸이 형태의 ‘선반’을 위에 다는 것이었다. 물론 승급을 했지만 가구를 만드는 능력을 소유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선반을 만드는데 ‘멜’ 의 능력을 이용했다. 예전의 멜이었다면 선반 정도 크기의 물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 표범 마수의 정령석을 먹고 성장한 덕분에 그 정도 크기도 만들 수 있게 됐다. 뭐… 그 탓에 소유에게 이리 부려먹히고 저리 부려먹히는 일이 됐지만 말이다.
아무튼 간 소유가 화물칸의 개조를 한 덕분에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던 박스들은 벽 윗면에 달린 선반 위에 차곡차곡 넣어져 화물칸의 내부가 상당히 깔끔해진 것은 물론이었고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선반에 넣어둔 덕분에 공간 자체가 넓어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 이틀 동안 소유(멜)가 한 작업은 그것이 끝이 아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침대’를 만든 것이다. 아무리 화물칸이 넓어졌다고 해도 상당히 큰 침대를 바닥에 두는 것은 공간을 제법 많이 차지하는 일이다. 솔직히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침대는 괜스레 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가
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유(가 생각하고)와 멜이 만든 침대는 무려.. 천장에서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화물칸 천장에 수납되고 사용할 때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덕분에 사용하지 않을 때 천장에 침대를 붙여놓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가 있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구조를 떠올린 것인지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이것을 만들라고 해서 만든 멜도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테이블이라도 만들까.”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실현 시킨 화물칸의 내부를 바라보던 소유는 깔끔하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 한 부분을 지긋이 바라본 채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트럭을 뭐로 만들 셈인 거냐… 가시는 길 편하게 가시는 저승행특급열차냐…”
선반이야 짐을 넣어둘 수 있어서 편리하고 침대도 있으면 나쁘지 않았기에 상관없지만 굳이 테이블은 필요한 것일까? 애초에 밥을 먹을 때는 야외에 나와서 밥을 먹으니 굳이 테이
블같이 큰 물건이 필요할까 싶었고.. 혹시 운송업을 해야 되는 경우 대량의 짐을 넣기 위해서는 테이블은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결국 만드는 것은 멜이니까.. 고생은 멜이 전부 하는 게 아닐까?
“북유럽식의 사각 테이블이 날까..? 아니 좀 더 모던한 느낌이 드는 원형? 그것도 아니면 조금 특이한 형태로….”
나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소유는 테이블을 놓을 예정이라고 생각되는 공간을 노려보듯 바라보며 잘 모르는 단어들을 나불나불 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인테리어 하는 걸 좋아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기는 하지만…
“색은 어떻게 하지..? 아니 그전에 내부 색을 정하고 테이블 색을 맞추는 게 낫겠지? 음.. 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환한 기분을 낼 수 있는 색… 역시 핫핑크일까.”
“절대 안 돼!? 그 색만큼은 절대 하지 마!”
여러 가지 의미로 악몽이 떠오르는 그 색에 경악한 나는 소리쳤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 색으로 물들인 이 공간 안에서 마음이 편해질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응? 뭐야 너 언제 온 거야?”
내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상당히 뒤늦게 눈치챈 소유가 나를 방해물로 인식하는 듯 바라봤다.
“아까부터 있었거든.. 그것보다 핫핑크는 진짜 그만둬라. 자다가 경기 들리고 싶지 않으니까.”
들리는 건 경기가 아니라 (귀) 신 끼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핫핑크는 너무 밝을지도 모르겠네. 여긴 역시 마젠타 정도로..”
“핫핑크랑 뭐가 다르다는 거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너 색맹이야..? 마젠타랑 핫핑크랑은 완전히 다르거든?”
솔직히 나에게 있어서는 마젠타든 핫핑크든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는 인식 밖에는 없었기에 그 색이 그 색이라고 밖에는 인식할 수가 없다.
“색도 모르는 아마추어는 꺼져! 내가 이 칙칙한 공간을 화려하게 변신시켜줄 테니까.”
팔짱을 껴 자신의 가슴을 강조하는듯한 자세를 취한 소유의 두 눈에는 열정의 불꽃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이 녀석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든 것인지 나로
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단지 괜히 옆에 있다가는 여러 가지 불똥이 튈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하아.. 진짜 핫핑크든 마젠타든 너무 화려한 색은 그만둬라…”
이 공간을 꾸미는데 엄청난 집착 심을 드러내고 있는 소유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한 나는 화물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문을 열고 그대로 지면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럼 난 간다. 멜도…”
“삼촌..!? 나도..! 나도 나갈래!”
적당하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던 나를 향해 멜이 후다닥 달려와 매달리듯 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건…”
웬만하면 나오게 해주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이 성장한 멜을 보면 이상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기에 나오게 할 수는 없다. 정령과 친화력이 떨어지는 인물들에게는 ‘정령’라고 속일 수 있지만 이 마을에는 거의 대부분이 ‘소유’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멜이 정령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 일 확률이 높았기에 이대로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버린다.
그리고 그때
“아아!?”
멜이 철퍼덕 하고 화물칸의 바닥에 엎어졌다. 갑작스럽게 멜이 넘어지는 바램에 놀라.. 서둘러 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화물칸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메에에에엘? 어디 가는거니이이?”
“힉..!?”
황천으로 끌고 가는 원령 같은 모습을 한 소유가 멜의 다리를 붙잡은 채 광기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만들게 많아. 탁자도 의자도.. 소파도 만들지 않으면 안되니까. 아직 나가면 안 되지”
“시, 싫어..! 나는 삼촌이랑 밖에 갈 거야!”
“안되지.. 안돼! 너는 나랑 같이 이 공간을 아름답게 연출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강렬한 집착을 느끼게 하는 그 목소리와 함께 멜의 몸이 스르륵하고 미끄러지듯 화물칸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삼초오오오온!!”
절망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멜은 도움을 청하듯 나에게 그 가녀리고 새하얀 손을 쭉 하고 뻗었고 본능적으로 그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방. 해. 하. 지. 마”
라는 지옥 밑바닥에서 끌어올린듯한 살의가 가득 담긴 그 소리에 움찔하고 몸이 굳어져 더 이상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싫어어어어어어어!!”
“아하하하하하하하!!!!”
멜의 절규와 소유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듯 화물칸의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직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화물칸의 문이 단단하게 잠겼다.
“………..”
갈 곳을 잃은 손을 조용히 내려 원래의 위치로 복귀 시킨 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자! 만들어! 테이블을! 이런 식으로 된 이 정도 크기의 붙박이 테이블이야! 자 어서! 만들어! 모던함이 물씬 풍기는 테이블을 만들란 말이야! ] [싫어! 싫어어어어!!] 라는 소유와 멜의 소리가 작은 문의 틈 사이로 흘러 들어왔
다. 그야말로 아동 착취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도울 수가 없다. 일단 돕게 된다면 인테리어를 방해하려는 나에게 창 끝이 들이밀어질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기서 멜을 돕게 된다면 이대로 밖에 데려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기껏 정체를 감추기 위해 숨기고 있는데 위험한 상황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미안하다…! 멜!”
굳게 닫친 문 앞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의 말을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트럭에서 도망가듯 달려 나갔다. 계속해서 멜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분명 착각일 것이다.
라고 자신을 세뇌하며 양심을 콕콕 찌르는 고통을 내던지며 어두워진 마을 안을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3연참 마무리!
이번 에피소드도 슬슬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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