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Begging RAW novel - Chapter (116)
내게 빌어봐-116화(116/240)
남자가 고개 들어 눈을 마주했다. 눈빛이 어서 말하라 재촉했지만, 속에서 북받쳐 올라온 말이 막상 혀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죽여. 차라리 나를 죽여.
차마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으니까.
그레이스는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콱 조여 왔다. 살아서 풀어야 할 의문들이 그레이스의 심장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아, 앗, 아흣….”
무려 귀족의 시중을 분에 넘치게 받으며 씻은 몸은 곧바로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레이스는 침대에 누운 남자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은 채 가쁘게 헐떡였다.
찰싹.
“아!”
허리를 잡고 있던 손 하나가 엉덩이를 때리는 순간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며 신음했다.
“멈추지 마.”
남자를 노려보던 그레이스는 잠시 힘을 풀었던 아랫배를 다시 조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레이스가 이 남자의 위에 올라타 스스로 허리를 돌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오늘 밤엔 한 번만 하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본거지의 위치를 묻지 않겠다는 거래가 그랬듯, 이 남자는 거래를 하면 절반 정도는 정직하게 지켰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지키는 척하다 비열한 수를 써서 어겼지만.
그레이스는 50 대 50의 확률에서 희망적인 쪽에 오늘 밤을 걸어 보았다. 어차피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100의 확률로 절망뿐이었으니.
“쥐고 끝까지 당겨, 읏….”
명령을 쏟아 내던 남자가 그레이스의 허리를 덥석 잡아 멈추며 하마터면 저지를 뻔했다고 중얼거렸다. 시키는 대로 해도 불만이었다.
오늘 밤엔 한 번밖에 하지 못하니 가능한 한 오래 즐기려고 사정을 참고 있는 듯했다. 약속을 지키려는 걸까.
깊이 패어 있던 남자의 미간이 펴지자 그레이스는 엉덩이를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이 남자와는 반대로,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위에 앉아 있으니 그가 사정할 조짐이 보이면 실수인 척 빼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아랫배는 그레이스가 흘린 애액으로 흠뻑 젖어 미끌미끌했다. 덕분에 단단한 아랫배를 타고 엉덩이를 앞뒤로 사정없이 미끄러트리는 건 쉬웠다.
“으응, 아….”
그레이스는 탄성을 길게 늘어트리며 등허리를 잘게 떨었다. 성기가 들락날락하면서 속에 묻힌 굵다란 살덩이가 가장 민감한 지점을 짓쳐 올리고 긁어내렸다. 눈앞이 아찔했다.
엉덩이를 둥글게 돌려 각도를 틀어 보았지만 자극은 딱히 약해지지 않았다. 도리어 길쭉하고 단단한 기둥이 안을 크게 휘저으면서 내벽을 샅샅이 문지르기만 했다.
“으으응….”
그레이스는 제 손가락을 깨물며 신음했다. 이젠 어디든 닿기만 하면 흥분했다. 엉덩이를 놀릴 때마다 질컥질컥 물소리와 애액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갈수록 생생해지는 게 그 증거였다.
빨리 끝내고 싶은 건지, 빨리 가고 싶은 건지. 이쯤 되니 모호해졌다. 육체적인 욕망이 결국 이성을 집어삼켰다. 그레이스는 곤봉처럼 단단한 성기를 속살로 콱 쥐고 더욱더 빠르게 넣었다 빼며 음탕한 신음을 쏟아 냈다.
남자의 반응 또한 야해졌다. 허리 짓이 거칠어질수록 점점 참기 힘들어하는 얼굴이 되는 게 볼만했다. 거기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까지 했다.
크게 부풀어 올랐다 꺼지는 가슴팍을 두 손으로 짓누르며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탁탁탁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몸을 흔들었다.
마지막을 향해 사납게 몰아붙이는데 남자가 불현듯 엉덩이 한쪽을 움켜쥐었다. 그레이스는 고작 그것만으로 꿈쩍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는 열이 올라 메마른 입술을 급히 적시며 핀잔을 던졌다.
“왜 이렇게 쫓기는 사람처럼 굴어?”
목구멍까지 말라 버렸는지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천천히 흔들어. 하아, 멈추지는 말고.”
좋으면서 왜 이래. 사실 너무 좋으니까 제동을 거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그제야 저도 좋아서 색욕에 미친 요부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단 생각에 무안해졌다.
남자가 엉덩이를 놓아주자 그레이스는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이곤 하체를 살살 움직였다.
‘얼른 끝내 버릴 거야.’
속도는 시키는 대로 늦추되 꼼수를 쓰기로 했다. 그레이스는 두 손을 들어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는 다 알면서 모르는 척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얄미워서 그대로 목을 조를까, 하다 참았다.
“…손잡아 줘.”
그 순간 남자가 지은 미소는 애빙턴 비치의 소년이나 지을 법한, 맑은 미소였다. 그레이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자는 두 손에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곤 그레이스가 몸을 지탱하기 쉽게 손을 밑에서 단단히 받쳤다.
“계속해.”
멍해졌던 정신은 남자가 하체를 튕겨 올리며 재촉하고서야 돌아왔다. 저를 첫사랑이 아니라 가축 취급하는 이 추악한 개자식에게서 첫사랑을 떠올리다니. 심장 소리가 귓속을 크게 울리는 가운데 그레이스는 이를 악물었다.
손을 아프도록 힘주어 잡고 엉덩이를 들었다. 지금까진 앞뒤로 흔들던 몸을 이젠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성기 끝의 턱이 질구에 걸릴 때까지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퍽, 철벅.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뺨을 치는 소리처럼 세차게 울렸다. 맞붙은 살 틈으로 애액이 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거친 움직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레이스는 주저앉는 그 짧은 찰나 밀려 들어오는 살 기둥을 재빠르게 놓았다 쥐며 윈스턴을 절정의 벼랑 끝까지 바짝 내몰았다.
“읏….”
상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인상을 와락 구기며 깍지 낀 손을 풀었다. 그는 늘 잔머리 하나 없이 반듯하게 정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머리를 제 손으로 헝클어뜨리더니 안달 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남자를 만족시키는 기술이 나날이 좋아져 가다니.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엉덩이를 들었다 내릴수록 남자의 눈빛이 변해 갔다. 손깍지를 낄 때만 해도 데이지를 보는 눈이었지만 지금은 알몸으로 욕조에 가둬 둔 샐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눈이었다.
“잡아 줘. 응?”
그레이스는 투정을 부리듯 입술을 비죽 내밀며 빈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주는 남자의 목울대가 크게 들썩이며 만족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 깜찍한 짓은 사실 그레이스의 허리를 붙잡아 멈추지 못하도록 손을 묶어 두는 술수일 뿐이었다.
남자가 빨리 가 버리도록 그레이스는 제 사전에 없던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허리를 더욱 노골적으로 돌리고 출렁거리는 가슴이 한층 도드라지게 허리를 쭉 폈다. 교성에 콧소리를 섞고 말꼬리를 일부러 길게 빼기까지 했다.
저도 몰래 체득한 기술에 다시금 기가 막혔다.
“아, 아앗, 아흥….”
“기분 좋아, 자기야?”
레온은 제 것을 물고 기꺼이 허리를 흔드는 여자를 열이 오른 눈으로 바라보다 물었다.
“기분, 흣, 이상해….”
격한 키스 탓에 새빨갛게 부은 입술을 새하얀 이가 짓눌렀다. 그 사이로 연신 음탕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반쯤 뜬 눈꺼풀 사이로는 열이 뜨겁게 오른 청록 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살점 한 곳 가리지 못한 나신, 그것도 어디든 잘못 쥐었다가는 뚝 부러질 것 같은 몸이었다. 그런 작은 몸뚱이로 그를 그악스럽게 잡아먹는 여자를 지켜보자니 레온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맛있어? 잘 먹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다리 사이로 미끄러트렸다. 마침 쫀쫀한 살이 레온의 성기를 힘주어 쭉 빨아올리는 중이었다.
선단의 턱이 다리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이자마자 여자가 멈췄다. 맑은 애액 한 방울이 흘러나와 구릿빛 기둥을 타고 흐르는 꼴을 보자니 목이 더욱 타들어 갔다.
말을 타듯이 엉덩이를 쉬지 않고 들었다 내리던 여자가 앙탈을 부렸다.
“으응, 아, 그만, 흣, 그만 봐.”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잖아. 여자의 음부가 그의 것을 먹었다 뱉는 모습을 홀린 듯이 지켜보던 레온은 만족감이 깃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벌써 등허리가 떨렸다. 음탕한 몸짓, 야릇한 소리, 그리고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열기와 촉감까지, 원색적인 감각의 포화가 빗발처럼 쏟아졌다. 오늘 전투의 패배자는 그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기나긴 전쟁이 끝났을 때, 최후의 승자는 그일 것이다.
“네가 발정 난 암컷처럼 내 위에서 허리를 돌리고 신음할 때 얼마나 야한지 아무도 모를 거야.”
레온은 이 여자의 은밀한 이면을 오로지 저만 안다는 정복감에 취했다.
몸을 흔드는 탓인지, 삽시간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열감 때문인지, 그레이스의 초점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그녀는 사정없이 흔들리는 시선을 남자에게 맞추려 애썼다.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초점이 몽롱하게 풀린 저 연푸른 눈은 마약 중독자의 눈과 다를 게 없었다.
무방비 그 자체였다. 방심하는 사이에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