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Begging RAW novel - Chapter (239)
내게 빌어봐 <239화>(239/240)
<239화>
“낸시는 널 독하다고 욕했지만 난 알아. 딸이 네가 우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아파도 참는 거지? 그럼 침대에서 나는 소리를 딸이 듣는 것도 싫을 거 아니야.”
서랍장에 걸터앉아 있던 놈이 바지 뒷주머니에 단검을 꽂더니 그레이스에게로 다가오며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얌전히 있으면 빨리 끝내 줄게.”
남자는 그레이스에게도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하는 척 블라우스로 손을 가져갔다.
“잘 생각했어. 낸시가 너더러 머리가 좋다던데 그 말이 맞네. 혹시 나랑 살 생각은 없어? 나 사실 외롭거든. 내가 낸시를 설득해서 살려 줄 수도 있는데.”
놈은 코앞까지 다가와 바지를 내리는 내내 단 한순간도 주둥이를 닥치지 않았다. 죽이고 싶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게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레이스는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째 풀자마자 손을 멈칫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손이 아파. 네가 해 줄래?”
그러곤 치맛자락을 무릎 위로 끌어 올렸다. 놈이 몸을 숙이더니 스타킹 밴드를 고정한 가터의 끈을 풀려고 손을 뻗었다. 그레이스는 다리를 벌리며 요구했다.
“그냥 찢어 줘.”
블루머를 벗기지 말고 찢으라는 말에 놈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침내 사냥감이 그레이스의 덫에 들어왔다.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오자마자 놈의 목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힘껏 조였다.
“큭….”
“너는 머리가 나쁘네.”
“끅….”
“열네 살 때부터 살인 훈련을 받은 나를 너 따위가 살려 주네, 마네. 웃겨. 새파란 애송이 주제에.”
놈은 그레이스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기절했다.
볼썽사납게 발목에 걸려 있는 놈의 바지에서 단검을 뽑았다. 허벅지 사이에 낀 놈의 머리채를 잡아 목을 돌린 그레이스는 놈의 뒷덜미에 검을 깊이 꽂아 넣어 척수를 끊었다.
그녀를 겁탈하려던 같잖은 애송이는 그렇게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 내 기술이 치명적이긴 하지.”
이제 낸시라는 이름의 괴물에게 이 기술을 보여 줄 차례였다.
“빌어먹을….”
권총을 든 적과 단검 한 자루로 싸워야 한다니. 남자의 방을 뒤졌으나 권총을 다른 곳에 두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보복 따위는 관두고 낸시가 한눈을 파는 사이 엘리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지하실을 잠근 자물쇠의 열쇠는 낸시가 갖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귀를 기울였다. 도마에 칼질을 하는 소리가 계단 쪽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낸시의 위치를 파악한 그녀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부엌으로 다가갈수록 식사를 준비하는 소음과 콧노래 소리가 또렷해졌다. 그레이스는 계단 앞의 뒷문에 난 창을 내다보았다. 바비 아저씨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트럭은 없었다.
낸시만 처치하면 엘리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레이스는 부엌의 입구 옆에 등을 바짝 대고 서서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칼질을 하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 낸시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을 것이다.
언젠간 나올 거야. 나오는 순간을 노려.
낸시가 나오자마자 허리춤에 꽂힌 권총을 빼앗고 목을 긋고 열쇠를 찾아. 머릿속으로 모의 훈련을 하며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갑자기 칼질 소리가 뚝 멎더니 낸시가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몸싸움을 하거나 우는 소리가 위층에서 들리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확인하러 가려는지 도마에 칼을 놓는 소리에 이어 입구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젠장할.
낸시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레이스의 작전이 어그러졌다. 낸시는 권총을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헉!”
그녀를 발견한 낸시가 총구를 이쪽으로 돌리려 하자 그레이스는 총을 쥔 손가락을 단검으로 그었다.
“악!”
낸시는 손가락이 저절로 펴지며 총을 놓쳤다. 그레이스는 낸시가 또 허튼짓을 할 틈을 주지 않고 왼팔로 목을 감아 조였다. 단검으로 목을 찌르려 했으나 번번이 낸시의 팔뚝에 박혔다. 가슴을 찌르려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번번이 급소를 피해 박혔다.
“악!”
이번 비명의 주인은 그레이스였다. 낸시가 왼쪽 새끼손가락을 쥐고 비튼 것이다. 통증이 벼락처럼 온몸을 내려쳤다.
아차 하는 순간 낸시가 목에 감긴 팔을 풀고 떨어져 나갔다. 아찔해졌던 시야가 또렷해지자마자 복도 끝으로 뛰어가는 낸시가 보였다.
“윽!”
제 발에 채어 날아간 권총을 주우려던 낸시는 머리채를 잡혀 뒤로 나동그라졌다. 광기를 번뜩이는 청록 빛 눈동자가 보이자마자 단검 끝이 목으로 날아왔다.
퍽.
낸시가 휘두른 팔에 맞은 그레이스가 단검을 놓쳤다. 허공을 가른 검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떨어져 굴러 내려갔다.
그레이스는 그 틈에 다시 일어나려는 낸시를 깔고 앉아 맨주먹을 휘둘렀다.
“윽! 월터, 헉, 그 덜 떨어진, 끅….”
그레이스의 두 무릎에 팔이 눌린 낸시는 의자에 묶였던 그레이스처럼 저항하지 못하고 주먹질에 고스란히 당했다.
“더러운 년. 너도 여자면서 겁탈을 사주해? 넌 인간이 아니야. 내가 겁탈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물건이나 세운 네 동생과 똑같은 괴물이야! 윌킨스는 전부 죽어 마땅한 괴물들이야!”
퍽. 코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끅….”
겨우 멎었던 피가 다시 흐르는 손으로 목을 조르며 낸시의 얼굴이 제 것처럼 엉망이 될 때까지 가격했다. 머지않아 낸시가 정신을 잃자 그레이스는 살이 다 까져 벌겋게 된 손을 멈추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하아….”
기진맥진했다. 맨손으로는 도저히 숨통을 끊을 수가 없자 그레이스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뒷문 앞에 떨어진 권총을 쥐고 바닥에 널브러진 적의 앞에 섰다.
철컥.
주저 없이 슬라이드를 당기고 여전히 의식이 없는 낸시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손가락을 방아쇠에 거는 찰나였다.
“그레이스, 안 돼!”
탕!
문이 벌컥 열리며 바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그레이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저씨의 손이 그레이스를 밀치며 조준선이 흔들렸다. 빗나간 총알은 고작 낸시의 뺨을 스쳤다.
“이거 놔!”
총을 빼앗으려는 아저씨와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레이스의 두 손목을 움켜쥔 아저씨가 그녀를 다그쳤다.
“아무리 그래도 낸시를 죽여선 안 돼!”
“당신도 나랑 내 딸을 죽이려 했으면서 그딴 소릴 해? 이 악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권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이 낸시가 정신을 차린 걸 그레이스는 알지 못했다.
“낸시, 안 돼!”
퍽.
“헉!”
뒷덜미를 단단한 것이 강타했다. 눈앞이 핑글 도는 충격과 동시에 그레이스는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쨍그랑. 황동 촛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저씨가 낸시에게 치는 호통 소리가 점점 멀게만 들렸다. 그레이스는 희미해지는 의식에 악착같이 매달리며 이름 하나를 되뇌었다.
엘리.
“엘리!”
그레이스는 의식을 잃고도 끝내 놓지 못하던 이름을 외치며 눈을 번쩍 떴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다시 의식이 혼미해지는 순간 옆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낸시, 그 정신 나간 것…. 뽑을 거면 그 악마의 손톱을 뽑을 것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사방이 어두웠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바비 아저씨였다. 그레이스는 깜깜한 도로를 달리는 트럭에 앉아 있었다.
“엘리!”
기겁한 그레이스는 어지러운 시야를 다잡으며 트럭 안을 다급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엘리는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엘리는 어딨어요?”
아저씨는 도로를 보며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엘리는 어쨌냐고요!”
격분한 그레이스가 그의 멱살을 쥐려 할 때에야 아저씨가 말문을 열었다.
“지하실에 무사히 잘 있어.”
“낸시랑 단둘이요? 그게 어떻게 무사해요! 낸시가 엘리를 죽일 거예요!”
제가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이미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제발, 어서 돌아가요!”
운전대를 꺾으려는 그녀를 아저씨가 떼어 냈다.
“진정해, 그레이스. 낸시는 수면제를 먹여서 재우고 오는 길이다.”
아저씨가 그레이스의 얼굴을 흘끔 보며 혀를 쯧, 차더니 중얼거렸다.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둘이서 아주 서로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았더구나. 적당히 하고 화해할 것이지.”
두 사람을 놀다 다툰 아이들로 취급하는 말에 그레이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저씨 눈에는 이게 애들 싸움으로 보이세요?”
“내 눈엔 너희 둘 다 내 딸 같은 아이들이야. 딱한 것들….”
“아저씨의 딸 같은 낸시가 제 딸을 죽이게 두고 오셨잖아요!”
“내 눈엔 너희 둘 다 내 딸 같은 아이들이야. 딱한 것들….”
“아저씨의 딸 같은 낸시가 제 딸을 죽이게 두고 오셨잖아요!”
“재워두고 왔다고 하지 않았니.”
그레이스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아저씨와 차창 밖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왜 나만….”
왜 엘리를 그곳에 혼자 두고 나만 차에 태우고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