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based wizard RAW novel - Chapter (51)
미궁이 너무 쉽다.
이럴 수가!
이게 정말 내 이야기가 맞냐?
게임하다 게임 속에 납치된 불운의 상징, 억까의 아이콘, 망겜의 희생자, 미궁 안이고 밖이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항상 살얼음판을 걸어온 나의 미궁질이 이렇게 쉽다고?
‘진짜 이거 거의 방치형 RPG네.’
횃불 투구에 강철 파라솔, 화염 인챈팅 단검에 눈썰미, 사운드 맵핑과, 마법 단궁.
이만한 장비와 스킬들로 잘 구성해놓으니까 3층이 너무 쉽다!
“다 잡아!”
“돈이다 돈!”
“파라솔 펼게!”
“저기 또 무슨 소리가 들려요!”
“가자!”
“빨리 와요 형님!”
“······.”
물욕으로 도핑된 우리 파티는 벌써 엄청난 양의 마석과 아이템들을 모았다.
그리고 미궁 3일째 저녁.
우리는 해발 500미터 정도 되는 작은 산을 하나 올랐고, 그 정상의 편평한 고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비석이다.”
내가 미궁 3층에 들어온 진짜 목적.
산 정상에서 비석을 찾았다.
[대규모 멸악의 비석]위와 같이 이름이 새겨진 그 비석은 높이가 무려 10미터, 가로 길이 4미터에, 두께는 내 키와 비슷했다.
웅장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할까요?”
아직 설원의 수풀과 빙벽들 사이로 해가 남아있었지만, 약간 이른 휴식을 제안했다.
비석을 해독해야 하거든.
다만······.
‘비석이 너무 커서 올려다보려니 목 빠지겠군.’
반지에 들어있는 실용 마법을 이럴 때 좀 써먹어야겠다.
“필사.”
나는 수첩 한 장을 뜯어내서 비석의 메시지를 옮겼다.
비석으로부터 문자열이 반짝거리는 마법으로 복사되어 수첩 종이에 옮겨졌다.
마치 프린팅된 것처럼 깔끔하게.
{PIC:}
“정말 희한한 메시지네요.”
예르닐이 냄비에 수프를 끓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희한한 상자도 세 개나 있습니다, 형님.”
백어택이 베이컨을 구우면서 비석 아래를 가리켰다.
정말로 그곳에 상자 셋이 놓여 있었다. 돌로 된 상자는 비석 받침대와 연결되어 있어서 떼어낼 수가 없다.
‘상자들까지’ 비석의 일부다.
“마치 메시지 전송 게임 같아요.”
예르닐이 말했다.
“여기서부터 성공, 유지, 실패! 아닐까요? 헤헷.”
너 이제 미궁에서 농담도 치는구나.
“그게 무슨 게임인데?”
백어택이 물었다.
“케일럽이랑 같이 베르텐 저택 파티에 가서 했던 게임이야.”
예르닐은 게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내가 거기다가 마법 장비 두 점을 베팅했다는 것까지.
“와, 형님 배짱이 미쳤네요. 이번 미궁질 끝나면 저랑 같이 소헨 뒷골목 도박장 가실래요?”
“싫습니다. 그때 베르텐 저택에서 했던 게임은 100%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었던 거라.”
“진짜요?”
예르닐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진짜지, 그럼.
교수들이 아무리 잘해도 레벨차와 마법서 등급 차이 전부 없애고 전술 싸움 하면 내가 이기지.
그리고 나한테는 히든카드도 하나 있었다.
교란 때문에 온갖 억까를 당해서 최악의 사태로 치닫더라도 지지 않는다. 왜냐면······.
“반드시 대성공시키는 방법이 있었으니까.”
“네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예르닐과 백어택이 입을 딱 벌리며 물었다.
“네. 근데 뭐, 지금은 필요 없는 얘기고.”
나는 팔짱을 끼고 다시 암호문 풀이에 집중했다.
“······.”
두 사람은 내 분위기를 살피더니 방해하지 않고 다시 요리로 돌아가 주었다.
“근데 케일럽. 이거 이미 해석된 비석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이무스가 물었다.
“맞습니다.”
달스트림 교수가 해석했다.
그의 논문을 나 역시 읽어보고 왔다.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1. 은단검 연맹이란 미궁 마스터의 수족으로, 심층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을 일컫는 말이다.
2. 미궁 내의 식사와 노래는 미궁 모험 자체를 의미한다. 식사는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휴식 및 야영이고, 노래는 곧 영창이다.
그러니까, 휴식과 전투를 반복하며 미궁을 모험하는 것을 은단검 연맹이 금지한단 뜻이다.
왜?
심층에 내려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3. 비석은 이세계 빙의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심층에 내려와서 미궁 마스터를 처치하면, 한이 풀릴 것이다.
4. 그럼 이세계 빙의자는 거짓 몸을 제물로 던져버리고, 그 영혼은 소천해서 원래 세계로 되돌아간다.
······정도가 달스트림의 해석이었단 말이지.
“근데 암호가 해독된 건 아니거든요.”
모든 비석은 기본적으로 메타포로 이루어져있고, 그 자체를 적절하게 해석하면 미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달스트림 교수가 한 것처럼.
근데 암호 해독은 다른 얘기다.
“아마 저 상자에다가 뭔가를 집어넣으면 해독될 겁니다. 비석이 변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제시된다거나.”
그것 때문에 나는 여기에 왔다.
달스트림의 해석본은 지금 이젤이 미궁 심층에 내려가려 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엔버 클럽도 어느 정도 견해가 같다.
비록 한이라든지, 제물이라든지, 하는 개념들이 달스트림 입맛대로 해석되었지만, 그래도 미궁 마스터를 처치하면 거짓 몸이 어찌 된다 정도는 받아들이는 거겠지.
왜냐? 게임에서도 미궁 마스터를 죽이면 게임이 끝났으니까.
‘하지만 암호 해독으로 넘어가면 다른 내용이 나올지도 몰라.’
나는 그걸 사전에 확인해야겠다. 엔버 클럽이나 블랙독과 접촉하기 전에.
문제는 상자에 뭘 집어넣는 건지 모르겠다는 점.
게임에서 수많은 비석들을 만났지만, 이건 나도 처음 봤다.
아마 개발자 난이도에 처음 등장한 비석이겠지. 그래서 지금 처음으로 풀어야 한다.
은단검을 넣으면 되나?
아니면 거짓 몸인 내가 직접······. 음······. 아니겠지 설마.
이런 암호는 대개 숨겨진 낱말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로 드립이라든지.
‘은금식래약한거의질.’
전혀 아니군.
그럼 대각선으로 읽는다거나?
‘은지그네연면. 단한리가의. 금사을심하궁.’
전혀 아니다.
그럼 2의 배수 순서의 글자만 읽는다거나?
“케일럽! 식사하세요!”
예르닐이 각자 그릇에다가 수프를 담으면서 외쳤다.
일단 밥부터 먹자.
***
식사 담당 두 명이 잠을 먼저 자기로 했다.
나와 아이무스는 지금 불침번이다.
나는 여전히 암호 해독에 집중하다가······.
“케일럽.”
아이무스가 어깨를 슬쩍 찌르기에 주의가 환기됐다.
“누가 오는군요.”
키 1미터가 살짝 넘는 녹색 피부의 아인종이었다. 입에는 부리가 달렸고, 등에는 등딱지가 붙어있다.
‘갓파족이군.’
아마 미궁의 심연에 나오는 아인종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일 것이다.
그리고 갓파족 뒤에는 키가 훤칠한 동양인 검객도 나타났다.
“히지카타.”
“안녕하세요, 케일럽.”
히지카타는 멀리서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점점 모닥불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히지카타 뒤에 한 명이 더 나타났다.
‘요호족!’
그것도 꼬리가 셋이나 되는 실력자다.
그녀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히지카타 파티가 봉안함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나한테 안식처 찾는 방법을 상담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요호족 때문이었군.
보통은 윈덤 근처에서 살기 때문에 소헨에서 보기는 매우 힘든데, 히지카타 파티에 있었을 줄이야.
요호족은 종족 특성으로 영혼 추적을 할 수 있다. 마치 개과 수인이 냄새 추적, 고양이과 수인이 ‘암시야’를 갖고 있듯이.
아마 영혼 추적으로 봉안함을 찾으려는 거겠지.
“얘기 많이 들었어. 엄청난 마법사라며?”
요호녀가 내게 관심을 보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실력은 몰라도, 얼굴은 귀엽게 생겼네.”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눈빛에 모닥불빛이 반짝거렸다.
“네 간도 예쁘고 귀여울까?”
그러면서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슬쩍 매만졌다.
“장난치지 마세요.”
“안 놀라네? 소헨에선 요호족이 간 빼먹는다고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제가 요호족을 죽였다고 무서워하던 사람들은 있었는데요.”
“오.”
“한 방 먹었구나, 소율.”
히지카타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케일럽. 3층 비석을 보고 계시는군요?”
“네.”
“그간 3층에서 비석을 연구하는 모험가는 많이 봤지만, 아무도 암호 해독은 못했습니다. 심지어 대마법사 달스트림 교수조차도요.”
히지카타는 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해독에 성공하면 모험가 길드에서 상금도 줄 거예요.”
“케일럽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소율이 눈웃음을 쳤다.
그러자 잠자코 얘길 듣던 갓파도 맞장구를 쳤다. 아가미를 팔딱거리며.
“심지어 4층 마법사도 잡았잖아. 파파파!”
잠깐만.
***
충돌이 있었다는 건 알 수 있다. 메시지 전송을 주고받은 걸 토대로.
하지만 안토넬리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계단 스크롤을 쓰려고 했었지.
근데 ‘잡았다’고 말하잖아.
그렇다는 건 설마······
“그 마법사의 시체를 보신 겁니까?”
“네.”
“언제 봤는데요?”
“오늘 아침에요.”
“시체가 온전히 거기에 있었다고요?”
“네. 미궁 3층에서는 시신이 좀처럼 부패하지 않으니까요.”
아니······.
이 칼잡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히지카타. 늑대들이 시체를 안 뜯어먹었을 리가 없잖아요. 무려 3일이나 지났는데!”
“아마 케일럽 파티가 이후에 진행하면서 근처 서리 사냥꾼과 늑대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히지카타가 대답했다.
“그 몬스터 시체들이 가득하면 피냄새를 맡고 다른 몬스터들이 피하거든요. 근처에 오지 않고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너 모르는구나?
3층에 처음 내려온 이후로는 계속 승강기만 타고 와서 모르는 거야!
“서리 사냥꾼들은 머리가 좋아서 계단 게이트 근처를 자주 순찰해요.”
방금 히지카타가 한 이야기가 보통은 맞다. 일반 필드라면.
하지만 계단 게이트 앞은 달라.
그리로 2층 모험가들이 내려오기 때문에 서리 사냥꾼들 입장에서는 제일 연약하고 달콤한 먹이거든.
걔네도 모험가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걔네 입장에서 히지카타를 노리겠냐 아니면 비르타넨을 노리겠냐?
근처에 몬스터들 시체가 있든 없든. 2층 계단 게이트 앞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거긴 서리 사냥꾼과 늑대들에게 핫플레이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험가 시체가 있다면 당연히 늑대들 밥으로 줘요. 3일이나 지났으면 시체가 남아있으면 안 돼요!”
“그······그럼······?”
비로소 히지카타도 혼란에 빠졌다.
요호족도, 갓파도 당황한 눈치다.
“그럼 왜 시체가 그대로 있었죠?”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뭔가 잘못됐다.
시발 지금 뭔가가 단단히 꼬였다.
지금쯤 그 시체는 늑대들이 다 뜯어먹고 뼈까지 사탕처럼 씹어먹었어야 정상이다.
‘왜 시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지?’
이 엿같은 기분을 예전에도 느껴본 적 있다.
언제였냐면, 예르닐하고 둘이서 미궁을 처음으로 헤매다가 두 번째 출구룸을 찾았을 때.
그때도 출구룸 앞에 블랙 호넷의 애벌레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광경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었지.
그 답은 출구보스 백어택이었고.
지금 나타난 이 어처구니없는 기현상에도 뭔가 충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계단 게이트 근처를 순찰하는 서리 사냥꾼과 늑대들이 그 시신을 건드리지 않는 경우는 무엇인가?
1. 누군가가 그 시신을 계속 지켜준 경우.
2. 그게 시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
1번은 가능성이 있나?
예컨대 4층에 있는 안토넬리의 본대가 올라와서 그 시체를 찾아냈고, 그 근처를 수색하면서 잠복하고 대기한다든가?
아니.
가능성이 없다.
왜냐면 그 자리에 히지카타가 나한테 보냈던 쪽지가 남아 있었잖아.
만약 안토넬리의 동료들이 와서 그 광경을 봤다면, 히지카타 파티가 그 자리에 찾아왔을 때 난리를 쳤을 거다.
4층 본대 말고 다른 파티라면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하고.
어떤 미치광이들이 남의 파티 마법사 시체 옆에서 3일간 농성하겠는가?
그럼 2번 경우의 수.
이건 말이 되나?
비르타넨이 도끼로 머리를 잘라버린 시체인데?
그걸 직접 보고서, 어? 저거 시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서리 사냥꾼이 있다고?
시체 아닐지도 모르니까 안 먹어야지! 하는 늑대 새끼가 있다고?
이건······.
‘이건 말이 되네.’
아.
진짜 조졌네. 쓰발.
어쩐지 지금까지 너무 잘 풀린다 했어.
자동 사냥 돌렸다고 벌 받는 건가? 돌겠네.
“케일럽, 무슨 일입니까?”
실시간으로 창백해지는 내 안색을 본 아이무스가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여기서 야영하고 비석이나 해석할 때가 아니었어요.”
“무슨 소립니까?”
“아무래도······. 안토넬리의 영혼이 3.5층 봉안함에 들어간 것 같아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네······?”
히지카타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요호족과 갓파도 마찬가지다.
“안토넬리가 죽기 전에 출구 보스가 됐다는 겁니다.”
미궁의 규칙 중 하나.
모험가가 미궁 마스터의 광기에 사로잡혀서 출구보스가 되는 경우.
그 모험가는 어떤 사람인가?
해당 층에서 가장 강력한 모험가다.
예를 들어 3층에서 활동하던 4층 모험가라든지.
이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다. 안토넬리는 사망 직전에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럼 남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그게 더 이상 시신이 아니게 되기까지의 남은 시간.
“히지카타. 혹시 그 4층 마법사의 머리에서 이상한 건 못 봤나요? 언데드마냥 목의 잘린 부위가 다시 스멀스멀 붙고 있었다던가?”
“네······?”
히지카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머리가······. 잘렸었단 말입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