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
3장 Bad Boy
레코딩 부스 안에는 다은이가 들어가 있었다. 마이크 앞에 달려 있는 동그란 팝필터가 다은이의 작은 얼굴을 가렸다.
음. 음. 잠깐 쉬는 동안 성대를 다듬는 소리가 스피커를 울렸다.
“유아연 때문에 너무 일정 급하게 잡으신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지금이 딱 레코딩할 타이밍이에요.”
엔지니어가 그렇게 묻는 이유는 다음 주에 유아연이 일본에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오사카와 사이타마를 거쳐 도쿄에서 막을 내린 일본 투어. 그리고 휴식 없이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런 뒤 몬스터 뮤직에서 다음 앨범에 관한 것을 정리한 뒤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를 거치는 아시아 투어.
노는 물이 다르다. 그야말로 월드 스타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는 또…… 유아연하고 안 겹치려고 서두르시는 줄 알았어요.”
사실 그런 것이 없지는 않았다.
싱글 단위로 곡을 발표하는 우리 애들과는 다르게, 유아연은 하나의 앨범을 완성시켜서 다음 활동에 들어간다.
그 때문에 그녀가 레코딩을 하는 동안은 그 누구도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없다.
몬스터 뮤직의 여왕이 스튜디오를 차지하고 계신데 그 누가 감히…….
그렇기에 우리 애들은 서둘러 레코딩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트랙이 플레이되고 다은이의 목소리가 거기에 입혀지기 시작했다.
가성과 진성을 아찔하게 오가는 테크닉, 괴랄한 음폭에서도 그루브를 타며 자유롭게 뛰어노는 애드립 파트.
완벽했다. 노래를 자기 손발처럼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좋았어. 거기까지!”
이 정도라면 귀가 까다로운 사람들도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돌이 이렇게 노래를 잘해? 하면서.
“얘는 점점 노래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그렇죠?”
“2년 동안 나아지는 게 없다는 평이었는데 영민 선생님을 만나고는 훨훨 나네요.”
다은이를 레슨해 준 지 벌써 반년.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얘는 그룹을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완성된 보컬이라고.
하지만 내 옆에서 정자세를 하고 앉아 있는 다음 타자 연화는 그런 칭찬이 오가는 동안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됐어. 다은이 파트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연화.”
“네.”
“부스 안으로 들어가.”
연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안으로 들어갔다.
데뷔가 결정된 이후 세 번째 레코딩. 이제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애들은 유난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시작한다.”
다은이가 조금 전에 열심히 불렀던 파트가 물처럼 흘러 지나가고, 이번에는 연화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어간다.
올드 스타일의 벨팅. 여리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두툼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목소리.
소리가 고음역대로 치솟을 때에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와…… 얘도 정말…….”
“잘하죠?”
“애가 두루두루 다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노래를 이 정도로 하는 줄은 몰랐네요.”
“아직이에요. 이건 목을 푸는 거고, 컨디션 올라오면 제대로 할 겁니다.”
열심히 하는 애를 가르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걸 연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하고,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으며 가르쳐 달라고 하는 등 정말 열심히였다.
성대가 상할까 봐 적당히 연습하라고 했지만 10년 동안 강철같이 단련해온 성대는 스태미너도 강해진 것 같았다. 그 연습량을 전부 버텨내더군.
“얘네…… 이번에는 기대가 되네요.”
며칠 전에는 안무도 완성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곡이 그랬듯이 안무는 팀의 리더인 선하가 짜고, 그걸 네 명이 맞춰보며 조금씩 수정하는 식으로 했다.
회사에 별도로 퍼포먼스 디렉터가 있지는 않았고, 외부에서 데려올 상황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선하가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비중은 꽤 컸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안무 트레이너가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디렉팅까지 볼 수는 없었고 약간의 조언을 해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안무는 전반적으로 동작이 크고, 격한 느낌을 주는 군무가 반복되는 식이었다.
댄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내가 보기에도 난이도가 무척 높아 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코딩은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일까. 별도의 컨디션 조절도 필요 없이 애들은 평소에 들려주었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애들은 내일부터 뮤직비디오 촬영을 시작한다. 나는 믹싱과 마스터링에 관여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드디어 비츠걸스의 세 번째 싱글이 발매되는 것이다.
Bad Boy.
지금까지의 두 곡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 될 것이다.
* * *
-왜 이렇게 조용하죠? 우리 애들 활동 접나요? 이러다 해체하는 거 아닌지
└이번 주 금요일에 음원 새로 나온대요.
└아 정말요? 그럼 다 같이 스밍 들어가죠.
└우리끼리 스밍해 봤자죠. 여기 조회 수도 두 자리 못 넘는데.
└아아ㅜㅜ
-연화 오늘 퇴근길.jpg
└오오!!!
└진짜 얘보다 이쁜 여돌 없는 거 같은데.
└이건 또 어떻게 찍었어요?
공식 팬카페 회원 수는 5천 명을 간신히 넘겼다. 새 글이 올라왔더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준다.
하지만 전부 닉네임까지 다 외울 정도다. 활동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음방은 쉽게 잡았어요. 그런데 영민 선생님이 요청하신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정영수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이돌들이 주로 출연하는 K-POP 음악 방송 외에 싱어송라이터나 밴드들이 주를 이루는 방송까지 잡아달라고 요청했었다.
완성도 높은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최소한 음원 차트에는 이름을 올려야지 될 것 같아요. 단칼에 거절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스케줄의 대부분은 지방 행사, 그리고 행사가 없는 날에는 길거리 게릴라 콘서트.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면 마다치 않고 나가야 했다.
황유미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틀 동안 특집을 만들어서 애들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유미와 함께 이런저런 썰을 푸는 영상, 그리고 애들의 라이브 영상을 유미가 소개해 주는 것까지.
다른 건 몰라도 유미의 채널을 통한 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유미TV는 구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처음 봤을 때 2만 명 정도 되던 구독자는 현재 15만 명 정도까지 늘었다.
방 안에서 허접하게 영상을 만들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몬스터 뮤직의 스튜디오에서 따낸 영상을 편집부가 그럴싸하게 꾸며서 내놓는다.
주된 컨텐츠는 유미가 노래를 부르는 것.
자기 노래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곡들을 커버해서 올리곤 한다.
유미의 노래 실력이야 나도 감탄을 할 정도니, 영상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늘어갔고 구독자 또한 그에 맞추어 증가했다.
영상의 조회 수는 곡의 유명도에 따라 들쭉날쭉 하지만 평균적으로 20만 가까이 되었다.
그러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무명 걸그룹을 홍보하는 수단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 * *
“다음은 어제 싱글로 나온 배드 보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명동의 사거리 한가운데. 그리고 토요일 저녁.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이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고, 하지만 아까부터 열띤 공연을 하고 있는 우리 애들은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의상으로 쌀쌀한 바람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난번 행사 의상처럼 노골적으로 야한 게 아니라, 적당히 발랄한 느낌을 주는 의상으로.
“야, 야. 저기 하얀 셔츠.”
“어. 알어.”
“하얀 셔츠…… 죽인다.”
“진짜 이쁘네.”
애들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관객들 사이에 끼어 있었더니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애라면…… 연화를 말하는군. 역시 남자들 녀석들의 시선은 본능처럼 그쪽으로 가는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연화 쪽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신곡이 시작되었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배드 보이.
책장처럼 양옆에 쌓여 있는 앰프가 신나는 리듬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쩐지 답답한 듯 뻥 뚫린 하늘을 향해 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아무리 게릴라 콘서트라지만 음향 시설은 조악했다.
어느 정도 닫힌 공간이라면 그럴듯하게 울림을 만들어내겠지만 사방이 뚫려 있는 이곳에서는 초등학교 강당 마이크 같은 소리로 간신히 보컬의 목소리를 담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우와…… 노래 존x 잘해.”
반응은 괜찮았다.
이따금 삐익 하는 듣기 싫은 하울링이 섞여 버릴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가창력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똑똑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관객들을 그루브를 느끼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곡 괜찮다.”
“이름이 뭐라고?”
“비……. 뭐라던데.”
전조가 일어나며 다은이의 애드립이 폭발하듯이 터져 버릴 때면 휘이-휘이- 감탄 어린 휘파람 소리도 음악에 섞여들곤 했다.
“감사합니다. 방금 들으신 곡은 배드 보이였습니다.”
그러자 관객 중 가장 앞에 있던 누군가가 팀 이름을 물어본다.
“저희요? 저희는 비츠걸스입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전달된 팀 이름을 사람들은 기억하려고 애썼다.
누군가는 핸드폰을 열고 검색해 보기도 했다. 비츠걸스…… 올해 데뷔한 애들이네.
이곳에 모인 사람이라고 해봤자 수백 명 남짓. 그렇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나마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 * *
유미TV의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
“오늘은 저희 회사 후배들을 데리고 왔어요. 자, 여기 제 양옆으로 두 명씩 앉아 있는 애들…… 너희들 이름이 뭐지? 직접 소개해 봐.”
“안녕하세요! 저희는 비츠걸스입니다!”
“그래요. 얼마 전 데뷔한 걸그룹입니다. 아, 그런데 뭐라고? 홍보하는 거냐고? 그래, 맞아. 홍보하는 거야. 오늘은 홍보 좀 할게. 여러분! 진짜 재능 있는 친구들이 팀으로 나와서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야, 야. 나가지 말고!”
시청자 수는 무려 8천 5백 명.
“넷 다 나보다 이쁘다고? 진짜 그러기야? 근데 나도 알아. 여러분! 얘네들 진짜 이쁘죠?”
유미는 내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가장 시청자 수가 많은 시간을 택해 홍보해 주겠다고.
방송 시간은 두 시간으로 잡고 있었고, 중간중간 배드 보이의 영상이 나가고, 멤버들이 즉석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뭐? 죽여준다고? 왼쪽에서 두 번째면…… 아, 연화 말하는 거구나. 여러분 이쁘죠? 얘네들 괜히 걸그룹이 아니야.”
배드 보이는 스트리밍을 하는 동안 총 세 번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뮤비가 두 번, 그리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영상이 한 번.
하지만 이런 방송이 익숙하지 않은 네 명의 아이들은 계속 버벅거리고 있었다.
예능 나가면 기가 막히게 잘할 수 있다고 했던 승연이도 마찬가지.
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나 본데, 준비했던 그것을 책 읽듯이 딱딱한 톤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보고 있는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그땐 진짜 무서웠어요. 보컬 선생님이 디지털 피아노로 반주를 하면 제가 노래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맘에 안 들면 손바닥으로 건반을 쾅 내려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몰라요. 노래하다 말고 그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에이, 그거 옛날 선생님 얘기지?”
“네. 맞아요.”
“지금 선생님은 안 그러잖아. 박영민 선생님.”
“그럼요. 그분은 천사예요. 옛날 선생님에 비하면.”
“아, 여러분. 박영민 선생님이 누구시냐면 저희 회사에서 프로듀서 겸 보컬 트레이너로 계신 분이거든요. 제 솔로곡 두 개 프로듀싱해 주신 분이에요.”
민망하게 내 얘기가 나올 때도 있었다.
요즘 가끔 이렇다. 유미는 썰을 푸는 영상에서 이따금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몬스터 뮤직의 프로듀서 겸 보컬 트레이너라고.
“여러분. 이 곡 진짜 괜찮죠? 배드 보이예요. 배드 보이! 팀 이름은 비츠걸스! 여러분, 진짜 이렇게 노력하는데 인간적으로 차트에는 올려줘야 돼요. 안 올려주면 나 방송 안 끝낼 거야. 8천 명 넘게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세 번씩만 들읍시다. 세 번씩! 아니, 잠깐만…… 뭐라고? 이 곡 차트에 진입했어? 진짜?”
뭐라고? 차트에 진입했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새로운 탭을 띄워 음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사실이었다. 우리 애들이 드디어 차트에 진입했다.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는 97위로 턱걸이 진입.
유미의 곡만큼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는 정도는 아니라지만 이 정도에도 만족할 수 있었다. 비츠걸스의 지난 두 곡은 조금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니까.
“이거 봐봐. 여기에 우리 있어. 언니, 이것 좀 봐봐.”
“97위…… 어떡하지. 진짜로 이런 데 우리가 있어.”
애들은 자기들이 뭘 하는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무리 인터넷 방송이라지만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이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을 돌려 보고 있었다.
채팅창은 ‘축하해요’, ‘앞으로 더 잘될 거예요’라는 말들이 줄줄이 도배.
어이쿠. 이러다 너네 울겠다. 라는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가창력은 걸그룹 중에 최고인 듯
-노래 너무 신나고 좋아요~~!!
-유미 님 음악과는 다른 쪽으로 중독성이 있네요.
-폰 보면서 똥 싸고 있는데 변기 위에서 춤췄음
방송 초반에는 연화의 비주얼에 감탄하더니 배드 보이가 몇 차례 나온 이후로는 음악 얘기가 채팅창을 채웠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애들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얘들 정신 나갔네. 그러지 말고 노래해 보자. 다들 곡 좋다고 하시잖아.”
원래 MR 없이 즉석에서 생으로 라이브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유미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끌려고 했다.
애들은 멍-한 얼굴로 ‘아, 맞다. 그거 하기로 했지’라는 듯이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 있었고.
오직 한 명만이 감격에 젖어버린 마음을 떨칠 수 없다는 듯이 울먹이려고 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아까부터 쉬지 않고 외모에 대해 칭찬을 받고 있던 연화가 입술을 부르르 떨어댔다.
눈가가 시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이빨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봤지만 턱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참아보겠다고 눈썹을 꾸욱 구겨봤지만 그럴수록 눈가에 맺히고 있는 것이 조명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그런 연화의 옆에서 승연이는 노래를 시작하고, 이것만큼은 잘해보겠다는 듯이 화면에 잡히고 있는 아이들은 어깨를 들썩들썩 리듬을 맞추며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와 불쌍하다. 97위 했다고 우는 거 봐.
-누가 보면 1위 한 줄 알겠다.
-울지 마요.
한 방울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낸 연화는, 하지만 켁켁 목이 막힌 소리로 노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다행스럽게도 자기 파트를 잘 소화하며 갈고닦은 실력들을 잘 보여주었지만.
다음 날, 연화가 눈물을 삼키는 모습은 ‘안습돌.jpg’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퍼지게 되었다.
* * *
배드 보이는 차트에서 계속 선전하고 있었다. 멜론에서는 66위까지 올라갔고, 나머지 차트에서도 60위에서 80권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차트에서는 중하위권이었지만 팬카페의 회원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지금까지는 차트에 올랐을 때 마냥 기뻐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잘 잡아서 이끌고 나가야 한다.
“우선 이 사진을 손대보죠. 화질 좀 더 올리구요.”
“그럼 용량이 늘어나요.”
“프레임 줄이면 되잖아요.”
노래가 알려지는 속도보다 연화의 움짤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는 모습이 몇 초 이어진 뒤, 마지막 프레임에서는 97위에 올라 있는 차트 사진이 클로즈업된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룩해낸 것처럼 감격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작 97위이라는 것이 이 움짤의 포인트.
하지만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수많은 걸그룹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팀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데뷔 후 넉 달 만에 차트인에 성공했다는 건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일이다.
어쨌든 이런 사진이 퍼지고 있었고, 이것이 퍼지고 있는 이유는 그냥 울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엄청나게 예쁜 사람’이 울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 방송 특유의 뽀샤시한 조명이 순백으로 빛나는 연화의 얼굴을 더욱 밝혀주었고, 그 안에서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유난히 대중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아마도 사진이 퍼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요. 훨씬 보기 좋아졌네요. 이걸로 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것은 네 명 모두의 모습이 담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집을 통해 연화의 모습만 클로즈업된 사진이었다.
그래서 홍보 효과를 더하기 위해 그것과 똑같은 구도이지만 화질이 개선된 짤방을 퍼뜨리고자 한 것이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는 의미로.
“이런 걸로 홍보를 하게 될 줄은…….”
“아무튼 회사 관계자인 거 티 내지 말고 퍼뜨려 주세요.”
“걱정 마세요.”
* * *
단기간에 급상승한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때부터 비츠걸스의 인기는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추세 좋아요. 팬카페 회원도 많이 늘었어요.”
매니저 정 팀장은 당연히 현재 상황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었다.
“방송 섭외도 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부 소화할 순 없을 것 같고 이제부터는 골라서 나가야겠네요. 영민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물론 나는 정 팀장의 생각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런 건 정 팀장이 전문가니까.
“아직 스케치북 같은 곳에는 못 나가겠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요. 예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우리 애들이 그런 데서 노래하는 걸 보고 싶었다. 음향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에서, 정말로 라이브답게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을.
그동안 음악 방송에서는 두 번 출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완벽에 가까운 라이브 실력을 뽐내며 대중들에게 배드 보이를 들려주었다.
애들의 라이브 영상은 그대로 유튜브에 올라갔는데, 댓글을 보면 대부분 호평이었다. ‘이거 진짜 라이브 맞아?’, ‘그냥 씨디 틀어놓은 거 아니야?’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으니까.
“다음 주 즈음에는 음방 순위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에이, 아직 어려워요. 우리는 음반 점수가 0점이니까.”
아직 음원만 세 개 발표한 걸로는 음방 순위에서 점수를 따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팬덤이 아직 부족해서 시청자 투표 점수도 별로 높지 않았고.
그럼에도 팬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올유어걸의 네임드 찍덕이었던 AllYourLove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다은이의 사진을 여러 장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그리고 다은이의 절친이었던 수연의 홈마스터였다.
스캔들이 일어난 후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던 AllYourLove는 수연이 사망했을 때에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잠잠하더니 얼마 전부터 계정을 풀어놓고 수연이의 친구 사진을 올리는 것이었다.
음방 무대 사진을 비롯해서 행사 사진까지.
갈아탄 것이라고 하기에는 죽음이 주는 무게가 매우 컸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그렇게나 덕질했던 아이돌의 절친을 찍는 것이니 이제까지 해왔던 것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었고.
여돌 홈마 중에서는 탑텐 안에 들어가는 네임드였기 때문에 홍보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팔로워가 십만 명이 넘는다고 하던가.
땀 한 방울마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한 고화질 사진.
탑시드 홈마의 보정을 거친 다은이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트에서는 꾸준히 60위권을 유지.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현상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 * *
제목 : 오늘 소개팅했는데
내용 : 집에 오는 중에 잘 들어갔냐고 톡 보냈지만 3시간째 1이 안 사라짐
이런 글이 올라오면 댓글에는 연화가 아랫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물을 참아내는 사진이 댓글로…….
뭐 나쁘지 않다. 안습 짤방의 주인공이 되어서라도 팬을 모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되고 싶어도 못되는 건데. 이거 누구?’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많았다.
하지만 그런 글을 한가롭게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이날 몬스터 뮤직의 사무실은 유난히 분주했다.
직원들 대부분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해 그 프로젝트를 위한 미팅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라고 하면 과장이 섞인 말이기도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엔 그랬다는 얘기다. 그 정도로 떠들썩했다.
“영민 선생님도 미팅 참여해야죠.”
“저도요?”
“아연이가 보컬 트레이너로 영민 선생님을 지목했어요.”
“아…… 그래요?”
몬스터 뮤직의 여왕이 일본 활동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다음 앨범을 위해 실무자들과 미팅을 가지는 것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그럼 제가 유아연 씨 보컬 트레이너를 하는 거예요?”
“안 하시려구요?”
“아무도 제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여왕이 지목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건가? 당사자 의사는 무시하고?
이 무렵 나는 정신 없이 바빴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황유미의 앨범 제작을 위해 움직여야 했고, 비츠걸스의 활동도 지원하면서 다음 곡을 디렉팅해야 했다. 그러면서 연습생들의 레슨도 꾸준히 해야 하고.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저는 두 분이 먼저 얘기가 된 줄 알고…… 그럼 영민 선생님은 안 하시려구요?”
“하긴 해야죠. 그래요. 할 겁니다.”
물론 얘기가 오간 건 있었다. 유아연이 지난번에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 ‘나중에 저도 잘 부탁해요.’ 하고.
그게 지나가는 말로 한 건지, 정말로 자신의 보컬 트레이너를 맡아달라고 하는 건지, 그 뉘앙스가 애매했지만.
“그럼 저도 미팅 준비 해야 하는 거예요?”
“아직은 기획 단계라서 영민 선생님은 참석만 해주세요.”
그렇게 되었다.
이제는 여솔 탑을 찍고 있는 가수의, 그것도 아시아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스타를 맡게 되었다.
유아연…… 과연 어떤 사람인지, 이 일을 맡은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 * *
가장 노래를 잘하는 20대 여성 가수라고 하면 세 명 정도가 꼽힌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셋 중 둘은 다른 가수로 바뀔 때가 있기도 하지만 한 명만큼은 언제나 꼽히곤 했다.
바로 유아연이 그런 인물이었다.
또한 가장 댄스 실력이 출중한 여성 가수를 뽑아도…….
이것 역시 세 손가락 안에, 넓게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언제나 들어가곤 했다.
하나만 더 얘기해 보자.
활동하는 20대 여성 연예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뽑아본다면…….
다섯 명 안에는 들지 않을까? 세 명 정도는 여배우 중에서 최고의 흥행 파워를 자랑하는 트로이카가 있었고, 나머지 두 자리 중 하나 정도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몬스터 뮤직에 있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계약을 연장하며 몬스터 뮤직과 함께하는 의리를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이 회사에 있으면 자기가 완전한 여왕으로 있을 수 있으니까요.”
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런 대단한 사람의 보컬 트레이너를 맡게 되었다.
-노래를 잘하고 싶으면 박영민 선생님을 찾아가라. 누가 이런 말을 하던데요?
그녀는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었고
-포보이스. 거기서 고음 쭉쭉 올라가던 분 맞죠? 신기하다. 박영민 씨도 우리 회사에 있었구나.
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지.
어쩐지 나에게는 호의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막상 미팅을 하게 되고 비지니스적인 관계로 그녀를 대하게 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스타가 되어 자라온 사람. 그 어디든지 가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 더욱이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이력.
어쩌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 * *
김인혁 이사를 비롯해서 실무진 중 팀장급은 모두 참석한 회의. 그 중심은 물론 유아연이었다.
나는 그녀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모습만 줄곧 봐왔기 때문인지, 평범한 브이넥 블라우스와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은 조금 신선하게 보이기도 했다.
다만 핏이 매우 타이트해서 역시 연예인이라는 아우라는 충분히 느껴졌지만.
“그래.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
A&R 본부장은 김인혁을 힐끔 바라보며 유아연의 말에 맞장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조금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음 앨범부터?”
턱을 괴고 있던 김인혁이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이번 앨범이잖아요.”
이처럼 미팅 분위기가 조금 술렁인 것은 유아연이 요청한 내용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김인혁의 프로듀싱으로 앨범을 발표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번 앨범은 자신과 김인혁의 공동 프로듀싱, 그리고 다음 앨범부터는 자신이 혼자서 제작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알았어. 그렇게 해봐.”
데뷔 10년 차. 이제 스물다섯 살. 이번에는 뮤지션의 역량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아연 측에서는 이미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고, 회의는 그것을 설명해 주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몬스터 뮤직에서 셀프 프로듀싱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꽤 많은 편이었다. 오히려 음악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회사에 의지하고 있는 그녀가 특이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몬스터에서 트레이닝을 받아, 프로듀서가 정해준 곡을 불렀던 아이돌 시스템은 오직 그녀에게만 적용이 되는 케이스였고, 그다음으로는 비츠걸스가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탈피해서 자기도 음악에 손을 대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 * *
회의가 끝날 무렵 나하고는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남아달라고 했다.
“연습실로 가서 얘기할까요? 오늘 애들 있다면서요?”
“비츠걸스요?”
“걔네들 좀 보고 싶어서요.”
오늘은 저녁에 잡혀 있는 인터뷰를 빼고는 스케줄이 없어서 애들은 연습실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매니저는 수행 비서처럼 그녀 옆에 붙어서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낯선 광경은 아니라지만 당당한 듯 어깨를 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매니저의 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김 이사님하고 교대하셨다면서요? 이번에 디렉팅하신 거 바로 차트에 올랐던데.”
“애들이 열심히 해준 덕이죠.”
“곡을 잘 고르신 거죠. 곡 안 좋으면 반짝하고 말잖아요.”
말없이 웃었다. 요즘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데, 뭐라고 대꾸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봤어야 말이지.
“우리 회사 좀 일찍 들어오시지 그랬어요. 그럼 이렇게 빙 둘러가지도 않았을 텐데.”
“아, 네…… 하하.”
무안해서 등이 간질간질할 무렵 땡 하는 종소리가 나를 구해줬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에 도착,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걸어 연습실에 도착했다.
“어? 안녕하세요!”
유아연이 들어오니 애들은 화들짝 놀랐다.
“꼬맹아.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조카라도 만난 듯한 얼굴을 하고서 그녀는 연화에게 먼저 다가갔다.
“이야, 우리 꼬맹이 많이 컸네. 어떻게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해? 이러다 나중엔 못 알아보겠다.”
그러면서 어린 애를 대하듯이 볼을 살짝 꼬집어 흔드는 것이 아닌가.
연화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고.
“이제 언니 왔으니까 마음 놓고 있어. 알았지?”
몬스터 뮤직의 초창기. 이제 막 데뷔하는 열여섯 살 소녀와, 연습생으로 갓 들어온 열 살짜리 아이의 만남. 그게 10년을 이어온 것이다.
유아연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 애로 보이는가 보다.
“그리고 다은아.”
“네. 선생님.”
“너, 왜 이렇게 잘해?”
“헤헤…….”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잖아.”
“에이, 그건 아니죠.”
김다은과는 케이팝보이스 때.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만났던 인연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은이는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른다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소리가 쭉쭉 뻗는 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하더라. 영민 선생님. 저도 이렇게 만들어주셔야 하는 거예요. 아셨죠?”
비츠걸스의 네 명은 제각각 유아연과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다은이와 연화 외에도, 승연이는 유아연이 직접 오디션을 보고 픽업했다고 하고, 선하 또한 자신의 인맥을 통해 춤 잘 추는 사람을 추천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네 명이 한 팀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민 선생님은 많이 바쁘시겠네요. 얘네들 키우랴, 다른 연습생들 챙기랴.”
“제가 일복이 좀 있나 봐요.”
“무리한 부탁드리는 건 아니죠? 저까지 해달라는 거?”
사실 무리한 일이기는 했다.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내야 유아연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탑 클래스의 보컬을 맡아보고 싶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다듬어온 목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 그걸 눈앞에 느껴보고 싶었다.
잠 좀 줄이면 다 할 수 있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에 하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 일은 낮에 하고.
“저기, 오빠는 나가서 애들하고 내 거 마실 것 좀 사다 줘. 50 칼로리 안 넘는 걸로. 그리고 선생님은 뭐 드실래요?”
“저는 사무실에서 실컷 마셔서 괜찮아요.”
“그럼 선생님도 같은 걸로. 오빠 거도 알아서 사와.”
그러자 매니저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얼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난 이런 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더라.”
“아, 미안해.”
“센스 있게 아까 1층에서 딱 내렸으면 백 점이었는데. 그렇죠?”
이번에도 ‘그렇죠오?’는 내 쪽을 보고 나한테 묻는다.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뭐라고 대답하라고.
* * *
매니저가 나간 사이 우리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 레슨 스케줄을 상의했다.
당장은 아시아 투어가 잡혀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고, 다녀온 뒤에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괜찮아요.”
기한은 레코딩을 할 때까지.
그 정도면 할 만했다.
얘기가 다 끝났을 무렵 매니저는 헐레벌떡 뛰어와 우리 앞에 캔 음료수를 내려놓았다.
모처럼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아연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애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걸 듣고.
그렇게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아 참, 그리고 이번에 출국하기 전에 음방 하나 하고 갈 거거든요. 국내 팬들도 챙겨야 되니까요. 그때 비츠걸스도 같이하죠. 제가 섭외해달라고 얘기해 놓을게요.”
고맙다고 대답했다. 우리 애들이야 그런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니까.
“제가 생각해 둔 게 있었는데요. 콜라보하는 건 어떨까요?”
“콜라보요?”
“비츠걸스가 먼저 무대를 시작하고 제가 중간에 끼어드는 거예요. 배드 보이였나? 그걸 같이하는 거예요. 다섯 명이서 무대를 연출한 다음에 제 솔로곡을 하는 거죠. 어때요? 타겟을 다음 주로 잡고 연습하면 충분히 될 것 같은데.”
오! 괜찮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아연은 언제나 음방에서 가장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렇게 연출을 잡는다는 것은 우리 애들 또한 마지막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이름을 알리는 것이 시급한 우리로서는 괜찮은 제안이었다.
“언니가 오늘은 안 되고, 내일부터는 같이 연습할 수 있어. 괜찮겠지, 너희들도?”
그런 무대를 상상해 봤다. 우리 애들 네 명이 곡을 시작하고 한 타임을 돈 다음에, 화려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유아연이 무대로 등장…… 그리고 다섯 명이 하나가 되어 보여주는 퍼포먼스…….
좋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내키지가 않지?
“영민 선생님은 왜요? 왜 이렇게 심각하셔.”
다시 상상해 봤다. 얼마 전 유미와 함께 인터넷 방송을 했을 때도 잘 해냈잖아. 그거랑 이건 전혀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선배 한 명과 함께하는 그림이 나쁘지는 않았어.
선배가 잘 이끌어주고 네 명의 아이들은 그 뒤를 따르는 그런 그림이 괜찮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유아연과 함께하는 모습은 아무리 그려봤자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배드 보이를 함께하신다는 말씀이죠?”
“제가 그런 스타일 잘 소화하잖아요.”
현존하는 탑 여솔과 함께하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 음방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수 있다는 혜택.
생각해 보면 우리 쪽에서 해달라고 졸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선뜻 먼저 제안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내 감각이 자꾸 거부하고 있다. 유아연 이 사람하고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고.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고마운 말씀인데 일주일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요.”
“……?”
“좀 더 시간을 두고 연습할 수 있게 되면 그때 해보죠. 우리 애들은 아직 아연 씨 만큼 빠릿빠릿하게 뭘 익히는 게 어렵잖아요.”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전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
“나랑 하기 싫으신가 보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유아연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솟아나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내 두뇌를 지배하고 있는 이 감각은 정확히 엑스 표시를 그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얘기가 잘 마무리되었나 싶었지만.
함께 연습실을 나온 뒤 유아연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박영민 씨.”
“예?”
“자신만만한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해요. 하지만 좀 거만해 보이는 건 제 착각일까요?”
뭐? 내가 거만해?
“무슨 말씀이죠?”
“저보다 선배님이시니까 더 잘 아시겠죠. 좀 위태로워 보여서 말씀드렸어요.”
“…….”
“보컬 레슨은 잘 부탁할게요.”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잠시 스쳐 간 그녀의 눈빛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눈초리가 잠시 스쳐 지나갔다.
프라이드가 너무 강한 건가.
불쾌하다기보단 이런 생각이 앞섰다.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언젠가는 내려올 수밖에 없을 텐데 그때에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적어도 한솥밥을 먹고 있는 관계니 그런 걱정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 * *
아이즈 컴퍼니의 김우진 실장은 저녁을 먹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차를 거칠게 몰며 회사로 향했다.
“그 새끼들 언제까지 대답해 달라는 거야?”
-두 시간 안에 회신 없으면 그대로 뿌린답니다.
“알았어. 곧 도착하니까 기다리고 있어.”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도 못 먹고 이러는군.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 어떤 언론사에서 아이즈 컴퍼니로 사진 네 장을 보내왔다.
플라지아의 멤버 한 명과 어떤 남돌 한 명의 스캔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진.
각각 따로 호텔에 들어가는 사진 두 장, 나오는 사진 두 장.
그리고 짤막한 코멘트도 사진과 함께 도착했다. 가지고 있는 사진은 총 서른 장. 아직 보내지 않은 사진 중에는 열애설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실려 있는 것도 있다고.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없었지만, 김우진의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려 댔다.
-우진아. 너 어디야?
“지금 가고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돼?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도착해요.”
그쪽에서는 두 시간 안에 답변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요구하는 금액이 통상적인 것에 몇 배가 넘었다.
아무리 아이즈 컴퍼니라고 해도 부담이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얼마 전 섹스 스캔들을 겪은 팀이라서…… 최근에 차트와 음방에서 1위를 놓치는 듯 삐끗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라서…… 아니, 그런데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터졌던 Y그룹 차남의 마약 혐의. 거기에는 연예인 몇 명이 연루되어 있다는 기사도 함께 퍼져 나갔다.
대중들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김우진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하필이면 그놈이다. 보내온 사진에 찍혀 있는 바로 그놈이었다. Y그룹 차남과 같이 마약하고 다니는 새끼.
“더럽게 꼬여 버렸네.”
하필이면 그놈들이 했던 게 최음 효과가 있는 각성제 종류.
그쪽에서 금액을 높게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 진짜…… 애새끼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회사까지 가는 내내, 질퍽한 욕설이 김우진의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안 만났다고?”
“그런 사이 아니에요.”
“만났어, 안 만났어?”
“그런 사이가 아니라구요. 진짜예요.”
당사자는 오리발을 내민다. 김우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면역이 되어버렸다.
“왜 자꾸 저한테만 그러세요?”
“채아야.”
“왜요?”
“난 너랑 같이 못 하겠다.”
“예?”
“여기까지 하자. 너랑은 같이 못 가겠어.”
그러자 채아는 테이블에 바짝 엎드려서, 괴롭다는 듯이 얼굴을 비벼댄다.
“아, 진짜. 딱 한 번 만났어요. 딱 한 번.”
“그런 사이 아니라면서?”
“그냥 딱 한 번 만난 거라구요. 앞으론 진짜 조심할게요.”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김우진을 바라보다니 다시 테이블에 고개를 묻는다.
넌지시 물어봤다. 같이 약도 했냐고.
“미쳤어요? 안 했어요. 이건 진짜예요. 진짜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김우진이 바라보자
“진짜 안 했다구요. 못 믿겠으면 제 머리카락 뽑아가세요.”
“안 한 거지?”
“했으면 내가 실장님 집에 들어가서 평생 노예로 살게요. 저 진짜 안 했어요.”
당사자 면담은 여기까지.
그리고 그놈들과는 밀당을 한 끝에 금액을 절반으로 낮추어 보내주었다.
“그 새끼들 뒷조사 좀 더 해봐.”
“네.”
문제는 그놈들이 더러운 족속들이라면 여기서 떨어지지 않고 자꾸 들러붙는다.
아이들에게 계속 약점이 발견된다면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사실 처음부터 일곱 명 중 두 명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봤었다. 그래도 신경 써서 케어해 주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들은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은 많을 것이고, 아무리 스타가 되었다지만 어디엔가 갇혀 사는 듯한 답답한 마음은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잘못 이끌고 온 건가.’
김우진은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모금으로 허기를 채웠다.
한숨과 함께 내뱉은 연기가 까만 밤하늘을 향해 올라가다가 바람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 * *
“쌤. 괜찮아요?”
괜찮냐니? 꼭 병문안 온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네.
“왜들 그래?”
그것도 네 명 모두.
“쌤. 그 레슨 꼭 하셔야 되는 거예요?”
“무슨 레슨?”
“저 선생님이요. 막 이상한 말을 하잖아요.”
무슨 얘길 하는 건가 했다. 하긴 코앞에서 하는 얘기를 못 듣는 게 더 이상하지.
평소에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선하마저 “거만하기는…… 자기가 거만하면서.” 하는 말을 혼잣말처럼 했고.
“아니, 거만하면 안 되는 거야? 곡 세 개 연속으로 띄우셨잖아. 3전 3승! 우리 회사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또 있다고.”
승연이까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맞아요!”
“못 가르쳐주겠다고 하세요. 저런 사람 왜 가르쳐줘요. 안 그래도 맨날 피곤하신데.”
우리 애들은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뒤에서 욕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너희들 이거 습관 되면 계속 이런다. 말 한 번 잘못 퍼지면 너희만 난처해지는 거야.”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선생님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속상해서 그렇죠. 하여튼 여왕 아니랄까 봐 회사에서 누가 잘나간다 그러면 꼭 견제하더라.”
“왜 견제하는 건데요?”
“자기 혼자 여왕이어야 된다는 거지. 그 자리 빼앗기기 싫어서.”
“쌤은 남자라서 여왕 못되잖아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승연이와 다은이는 계속 그렇게 떠들고 있었다.
“그만 떠들고 연습해. 연습! 너희들이 성공해야 내 기가 살 거 아냐.”
“네.”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은 차가운 마룻바닥 위에서 뜨거운 땀을 떨어뜨리며 열정을 빛내기 시작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얘네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누군가 끼어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가는 것은 전혀 내키지 않았다.
주인공은 우리 애들이어야 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무대에서는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리고…… 유아연은 아마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회사의 대표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그녀의 음악을 유심히 들어봤다. 콘서트 영상도, 데뷔 초기에 활동하던 모습도.
그렇게 그녀의 음악을 접하고 있으면 대중들을 사로잡는 강력한 힘에 감탄을 하게 된다. 내 감각이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짜릿함이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유아연이 왜 성공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도리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음악, 이런 퍼포먼스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잖아.’ 하고 말하는 수밖에.
인혁이도, 유아연도 정말 찰떡궁합이라고 할 정도로 강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활동 초기의 이야기고
그러한 대중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맹물 같은 음악이었고, 올해 초에 발매했던 앨범의 경우는 내 기준으로 졸작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대중성을 전혀 못 읽고 있어.
팬덤의 힘이 관성처럼 작용해 주기 때문에, 그리고 최근 앨범은 소녀 이미지를 벗고 과감하게 섹시 컨셉을 도입한 파격적인 모습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나 보지만, 계속 저러다가는…….
인혁이의 감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자기 반복에 그치고 있는 면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곡이 좋아도 아티스트가 그걸 받아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번 한 번만 더 돌려보고 좀 쉬었다 하자.”
“네.”
우리 애들과는 달랐다. 이처럼 신선한 느낌.
그러니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직 우리 애들뿐이어야 했다.
* * *
“또 도시락이에요?”
“이거 은근히 먹을 만해요.”
저녁 먹을 시간을 번번이 놓치다 보니, 요즘에는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산다.
회사 탕비실에서. 그것도 쭈그려 앉아서.
“내일부터는 제가 기다릴 테니까 같이 저녁 먹어요. 너무 불쌍해 보이잖아요.”
인심 많은 홍보팀장은 그런 말을 하면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같이 저녁 먹으면 좋기야 하지. 그런데 이 사람은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자꾸 나한테 혼기를 놓치면 안 된다면서 여자 좀 만나고 다니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애를 낳아보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면서.
“내일부터는 저랑 같이 저녁 먹는 겁니다. 알았죠?”
“예, 예.”
“혼자 사는 총각이 그렇게 먹는 걸 보니까 참…….”
또 결혼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하며 밥을 입에 구겨 넣었다.
탕비실을 나오니 내 자리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민 선생님! 어서요. 이것 좀 보세요.”
정영수 팀장. 내가 이렇게 바쁘다. 그러니 어디 가서 한가롭게 밥을 먹고 있을 수 있나.
“제가 좋은 소식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정 팀장은 A4 문서 서너 장이 묶여 있는 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방송 프로그램 기획안.
“우리 애들 여기 내보낼 겁니다. 섭외 따냈어요.”
“방송인가요?”
“예. 한 번 읽어보세요.”
프로그램명은 ‘8 Dols’.
방송국은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그리고 제작사는 Bee 엔터라고 음악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하던 곳.
방송 기간은 16주로 편성되어 있었다.
“영민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거였어요. 음향 장비 제대로 갖춘 무대에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요.”
“아…… 이게 그런 거예요?”
“그럼요. 여기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거예요.”
기획 의도는 국내 아이돌 팀의 퍼포먼스를 보다 나은 퀄리티의 무대를 통해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
기존의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돌 멤버들의 재능을 선보이는 것.
“여덟 팀이 출연하는 겁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아이돌 그룹 여덟 팀이 출연을 하며, 미션곡을 받아 2주간 연습을 한 뒤,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청중평가단 앞에서 공연을 하며 청중들은 가장 마음에 드는 무대에 투표를 한다.
“잠깐만요. 투표를 한다구요?”
청중평가단의 투표수를 합산하여 1위부터 8위까지 순위를 매기고, 8위를 한 팀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그 빈자리에는 다른 아이돌 그룹이 합류하는 것이다.
“아니 이거…… 나는 가수다 아니에요?”
“맞아요. 이번에는 아이돌 버전이랍니다.”
“아, 이건 좀…….”
시즌 1은 여돌, 시즌 2는 남돌. 그리고 첫 방송은 다음 달부터.
“이런 게 될까요? 팬덤 큰 팀이 상위권 싹쓸이할 텐데.”
기획 의도를 보면 숨겨진 재능을 발굴한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아이돌끼리 경쟁하는 곳에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제일 재미 없는 게 ‘어차피 우승은 OOO’라고 답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인데.
“그렇기야 하겠지만, 탑티어에 있는 팀은 이런 데 안 나와요. 여기라도 나와서 자기들을 알려야 하는 팀들이 모이는 거니까요. 우리처럼.”
“알았어요. 해보죠.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니까 한 번 해보는 겁니다.”
“Bee 엔터가 음향은 제대로 뽑아내니까 괜찮을 겁니다.”
편성은 총 16주였지만 그중에 여돌은 8주, 나머지 8주는 남돌이었다.
2주에 한 번씩 경연이니까 끝까지 살아남으면 총 네 번의 경연.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제 생각에는 이거 괜찮아요. 저희 같은 팀이 이름 알리기에는 딱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우리 애들을 꼭 내보내고 싶은데…… 위에서 승인을 해줄지 모르겠네요.”
“위에서요? 섭외 떨어진 거 아니었어요?”
“방송국 말고요. 우리 회사요.”
문제는 방송국에서 의상이나 편곡비 등을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전부 소속사에서 부담을 해야 됐다.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프로그램 제작사에서 음원에 대한 1차적인 믹싱은 해주지만 나머지 작업 또한 전부 소속사에서 해결해야 됐다. 그러면서 음원에 대한 수익은 프로그램 제작사와 나눠 먹는다는 조건.
한마디로 자기들은 홍보해 줄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할 테니까 나머지는 소속사에서 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최소한의 제작 비용으로 이런 포맷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것이고, 출연 팀들은 돈을 들여서라도 자기들을 홍보하려고 하는 것. 이런 두 가지 조건이 만나야 충족되는 일이었다.
“우승하면 상금이 1억이긴 한데 말이죠.”
“겨우 1억이에요? 네 번 경연하는 동안 우리 회사에서 나가는 돈만 1억 넘을 것 같은데.”
“박 전무님께서 자금을 잘 돌려주시면 가능할 거예요. 얼마 전에도 영민 선생님이 애들 차트에 집어넣었다고 그렇게나 칭찬하셨다고 하네요.”
몬스터 뮤직의 업무는 언제나 기승전 박전무. 음악산업이란 것이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니만큼 그분의 역할은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영민 선생님 허락 떨어졌으니까 이렇게 추진해 보겠습니다. 애들 팀워크만 잘 정리되면 우리도 상위권 차지할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애들 팀워크요?”
“방송에는 곡을 준비하는 모습 한 주, 경연 무대 한 주, 이런 포맷이 반복될 거예요. 나는 가수다 보셨으면 아시잖아요. 애들끼리 의논하는 거, 연습하는 거 그대로 방송에 나갑니다. 잡담하는 것도 다 나갈 거예요. 그런데 우리 애들 저러는 거 노출되면 이미지 안 좋아지겠죠. 편집도 자극적으로 나갈 텐데.”
그것도 문제였군.
“그럼 걔네 둘은 과묵한 컨셉으로 갈까요? 평소에 말 한마디 안 하는 컨셉?”
“에이, 그건 안 되죠.”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승인은 그날 저녁 떨어졌고, 우리 애들 그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가수다, 아니, 나는 아이돌이다 뭐 이런 거에.